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출신 지도자로는 최초로 인도네시아 프롤리가 팔렘방BS를 지휘했던 이영택 감독이 지난 2월 24일 귀국했다. 그는 약 4개월간 인도네시아 배구를 몸으로 부딪치며 다양한 현지 경험을 쌓았다. 영입 제의를 받자마자 출국하기까지 시간 여유가 없었고 준비도 충분하지 못한 탓에 팔렘방BS는 리그 8개 팀 가운데 7위를 차지했다. 구단의 감독 선임과 외국인 선수 선발 등 결정이 느렸고 지원마저 풍족하지 못해 시즌 성적 4승 10패 승점10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영택 감독의 지도력만큼은 인정받았다. 소속 팀은 재계약을 원하고, 더 좋은 조건의 다른 팀에서 영입을 노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대한민국 배구 지도자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이영택 감독으로부터 낯설고 물선 곳에서 좌충우돌하며 겪은 인도네시아 배구의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일단 무사 귀국을 축하한다. 약 100일간 현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2018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항상 조심했다. 막판에는 코칭스태프와 현지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적응을 잘했다고 자부했는데 한국에 오기 직전에 먹은 커피 때문에 크게 고생했다. 현지에서 스카우트한 어린 세터가 팀의 마지막 경기 전날 내 숙소를 찾아왔다. 그동안 잘 지도해줘서 고맙다면서 커피를 선물했다. 그것을 조금 마시고 잤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배가 아팠고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다음날 간신히 배를 움켜쥐고 경기장에 갔는데 하필 리그 꼴찌팀과의 경기가 5세트까지 갔다. 거의 쓰러지기 직전 상황에서 경기를 지휘했고 이겼다. 경기 뒤 숙소에서 꼬박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자카르타로 이동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며칠간 링거를 맞고 간신히 살아났다.”
-그야말로 낯설고 물 선 곳이라 지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배구 말고는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간혹 쉴 때 송준호와 골프장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지내다 보니 현지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해 크랩(차량 호출 서비스)을 이용해 가까운 자카르타까지 다녀오곤 했다. 이곳도 배달시스템이 발달해 휴대 전화를 이용하면 원하는 것을 주문할 수 있다. 한국 음식점도 있어서 가끔 이용했다.”
-우리와 말과 생각, 문화적 배경도 다른 현지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팀을 맡아서 3개월간 기본기 훈련을 많이 시켰다. KGC인삼공사를 나온 뒤 경북체육고에서 몇 달간 선수들을 지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우리 팀 선수들 대부분이 기본기가 부족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많이 짜증도 내며 혼도 냈다. 다행히 선수들의 개인기록이 이전 시즌보다 모두 올랐다. 덕분에 구단에서도 재계약을 하자고 한다. 전력이 좋고 조건도 나은 팀에서도 얘기가 있어서 고민 중이다. 현지 선수들을 지도할 때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배구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을 바꾸기 어려웠다. 프롤리가 출전을 위해 급조된 팀이다 보니 동료 의식과 팀워크가 부족했다. 경기 전, 몇 시에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몇 시에 출발하는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어떤 음식을 언제 먹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개념조차 없었다. ”
●인도네시아의 오빠가 된 송준호와 아시아쿼터에 관심이 큰 현지 선수들
-인도네시아에서 배구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축구 농구 배드민턴 배구 순이다. 현지의 택시를 타고 가다 보면 기사가 내게 신태용 감독을 아느냐고 자주 물었다. 그다음은 K리그에 진출한 인도네시아 선수 얘기를 했다. 축구와 농구는 시즌 개념으로 꾸준히 경기가 있지만, 배구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다. 송준호는 인기가 아주 좋았다. 도착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팬이 생겼다. 뽀얀 피부에 키가 크고 잘 생겨서 많은 여자 팬들이 따라와 ‘오빠’라고 부르고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선수들이 V-리그에서 뛰면 현지에서 더 많은 관심이 생길 것으로 본다. 인도네시아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보다 한류와 한국문화에 관심이 유난히 컸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송준호와 함께 지내면서 외로움을 덜었을 것 같다.
