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023시즌 V-리그 봄배구가 막을 올렸다. 3월 22일 장충체육관의 남자부 준플레이오프(준PO) 우리카드-한국전력의 단판 대결에서 한국전력이 세트스코어 3-1로 첫 관문을 통과했다. 지난해의 반복이었다. 당시 장병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전력은 우리카드에 시즌 6전 전패를 당했지만, 준PO에서 이기고 PO에 진출했다.
●2021-2022 준PO에서 승패를 갈랐던 것들은
시즌 내내 우리카드의 주 공격수는 알렉산드리 페헤이라였다. 그는 유난히 한국전력에 강했다. 빼어난 공격기술로 한국전력의 블로킹을 쉽게 뚫었다. 그런데 시즌 막판에 무릎을 다쳤다. 고심하던 우리카드는 시즌 한 경기를 남겨두고 급히 외국인 선수를 교체했다. 러시아리그 득점 2위 레오 안드리치가 급히 왔다. 그는 3-1로 이겼던 한국전력과의 6라운드에서 29득점으로 맹활약했다.
레오 안드리치는 준PO에서 27득점을 하고도 웃지 못했다. 1세트 한국전력이 듀스 혈투 끝에 30-28로 먼저 세트를 따낸 끝에 3-1로 이겼다. 20점 이상 득점 선수가 한 명도 없었고 블로킹도 9-13으로 뒤졌지만, 승리했다. 우리카드는 그날 무려 31개의 범실을 쏟아냈다. 한국전력은 거의 절반인 15개였다. 승패를 가른 요인이었다.
그날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은 용감했다. 1세트 리베로 오재성이 큰 경기의 부담에 흔들리자 세트 중반부터 이지석을 투입했다. 이 교체가 성공했다. 큰 기대가 없었던 이지석은 상대의 공격을 모두 잡아냈다. 14번의 수비 기회에서 13번을 성공시켰고 9개는 묘기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인생경기를 한 이지석의 활약에 팀 전체의 사기가 치솟았다. 엑설런트 디그에서 25-6으로 한국전력은 압도했다. 또 다른 승리의 요인이었다.
●하지 않아도 될 준PO를 하는 우리카드, 보너스 경기를 하는 한국전력
한국전력이 준PO에 진출한 과정도 극적이었다. 우리카드는 한국전력과의 6라운드에서 이기며 승점59를 확보했다. KB손해보험과의 경기만 남겨둔 한국전력은 승점53이었다. 이미 PO를 확정지은 KB손해보험의 선택은 뻔했다. 노우모리 케이타를 1세트 이후 쉬게 했다. 승점3이 필요했던 한국전력은 첫 세트를 내줬지만, 2~4세트를 연달아 따내면서 2016~2017시즌 이후 5년 만에 봄 배구 진출을 달성했다.
22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2022-2023시즌 준PO도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우리카드(승점55)가 16일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승점3을 추가하면 한국전력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승점53으로 마지막 남은 KB손해보험전에서 반드시 승점2 이상을 따내야 했다. 그런데 우리카드는 대한항공에게 먼저 2세트를 내줬다. 경기 내용이 형편없었다. 선수들의 리듬은 맞지 않았고 신영철 감독이 시즌 내내 지적해왔던 나쁜 버릇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감독은 고민했다. 피하고 싶었던 준PO가 현실로 다가왔다. 최악의 상황에서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디스크 증세로 고생하던 신영철 감독은 경기 도중 심판에게 갔다. “허리가 아파서 그런데 경기 도중에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심판은 “경기 도중에 떠날 수는 없다. 힘들면 의지가 앉아서 지휘하라”고 대답했다. 사실 감독이 심판에게 스스로 퇴장 가능 여부를 물은 것은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선수들에게 강력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실행되지 않았지만, 감독의 분노 이유를 선수들은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우리카드의 경기력은 달라졌다. 분노의 효과는 3,4세트까지였다. 그날 우리카드의 2-3 패배로 준PO가 확정된 한국전력은 다음날 주력 선수를 빼고 KB손해보험을 상대했다.
