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야스민이 빠지자 비로소 보이는 현대건설의 연결 배구

김종건 / 기사승인 : 2023-01-23 08: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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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는 네트 위에서 하는 싸움이지만 그 과정을 만드는 것은 수비와 연결 등 기본기

 

 

그동안 일상으로 지나쳤던 것이 특별한 계기로 다시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요즘 현대건설 배구가 그렇다. 지난 시즌에 이어 연승을 거듭하면 V-리그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받는 현대건설은 1225일부터 주 공격수 야스민이 허리 디스크 증세로 팀을 이탈했다.

 

지난 시즌부터 팀에 가장 필요했던 결정력을 책임져온 야스민이 빠지자 팀도 흔들렸다. 시즌 초반에도 출전하지 못한 두 경기가 있었지만, 황연주가 공백을 잘 메워주며 개막 이후 15연승을 내달렸다. 그러나 한두 경기 빠지는 것과 장기결장은 전혀 상황이 달랐다.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절반 이상이라고 평가받는 V-리그에서 현대건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크리스마스에 KGC인삼공사에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1229일 흥국생명에게도 졌다

 


처음으로 연패를 기록하며 흔들리던 현대건설은 11IBK기업은행을 3-0으로 쉽게 이기며 한숨을 돌렸고 4라운드 4연승 포함해 5연승을 기록했다. 이기는 팀에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지만 5연승 동안 현대건설의 플레이는 더 끈끈해졌고 조직력의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현대건설의 숨겨진 장점인 탄탄한 수비와 정확한 연결은 확연히 드러났다. 그동안 야스민의 파괴력과 가려져 있었을 뿐, 강팀으로 버티게 해준 힘이 마침내 노출된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슷한 체형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배구를 대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

우리는 강력한 공격에 먼저 눈길을 주지만 일본은 수비다. 이를 상징하는 표현이 있다. 일본 V-리그가 외치는 ‘Never Drop The Ball’이다. 일본의 배구 만화 하이큐에도 이런 생각은 자주 드러난다. 그들은 상대보다 먼저 코트에 공을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5연승 동안 현대건설은 상대보다 먼저 코트에 공을 떨어트리지 않는 다양한 기술을 마음껏 보여줬다.

 

 

현대건설의 안정적인 수비 짜임새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22일 현재 리시브 3(38.71% 효율), 디그 3(세트 평균 21.300), 수비 4(세트 평균 28.344). 세트는 2(세트 평균 13.867). 어느 부문에서도 특출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크게 약점이 보이지도 않는다. 김연견과 황민경, 고예림(상황에 따라 정지윤)이 책임지는 리시브는 도로공사의 임명옥 문정원의 2인 리시브 시스템보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3명의 특색 있는 윙 스파이커를 경기 상황에 따라 돌려쓰고 때로는 후위 3자리에는 수비 전문 김주하를 투입해 리시브와 수비를 보강하는 전술이 잘 먹혀들고 있다.

 

여기에 김연견이 빠른 반응 속도로 상대의 공격을 잡아내고 반격이 자주 성공하면서 2점 효과의 점수를 많이 만들어냈다. 김연견의 놀라운 수비가 가장 빛났던 장면은 IBK기업은행과의 11일 경기 때였다. 김연견은 3세트 23-23에서 상대 산타나의 공격을 연달아 공중에 몸을 날리며 막아냈고 이때마다 현대건설은 반격으로 점수를 뽑아 경기를 끝냈다. 이 승리로 탄력을 받은 현대건설은 다시 연승가도에 올라탔다.

