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1차전 5세트, 승원이를 뺀 이유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 신영철 감독의 시즌 회고록

분당/김희수 / 기사승인 : 2024-04-10 12:00:45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잠시 야인으로 돌아간 신영철 감독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시즌을 돌아봤다.

우리카드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하위권 후보로 지목할 정도로 불안한 전력을 갖춘 채 시즌을 시작했지만, 1~2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한태준‧이상현‧김영준 같은 젊은 자원들의 성장도 이뤄졌고, 송명근‧박진우 같이 베테랑들의 존재감도 드러났다. 그러나 마무리는 아쉬웠다. 정규리그 1위를 자력으로 확정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치며 플레이오프로 향했고, 플레이오프에서 OK금융그룹에 2연패를 당하며 시즌을 최종 3위로 마쳤다.

이처럼 파란만장했던 시즌을 끝으로, 신영철 감독과 우리카드의 동행은 마무리됐다. 우리카드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6년 동안 팀을 지휘한 신영철 감독과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카드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신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소식이 전해진 뒤 휴식을 취하던 신 감독은 최근 분당 인근에서 <더스파이크>와의 만남에 응했다. “봄배구 때 좋지 않았던 몸 상태가 최근 다행히 많이 나아졌다”고 밝힌 신 감독은 “지금까지는 푹 쉬었고, 이제 조금씩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전하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신 감독과 본격적으로 이번 시즌, 그리고 우리카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가장 먼저 신 감독은 “아쉬운 시즌이다. 하지만 아쉬운 걸로 치자면 알렉산드리 페레이라의 장염으로 우승을 놓쳤던 2020-21시즌이 훨씬 아쉽다. 그때는 정말 스포츠에서 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통감해야 했지만, 이번 시즌은 여기까지 온 것도 나름의 성과였다고 본다.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과거의 아쉬움에 비해서는 그 크기가 훨씬 작은 아쉬움을 표했다.

“그간 대부분의 커리어를 하위권 팀을 리빌딩하는 과정 속에서 보내왔다”고 운을 뗀 신 감독은 “그런데 그렇게 만든 팀들은 우승까지 가는 길의 마지막 관문을 넘기가 정말 쉽지 않더라. 에이스의 역할과 우승 DNA가 있는 선수들의 활약,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와 단순한 운까지 수많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며 솔직하게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신 감독은 변명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는 “하지만 이런 요인들만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도 통감한 시간들이었다. 지금껏 많은 공부를 해왔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해야 한다”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도 했다.

신 감독이 자신의 부족함을 언급했을 때, 조심스럽게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의 선수 기용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 1-2세트를 내리 내준 상황에서 3-4세트를 연달아 따내는 데 크게 공헌한 이승원을 왜 5세트에 선발로 쓰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신 감독은 “(이)승원이가 쥐가 나서 뛸 수 없는 상태였다. 예전부터 경기를 하다가 긴장이 과해지면 쥐가 좀 올라왔는데, 하필 그 때 그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내가 왜 잘해주던 승원이를 갑자기 빼버렸겠나. 내가 부족했던 건 맞지만 이 부분에 대한 오해는 풀고 싶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신 감독은 이번 시즌의 핵심 플레이어였던 김지한과 한태준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본인들에게는 주전으로서 한 시즌을 치르면서 터닝 포인트를 만든 시즌이 됐을 것이다. (김)지한이는 리시브가 많이 향상된 것이 긍정적이다. (한)태준이도 많은 성장을 하면서 나이에 비해 충분히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가 됐다”고 두 선수를 칭찬했다.

그러나 신 감독은 이제 더 이상 직접 가르칠 수 없는 두 선수에 대한 우려도 함께 표했다. 그는 “다만 지한이는 올라갈 곳이 한참 더 있는 선수임에도 충분한 성장을 해내진 못했다. 태준이도 본인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커졌기 때문에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두 선수 모두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그래도 이곳이 내가 가장 길게 머물렀던 팀이다. 긴 시간 동안 나를 믿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우리카드에서의 시간들을 돌아보던 신 감독은 “(황)승빈이와 (송)희채가 생각난다. 워낙 배구를 할 줄 아는 선수들이라, 더 나은 선수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황)경민이는 정말 좋은 선수였지만, 당시 팀 사정으로 인해 트레이드가 불가피했다. 더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선수였지만, 프로기에 어쩔 수 없었다. 세 선수 모두 잘 됐으면 한다”며 자신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선수들의 이름도 언급했다.

신 감독은 자신이 그리는 단기-장기 계획도 소개했다. 그는 “우선 조금 휴식을 취한 뒤, 한 7월 정도부터는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세터를 전담하는 인스트럭터 같은 보직도 환영이다. 세터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보직 같다. 또 이탈리아에 가서 배구를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다. 이전에 이탈리아 감독들과 만나서 여러 대화를 나눠봤는데, 직접 보면서 느껴보고 싶다”며 먼저 단기 계획을 소개했다.

신 감독의 장기 계획은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다. 자신이 V-리그에서 이루지 못한 단 하나의 꿈,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루려고 한다. 그는 “지금껏 리빌딩과 봄배구 진출이 늘 나의 몫이고 역할이었다. 이제는 봄배구 전도사가 아닌, 우승을 일굴 수 있는 감독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게 내 커리어의 마지막 방점일 것 같다. 꼭 감독으로 복귀해서 꿈을 이루겠다”며 노익장의 의지를 다졌다.

신 감독과 우리카드의 동행은 절반의 성공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신 감독의 커리어에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찍혔을 뿐이다. V-리그를 대표하는 사령탑인 그는 잠깐의 숨을 고른 뒤 자신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다시 팔을 걷어붙일 것이다.


사진_분당/김희수 기자, KOVO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