“나는 해외 경험이 많아서 괜찮았지만, 준호는 일본 전지 훈련 2차례 다녀온 것이 해외 경험의 전부라고 했다.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준호가 먼저 현지 선수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해 팀과 동료들 모두 좋아했다. 준호는 선수로서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도 있었는데 세터가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준호에게 ‘용병으로서 수비와 리시브 등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해달라’고 조언했다. 준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팀에서는 다음에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준호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V-리그는 이제 아시아쿼터를 처음으로 실시한다. 현지에서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고 경기도 봤는데 이들이 V-리그에 오면 성공 가능성은 있는지.
“충분하다. 아시아쿼터의 목적이 국내 선수들의 몸값을 줄이는 것이라면,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좋은 대안이다. 대표선수 가운데 아웃사이드 히터 몇 명은 현재 V-리그에서 5~6억 원을 받는 선수들보다 잘한다. 이런 선수들이 오면 토종 선수들의 몸값은 자연스럽게 떨어질 것이다. 인도네시아 배구 전체적인 수준은 V-리그보다는 못하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인도네시아 세터는 플레이 스타일이 우리와 다르다. 선수들은 신장이 작아도 점프력을 타고났다. 1m 이상 뛴다. 탄력과 공 다루는 기술이 좋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이들도 아시아쿼터에 관심이 많다. 몇몇이 물어보길래 ‘밑져야 본전이니까 꼭 참가하라’고 했다. ”
KOVO에 아시아쿼터를 신청한 인도네시아 선수는 리반 누르쿨키(OP, 198cm), 파르한 하림(OH, 193cm), 도니 하리오노(OH, 191cm), 아길 앙가라(OH 194cm), 디마스 사푸트라(OP, 188cm), 파리 세프티안(OH 187cn), 렌디 페브리언트(OH, 187cm) 등 6명이다.
-프롤리가의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또 선수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10월부터 각 팀이 선수 구성을 시작해 11월에 계약을 맺고 12월에는 시즌 준비를 한다. 리그는 1월부터 시작해 2번의 라운드를 한다. 상위 4개 팀이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을 한다.
여러 지역을 돌면서 각 팀이 14경기를 한다. 이번 시즌은 8개 팀이 참가했는데 우리 팀은 이전 시즌 1승 7패에서 4승 10패로 성적이 조금 올랐다. 프롤리가는 한 라운드가 3주 동안 벌어진다. 라운드 사이에는 일주일간 휴식 기간이 있다. 한 장소에서 치르는 경기는 목~일요일에 열린다. 팀별로 2~3경기를 한다. 각 팀이 로컬 팀의 선수를 스카우트해서 팀을 구성한다. 1,2부로 나뉜 로컬 팀에서 뛰는 선수들은 따로 직업이 있다. 배구는 부업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선호하는 직업은 군인이나 경찰관, 공무원이다. 배구를 잘하는 선수들 대부분도 이런 직업이다. 그래서 리그 상위권은 경찰, 군인 팀이다. 국가정보원이 스폰서를 하는 공무원 팀도 있다. 흥미로운 팀은 전임 대통령의 아내가 만든 자카르타 라바니다. 지난 시즌 창단해 리그 2위를 하고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전임 대통령이 스폰서라 구단 운영자금이 풍부하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 이번 시즌 리그 1위를 했다. 선수들이 따로 부업을 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돈을 준다. 선수단 버스도 2대나 있고 스태프도 수십 명이다.”
라바니는 시즌 13승 1패를 기록해 4강이 겨루는 위너 스테이지에 1위로 올라갔다. 4개 팀이 2번의 풀리그 방식으로 겨루는 위너 스테이지에서도 6전 전승으로 결승전에 올랐다. 라바니는 결국 자카르타 바양카라를 세트스코어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 팬이나 이영택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팔렘방BS가 좋은 성적을 내기를 기대했는데.