 

 

그날 김연견은 놀라운 디그 2개를 성공시킨 상황을 묻자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경기가 길어지고 동료들이 힘들어 할 것 같아서 어떻게 해서라도 잡아보려고 몸을 던졌다고 했다. 경기 뒤 김정아 전력분석담당에게 김연견을 포함한 현대건설 선수들의 디그 능력이 급상승한 비결을 묻자 훈련 과정의 차이점을 얘기했다. 그는 수비 훈련 때마다 실전처럼 코치 선생님들이 여기저기에서 난타를 쳐준다. 이런 훈련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김연견 등 선수들이 예상을 벗어나는 곳으로 가는 공도 따라가서 잘 잡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5연승 기간 현대건설이 다른 팀보다 꾸준하게 앞선 것은 딱 하나였다. 엑셀런트 디그 숫자였다. 단순히 상대의 공격을 받아낸 것을 넘어서 거의 득점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기막힌 수비로 공을 살려내는 능력이 엑설런트 디그다. 5연승 동안 이 숫자는 35-19, 24-16, 27-16, 44-36, 37-35로 상대 팀을 앞섰다.

 


현대건설의 장점은 김연견의 빠른 반응 스피드도 있지만 다른 선수들의 높은 배구 IQ도 큰 몫을 한다. 황민경와 김다인은 경기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다. 이들은 김연견과 함께 탄탄한 수비 그물망을 짜고 정확한 연결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현대건설이 정말로 강팀인 이유는 숫자가 말하지 않는 이 부분에 있다. 연결의 정확성에서도 상대를 압도한다. 아쉽게도 이 숫자는 KOVO의 어느 공식 기록에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디그 이후 반격 과정이나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 꼭 필요한 연결의 능력이다. 현대건설은 선수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는 깔끔한 역할 분담으로 항상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을 상대보다 잘 만들어낸다.

 

반면 연결이 서툰 팀은 마음이 앞선 채 서로 공을 다투다 선수들끼리 충돌해 부상이 생기거나 시선이 마주쳐 잡을 수 있는 쉽운 공을 놓치는 상황을 자주 만들어낸다. 현대건설은 이런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다. 선수들의 높은 배구 IQ를 이용해 편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강성형 감독은 누가 공을 잡으면 어디로 올리고 어디에 연결을 할지 미리 역할을 정해준다. 2단 연결 때도 후위에 있는 김연견에게 모두 맡기지 않고 가까이에서 먼저 공을 본 사람이 올리도록 해서 최대한 동선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다행히 우리 팀에는 배구 지능이 높은 황민경 김다인이 있어서 이를 잘 수행한다. 중앙에서도 양효진과 이다현이 이런 능력이 좋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애매한 상황에서 누가 먼저 공을 만져야 하고 다른 선수는 이때 어떤 동작을 할지 모두가 잘 알고 함께 움직인다. 선수들의 이런 움직임은 배구 기록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어느 기업의 광고 문구이기도 한 연결은 힘이 세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대건설이다. 매끄러운 연결은 한창때 삼성화재의 배구와 많이 닮아있다. 7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던 삼성화재는 외국인 선수 안젤코~가빈~레오의 엄청난 공격으로 우승을 쟁취했지만, 그 공격을 뒤에서 받쳐준 것은 탄탄한 수비와 정확한 연결이었다. 여오현 석진욱 등 배구 도사라 불리는 이들이 수비 그물망을 잘 짰고 최태웅 유광우 등 정상의 세터가 정확한 연결로 공격을 유도했다. 삼성화재는 연결이 1이라며 이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강성형 감독도 현역 시절 빼어난 배구IQ로 수비와 공격을 모두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때 기본기를 잘 배웠고 그의 배구관은 지금 현대건설의 배구에 잘 스며들었다. 강성형 감독은 배구가 네트 위에서 하는 싸움이지만 그 과정을 만드는 것이 수비와 연결 등 기본기다. 이 과정이 좋아야 강팀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몸을 풀 때나 훈련 때도 최대한 랠리가 길게 이어지도록 상황을 만들어 놓고 훈련한다. 시간이 있을 때 하는 수비 훈련도 짜임새를 높이려고 최대한 실제 상황을 만들어서 한다고 팀의 훈련 비밀을 털어놓았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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