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 ‘다양한 스토리 탄생’ 컵대회 통해 생성된 2020-2021시즌 키워드

서영욱 / 기사승인 : 2020-10-11 21: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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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시즌을 앞두고 펼쳐지는 전초전,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이하 KOVO컵)는 지난 9월 5일 막을 내렸다. 본격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팀 전력을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인 만큼, 실제로 KOVO컵은 정규시즌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여러 키워드를 제시했다.

어우흥! 인 줄 알았으나
KOVO컵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팀은 흥국생명이었다. 김연경이 국내 무대로 복귀한 후 처음 선보이는 공식 무대면서 김연경-이재영-이다영으로 이어지는 호화 라인업을 꾸린 흥국생명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없는 강력한 라인업으로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기도 했다.

뚜껑이 열리고 드러난 흥국생명 저력은 예상대로였다. 조별예선부터 준결승까지 네 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매 세트 압도적인 점수 차를 낸 건 아니지만 한 세트도 주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용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김연경은 전성기는 지났어도 ‘월드 클래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우승 트로피와 함께 KOVO컵을 마치지 못했다. 결승 상대 GS칼텍스는 철저한 대비를 앞세워 흥국생명을 세트 스코어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팀 내 미들블로커 중 신장이 가장 좋은 문명화를 기용해 높이를 보강하고 김연경 공격 코스를 철저하게 예측하고 막아내는 등 특히 수비에서도 좋은 대비책을 가져와 흥국생명을 궁지로 몰았다. 강소휘-러츠-이소영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 위력도 이날 고점을 찍었다. 여러 요소가 맞물리면서 매 세트 접전 끝에 GS칼텍스가 승리했다.

‘어우흥’은 KOVO컵에서 한 차례 무너졌다. KOVO컵 결승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호화군단 흥국생명을 이기는 하나의 해법을 다른 팀에게 제시했다. 흥국생명이 완전무결한 팀은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흥국생명에도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KOVO컵에서 패배를 경험하면서 향후 보완해야 할 점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오히려 부담을 덜었다.

흥국생명을 한 번 이기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전제가 필요하다는 것도 드러났다. 장기 레이스인 정규리그는 부상과 컨디션 등 다른 변수가 많다고 해도 흥국생명이 보유한 전력의 강력함은 분명하다. KOVO컵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것이 흥국생명에 보약이 될 수도 있다. 다가올 정규시즌에도 흥국생명 경기는 승패, 경기 내용에 따라 많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어우흥’은 정규시즌부터 포스트시즌에 이르기까지 여자부를 관통하는 스토리 라인이 될 게 분명해 보인다.


다크호스 출현?!
남자부 역시 이변과 함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년 전 컵 대회에서 조별예선 3패 탈락과 함께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친 한국전력은 결승전에서 대한항공을 3-2로 꺾고 3년 만에 컵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전력은 대한항공과 견줘 누가 봐도 전력상 열세였다. 게다가 한국전력은 전날 오후 7시 현대캐피탈과 준결승전을 벌였다. 그것도 5세트 듀스까지 가는 장기전을 치르고 다음 날 오후 2시에 경기를 치러야 했다. 여러 악조건을 뚫고 거둔 값진 승리였다. 결승전마저 5세트 격전이었음에도 한국전력은 저력을 보여줬다.
 


이번 KOVO컵 우승은 투자의 힘, 그리고 팀 전력 상승을 위해서는 인적 변화가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임을 보여줬다. 지난 비시즌 한국전력은 FA(자유계약선수)로 박철우와 이시몬을 영입했다. 두 선수 모두 KOVO컵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교체가 유력했던 러셀이 반전 경기력을 보여준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러셀은 KOVO컵 전, 조별예선 첫 경기까지만 해도 교체가 유력했다. 하지만 조별예선 두 번째 경기부터 공격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뒤 결승까지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리시브는 마지막까지 불안했지만 공격에서 기대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줬고 큰 신장에서 오는 블로킹 위력도 상당했다. 러셀과 박철우 존재 덕분에 한국전력은 이전과 달리 승부처에서도 뚫어나갈 힘을 확인했다. 6년 만에, 그것도 다른 포지션으로 돌아와 KOVO컵 최고 히트작이 된 안요한 존재도 큰 힘이 됐다.

관건은 KOVO컵에서 보여준 달라진 경기력이 정규리그에서 얼마나 이어지느냐에 있다. 안요한 경기력이 정규리그에도 이어질지, 러셀의 리시브는 안정감을 보일 수 있을지, KOVO컵에서 경험 부족이 드러난 세터 김명관은 얼마나 해줄지 등 많은 변수가 있다. 장병철 감독은 KOVO컵 이후 일부 선수들의 정신적인 면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단기전과 달리 장기 레이스인 정규시즌은 변수를 최대한 줄이는 게 중요한 무대다.