“구단이 선수구성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팀 구성 방식도 문제가 있었다. 나도 이 부분이 아쉽게 생각한다. 비전문가인 구단이 미리 선수를 뽑아놓고 감독과 외국인 선수를 찾았다. 팀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았다. 당초 데려오려던 외국인 선수 우드리스도 오지 못해서 급히 다른 선수를 뽑았다.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시즌 도중에 단장에게 ‘만일 다음 시즌에 더 좋은 성적을 원한다면 먼저 감독을 일찍 선정해 선수 선발 권한을 모두 주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단도 그러겠다고 약속은 했다.”
●인도네시아 최고 선수의 몸값은 월 500만원, 돈 없어서 비디오판독 못하는 프로리그
-인도네시아 배구 선수들의 대우는.
“V-리그와 차이가 크다. 현재 리그 최고 선수는 월 500만원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그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 로컬의 2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50만원이라고 들었다. 우리 팀은 다른 팀과 비교해 구단의 지원이 좋지 못했다. 원정 호텔도 다른 팀보다는 한 등급 아래였다. 이동할 때는 미니버스를 타고 다녔다. 단장에게 이런 부분을 지적했더니 나중에는 대형 버스가 왔다. 놀란 선수들이 그 버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선수들은 이동 거리가 먼데도 미니버스를 타고 공항이나 기차역까지 다니며 불평 없이 지냈다. 이들에 비하면 편한 전용 버스를 타고 다니는 V-리그 선수들은 복을 받았다. 송준호가 잘 알 것이다.”
-경기를 치르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경험했을 것 같은데.
“1라운드 라바니와의 경기 때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우리 선수들이 그날따라 경기를 잘했다. 2-1로 앞섰다. 경기장에는 전임 대통령이 자기 팀을 응원하려고 왔다. 모든 사람이 가서 인사를 할 정도로 그분의 권위가 대단했다. 그런데 자기 팀이 뒤지자 대통령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때부터 심판들이 대놓고 이상한 판정을 했다. 프롤리가는 비용 때문에 리그에서는 비디오 챌린지가 없다. 인도네시아 심판의 기량은 V-리그 심판보다 많이 떨어진다.”
-우리 심판들이 들으면 정말 좋아할 얘기다. 현지에서 느낀 판정의 수준은.
“내가 판정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한 번은 시간차 공격을 하던 상대 선수가 네트를 건드렸다. 그런데 심판은 거꾸로 우리의 네트터치를 불었다. 우리 선수들은 블로킹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랬다. 오심이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심판이 리플레이를 선언했다. 그래서 또 강력하게 따졌다. 감독관도 할 말이 없는 눈치였다. 그 경기 장면이 동영상으로 공개됐는데 결국 주심과 부심은 심판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 번은 상대 팀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에서 팀을 후원하는 스폰서의 표기가 달랐다. 경기 전에 감독관에게 이 부분을 물었다. 감독관은 ‘같은 스폰서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V리그의 사례(한국전력 강민웅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출전해 문제가 됐던 경기)를 휴대 전화로 찾아서 보여줬다. 그런데도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자회견 때도 ‘리그가 발전하려면 판정이 더 정확해야 한다’고 자주 얘기했다. 내 말을 경청하는 기자들도 많았고 이 내용이 크게 보도됐다.”
●소주 10병 값의 승리 수당과 산소호흡기를 쓴 환자 사진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선수들
-가장 궁금한 것은 돈 얘기다.
