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프로팀들의 U-리그를 향한 시선은 조금 싸늘했다. 점점 선수들의 레벨이 떨어진다며 고졸 얼리 드래프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랬던 프로팀들도 이번 시즌만큼은 U-리그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U-리그에 새롭게 등장한 신성 윤경의 존재 때문이다. 인하대 경기는 물론, 인하대 경기가 아닌 현장에서도 윤경의 이름은 계속 거론된다. 오랜만에 등장한 대학 배구의 특급 기대주다.
대학 배구 감독-코치는 물론 프로팀 관계자들까지, 최근 윤경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남성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씩 주목 받았던 윤경이지만, 인하대 입학 이후 기량이 만개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윤경의 시즌 초반 경기력은 대단하다. 인하대가 지난 시즌 주축 자원을 전부 프로로 떠나보내며 사실상 리빌딩 시즌을 보내지 않겠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윤경이 불을 뿜으며 개막 후 5연승을 질주 중이다. 화제의 중심 윤경을 <더스파이크>가 인하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인하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최천식 감독님입니다!
배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제가 공부를 잘 못하던 때였죠(웃음). 맨날 놀러 다니기만 했는데, 부모님이 그럴거면 운동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아버지가 축구선수 출신이시고, 어머니의 지인은 배구를 하고 계셨거든요. 그때 배구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막상 시작해보니까 놀면서 운동할 때랑은 또 다르긴 했죠. 후회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웃음). 그래도 재밌었던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초등~고교 시절에 배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중3 때랑 고3 때요! 중2 때까지 우승을 못하다가, 중3때 첫 우승을 차지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계속 우승을 못하다가 고3때 고등학교에서의 첫 우승을 했습니다. 의미 있는 마지막 학년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동안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부담도 됐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싶었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대표팀에서 일본이랑 했던 경기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일본 선수들은 그들이 가진 키와 피지컬로는 나올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거든요!
사실 대학 무대를 건너뛰고 프로에 바로 진출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인하대 진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최천식 감독님께서 저를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켜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인하대는 예전부터 오고 싶은 학교였기도 하고요. 오게 돼서 기쁩니다! 역시 학교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감독님인 것 같아요. 정말 좋은 분입니다. 이런 분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함께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윤하준(한국전력)-이우진(베로 발리 몬차) 선수를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하나요?
네. (윤)하준이가 프로 무대에서 뛰는 걸 보면 재밌어 보이긴 해요. 아무래도 고등학교와는 또 다른 무대일 테니까요. (이)우진이 형은 정말 대단한 형이죠. 그 나이에 먼 나라에서 소통도 잘 안 될 텐데, 언어 공부도 틈틈이 하면서 배구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해요. 부럽기도 합니다!
철강왕 윤경
대학 무대 훈련도 OK!
비시즌 동안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역시 리시브죠. 감독님께서는 제가 무조건 리시브를 해야 한다고, 그래야 프로에 가서 제몫을 할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최천식 감독은 시즌을 준비하며 윤경 같은 선수가 아웃사이드 히터로 성장해야 한국 배구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무래도 고교 시절보다 훈련량이 늘었을 텐데, 몸 상태는 괜찮은가요?
네, 몸은 버틸 만해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큰 부상을 당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철강왕’인데, 지금도 크게 아픈 곳은 없습니다. 아직 괜찮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웨이트 강도를 꾸준히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도 버겁지 않고요!
인하대는 대학 무대에서도 가장 프로 레벨에 가까운 배구를 하는 팀으로 이름이 높죠. 인하대 배구의 특색은 무엇인가요?
자유로움과 색다름인 것 같아요. 우선 감독님께서는 항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운동하길 원하세요. 또 코트 안에서의 새로운 플레이도 강조하세요. 예를 들면 꼭 세 번의 터치로 득점하려고 집착하지 말고 두 번 만에 들어가는 공격도 과감하게 시도해보라고 독려하시죠.
자유롭고 색다른 배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요.
네. 처음에는 팀의 빠른 플레이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그래도 (이)한샘이 형과 다른 형들이 다 도와주셔서 적응을 빠르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무대에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처럼 무식하게 공을 때리기보다는, 감독님과 코치님이 강조하시는 다양한 각도를 만드는 공격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최천식 감독과 이상래 코치는 어떤 분인가요.
딱딱한 운동 분위기를 엄청 싫어하세요. 모두가 하나 되는, 또 대화가 많은 운동 분위기를 원하시는 분들이죠. 또 말씀드렸듯이 틀에 박힌 배구가 아닌, 창의성을 보장하는 배구를 원하시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항상 힘 좀 빼고 하라고 하세요(웃음). 강타 때리면 두 점 주냐고 하시던데요(웃음). (그 말이 예전에 V-리그에서 엄청 화제가 됐던 말인 거 혹시 아나요?) 네, 그거 알고 있습니다(웃음). 저도 많이 들어요!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누고 호흡을 맞추는 선수는 역시 세터 이한샘 선수겠죠.
한샘이 형은 운동할 때는 정말 진지한 형입니다. 항상 먼저 저한테 오셔서 방금 건 뭐가 문제였다, 어떤 걸 바꿔야 한다고 말해주시죠. 저한테 네가 느끼기엔 어떻고,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도 물어봐주시고요. 대신 숙소에서는 운동 이야기 잘 안하세요. 오히려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장난을 많이 쳐주십니다!