●베테랑 감독은 자극을 초짜 감독은 루틴을 선택하다
감독으로 처음 봄배구를 경험하는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은 루틴을 강조했다. 중요한 경기지만 서울에서 숙박하지 않고 평소처럼 수원에서 이동했다. 권 감독은 “시즌 내내 오전 8시에 선수들이 훈련장에 모여서 아침을 먹고 준비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루틴을 유지해주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출퇴근해온 한국전력은 준PO 아침에도 그 루틴을 따랐다. 가정을 꾸린 선수들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평소 자던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라는 감독의 배려였다.
우리카드는 달랐다. 숙소인 인천에서 장충체육관까지 오는 시간이 길다고 판단해 경기장 인근의 호텔에서 준PO를 준비했다. 선수단이 서울에서 하룻밤 지낼 경우, 비용은 700~800만원 사이다. 우리카드가 이동 시간과 거리를 줄이려고 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 리베로 오재성 때문이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안고 있는 오재성은 지금 선수들과 함께 버스로 이동하지 않는다. 버스 이동 시간이 허리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따로 스태프용 소형 버스 뒷자리에 누워서 이동한다. 신영철 감독은 시즌 내내 오재성의 허리 상태를 살핀 뒤 출전 여부를 결정했다.
●게임 플랜 대로 된 한국전력, 모든 것이 헝클어진 우리카드
경기 전 인터뷰에서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은 승리를 위해 2개의 키워드를 말했다. 첫째가 “범실을 줄여야 한다”였다. 1세트 우리카드는 8개의 범실을 쏟아냈다. 하지 않아도 될 경기를 하는 부담감 탓으로 보였다. 한국전력은 범실이 2개였다. 권영민 감독은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다. 평소대로 신나게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보너스 경기를 맞아 승패의 부담감이 적은 한국전력 선수들의 몸이 가벼웠다. 팀 공격성공률이 무려 70%를 찍었다. 질 수 없었다.
2세트도 우리카드의 게임 플랜대로 경기가 흘러가지 않았다. 신영철 감독은 경기 전 김지한의 사용법을 얘기했다. “투입 시기가 변수인데 아가메즈나 송희채에서 문제가 있을 때 투입된다”고 했다. 우리카드로서는 김지한이 투입되지 않는 상황이 최선인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1,2세트 모두 송희채를 대신해 일찍 투입됐다. 반면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은 “리시브가 잘 버텨주고 서재덕 쪽에서 득점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대대로 서재덕은 1세트 5득점, 2세트 4득점을 했고 중요한 순간마다 서브에이스로 팀의 전투력까지 끌어올렸다.
●택배로 간신히 도착한 타이스의 신발과 그 블로킹 2개
우리카드가 3세트 6개의 블로킹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 한 세트를 만회했다. 두 팀은 3승3패를 기록한 이번 시즌 무려 4번의 풀세트 혈투를 벌였다. 4세트는 끝까지 팽팽했다. 이때 타이스가 등장했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장충체육관에서 도착해서 가방을 열다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있어야 할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타이스는 특수한 깔창을 넣은 운동화를 사용해왔다. 이것이 없자 멘붕이었다. 즉시 의왕의 훈련장으로 연락했다. 다행히 그곳에 신발이 있었다. 급했다. 의왕에서 장충체육관까지 퀵서비스로 신발을 배송시켰다. 몇 년 전 다른 유니폼을 들고 와서 난리가 났던 강민웅 사건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다행히 신발은 잘 도착했다. 그 신발을 신고 27득점을 기록한 타이스는 21-21에서 상대 아가메즈의 퀵오픈을 차단했다. 임성진의 백어택으로 한국전력이 먼저 매치포인트에 도달하자 타이스는 오직 아가메즈만 바라봤다. 예상대로였다. 24-22에서 타이스는 아가메즈의 백어택을 가로막으며 경기를 끝냈다. 쓰러진 아가메즈는 한동안 코트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우리카드의 봄배구는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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