최근 남자부는 순위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20-2021시즌은 남자부의 경우, 이전보다는 팽팽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 예상이 KOVO컵 이후 나오고 있다. KOVO컵 우승팀 한국전력이 장기 레이스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남자부 순위 경쟁 흐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안겨줬다.


피지컬의 중요성
올해 KOVO컵 결승전은 남녀 모두 배구에서 근본이면서 중요한 요소인 피지컬, 신장의 중요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GS칼텍스가 결승전에서 흥국생명을 막기 위해 첫 번째로 내세운 게 신장이었다. 문명화를 준결승전부터 본격적으로 기용하면서 결승전에는 선발로 내세웠다. 문명화는 블로킹은 1개였지만 유효 블로킹 8개를 잡아내 1차 저지선 역할을 확실히 수행했다. 러츠는 이재영과 김연경을 확실히 견제했다. 207cm에 달하는 러츠 존재로 김연경은 특유의 직선 공격을 쉽게 시도하지 못했다. 러츠는 블로킹 자체도 4개를 잡아냈다. 국내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신장을 보유한 김연경도 러츠를 뚫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전력도 높은 사이드 블로커 이점을 살렸다. 한국전력은 2019-2020시즌 블로킹 6위에 그친 팀이다. 사이드 블로커 신장이 전반적으로 커지면서 팀 블로킹이 전체적으로 좋아졌다(KOVO컵 세트당 3.095개로 남자부 최고 기록). 김명관은 팀 내 최다인 블로킹 16개를 잡아내며 대학 시절 보여준 강점을 KOVO컵에서 재차 보여줬다. 러셀과 박철우 역시 장신을 활용해 한 코스를 확실히 잡아주면서 미들블로커들이 반사 이익을 봤다(조근호와 안요한은 각각 블로킹 12개, 13개를 잡았다. 세트당 0.6개, 0.65개). 1차 저지선이 견고해지면서 후방에서 오재성, 이시몬 수비도 더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배구에서 신장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가 된다. 팀들이 라인업 전반에 걸쳐 조금 더 피지컬이 좋은 선수를 라인업에 배치하려 하고 그 선수들에게 좀 더 기회를 주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정규리그에서는 각 팀이 이런 신장에서 오는 강점을 얼마나 더 살리고, 부족한 자리는 어떻게 채우는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사회 복귀 환영해
상무 출신 복학생들

2년 연속 남자부 KOVO컵에 참가한 국군체육부대(상무)도 주목해야 할 팀이었다. 오는 11월 22일 전역 예정자 중 각 팀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분류되는 선수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준호가 전역해 8월에 합류한 현대캐피탈은 상무로부터 허수봉과 함형진이 추가로 합류한다. 특히 허수봉은 현대캐피탈에 중요한 자원이다. 입대 직전 플레이오프에서 활약하며 주가가 올라간 허수봉은 상무에서도 아포짓 스파이커로 준수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현대캐피탈은 허수봉을 상황에 따라 다우디 백업, 미들블로커 백업으로 활용하는 것도 구상 중이지만 우선 윙스파이커 자원으로 보고 있다. 최태웅 감독은 KOVO컵 중 인터뷰를 통해 “리시브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는데......”라고 허수봉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전광인이 빠진 자리를 송준호와 함게 메워야 한다. 공격에서는 이제 확실히 검증된 자원이기에 윙스파이커로 기용할 수만 있다면 전력 상승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리시브에서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입대 전처럼 활용도가 제한될 수 있다.

