그야말로 ‘쇼 타임’이었다. 타이스의 존재감이 경기 후반 장충체육관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타이스 덜 호스트(등록명 타이스)는 V-리그의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승부욕의 화신이자 코트 리더다. 점수 하나하나에 큰 리액션과 세리머니를 펼치며 동료들을 독려하고, 자신의 뜻대로 플레이가 풀리지 않았을 때는 거세게 자책하며 다음을 준비한다. 심지어 작전 시간에도 안요한 통역을 통해 선수들을 독려하고 응집시키는 리더 역할을 수행한다.
1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 우리카드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 4라운드 맞대결은 그런 타이스의 승부 근성이 완벽한 경기력으로 승화된 경기였다. 이번 시즌 들어 아직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리그 선두 우리카드를 꺾은 최대 원동력은 타이스의 맹활약이었다. 경기 초중반에는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았지만, 이를 갈며 공격력을 끌어올린 타이스는 4세트 서브 득점 1개 포함 10점‧5세트 9점을 터뜨리며 경기 후반을 완전히 지배했다.
타이스의 맹활약 속에 한국전력은 우리카드를 세트스코어 3-2(17-25, 25-19, 21-25, 25-20, 15-9)로 꺾고 승점 2점을 챙겼다. 이번 시즌 우리카드전 첫 승이자 중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승리였다.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은 타이스는 “승리해서 너무 기쁘다. 이번 시즌에 아직 이기지 못했던 우리카드가 상대라서 좀 어려운 경기를 예상했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상대가 우리보다 부담감을 더 느꼈던 것 같다. 그게 승리의 요인이었다”고 경기를 돌아봤다.
3라운드 후반~4라운드 초반에 타이스의 컨디션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공격 성공률이 50%를 넘기지 못하는 경기도 많았고, 이로 인해 감정적으로도 동요하는 듯한 경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타이스의 공격력은 확실하게 정상 궤도에 올랐다. 특히 이날 4-5세트의 퍼포먼스는 본인의 역량 그 이상을 보여줬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타이스는 “사실 4라운드 초반에 무릎이 좀 좋지 않았다. 올림픽 최종예선 이후 중국에서 바로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충분히 무릎 상태를 관리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며 4라운드 초반까지의 부진 원인을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몇 주 전부터 무릎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았고, 감독님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무릎 상태가 좋아지면서 퍼포먼스도 좋아졌다”고 올라온 경기력의 비결도 소개했다.
이어서 타이스는 경기를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V-리그에서는 자신감을 잃는 순간 경기력이 크게 흔들린다”고 입을 뗀 타이스는 “이번 경기의 5세트처럼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나서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 있다. 이번 경기처럼 강한 마인드셋을 가지면 우리가 어떤 팀이든 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함을 역설했다.
타이스의 마인드셋 강의는 계속됐다. 5년차 V-리그 외인인 타이스는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갖춰야 할 덕목을 묻는 질문에 “외국인 선수로서 V-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면 이곳의 문화와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왔던 나의 배구를 잘 접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험과 이곳의 특색이 잘 어우러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적응과 고집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언급했다.
끝으로 타이스는 베테랑 선수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팀의 구성원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나를 포함한 베테랑 선수들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시몬이 이번 경기에서 리베로로 들어왔음에도 잘해준 것처럼,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해줘야 한다”며 팀의 베테랑 선수들을 독려했다. 권영민 감독이 남긴 멘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성숙하고 리더십이 느껴지는 멘트였다.
주장 박철우를 필두로 서재덕‧신영석‧김광국 등 베테랑 플레이어들이 다수 포진한 한국전력은 고비마다 베테랑들의 말과 행동으로 추진력을 얻고 있다. 타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국적만이 다를 뿐 그는 V-리그의 베테랑이자 한국전력 코트 위의 리더다. 이번 경기의 후반부를 장악했던 타이스의 승부욕과 강인한 멘탈은 한국전력의 시즌 후반을 성공으로 이끌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_KOVO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