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대전/이광준 기자] 흥국생명 에이스 이재영이 집중견제를 받고 있다. 이재영은 이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나려 한다.
이재영은 2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 원정경기에서 승리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 흥국생명은 KGC인삼공사에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했다.
KGC인삼공사가 ‘이재영을 집중 견제한 게 승인으로 작용했다. 이날 KGC인삼공사는 플로터 서브를 이재영에게 집중시켰다. 이재영의 리시브 점유율은 무려 66.67%를 차지했다. 받고 때려야 하는 윙스파이커 포지션 특성 상, 받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공격에 온힘을 싣는 것이 쉽지 않다. 정확한 리시브에 신경을 쓰면서 자세가 흐트러지고, 그러면서 타이밍이 엇나가기 때문이다.
또 받으면서 공격까지 가담하면 체력에도 부담이 가게 된다. 이날 두 팀은 5세트까지 가는 장기전을 치렀다. 이재영은 세트가 거듭될수록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5세트 이재영은 단 1득점에 그쳤다. 이 1점은 블로킹으로 얻은 점수였다. 공격은 7번 시도해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KGC인삼공사의 준비도 돋보였다. ‘이재영 견제’를 위해 수비, 블로킹 위치 등에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재영 공격 코스를 미리 지키고 있으면서 끈질긴 수비로 이겨냈다. 디우프, 한송이, 박은진 장신 블로커 벽도 위력적이었다. 결국 이날 이재영의 공격성공률은 29.23%로 매우 낮았다.
경기 시작 전 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은 “일단 이재영 쪽을 우선적으로 막는 것이 기본 틀이다”라고 말했다. 상대 핵심은 이재영임을 알린 셈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수치로 드러났다. 경기 후 서남원 감독은 “이재영 공격성공률이 떨어진 건 어느 정도 작전대로 됐다는 뜻이다”라고 돌아봤다.

이재영에겐 너무 높은 2m 외인 벽
올 시즌 여자부에는 2m가 넘는 장신 외국인선수들이 등장했다. 디우프(KGC인삼공사, 202cm)와 러츠(GS칼텍스, 206cm)가 그 주인공. 공교롭게도 흥국생명은 이 두 선수가 있는 KGC인삼공사와 GS칼텍스에게 패했다.
GS칼텍스와 KGC인삼공사가 흥국생명과 맞붙을 당시, 기본 전략은 비슷했다. ‘이재영 견제’였다. 핵심은 로테이션에서 장신 외국인선수를 이재영 앞쪽에 붙이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선수끼리 맞물리게 해 서로를 견제하는 것과 달리, GS칼텍스와 KGC인삼공사는 최대한 이재영 앞에 장신 선수들을 배치했다.
표) 이재영의 지난 네 경기 공격기록

178cm인 이재영에겐 당연히 부담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쳐내기에 능하고 뛰어 들어오는 스피드가 빠르다고 해도 절대적인 신장 차이를 극복해내는 건 쉽지 않다. 공격하는 입장에선 장신 선수들이 앞에 있으면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기 십상이다. 의도적으로 피하려다보면 범실도 늘어나게 된다.
지난 22일 GS칼텍스전에서도 이재영은 3세트 동안 14점, 공격성공률 26.67%에 그쳤다. 위협적인 블로킹 벽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재영이었다. 에이스가 흔들리니 팀 전반적인 경기 내용도 좋지 못했다.

집중견제 넘어 다시 한 번 최고를 향해
GS칼텍스와 KGC인삼공사가 보여준 방법은 다른 팀 역시 참고할 것이다. 외인 루시아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재영을 향한 집중견제가 계속될 수 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박 감독은 지난 29일 경기가 시작되기 전 인터뷰에서 “아마 디우프가 이재영 앞쪽을 견제할 것이다.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로 이재영을 잡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어 “그렇기 때문에 이재영 외에 다른 쪽에서 득점이 더 나줘야 한다. 그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이재영이 조금 더 움직이면서 때려야 한다. 컨디션만 잘 유지한다면 장신 선수들 상대로도 잘 해낼 것이다. 상대 높이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진 않다”라고 덧붙였다.
이재영에 대해 박미희 감독은 놀라운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이)재영이가 GS칼텍스전에서 지고 난 뒤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전까지 자신감에 넘쳤는데 이제는 뒤를 돌아볼 때다’라는 말이었다. 넘어져 봐야 일어나는 법을 알게 된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깨닫고 먼저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앞으로 더 잘 하겠구나’ 싶었다.”
이재영은 올해 한국 나이로 스물넷이다. 그 어린 선수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한마디였다. 지난 시즌 통합 MVP에 오르면서 V-리그 최정상에 오른 이재영은 그 자리서 안주하지 않았다. 시즌 초반 찾아온 위기에 곧바로 스스로를 성찰했다. 끊임없이 부족함을 찾고 발전하려는 모습은 이재영이 가진 또 다른 재능이 아닐까. 이로 미뤄 볼 때 지금 이재영에게 닥친 위기도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것 같다.
사진_더스파이크 DB(문복주, 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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