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중단 기간에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통합우승
애착이 가는 기록은 한 경기 최다 디그 성공
지도자 생각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어

[더스파이크=서영욱 기자] “선수 생활 마지막을 보낸 흥국생명에서는 좋은 기억만 남아있어요. 그간 응원해준 팬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리베로 김해란(36)이 정든 코트를 떠난다. 흥국생명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해란의 은퇴 소식을 전했다. 이로써 김해란은 2002년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한 이후 약 18년에 걸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2020 도쿄올림픽과 2019~2020시즌 또 하나의 우승 트로피 획득에 도전하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올림픽이 연기되고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선수로서 더 코트를 밟지 못하고 은퇴하게 됐다.
<더스파이크>는 10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은퇴 심경을 들었다. 김해란은 “은퇴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다. 휴가를 받고 나서 ‘아,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기사가 나왔을 때는 그냥 슬펐다. 울진 않았지만 기사를 보니 슬프더라. 은퇴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김해란은 2018~2019시즌을 마치고도 은퇴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김해란은 2018~2019시즌 통합우승 직후 본지와 인터뷰에서 은퇴 가능성을 두고 50대50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해란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정말 은퇴하려 했지만 막상 놓으려고 하니 안 됐다. 그래서 1년 더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정말 그만하자는 생각을 했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시즌이 중단됐을 때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나아졌다. 이제 멈추자는 생각을 하며 하나둘 놓기 시작했고 이번 결정까지 이르렀다”라고 덧붙였다.
이전부터 은퇴를 고려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은퇴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는 주변에 많이 알리지는 않았다. 김해란은 “소문을 듣고 연락한 분들은 있었다. 팀과도 이야기가 돼야 하는 상황이라 주변에 많이 이야기하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 한 번의 우승 도전과 올림픽에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김해란은 “아쉽다. 시즌이 중단됐을 때 ‘이렇게 끝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1년 더 할 수도 없다. 아쉽지만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라고 시즌에 대한 생각을 먼저 전했다. 올림픽에 대해서는 “올림픽까지 뛰고 은퇴하는 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미뤄지면서 ‘이게 내 복이구나’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해란은 시즌 중단 당시 가족들로부터 더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은퇴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출산이었다. 김해란은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출산이었다. 그게 가장 컸다”라고 설명했다.
박미희 감독으로부터도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해란은 “감독님이 여자로서 이해는 해주셨지만 (은퇴 결정을) 아쉬워하시기도 했다. 내 생각은 확고했다. 감독님께서 아기는 꼭 낳아야 한다고 하셨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여러 이야기도 해주셨다”라고 말했다.

김해란과 ‘리베로’라는 포지션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김해란은 한국도로공사 입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목 부상을 입고 수술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리베로 전향을 권유받았고 지금에 이르렀다. 김해란은 “그때를 떠올리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키가 작아서 공격을 했어도 점프를 많이 뛰어야 해서 부상이 많았을 것 같다. 이렇게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한국도로공사를 시작으로 KGC인삼공사, 흥국생명을 거친 김해란은 선수 생활 마지막을 함께한 흥국생명에서 기억이 좋게 남았다고 전했다. 그는 “흥국생명에서 보낸 시즌들은 행복한 기억뿐이다. 돌아보면 정말 행복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선수 생활 말년이 정말 편했다. 감독님이 몸 관리도 잘해주셨고 팀도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줬다. 정말 좋았고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김해란은 선수 경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역시 2018~2019시즌 프로 경력 최초로 경험한 통합우승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김해란은 여자부에서 유일하게 9,000디그 이상을 기록하는 등(통산 9,819개) 디그 관련 기록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을 묻자 김해란은 한 경기 개인 최다 디그 기록을 언급했다. 김해란은 KGC인삼공사 소속이던 2016년 2월 1일, 현대건설과 경기에서 디그 54개를 성공해 이 부문 최다기록을 가지고 있다. 당시 KGC인삼공사는 외국인 선수 헤일리가 결장했음에도 5세트 끝에 승리했다. 김해란은 “당시 우리 팀이 최하위였고 외국인 선수도 없는 힘든 상황이었다. 디그를 정말 많이 했던 게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김해란은 후배 선수들에게 자주 언급되는 선수이기도 했다. 통합우승 당시 이재영은 “내 마음속 MVP는 해란 언니”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고 2019~2020시즌 신인왕에 오른 박현주도 팀에서 가장 본받고 싶은 선수로 김해란을 언급했다. 이를 들은 김해란은 “사회생활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그저 고맙다. 후배들에게 늘 무섭게 대한 것 같다. 운동할 때만큼은 무섭게 했다. 그냥 ‘저 언니는 무섭다, 싫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좋게 받아줘서 돌이켜보면 정말 고맙다.”
2018~2019시즌 통산 9,000디그를 달성한 이후 김해란은 “리베로는 버텨야 하는 자리”라고 말하며 “힘든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견디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라고 조언한 바 있다. 은퇴를 결정한 김해란이 다시 한번 후배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찾아온다. 그때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 버티고 힘내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게 프로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버티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김해란은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정해두지는 않았다. 그는 “지도자 생각은 하고 있다. 하게 된다면 흥국생명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이건 팀과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라며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다. 일단은 좀 더 쉬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분간 주어질 휴식기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자 김해란은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쉬고 싶다고 답했다.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라고 운을 뗀 김해란은 “사실 신혼여행도 못 갔다. 여행도 가보고 싶지만 지금은 안 된다. 우선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하게 쉬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알람도 맞추지 않고, 시간에 쫓겨서 언제 뭘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지금 집에 산 지 3년 됐는데 오래 머무른 적이 없다. 그나마 지금 좀 오래 있는 편이다. 이런 휴식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해란은 “늘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힘들 때 팬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얻고 열심히 뛰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남겼다.
사진=더스파이크_DB(유용우, 문복주, 홍기웅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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