차지환도 윙스파이커 뎁스를 기대하는 OK저축은행에는 중요 자원이다. KOVO컵에서는 공격에서 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리시브 효율은 세 경기에서 45.95%를 기록해 나쁘지 않았다. 상무 복귀자는 아니지만 리베로 부용찬도 지난 9월 말 전역해 팀에 합류했다. 최근 부용찬은 허벅지가 조금 좋지 않아 10월 7일 연습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상무 전역자가 합류하면 더 두꺼운 백업진을 보유하게 된다. 황승빈이 합류하면 세터진 운영에 좀 더 숨통이 트인다. 이미 유광우, 최진성이 백업 세터로 버티고 있지만 황승빈이 합류한다면 호흡을 맞추는 데로 첫 번째 백업 세터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리베로진에도 백광현 합류는 큰 도움이 된다. 백광현은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인 2018-2019시즌 주전으로 올라선 뒤 뒤로 갈수록 좋은 기록을 남겼다. 이번 KOVO컵에서도 리시브 효율 54.39%를 기록했다. 오은렬이 잘 버텨주는 가운데 백광현이 합류한다면 다시 주전으로 올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B손해보험은 황두연만이 상무에서 전역할 예정이었으나 현대캐피탈과 트레이드로 김재휘까지 추가했다. KB손해보험은 상위 순번이 유력해던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넘기면서 미들블로커 보강에 힘썼다. 기존 팀에 미들블로커가 박진우와 김홍정, 구도현까지 세 명뿐이었다는 점에서 미들블로커진 보강 역시 팀에 필요했고 KB손해보험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김재휘는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인 2018-2019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와 세트(35경기 132세트)에 나서면서 총 205점, 공격 성공률 55.79%에 세트당 블로킹 -.515개를 기록했다. 총 득점과 세트당 블로킹은 커리어 하이였다. 신장도 좋은 선수이기에 KB손해보험에는 많은 보탬이 될 선수다. 황두연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지난해 KOVO컵에서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았던 황두연은 이번 KOVO컵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윙스파이커진에 힘을 더할 수 있는 황두연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반갑지 않다.

안우재가 합류할 한국전력은 아직 불안한 미들블로커진에 힘을 더할 수 있다. 신장은 미들블로커 기준 그리 크지 않지만 속공에는 강점이 있다. 장병철 감독은 여러 방면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터 대이동
여자부는 2020년 비시즌을 거치며 KGC인삼공사를 제외한 다섯 팀이 새 주전 세터를 맞이했다. 새 세터와 함께 나서는 첫 공식 대회라는 점이 여자부 KOVO컵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주전 세터를 바꾼 팀들은 KOVO컵을 통해 호흡을 맞추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통 과제를 받았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세터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모은 선수는 역시 이다영이었다. 2019-2020시즌을 기점으로 기량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다영은 이재영, 김연경과 한 팀을 이뤘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빠른 발과 운동능력 등 신체조건에서 오는 강점은 흥국생명에서도 여전했다. 다만 이주아, 루시아와 보인 호흡은 아직 부족했다. 접전 상황 혹은 20점 이후 결정적 상황에서 경기 운영에 대한 아쉬움도 남겼다.

이다영이 빠지며 전력 공백이 크다고 평가된 현대건설의 경우, 이나연이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다. IBK기업은행보다 안정적인 리시브를 구사하는 현대건설에서 이나연도 좀 더 편하게 세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전부터 현대건설 최대 강점인 양효진과 호흡도 나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이번 KOVO컵에서 ‘정지윤 시프트’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리시브가 가능한 루소 존재로 정지윤이 전위일 때 고예림이나 황민경 대신 이다현을 투입하고 정지윤이 좌우, 가운데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전술을 종종 활용했다. 이런 광경은 정규시즌에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세터를 맞바꾼 GS칼텍스와 한국도로공사는 각기 다른 이유로 시간이 필요함을 보여줬다. 안혜진은 경기 중 기복이 상당했다. 경기 초반에는 좋았다가 중후반에 흔들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원정이 그럴 때마다 투입돼 소방수 역할을 했지만 안혜진 주전 체제로 한 시즌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한다.

도로공사는 이효희-이원정 체제에서 이고은-안예림 체제로 개편했지만 아직 공격수-세터 호흡이 전반적으로 완전하지 않았다. 김종민 감독은 이고은을 두고 기존 팀 스타일(활발한 미들블로커 활용)에 너무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켈시와 호흡도 불안정했다. 안예림이 아직 세터로 일정 시간 이상을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기에 이고은의 짐이 무겁다.

IBK기업은행도 호흡이 불안정했다. 백패스가 아쉬운 조송화이기에 라자레바에게 좋은 볼이 올라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그러는 와중에도 라자레바가 좋은 공격력을 보인 건 긍정적이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는 리시브였다. 조송화는 발이 그리 빠르지 않은 세터다. 리시브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대부분 언더핸드 세트로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정확도도 떨어진다. KOVO컵에서는 불안한 리시브(팀 리시브 효율 24.65%)와 함께 조송화의 느린 발이 더해져 문제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라자레바는 컵 대회 중 생긴 복부 부상으로 9월 중순까지 휴식 중이다. 부상으로 컵대회를 아예 건너뛴 김희진 역시 9월 중순까지 훈련에 복귀하지 못했다. 호흡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 여러 문제가 겹쳐버린 IBK기업은행이다.


글/ 서영욱 기자
사진/ 유용우, 홍기웅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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