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진을 코트에 그대로 둬도, 다른 선수로 교체해도 문제가 생긴다. 한국전력이 딜레마에 빠졌다.
OK금융그룹이 7일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 6라운드 경기에서 한국전력을 세트스코어 3-1(22-25, 25-20, 25-21, 25-20)로 꺾고 봄배구 진출을 확정지었다.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가 서브 득점 5개 포함 45점을 퍼부으며 승리를 견인했다. 이번 시즌 최고 점유율(66.99%)을 기록하면서도 오히려 더 좋은 공격 리듬을 이어간 레오였다.
그러나 승리의 열쇠는 레오뿐만이 아니었다. OK금융그룹의 플로터 서버들이 임성진을 철저히 괴롭히는 데 성공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임성진은 원래 리시브 점유율이 높은 선수지만, 최근 경기력 리듬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날 OK금융그룹의 플로터 서브 폭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리시브 리듬이 흔들리자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1세트부터 고난은 시작됐다. 5-6에서 임성진은 곽명우의 스핀 플로터 서브에 흔들렸고, 결국 타이스 덜 호스트(등록명 타이스)의 공격 범실이 이어졌다. 20-19에서는 원 포인트 서버 박태성의 플로터 서브를 상대 코트로 넘겨버렸고, 곧바로 박창성의 다이렉트 공격이 이어졌다. 다행히 임성진이 23-22에서 공격과 서브로 결자해지에 성공하며 1세트는 한국전력이 따냈다.
그러나 2세트부터는 임성진의 부진이 팀의 세트 패배로 직결됐다. 5-6에서 박창성의 플로터 서브를 불안하게 받으며 이어진 타이스의 공격이 바야르사이한 밧수(등록명 바야르사이한)의 블로킹에 걸렸다. 6-9에서도 임성진의 리시브가 불안했지만 다행히 타이스의 블로킹으로 랠리가 마무리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2에서 레오의 서브가 임성진과 타이스 사이를 관통하며 2세트의 흐름은 그대로 넘어가버렸고, 결국 20-24에서 임성진의 공격이 곽명우의 블로킹에 걸리며 2세트는 OK금융그룹이 따냈다.
3세트는 그야말로 ‘임성진 딜레마’가 제대로 나타난 세트였다. 4-2에서 3단 처리에 실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인 임성진이 7-7에서의 중앙 백어택조차 성공시키지 못하자, 권영민 감독은 결국 임성진을 이시몬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이는 OK금융그룹이 바라던 바였다. 이시몬이 들어오면 공격력과 높이에서 약점이 생기게 되고, 이를 후벼 팔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준비가 먹혀들어간 상황은 3세트에서 총 두 차례 나왔다. OK금융그룹은 13-11에서는 레오가 이시몬의 쳐내는 공격을 디그한 뒤 반격까지 이어가며 3점 차 리드를 잡았고, 23-21에서는 이시몬의 하이 볼 처리 시도를 박창성이 블로킹으로 저지했다. OK금융그룹이 2점 차에서 3점 차를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국전력은 이시몬을 기용할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것.
권 감독은 이후 임성진을 다시 투입해봤지만, 레오가 임성진을 공략해 서브 득점을 터뜨리며 최악의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권 감독은 4세트에는 임성진을 빼지 않고 계속 코트 위에 남겨뒀지만, 임성진이 19-21에서 타이스의 강서브로 찾아온 찬스를 범실로 날리고 말았다. 결국 20-24에서 임성진이 또 한 번 레오의 서브에 당하면서, 한국전력은 4연패에 빠졌다.
이날 임성진은 11점을 올렸지만 공격 효율이 4.17%에 그쳤고, 범실은 5개를 기록했다. 리시브 효율은 45.24%로 수치상으론 준수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플로터 서브에 고전했고, 3-4세트에는 레오의 서브를 위로 띄우지 못하며 세트포인트와 매치포인트를 모두 내줬다. 임성진 때문에 경기를 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권 감독이 원하는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체 자원을 기용하자니 이 역시 어려움이 있다. 이시몬을 기용하면 이번 경기처럼 하이 볼 처리와 사이드에서의 높이에 약점이 생기고, 무엇보다 파이프를 활용할 수 없어서 전위 공격수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구교혁이나 신성호를 기용하자니 리시브와 수비에서의 불안 요소가 크다. 서재덕을 아웃사이드 히터로 돌리고 김동영이나 박철우를 아포짓으로 기용하는 극단적인 방법까지도 떠올려야 할 지경이다.
임성진을 계속 코트 위에 두면서 리듬이 살아나길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대체 자원을 투입하면 공략당할 수밖에 없는 뚜렷한 약점이 생긴다. 한국전력이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지독한 ‘임성진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실낱같이 남아 있는 봄배구의 희망도 의미가 없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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