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오심을 인정하는 용기와 심판의 권위, 판정의 존중 그 사이에서

김종건 / 기사승인 : 2023-01-02 08: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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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판정 시비와 징계, 달라진 대중의 눈 높이에서 봐야 할 심판의 권위와 판정 존중


2022~2023시즌 반환점을 앞둔 V-리그가 다양한 악재로 한동안 몸살을 겪을 것 같다.

점점 승패에 민감해지는 시기답게 판정 불만의 목소리가 현장에서 잦아지고 있다. 불행은 겹으로 온다고 오심 사고마저 터졌다. 1227KB손해보험-한국전력 3라운드 경기 도중 나온 논란이었다. 4세트 11-9로 한국전력이 앞선 상황에서 KB손해보험 홍상혁의 파이프 공격이 아웃됐다. 후인정 감독은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상대의 네트터치 반칙 여부를 물었다. 판독이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한눈에 알 정도로 명확했다. 한전 미들블로커 박찬웅이 네트 상단을 건드렸다. 그런데 경기위원이 네트터치가 아니다고 발표하면서 일을 키웠다.

 

거꾸로 비디오판독 결과를 발표하자 KB손해보험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때 경기위원과 부심이 빨리 사태를 파악했거나 심판위원, 주심과 대기심이 개입해서 발표를 바꿨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부심은 해결의 골든 타임을 놓친 채 피해자인 KB손해보험을 설득하려고만 애썼다. 그 얘기를 들어주기에는 설득 논리가 약했다. 관중과 시청자, 중계방송사의 해설위원과 캐스터 모두가 다른 판단을 하는데 두 사람만 몰랐다. 매끄러운 경기 운영과 납득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빠진 채 억지로 경기를 진행하려고 하면서 점점 일은 커져버렸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5년 전에도 두 팀은 대형 오심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수원에서 벌어졌던 2017~2018시즌 6라운드 때였다. KB손해보험은 219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전력에 1-3(25-17 24-26 29-27 23-25)으로 졌다. 사고는 1-1이던 3세트에 발생했다. 20-20에서 한국전력 센터 이재목이 네트 위에서 공을 밀어 넣었다. KB손해보험 양준식은 블로킹을 시도했다. 주심은 이재목의 캐치볼 파울을 선언했다. 한국전력 측에서 양준식의 네트터치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결국 번복됐다. 권순찬 당시 KB손해보험 감독은 캐치볼 파울이 먼저라고 항의하다가 경고를 받았다. 추가로 1점을 빼앗겼다. 21-20으로 앞설 상황이 20-22가 됐다. KB손해보험은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졌다. KB손해보험은 화가 단단히 났다. 단장이 다음 날 한국배구연맹(KOVO)을 방문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KOVO는 사후 판독을 통해 오심을 인정했다. 상벌위원회도 열었다. 사상 최고의 징계가 나왔다. 해당 경기의 주부심은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 또한 무기한 자격 정지였다.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도 KOVO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았다. 이처럼 강력한 징계가 나온 배경이 있었다. 이날 경기 결과에 화난 팬들은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및 제안에 경기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KOVO는 강력한 징계와 입장 발표로 재경기 요구는 조기에 진화됐지만 많은 숙제를 남겼다.


SNS의 발달로 이제는 대중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널리 전파되는 시대다. 게다가 모든 경기를 어디서라도 반복해서 볼 수 있다. 팬의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환경이다. 방송 장비마저 좋아져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마저도 이제는 쉽게 보인다. 그렇다 보니 수많은 경기에서 오심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지만 줄이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 그래서 KOVO는 해마다 심판과 전문위원을 교육하고 있다. 첨단 장비도 꾸준히 도입해왔다. 이번 시즌부터는 심판이 스스로 비디오판독을 하도록 규정도 바꿨다. 그렇게 해서라도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오심을 줄이려고 했는데 이런 사건이 터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됐다.

 

KOVO28일 비디오판독의 오심을 인정하고 경기운영본부에서 '징계 및 제재금 자동부과 기준'을 고려해 징계를 내렸다. 부심과 경기 위원은 최대 3경기, 심판 위원은 1경기 배정 제외 처분을 받았다. 5년 전의 엄청난 징계와는 많이 비교됐다. 우여곡절 끝에 승리한 KB손해보험이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여론이 예전처럼 들끓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V-리그를 뒤흔든 오심 논란 대부분은 인재였다. 팬들은 심판과 전문 위원들이 규칙을 잘못 적용했을 때의 사고들, 즉 판단의 실수를 더 잘 기억했고 분노했다. 이번에는 명확한 잘못을 모두가 알았는데 당사자들이 빨리 이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서 문제가 더 커졌다.

 


팬들은 정확한 판정을 원하지만, 100%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판정은 공정해야 하고 억울한 피해는 막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이번 일은 수습 방법이 간단했다. “네트 터치가 아니다는 최초 발언을 번복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관련자들은 최초 판정의 번복을 피했다. 심판들의 내부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판정의 권위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심판들은 생각할 것이다. 심판들에게는 아쉬운 현실이겠지만 대중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명백히 드러난 오심을 바꿀 용기와 한 번 내린 판정의 무조건 존중 가운데 대중은 어떤 것에 더 가치를 둘까. 이를 심판들은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은 권위보다는 공정이다. 시대의 정신이다.

 

또 하나 지적할 부분은 징계의 일관성이다.

지금 V-리그는 심판마다 꺼내는 카드의 기준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KB손해보험-한국전력 경기 도중 후인정 감독은 화를 삭히지 못하고 쓰레기통을 발로 찼다. 아무리 억울하지만, 관중이 지켜보고 있었다. 벌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후인정 감독에게는 어떤 징계도 없었다. KB손해보험이 경기 지연으로 옐로카드인 경고를 받았을 뿐이다. 다음날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달랐다. OK금융그룹과의 3세트 도중 오버네트 비디오판독 결과에 항의해 레드카드를 받았다. 세트 퇴장이었고 이 결정으로 2022년의 마지막 경기(KB손해보험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최태웅 감독이 비디오 판독에 이의를 제기하고 경기를 지연시킨 것은 문제였다. 주심으로부터 카드가 나오는 것도 옳았다. 그렇지만 과했다. 이 징계가 합당하려면 모두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형평성의 문제다. 정심 오심 여부는 별개다. 그 팀이 억울하다고 봐주거나,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하거나, 이제부터 걸리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하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행동하면 벌은 권위를 잃는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

 

최근 V-리그는 여기저기에서 위험 신호가 울린다. 눈에 띄게 떨어진 경기 수준은 물론이고, 팬의 성원과 높아진 몸값을 따라가지 못하는 선수들의 낮은 직업 윤리는 걱정스럽다. 이런 가운데 병역 비리가 터졌다. 유명 은퇴 선수의 스포츠 도박 관여 소문마저 나왔다. 그동안 애써 쌓아 올렸던 V-리그의 깨끗한 이미지가 훼손될까 걱정스럽다. 한때 리그의 생존을 걱정했던 암흑의 시대는 오래전의 얘기가 아니다. V-리그 모든 구성원이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몰락은 순식간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더욱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일터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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