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근거 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가 중요한 프로 스포츠에서 결과를 만들지 못한 현대건설의 선택은 결국 틀린 선택이 되고 말았다.
25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도로공사와의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세트스코어 0-3(23-25, 22-25, 17-25)으로 패하며, 현대건설의 이번 시즌은 최종 3위라는 성적표와 함께 막을 내렸다. 개막 후 15연승을 질주하며 지난 시즌에 버금가는 1강의 위용을 떨치던 현대건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현대건설이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택이 있었다. 바로 시즌 내내 주전 선수들 위주의 라인업을 밀어붙인 것이다. 물론 결정을 내릴 시점에는 근거가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국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점, 그리고 선택의 여파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지금 그 선택을 돌아볼 필요는 있다. 그래야 다음 시즌을 더 건설적으로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성형 감독은 부상이나 코로나19 같은 외부 변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선발 명단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감독 부임 이후 계속 다듬어온 플랜 A로 지난 시즌의 ‘무적함대’를 이끌었고, 이번 시즌에도 연승 행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잘 나가고 있는 팀에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혹은 좋은 기세를 몰아 빠르게 1위를 확정 지은 뒤, 이후 치러질 이른바 ‘가비지 게임’에서 후보 선수들을 기용하며 체력 안배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는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 주전 선수들 중 부상자가 속출한 것까지 플랜 A를 고집한 탓이라고 하는 것은 강 감독에게 조금 가혹할지 모른다. 그러나 선수가 필요한 상황, 특히 아웃사이드 히터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쓸 선수가 없었던 것은 분명 문제였다.
이 상황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선수가 정시영이었다. 정시영은 시즌을 앞두고 치러진 순천 도드람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강 감독은 지난 1라운드 흥국생명전을 앞두고 황민경‧고예림‧정지윤을 제외한 아웃사이드 히터 기용이 가능한 상태인지 묻는 질문에 “정시영도 준비하고 있고 신인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간다면 이미 팀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된 거라고 본다”고 답한 바 있다. 이때는 시즌 초반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기존 선수들이 아직 잘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준비가 부족한 후보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이후 강 감독은 정시영이 교체 투입된 3라운드 페퍼저축은행전 이후 인터뷰에서 “리시브 불안 때문에 그 동안은 많이 투입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정시영이 가진 공격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과감한 기용을 시도하겠다”고 정시영의 기용 계획을 밝혔다. 현대건설 팬들로서는 드디어 정시영이 기존 아웃사이드 히터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정시영은 이후 7경기‧11세트 출전에 그쳤다. 선발로 나선 세트는 두 세트밖에 없었다. 시즌 첫 선발 출전 기회는 황민경과 고예림이 모두 부상으로 빠진 5라운드 한국도로공사전이 돼서야 얻을 수 있었다. 야스민 베다르트가 허리 부상으로 이탈했기 때문에 공격력 보강이 필요한 순간은 많았음에도 강 감독은 과감한 기용을 주저했다.
그리고 이날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 감독은 정시영의 빠른 투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물론 투입될 수 있다. 그러나 정시영의 투입까지 가게 된다면 너무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라고 답했다. 1라운드 흥국생명전을 앞두고 했던 이야기와 거의 똑같았다. 문제는 그 때와 달리 현대건설이 고예림의 부상과 정지윤의 부진으로 인해 절실하게 아웃사이드 히터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날 정지윤의 리시브가 흔들려도, 고예림의 무릎이 아파도 현대건설은 두 선수를 뺄 수 없었다.
현대건설의 이번 시즌 결말은 한 때 리그를 호령했던 1강의 마무리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러나 현대건설과 강 감독은 이번 경험을 상처로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장기 레이스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시즌을 준비하고 치러야 하는지를 깨닫는 좋은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강 감독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긴 시즌을 치르면서 부상 변수에 대해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강 감독의 플랜 A를 갈고 닦는 능력, 그리고 선수단과 융화되는 능력은 이미 두 시즌 동안 충분히 검증됐다. 현대건설 선수들 개개인의 실력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이번 시즌에 지불한 챔피언결정전 진출 실패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다음 시즌까지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드느냐가 중요해졌다.
사진_김천/유용우 기자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