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은 아니었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주전 못지않았다. 고민지와 한미르도 어엿한 통합우승의 주역들이다.
주전이 아닌 교체로 코트를 밟는 선수들이 팬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출전 시간 자체가 짧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서브와 수비를 위해 교체되는 선수들은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한정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돋보일 수 있기에 부담감까지 크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도, 그걸 팬들에게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어려운 걸 해내면서 팀의 우승까지 이끈 선수들이 있다. 바로 현대건설의 고민지와 한미르다. 1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치러진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현대건설이 흥국생명을 세트스코어 3-2(22-25, 25-17, 23-25, 25-23, 15-7)로 꺾으면서, 두 선수는 통합우승의 일원이 됐다. 그러나 흔한 말로 ‘버스’를 탄 우승이 아니었다. 팀의 우승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했다.
고민지는 시리즈 내내 이른바 서베로로 맹활약했다. 서브를 구사한 뒤 후위에서의 세 자리를 소화하면서 리시브와 수비까지 가담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 전략적인 서브를 범실 없이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이후에 이어지는 수비와 리시브까지 준수하게 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운 롤이다.
그러나 고민지는 자신의 임무를 깔끔하게 수행했다. 시리즈 동안 총 23번의 서브를 구사했고, 서브 득점 1개를 터뜨렸다. 범실은 2개에 불과했다. 여자부에서 보기 힘든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로 흥국생명의 리시버들을 괴롭혔다. 이후에 이어지는 수비와 리시브도 리베로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인 만큼 늘 준수했다.
고민지의 존재는 같은 포지션의 정지윤에게도 큰 힘이 됐다. 정지윤이 후위로 내려가야 할 때 주로 고민지가 정지윤을 대신해 궂은일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정지윤은 2차전이 끝난 뒤의 인터뷰에서 “(고)민지 언니가 까다로운 후위 세 자리를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 언니가 좋은 활약을 해준 덕분에 나까지 부담을 덜 수 있었다”며 고민지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한미르는 원 포인트 서버로 제몫을 다했다. 고민지의 스파이크 서브에 비해 보는 맛은 조금 덜할 수도 있는 플로터 서브를 구사하지만, 정교한 코스 공략 능력과 까다로운 구질을 갖췄기에 어지간한 스파이크 서브 이상의 파괴력을 발휘했다.
한미르 역시 서버로서의 소임을 완벽히 수행했다. 시리즈 동안 총 28번의 서브를 구사했고, 서브 득점 2개를 터뜨렸다. 범실은 하나뿐이었다. 특히 1차전 5세트 12-12에서 나온 역전 서브 득점과, 2차전 2세트 24-21에서 세트를 끝내는 서브 득점은 그 영양가가 높았다. 여기에 탄탄한 수비력과 세터 출신의 경력에서 나오는 연결 능력까지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한미르는 코트 위와 웜업존에서 밝고 유쾌한 성격으로 동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활력을 불어넣어주기까지 했다. 선배들의 득점에 누구보다 신나게 호응하고, 코트 위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선보인 뒤 적극적으로 동료들과 교감하는 모습은 항상 눈에 띄었다.
두 선수는 마지막 3차전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멋진 플레이를 합작했다. 4세트 20-20에서 한미르의 서브 차례 때 고민지가 연속 디그로 팀의 실점을 막았고 이 랠리가 모마의 득점으로 끝나며 현대건설이 역전에 성공한 것. 그렇게 4세트를 따낸 뒤 기세를 몰아 팀이 챔피언이 된 만큼, 두 선수의 합작은 그야말로 슈퍼 서브들의 동반 맹활약이었다.
한 명은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를, 다른 한 명은 까다로운 플로터 서브를 구사했다. 이처럼 서브의 유형은 조금 달랐지만, 고민지와 한미르는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통합우승에 기여했다. 두 선수는 다른 서브로 같은 꿈을 이루며, 스스로의 커리어에 잊지 못할 영광스러운 순간을 새겼다.
사진_인천/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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