숙소에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사실 저는 대학에 처음 왔을 때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걱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편할 줄은 몰랐죠(웃음)! 숙소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일단 제가 들어가기 전에 형들이 정말 친구 같은 분위기로 지내고 계셨고, 덕분에 저도 적응하기 정말 편했어요.
정지석처럼 받고,
문성민처럼 때리는 선수가 되기 위하여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연승을 이끌고 있습니다. 현 시점의 경기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사실 저는 경희대-충남대전에서 제 경기력이 별로 안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잘 안 풀릴 때 형들이 너무 잘해줘서, 팀적으로는 경기가 매끄럽게 흘러간 것 같아요!
주변의 관심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를 실감하고 있나요?
우선 많은 관심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죠. 아버지께서는 제가 너무 큰 부담을 갖지 않길 바라시더라고요. 저한테 “나 때는 맞아가면서 절박하게 운동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너무 부담감 갖지 말고 행복하고 재밌게 운동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시면서 제 마음을 가볍게 해주셨어요.
이번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요?
인하대가 꾸준히 강팀의 위치에 있었지만 정작 U-리그 우승을 못한지는 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온 만큼 리그 우승과 연맹전 우승을 꼭 하고 싶습니다! 또 전국체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요.
시즌이 끝나고 나면 지난 시즌의 최준혁 선수처럼 곧바로 얼리 드래프티에 도전하고, 또 성인 대표팀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서요. 감독님-코치님과도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인 대표팀은 아직 저한테는 너무 큰 무대 같아요. 벌써부터 거기까지 생각하기엔 제가 너무 부족합니다(웃음).
배구선수 윤경의 롤모델이나 라이벌이 있나요?
롤모델은 정지석-문성민 선수입니다. 정지석 선수의 타고난 배구 센스와 리시브를 배우고 싶고, 문성민 선수의 전성기 시절 파워와 공격도 닮고 싶어요! 라이벌은 아직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긴 한데요(웃음), 꼽자면 한양대 (박)우영이 형? 점프-리시브-수비-배구 센스까지 다 다른 레벨인 선수 같아요. 붙어서 꼭 이겨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총 네 번 붙어봤는데, 그때마다 우영이 형 공격을 못 막기도 했고 특히 전국체전 때는 0-3으로 졌어요. 이제 인하대 소속으로는 이겨야죠(웃음)!
평소에 쉴 때는 어떤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요?
학교 안에서 쉬는 시간에는 그냥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요. 외박을 받으면 학교 근처 맛집들을 탐방하는데, 주로 (선)주성이 형이랑 같이 다녀요. 주성이 형이 주로 사주시는 편이죠(웃음). 아, 레고 조립 같은 것도 좋아해요! 제가 뭐 하나에 꽂히면 무조건 그 자리에서 끝장을 봐야 하는 사람이라 그래요(웃음). 또 예전에는 ‘런닝맨’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래서 김종국-유재석-하하-이광수님을 지금까지도 정말 좋아해요! ‘핑계고’처럼 이 네 분이 나오는 컨텐츠는 지금도 전부 챙겨보고 있습니다. (배구 선수로 성공해서 네 분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좋겠네요!) 와, 그런 시간이 진짜 왔으면 좋겠습니다!
인하대에 곧 축제가 열리죠. 대학에서의 첫 축제가 기대될 것 같은데요?
네! 그런데 축제 첫날에 ITZY가 오는데, 중부대 원정 경기 때문에 첫날은 축제를 즐길 수가 없어요. 둘째 날부터 갈 수 있는데 아마 공연 보면서 신나게 즐기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두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윤경에게 배구란?
배구는 저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 존재입니다. 코트 안에서는 물론이고, 코트 밖에서도 배구 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또 배구 덕분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해요. 늘 고맙게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끝으로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직 어리고 부족한 저에게 과분한 관심을 보내주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경의 생생한 증언
팬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윤경은 불현듯이 고교 시절의 인기 스타 두 명을 떠올렸다. 그 주인공은 김주영(한국전력)과 한태준(우리카드)이었다. 윤경은 “두 형들이랑 같이 경기하는 날이면 경기장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팬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진짜 연예인급이었다. 특히 팬 여러분들 중에 여자 분들이 진짜 많았다. 둘 다 잘생겨서 그렇다”며 형들을 치켜세웠다.
주변인들이 말하는 윤경
“지금 대학 레벨에서 윤경처럼 공격하는 선수는 없다. 정말 잘한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마 윤경을 상대하는 모든 팀들이 이제 목적타 서브를 퍼부을 것이다. 그걸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U리그 익명의 감독
“지금 U-리그에서 윤경이 활약하는 걸 보면 작년보다 더 강해졌다. 그야말로 물건 하나가 나왔다”
- V리그 익명의 관계자
“고등학교 때는 솔직히 윤경이 이 정도로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U-리그에 입성한 이후 기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모든 관계자들이 다 윤경 이야기를 한다. 기대가 정말 큰 선수다”
- U리그 익명의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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