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최원영 기자] 4라운드에도 어김없이 변화가 잇따랐다. V-리그 남자부 기상도를 살펴보면 팀마다 날씨가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화창한 봄날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다른 누군가는 잔뜩 낀 먹구름에 울상이었다(이하 모든 기록 1월 25일 기준).
-‘날개 부자’ 대한항공의 선두 탈환(4R 5승 1패)
대한항공이 선두로 복귀했다. 2위 현대캐피탈과 승점 6점차로 간격을 비교적 벌려놓았다. 비결은 두터운 선수층. 날개 공격수가 많은데 잘하기까지 한다. 엔진이 든든하니 금세 도약할 수 있었다. 올 시즌 레프트 포지션에는 김학민-신영수와 곽승석-정지석이 각각 번갈아 투입됐다. 그날 컨디션이 더 좋은 선수가 출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규리그 장기 레이스에서 선수들 체력도 비축하고 전반적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두드러진 것은 신영수였다. 1라운드부터 쉼 없이 달려온 김학민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신영수 활약이 절실했다. 시즌 초반 허리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던 그는 3라운드부터 출전 시간을 늘리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 결과 3라운드에는 52득점(공격 성공률 50.65%), 4라운드에는 49득점(공격 성공률 55.22%)을 기록했다.
주전 세터로서 묵묵히 경기를 이끌고 있는 한선수 공이 크다. 각 팀 세터들은 대개 홀로 대부분 경기를 책임진다. 한선수의 경우는 조금 더 특별하다. 올 시즌 대한항공은 들쑥날쑥 한 리시브로 고전했다. 어디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공을 공격수에게 정확히 연결하기 위해 한선수는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그의 손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몇 가지 더. 대한항공은 블로킹 벽도 높게 쌓아 올렸다. 3라운드까지 세트당 2.64개로 블로킹 2위였던 이들은 4라운드를 거치며 한국전력을 제치고 해당 부문 1위(세트당 2.81개)로 올라섰다. 재미있는 점은 블로킹 부문 10위권 안에 대한항공 선수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그만큼 여러 선수가 골고루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불어 범실도 줄었다. 단순히 개수만 놓고 보면 우리카드에 이어 가장 적은 범실로 깔끔히 경기를 치렀다. 24경기 94세트에서 554개였다. 이 분위기를 유지한다면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
-‘대체 외인 구합니다’ 울고 싶은 현대캐피탈(4R 2승 4패)
큰 고비를 맞았다. 4라운드에 제일 저조한 승률을 기록했다. 원인은 역시 외국인 선수 톤. 당초 공격보다는 수비력에 중점을 두고 영입한 그가 공수 모두에서 제 역할을 못 했다. 톤의 공격 점유율은 21.9%, 성공률은 49.9%였다. 3라운드까지는 공격 성공률 50%대를 유지했으나 4라운드 들어 38.78%로 대폭 하락했다. 리시브도 점유율 31.9%, 성공률 42.86%로 썩 좋지 못 했다. 톤은 심리적인 문제 같다며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결국 최태웅 감독은 외인 교체를 선택했다. 최 감독이 결단을 내린 바탕에는 국내선수들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우선 문성민이 지쳐갔다. 올 시즌 그는 공격 점유율 34.6%, 성공률 54.2%로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그러나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공격 비중이 높아지며 체력 소모가 컸다. 그의 공격 시도를 보면 1라운드 159개를 시작으로 199개, 203개로 점차 늘어났다. 4라운드에는 247개 스파이크를 때렸다. 짐을 나눠줄 이가 없으니 힘들만 했다.
여기에 세터 노재욱은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안고도 경기를 조율 중이다. 허수봉이 톤 대신 투입돼 문성민을 거들었지만 신인이라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센터 신영석과 최민호는 날개 공격까지도 마다하지 않으며 뛰어다녔다. 최태웅 감독은 이 같은 국내선수들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길 바랐다.
대체 외인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24일 기자와 통화에서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특별한 진척 사항은 없다. 해외 리그도 한창 진행 중이라 선수들과 접촉도 쉽지 않은 편이라고 들었다. 레프트, 라이트 할 것 없이 계속 알아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최태웅 감독은 교체할만한 선수를 구하지 못 하면 남은 경기는 국내선수들로만 치를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사한 바 있다. 2위에 머물고 있으나 이후는 장담할 수 없는 현대캐피탈이다.
(현대캐피탈 문성민)
-우리카드, ‘봄 배구’ 초대장 받을까(4R 4승 2패)
우리카드가 3위로 뛰어오르며 활짝 웃었다. 시즌 초반으로 한정된 반짝 돌풍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강한 팀으로 180도 탈바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인 승리는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신뢰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 우리카드는 한 번도 초대된 적 없는 ‘봄 배구’라는 잔치를 넘보고 있다.
