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되 까불어라.’ 평소엔 함께 쓰이기 어려운 느낌의 단어들이다. 하지만 배구에서 느껴지는 두 단어의 시너지는 무섭다.
현역시절 명세터로 평가받은 최태웅 감독. 현대캐피탈 사령탑 위치에 자리한 지 7년이 된 지금, 현재까지 많은 세터를 육성했다. 특히 이번 2022-2023 V-리그 남자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로 이현승을 지명해 많은 신뢰를 건네고 있다.
이현승은 1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남자부 4라운드 KB손해보험 경기에서 선발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오랜 시간 코트에 있지 못했다. 2세트 초반에 김명관과 교체되어 웜업존에서 경기를 바라봤다.
이현승이 선발로 기회를 잡은 이후 처음으로 웜업존에 자리한 시간이 길었다. 지난 대한항공 경기 당시에도 김명관과 교체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곧바로 들어가 경기를 책임졌다.
비록 이번 경기에선 이현승은 마지막까지 코트를 지키지 못했지만, 급하게 들어간 김명관은 소방수 역할을 해냈고 팀은 세트스코어 3-1(25-19, 23-25, 25-16, 25-20)로 이겼다.
최태웅 감독은 “경험이 적고 젊은 선수일수록 초반에는 상대 분석이 잘되지 않아서 상승세를 탈 수 있다. 하지만 제동이 걸리면 어려울 때 헤쳐 나갈 힘이 부족하다.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시기가 오는데 지금 온 것 같다. 기량 부족은 아니다”라고 이유를 전했다.
뒤이어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경기를 더 뛰는 것보다는 휴식을 취하고 밖에서 우리 팀의 색깔과 움직임을 보면서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교체로 들어온 김명관에겐 칭찬을 건넸다. 최 감독은 “중간에 들어와서 경기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 본인이 원하는 만큼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는데, 원하는 걸 했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라고 엄지척을 세웠다.
칭찬과 격려를 보냈지만 아쉬움과 바램도 있었다. 최 감독은 “우리 팀 세터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까불었으면 좋겠다. 제 3자가 봤을 때 ‘저렇게 까불어도 돼?’라고 할 만큼이다. 나는 경기장 안에서 까부는 사람을 좋아한다”라고 했다.
“내가 현역 시절엔 막내라 까불면 엄청나게 혼났다(웃음). 그래서 내가 하지 못한 걸 지도하게 됐을 때 하고 싶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 싶다”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이유도 있었다. 최태웅 감독은 “활력을 찾으면서 창의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분위기도 좋아진다. 지도자 없이 선수들끼리 훈련할 때 장난스럽게 할 수 있다”라고 전하며 “다만 이걸 장난친다고 혼나는 경우가 있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를 진지하게 최대한 보여주고 까분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가장 팀에서 까부는 선수로 홍동선을 꼽았다. “동선이가 우리 팀에서 까불이 역할을 해준다. 최근 대한항공과 체이서 매치를 할 때 나는 벤치가 아닌 서브 라인 뒤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1세트를 이기고 있어서 동선이에게 잘한다고 손가락 총을 날렸더니 맞받아쳐 주더라(웃음). 나도 MZ세대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라고 했다.
“더 까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_천안/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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