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스파이크=대전/최원영 기자] 이토록 귀한 조연이 있을까. KB손해보험 이강원이 주연인지 조연인지 헷갈릴 정도로 활약을 펼쳐 보이고 있다.
경희대 라이트였던 이강원은 2012~2013시즌 전체 1순위로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 입단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프로 세계에 뛰어들었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외국인 선수와 포지션이 겹쳐 라이트에서 센터로 변신한 그는 팀 상황에 따라 레프트까지 소화했다.
이강원은 어떤 자리든 마다하지 않았다. 본인과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이강원’이라는 선수의 색은 희미해졌다. 어느 포지션에서도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 했다. ‘확실한 주전선수’라기 보다는 ‘괜찮은 교체선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2016~2017시즌이 되자 이강원 입지가 보다 넓어졌다. 공수를 도맡아 했던 레프트 손현종이 오른발 피로골절 재발로 시즌아웃 됐다. 때문에 시즌 초반 황두연과 이강원이 번갈아 출전하며 공백을 메웠다. 결국 비교적 리시브가 나은 황두연이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는 레프트 주 공격수인 김요한이 어깨 통증으로 흔들렸다. 그 뒤를 받친 것도 이강원이었다. 김요한(1월 2일 기준 공격 점유율 16.3%, 성공률 51.2%) 못지 않은 공격력으로 팀을 도왔다.
어쨌든 지금도 이강원 역할은 교체선수다. 그러나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지난 시즌까지 이강원의 평균 공격 점유율은 4.55%, 성공률은 45.38%였다. 라이트, 센터, 레프트를 오가느라 바빴던 점을 감안해도 아쉬운 성적이다. 올 시즌에는 공격 점유율이 15.1%로 3배 가량 늘어났고, 성공률(49.7%)도 소폭 상승했다.
프로 5년차인 이강원은 2015~2016시즌 32경기 82세트에 출전해 125득점을 올린 것이 최다 기록이었다. 올 시즌을 약 절반 정도 치른 현재, 그는 벌써 20경기 72세트에 출전해 171득점을 터트렸다. 팀 내 남은 레프트 백업 요원은 김진만과 신인 신해성, 백민규뿐이다. 이강원이 없었다면 살림을 꾸리기 버거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강원은 그동안 자신의 실력을 더 드러내지 못 한 게 아쉽진 않았을까. “이유가 있겠어요? 실력이 안 되니까 그런 거죠.” 이강원이 냉정하게 한 마디를 던져놓고는 가만히 웃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모자라지만 (강성형) 감독님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시려고 원 포인트 블로커로라도 써주시는 것 같다고요. 감사한 마음에 항상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그는 “감독, 코치님을 포함해 주위에서 계속 제게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줬어요. 누군가 저를 믿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진짜 잘하고 싶더라고요”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강원은 ‘무섭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 이상 제가 어린 선수가 아니라는 게 무서웠어요. 이제는 후배들을 이끌어야 할 나이가 됐는데 그럴 실력이 안 되니까요. 그래도 후배들이 먼저 저에게 다가와 의지를 많이 하더라고요”라는 설명이다.
주전으로 발돋움하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우선 강성형 감독에게 이강원을 교체 카드로 활용하는 이유를 물었다. 강 감독은 “강원이를 선발로 기용하지 않는 것은 레프트와 라이트 자리를 모두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깨가 안 좋은 요한이뿐 아니라 우드리스가 안 될 때도 강원이가 들어가야 한다. 한편으론 요한이 경기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것도 있다”라며 “강원이가 경기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충분히 제 역할을 잘해주는 선수다”라고 칭찬했다.
이강원 속마음이 궁금했다. 그는 “욕심이야 누구나 다 있죠. 제가 보탬이 되면 좋은데 오히려 해가 되면 아무리 공격력이 좋아도 경기에 들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단호히 못 박았다. 아무래도 부족한 리시브를 염두에 둔 듯한 대답이었다. 이강원은 “프로에 와서 리시브를 하려고 하니 힘들고 스트레스가 크더라고요. 더 연습해야죠”라며 각오를 다졌다.
지난 시즌 10승 26패 승점 28점으로 7개 구단 중 6위에 그쳤던 KB손해보험. 올 시즌도 6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나 7승 13패 승점 23점으로 나아졌다. 아직 KB손해보험은 정규리그 16경기가 남아있는 상황. 한 계단 위인 우리카드(9승 10패 승점 28)와 격차도 심하게 벌어지진 않았다.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터. 이강원은 그중에서도 ‘파이팅’을 꼽았다. “저희는 이기든 지든 밝은 분위기로 가려고 해요. 끝까지 열심히 해보려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팀 동료들이 다 능력이 되는,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거든요. 위기를 극복하다 보면 이기는 경기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일까. 이강원은 코트에서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곤 한다. 항상 한 발 더 뛰어다니며 분위기를 띄운다. 본인 말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 소리를 질러 일찍이 성대결절이 왔단다. 그래도 이강원은 지치지 않는다. “팀이 안 좋을 때 사기를 올리며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라는 이유에서다. 이강원은 이미 KB손해보험에 없어선 안될 ‘핵심 조연’으로 거듭났다.
사진/ 더스파이크 DB_유용우,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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