주전 세터 김광국이 어느 해보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이는 중이다. 보다 빠른 세트 플레이로 상대 블로커를 따돌리고 공격수들 입맛에 맞는 공을 올려줬다. 위축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비시즌 심리 치료까지 받았던 김광국이다. 드디어 그 노력이 빛을 발했다.
김광국을 도운 것은 파다르였다. 자신에게 공이 올라오면 책임지고 해결해줬다. 올 시즌 공격 점유율 43.7%, 성공률 52.3%로 활약 중인 파다르. 특히 4라운드에는 공격 성공률 58.27%로 정점을 찍었다. 서브(세트당 0.70개)와 블로킹(세트당 0.57개)도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고 있다. 4라운드를 마무리한 결과 파다르는 득점(641점)과 서브(세트당 0.54개) 부문 2위를 달렸다.
리시브(세트당 5.21개)와 수비(6.79개) 부문 부동의 1위인 신으뜸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레프트 포지션에서 눈에 띄는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다. 최홍석 뒤에서 조커 역할을 해주고 있는 나경복이다. 최홍석은 무릎이 온전치 않아 전 경기를 소화하기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힘을 보탠 건 나경복이었다. 기록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빈 자리를 착실히 메워줬다. 이달 26일이면 김정환이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신고한다. 그가 합류하면 한층 폭넓은 선수 운용을 기대해볼 수 있다.
우리카드의 과제는 기복을 줄이는 것이다. 예년 대비 무척 좋아졌으나 완벽하진 않았다. 단적인 예로 이달 18일 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 우리카드는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했다. 승부처에서 범실에 발이 묶인 게 패인이었다. 올 시즌 제일 적은 범실(24경기 95세트 535개)을 기록 중인 팀답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을 보완한다면 남은 경기에서도 선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전력의 위태로운 외줄 타기(4R 2승 4패)
올 시즌 5할 승률을 못 채운 라운드는 한 번도 없었다. 4라운드의 한국전력은 달랐다. 현대캐피탈과 OK저축은행을 꺾고 겨우 2승을 챙겼다. 그마저도 5세트까지 가는 혈투 끝에 얻은 것이라 승점 1점을 상대 팀에게 내줬다. 2위 현대캐피탈과 같은 15승을 챙기고도 승점은 39점뿐이다.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가 또 있을까 싶다.
거의 모든 경기 매 세트에 나서고 있는 전광인과 서재덕에게 탈이 났다. 발목 부상을 떠안았던 전광인은 최근 어깨 컨디션도 좋지 않다. 이달 19일에는 경기 도중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다쳐 피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투혼을 발휘했다.
이번 시즌 전광인은 공격 점유율 21.7%, 성공률 54.3%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또 하나의 강점은 디그다. 세트당 1.75개 디그로 해당 부문 7위에 올랐다. 1위부터 6위까지는 모두 수비 전문 선수인 리베로 차지였다. 전광인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많은 공을 걷어 올렸다.
서재덕에게도 아찔한 장면이 있었다. 이달 14일 KB손해보험 전 2세트에서 발목을 다쳤다.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라 3세트 초반 곧바로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여파가 남았는지 리시브가 불안해졌다. 4라운드 들어 서재덕은 여러모로 고전했다. 공격 성공률도 41.07%로 이번 시즌 통틀어 가장 낮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주전 세터 강민웅이 확연히 흔들렸다. 볼 컨트롤이 되지 않아 공격수들과 리듬이 깨졌다. 신영철 감독은 “민웅이가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세터 황원선이 준비하긴 했으나 그는 프로에서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결국 다른 방법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 강민웅이 평정을 되찾아야 한다.
강민웅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팬들. 모두의 마음이 쓰라리다. 올 시즌 V-리그에서는 잠깐의 순간, 한 발만 헛디뎌도 추락할 수 있다. 위태로운 외줄 타기는 4라운드에서 끝내야 한다.
-시동 걸린 삼성화재, 추격은 이제부터?(4R 4승 2패)
순위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4위 한국전력에 승점 1점 차이로 바짝 따라붙었다. 5, 6라운드에도 기세를 이어간다면 포스트시즌을 향한 불씨를 살려낼 수도 있다.
