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 리베로 유니폼 입은 문정원이 특별한 이유

대전/이예원 기자 / 기사승인 : 2025-03-20 02: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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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코트에 들어갔을 때 티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 V-리그 6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한국도로공사가 정관장을 상대로 3-2(25-20, 19-25, 19-25, 25-17, 15-8) 승리를 따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날 한국도로공사 코트에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었다. '리베로 문정원'이다. 프로 데뷔 후 왼손잡이 아포짓으로 활약한 문정원이 리베로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것이다.

 

문정원의 수비 능력은 모두가 인정한다. 아포짓은 대부분의 팀에서 주 공격수 역할을 맡는다. 리시브와 공격을 도맡는 아웃사이드 히터와 달리 보통의 아포짓은 리시브에서 자유롭기에 공격에 특화되어있다. 다만 아포짓 문정원은 특별하다. 다른 아포짓처럼 키가 크지 않지만 수비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3인 리시브 전술을 활용하는 타 팀과 달리 한국도로공사는 줄곧 2인 리시브 라인을 사용했다. 이 전술에서 한국도로공사의 핵심은 단연 문정원이었다. 팀 색깔에 맞춰 리시빙 아포짓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누구보다 빛났다. 그렇게 리베로 임명옥과 함께 상대의 서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팀에 별 두 개를 선물했다.

다만 2022-2023시즌 우승 후 선수단에 대거 변화가 생기며 한국도로공사의 특색이었던 2인 리시브가 사라지게 됐다. 이번 시즌에는 아웃사이드 히터 강소휘, 타나차 쑥솟(등록명 타나차)과 아포짓 메렐린 니콜로바(등록명 니콜로바)가 팀에 합류하며 문정원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었다. 원클럽 선수로 오랜 시간동안 한국도로공사의 코트를 바쁘게 누볐던 문정원이지만 그의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정원이 이날 리베로로 등장해 리시브 효율 62.5%를 기록했다. 디그도 25개 시도 중 23개를 성공시키며 디그 성공률 92%를 올렸다. 기록만 보면 포지션 변경을 한 선수라고 믿을 수 없는 압도적인 수치였다.

 

경기 종료 후 만난 한국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은 이날의 리베로 문정원 기용이 다음 시즌을 위한 시험대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문정원 선수의 포지션 변경이다. (문)정원이도 리시브나 디펜스가 좋은 선수다. 포지션 변경을 하면서 충분히 경험도 해보고 조금은 그 포지션을 시험 삼는 자리였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문정원의 연결 부분에서 아쉬움을 드러내긴 했지만 누구보다 문정원에 대해 믿음이 가득했다. 모든 말에 '잘하는 선수'라고 칭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경기 종료 후 만난 문정원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고 (임)명옥언니 자리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조금 걱정도 했다. 그래도 이기는 게임을 해서 괜찮았던 것 같다"고 경기를 돌아봤다.


큰 목소리로 한국도로공사 코트를 이끌던 문정원이지만 이날 오랜만에 코트를 길게 밟았다. 경기 전 그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을까, 부담으로 빽빽했을까. 

 

문정원은 "반반이었던 것 같다. 부담이라기 보다는 걱정이었다"고 마음을 밝혔다. 이어 "대표팀에 가서 리베로를 했지만 그 때는 팀에 돌아와서 다른 포지션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마음 편하게 했던 것 같다"면서 "(리베로 포지션을) 팀에서 하니까 앞으로의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니 설렘도 있고 걱정도 있던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언급한 것처럼 문정원은 수비 능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에 리베로로 합류하기도 했다. 다만 리그 최고의 리베로 임명옥이 버티고 있는 한국도로공사 팀의 특성 상 리베로 문정원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었다. 선수 본인도 한국도로공사 리베로 유니폼을 입은 것에 대해 어색함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웃음과 함께 말문을 연 문정원은 "(리베로 유니폼이) 초반에는 조금 어색했다. 팀원들이랑 많이 맞추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주전 친구들과 많이 맞추지 못했다. 그래도 코트에서 떠들고 하다보니 경기를 하면서 풀어졌다"고 말했다.
 

주전 선수로서 코트를 누비며 손가락에 우승 반지를 두 개나 끼웠지만 그에게도 출전 시간이 줄어든 현실은 냉혹했다. 이에 대해 문정원은 "(심적으로) 힘들었다. 안힘들다고 생각하면 프로선수로서의 마인드가 아니지 않나? 그래도 꾸준히 준비해야된다고 생각했다. 계속 게임을 스타팅으로 뛰다가 작년부터 교체로 들어갔다. 사실 내가 잠깐 들어가도 최선을 다해야된다고 생각하지만 걱정도 많았다."고 자신의 마음을 담담히 전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코트에 들어갔을 때 티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간 운동을 안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후배들이 '언니하면 하죠'라고 말하더라. 후배들의 말이 고마웠다. 그래서 운동을 나가면 재밌게 했던 것들이 나에게 득이 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2011-2012 V리그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로 입단해 어느덧 열네번째 시즌을 소화한 문정원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배구단의 원클럽 선수다. 지금껏 총 8,247번을 상대의 서브를 받아냈고 통산 리시브 효율 48.35%를 기록하고 있다. 상대의 공격도 4,172번 몸을 던져 디그 성공 3,534개를 올렸다. 그의 가치를 수치가 증명한다.

 

문정원도 어느덧 베테랑에 가까운 연차가 됐다. 자신이 어떠한 선수로 보여졌으면 하냐는 물음에 한참을 망설이던 문정원은 '노력하는 선수'라고 답했다. 이어 "성실하고 노력하는 선수로 보여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선수로서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사실 나는 내가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볼을 많이 만져야하고 몸도 많이 만들어야한다. 그만큼 나이가 있다는 뜻이다보니까 몸 관리도 잘해야한다. 노력하고 성실한 선수가 제일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하다'는 말을 들여다본다.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는 것. 문정원은 특별하다. 수없이 달리고, 수없이 몸을 던지고, 수없이 받아냈다. 보통의 이들과 다른 방법으로 끝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전에 뛰어든다. 그래서 특별하다. 배구에 대한 그의 마음이 각별한 것처럼.

 

 

사진_대전/이예원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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