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민이가 아포짓 가면 잘 하겠어요?” “다 견딜 만한데, 선수 형 잔소리가 좀 견디기 힘들어요.” 멋진 승리를 합작한 김규민과 한선수는 인터뷰 내내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였다. 코트 위에서 보여줬던 ‘환상의 호흡’은 어느새 ‘환장의 호흡’으로 변해 있었다.
1990년생 김규민과 1985년생 한선수는 다섯 살 터울이지만, 나이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다. 경기장 안에서는 세터와 속공수로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며 대한항공을 이끄는 콤비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주고받는 친구 사이다. 한선수의 SNS에도 한선수 본인의 사진만큼이나 놀리기 위해서 올린 김규민의 사진이 많을 정도다.
1일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한국전력의 도드람 2022-2023 V-리그 남자부 6라운드 경기에서도 두 선수의 관계는 여전했다. 경기 내에서 두 선수는 완벽한 호흡을 보였다. 한선수의 깔끔한 연결을 김규민이 빠르고 날카로운 속공으로 마무리했다. 한선수는 세트 당 11개의 세트 성공을 기록하며 시즌 평균(세트 당 9.761개, 경기 후 기준)을 상회하는 활약을 펼쳤고, 김규민은 공격 성공률 100%를 기록하며 10점을 올렸다. 두 선수의 활약 속에 대한항공은 세트스코어 3-1(25-20, 25-18, 23-25, 25-18)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실을 찾은 두 선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초딩(?)의 모습이었다. 인터뷰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우리 둘이 같이 하는 거 맞냐”며 서로를 우스꽝스럽게 째려봤다. 먼저 승리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선수는 “힘들다(웃음). 6라운드는 정말 힘들다. 승리를 거두면 분위기도 오르고 좋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버티는 힘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을 들려줬다. 이어서 김규민은 “이긴 것도 물론 좋고,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어서 특히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두 선수의 본격적인 ‘초딩 케미’는 김규민이 이날의 활약상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때부터 폭발했다. 김규민은 이날 공격 성공률 100%를 기록한 비결에 대해 묻자 “특별히 컨디션이 좋다고 느낀 건 크게 없다. 다만 (한)선수 형이 올려주면 무조건 100%로 때린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속공은 믿음과 신뢰다. 내가 점수를 잘 내야 나에게 많이 올려준다. 우리 둘은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선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취재진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서 한선수에게 개인적인 친분이 깊은 박철우를 미들블로커로 처음 상대해본 소감을 물었다. 한선수는 “평소에 뛰지 않던 포지션에 서는 것이 쉽지 않을 거다. 배구를 오래 해온 선수라서 해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박철우를 존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싶더니, “(김)규민이가 아포짓으로 들어가면 잘 할 수 있겠나”라며 옆에 있던 김규민을 거론했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걸고 넘어지자(?) 김규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선수의 장난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선수는 이날 4세트 4-3 상황에서 나온 링컨 윌리엄스(등록명 링컨)를 향한 장거리 백어택 토스를 성공시켜 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웜업존에 있던 동료들까지도 한선수의 토스 동작을 따라했을 정도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선수에게 묻자 한선수는 “워낙 그런 상황들을 많이 겪어봤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단이 섰다. 공을 최대한 빨리 따라가서 전위와 후위 중 어디로 뿌릴 지만 판단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한선수는 여기서도 김규민을 물고 늘어졌다. “원래 아무 생각 없이 올리는 토스가 제일 잘 올라간다. 규민이도 생각 없이 서브 때리니까 잘 들어가는 것 같더라”라며 김규민을 놀렸다. 참다못한 김규민은 “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김규민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치열한 순위 경쟁 속에 6라운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체력적‧정신적 부담은 없는지 묻는 질문에 김규민은 “충분히 견딜 만하다. 근데 선수 형 잔소리가 견디기 힘들다”며 반격에 나섰다. 또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뒤 김규민은 “고참들이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하는 상황이라서, 나도 선수 형 말을 잘 듣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경기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듬직한 대답을 덧붙였다.
유쾌했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5일 펼쳐질 현대캐피탈과의 ‘빅 매치’에 임하는 각오를 묻는 질문이었다.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하던 두 선수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들려줬다. 한선수는 “많은 주목을 받는 경기라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것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중압감을 이겨낸다면 우리에게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큰 경기라는 점을 의식하지는 않겠다”는 차분한 대답을 내놨다.
이어서 김규민도 “지금의 분위기를 잘 끌고 가서 우리의 배구를 한다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파이팅해보겠다”는 당찬 답변을 들려줬다. 인터뷰실에서 김규민과 한선수가 보여준 ‘환장의 호흡’은 5일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는 순간 또 한 번 ‘환상의 호흡’으로 바뀔 예정이다.
사진_수원/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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