군 제대 후 2라운드 말미에 복귀한 박철우가 기지개를 켰다. 타이스와 함께 균형을 이루며 공격 한 축을 담당했다. 4라운드 공격 성공률은 50.38%로 3라운드 47.54%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이달 8일 대한항공과 경기에서는 후위 공격 5개, 서브에이스 4개, 블로킹 3개로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2011년 3월 16일 이후 약 5년 10개월 만에 터트린 쾌거였다. 동시에 역대 통산 2호로 서브 200개도 달성했다. 박철우가 살아나니 삼성화재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올 시즌 공격 점유율 50.7%, 성공률 54.1%로 훌륭히 활약 중인 타이스. 팀에 759점을 선사하며 득점 부문 압도적인 1위다. 공격 성공률도 전체 4위로 좋은 편이다. 다만 서브가 너무 불안정하다. 본래 플로터 서브를 구사하던 타이스는 V-리그에서 스파이크 서브를 시도했다. 하지만 3분의 1 이상은 늘 범실이었다.
시즌 중반을 넘어서자 경기마다 기복도 커졌다. 예를 들면 지난해 12월 28일 현대캐피탈 전에서 공격 성공률은 61.54%로 매우 높았으나 다음 경기인 KB손해보험 전에서는 48.28%로 크게 떨어졌다. 그 다음 상대인 OK저축은행을 만나 77.14%로 펄펄 날던 그는 이후 우리카드 전에서 42.86%, 한국전력과 경기에서 38.18%로 부진했다. 매 경기 50% 안팎의 공격 비중을 맡고 있는 타이스다. 철저한 체력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화재 박철우)
-놀라운 약진 보여준 KB손해보험(4R 4승 2패)
지난 시즌 정규리그를 통틀어 10승 밖에 거둬들이지 못한 KB손해보험. 26패로 패배가 훨씬 많았다. 승점 28점으로 7개 구단 중 6위에 그쳤다. 올 시즌에도 1라운드를 1승 5패로 시작했다. 당연히 최하위권이었다. 2~3라운드에도 각각 2승 4패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4라운드 결과를 보라. 4승 2패로 놀라운 승률을 자랑했다.
중심에는 전체 1순위로 KB손해보험에 입단해 주전 세터 자리를 꿰찬 루키 황택의가 있었다. 성균관대 시절부터 빠르고 다양한 세트 플레이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이제 KB손해보험에 완전히 녹아 들었다. 황택의 세트에 공격수들은 춤을 췄다. 강한 스파이크 서브도 제법이다. 190cm로 세터치고 큰 신장도 유용했다. 리시브가 길어 상대 코트로 넘어갈법한 공을 잡아냈다. 무표정인 듯 하면서도 올스타전에서 할 건 다 하는 모습까지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거칠기만 했던 우드리스와 호흡도 한층 다듬어졌다. 우드리스는 2, 3라운드 45%에 머물던 공격 성공률을 4라운드 51.02%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관해 “코트 안에서 내 모든 걸 보여주고 싶었다. 택의가 올린 공은 어떻게 해서라도 득점으로 연결시키려 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다”라고 설명한 우드리스다.
이강원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어깨 통증을 안고 있는 김요한을 대신해 레프트 한 자리를 채웠다. 넘치는 힘과 파이팅을 갖추고 있다. 본래 라이트였으나 프로 데뷔 후 센터, 레프트까지 여러 포지션을 겸했다. 결국 레프트로 돌아온 그는 올 시즌 24경기 90세트에서 224득점(공격 성공률 49.24%)을 더하며 전진 중이다.
선전했으나 여전히 중상위권과 격차가 벌어져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그럼에도 더 나은 내용으로 경기를 풀어가고 있다. KB손해보험에게 2016~2017시즌은 의미가 남다르다.
(KB손해보험 황택의)
-먹구름 속에 갇힌 OK저축은행(4R 0승 6패)
연패의 터널은 언제쯤 끝이 날까. 가도 가도 승리라는 도착지가 보이지 않는다. 4라운드 전패라는 씁쓸한 성적만이 남았다.
새 외인 모하메드가 팀에 합류하고, 송명근이 부상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그나마 희망은 있었다. 그러나 모하메드가 잘하는 경기는 손에 꼽았다. 시즌 평균 공격 성공률은 49%가 됐다. 송명근은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전력에서 빠졌다. 비시즌 수술했던 부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
김세진 감독은 “시즌이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지는 본인 의사에 맡겼다. 내 판단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복귀하더라도 무리시키지 않으려고 생각 중이다”라고 전했다. 빈 자리는 강영준 몫이 됐다.
센터 박원빈은 지난달 29일 KB손해보험 전에서 오른쪽 발목을 다쳤다. 결과는 심각한 인대 손상으로 시즌 아웃. 설상가상으로 주전 세터 이민규도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곽명우가 뒤를 받치지만 신통치 않다.
지더라도 끈질기게 싸웠던 OK저축은행이다. 매 경기 아쉬운 결과에 눈물을 삼켜야 하니 힘들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를 악물고 일어서야 한다. 아직 12경기가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진/ 더스파이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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