“프롤리가는 라운드별로 시상을 한다. 라운드 우승팀에게는 상금 250만원을 준다. 파이널4는 우승상금이 2배로 뛴다. 챔피언결정전 MVP 상금은 200만원이다. 우리 팀 선수에게 V-리그의 트리플크라운 상금 100만원 얘기를 해줬더니 모두 놀랐다. 우리 팀이 시즌 첫 경기에서 승리하자 구단에서 승리 수당이라고 봉투를 줬다. 나중에 열었더니 150만 루피아(한화 12만원)였다. 현지에서 한국 소주 10병을 사 먹을 액수였다. 코치들에게 원래 이만큼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 정도로 적을지 몰랐다고 했다. 2번째 이겼을 때는 승리 수당이 200만 루피아(약 16만원)로 올랐고 3번째 승리 때는 300만 루피아(25만원)로 뛰었다. 다우디가 뛰는 경찰 팀은 승리 수당으로 1000만 루피아(80만원)를 주고 져도 경기 수당으로 100만 루피아(8만원)를 받는다고 했다.”
-V-리그 팬들에게도 친숙한 다우디는 어땠나.
“경찰팀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다. 경기장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잘했다. 송준호
와 현대캐피탈에서 함께 지내서였는지 얼굴을 보면 반가워했다. 좋은 팀에서 좋은 대우를 받
고 잘 지내는 듯했다.”
-이슬람 국가에서의 생활은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인도네시아는 기도가 필수다. 선수들은 하루에 5번 기도를 한다. 훈련 중에도 예외는 없다.
오전 6,7시와 낮 12시, 오후 6,7시가 정해진 기도 시간이다. 매주 금요일 12시에는 반드시 모
스크에 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 11시 전에는 훈련을 마쳐야 했다. 경기를 앞두고 대기하다가
기도 시간이 되면 준비하던 테이핑을 풀고 양말을 벗고 좁은 라커룸에서 모두가 기도를 올리
는데 몇 번씩 이런 일을 반복했다. 나도 선수들을 따라 모스크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밖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들은.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가끔 연락을 끊고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겨우 수소문해서 찾으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사진을 보내면서 집안의 누군가가 아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선수가 이런 종류의 사진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
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는 100일 동안 현지 생활에 나름 잘 적응했다고 자부한다. 딱 하나
적응하지 못한 것은 담배였다. 인도네시아는 담배를 피우는 애연 국가였다. 이들이 피는 담배
는 정향 성분이 들어가는데 치과에서 흔히 맡는 소독약 냄새와 맛이었다. 인도네시아 선수와
코치들 모두가 피는 정향 담배 맛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인터뷰 도중 이영택 감독은 인도네시아 맨땅 배구의 슬픈 현실도 얘기했다. 좋은 환경에서 배
구만 열심히 하면,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V-리그 선수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스토리다.
“인도네시아의 배구 환경은 열악했다. 선수들은 덥고 습한 가운데 체육관에서 에어컨도 켜지
않고 훈련했다.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해서 우리처럼 에어컨을 빵빵 틀고 훈련하는 것은 생각조
차도 못 했다. 그래서 훈련 시간은 2시간을 넘길 수 없었다. 선수들은 7월부터 라볼리라고 불
리는 1부리그와 우리의 전국체전, 2부리그에서 뛰는데 이들 경기까지는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다. 나머지 지방에서 따로 개최하는 대회는 대부분 맨땅에서 열린다. 유튜브를 보면 현재 인
도네시아에서 가장 배구를 잘하는 선수(리반 누르쿨키)가 맨땅에서 경기하는 영상이 많이 있
었다. 궁금해서 코칭스태프에게 이유를 물었다. 알고 봤더니 선수들은 부업으로 이런 대회에
출전해 돈을 벌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최고 스타는 이런 로컬대회에서 세트당 80~100만원을
받고 나머지 선수들은 경기당 80~100만원 받고 뛴다고 했다. 국가대표가 용병으로 동네의 조
기 축구 경기에 뛰는 식이다. 우리 선수들도 주말에 휴식을 주면 월요일에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오는데 알고 보니 이 부업의 후유증이었다. 맨땅에서 배구를 하다 보니 인도네시아 선수
들은 수비가 약했다. 러닝디그, 롤링 디그는 생각조차 못 했다. 대신 해외 유명 선수들의 화려
한 공격 동작은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 보니 모두 겉멋만 들었고 팀플레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 proliga, 이영택 감독 제공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