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팀이라 무시당하던 팀에서 전국 제패한 ‘전국 최초 클럽팀’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

박혜성 / 기사승인 : 2022-10-17 11: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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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강원도 홍천의 홍천종합체육관에서 의미 깊은 행사가 열렸다. 전국 최초 전문 클럽팀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 창단식이었다. 그날 신생팀의 출범을 축하하던 많은 사람들은 팀이 제자리를 잡을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은 2년 만에 모두의 예상을 깨버렸다.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개인상도 휩쓸었다. 이제는 약팀이 아닌 대회에서 만나기 싫은 강팀으로 변한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을 <더스파이크>가 만났다.

 

배구를 사랑하는 홍천군의 노력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은 홍천군체육회가 직접 운영한다. 홍천군배구협회 실무부회장인 김종덕 부회장이 팀의 단장을 맡았다. 김 단장은 “처음에는 전국 최초로 스포츠클럽팀을 창단한다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다. 명문 학교의 이름을 내건 팀이 아니다 보니까 선수들이 의기소침해 지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며 창단 준비 당시 느꼈던 솔직한 감정을 말했다.


홍천군은 유난히 많은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종목의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천군이 많은 종목 가운데 배구팀을 창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발단은 홍천의 유일한 초등학교 배구부 남산초등학교 학생들 때문이었다.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배구팀이지만 홍천군 내에는 중-고등학교 배구팀이 없어 어린 학생들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가야 했다.


김 단장은 “처음에는 학교에 배구부를 창단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클럽팀을 창단했다. 학생들이 홍천군 내에서 편하게 배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시작한 일”이라고 밝혔다. 어린 배구 꿈나무를 위한 지역 어른들의 선의(善意)로 시작한 클럽팀의 등장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홍천군체육회는 2022년 고등학생 팀까지 창단하며 초-중-고교 계열화를 이뤘다. 전국 최초로 중-고등학교 클럽팀을 만든 김 단장이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남아있다. “우리의 목표는 홍천군에 실업팀을 만드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않은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성장시킨 뒤 프로무대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전국 최초’인 만큼 많았던 우여곡절
군 체육회가 운영하는 전국 최초의 클럽팀이다보니 주변에 자문을 구할 수도 없었다.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이 하는 일 모두가 첫 사례였다. 결국 두 발로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어려움은 예상 못한 곳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김 단장은 “초기에는 팀에 들어왔다가 학교 팀으로 가고 싶다고 다시 나가는 선수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배구를 그만두는 선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적은 인원으로 운영하는 팀인데 이탈하는 선수들이 생기면 다른 팀에 비해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창단 멤버인 주장 전수진은 “창단 당시에는 인원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훈련하기도 힘들고 자체 경기도 못했다. 물론 지금도 인원은 부족하지만 처음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만만하게 봤던 신생팀에서
만나기 싫은 강팀으로

팀 창단 이후 출전했던 첫 번째 대회는 2020 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였다. 예선 첫 경기에서 세화여중을 꺾으며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제천여중과 금천중에 연달아 패하며 예선 탈락했다. 이어진 제31회 CBS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는 목포영화중에 패했지만 부산여중에게 승리를 거두며 6강에 진출했다. 6강에서 강릉해람중에게 패했지만 두 대회만에 토너먼트에 진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첫 본선 진출 성공에 기뻐하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려던 팀의 앞길을 코로나19가 막았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대회가 중단된 것이다. 그래도 훈련은 멈추지 않았고 선수들은 열심히 땀을 흘렸다.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 7월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제55회 대통령배 전국중고배구대회 결승전에서 천안봉서중을 2-0으로 꺾고 창단 2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2022 춘계 전국중고배구대회에서도 결승전에서 진출했다. 첫 번째 우승이 우연이나 행운 덕분이 아니고 실력이 뒷받침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비록 전주근영중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창단 2년 만에 두 대회 연속 결승전 진출이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김 단장은 “주변에서 ‘몇 년 간은 성적에 부담감을 갖지 마라. 많이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힘들긴 했지만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했고 2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을 차지해서 정말 기뻤다.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라고 어린 선수들을 연신 칭찬했다.

운동만 하지 말고 공부도 함께!
학교에 속한 운동부는 대회를 앞두거나 훈련이 더 필요하면 최소한의 수업만 듣고 훈련이 가능하다. 하지만 클럽팀은 다르다. 학교의 수업을 모두 마친 뒤에야 훈련이 진행된다.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 역시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배구 훈련을 하고 있다. 자연스레 선수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 학생들이 유난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홍천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현재 홍천여고는 운동부를 위한 특별전형이 없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보고 진학해야 한다.


선수들이 홍천여고에 진학하려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훈련시간 확보다.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이 훈련하는 홍천종합체육관과 홍천여고의 거리는 약 8분이다. 홍천여고에 진학하지 못하면 더 먼 거리에 있는 서석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한다. 서석고는 홍천종합체육관과 차로 약 30분 거리다. 그래서 선수들은 홍천여고 진학을 원한다. 선수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힘들긴 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홍천여고로 가야 한다. 그래서 학업을 놓을 수는 없다. 미래를 내다봤을 때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공을 주워줄 사람이 없어 선수들은 몇 분 훈련을 하다가 다 같이 공을 주우러 다니기 일쑤였다. 훈련을 길게 진행하기도 힘들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끝까지 버텨내고 노력했던 홍천중등여자배구클럽이기에 지금과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창단 멤버에서 주장까지 - 전수진

Q. 자기소개를 하자면.
안녕하세요. 홍천중등배구클럽 주장 3학년 전수진이라고 합니다.


Q. 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창단 멤버입니다. 초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리고 인원이 모자라 공을 주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훈련을 오래 하지 못하고 조금 하다가 공줍고 하느라 힘들었어요.


Q. 처음 우승을 차지한 대통령배 대회를 돌아보면.
다른 팀보다 적은 8명으로 대회를 준비하느라 힘들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다 같이 똘똘 뭉쳐서 열심히 훈련했는데 막상 우승하니까 힘들었던 걸 보상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Q. 결승전을 앞두고 팀원들과 나눈 말이 있었나요.
연습했던 것만 보여주고 나오자고 했어요. 우리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그리고 서로 말을 많이 하면서 도와주자고 얘기했어요.


Q. 바로 이어진 춘계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대통령배 끝난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바로 춘계대회가 열렸어요.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힘든 와중에 서로 희생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창단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처음 창단했을 때는 다른 팀들한테 무시도 많이 당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더 열심히 했죠. 지금은 상대팀들이 우리를 만나기 싫어한다는 얘기가 들려요.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뿌듯합니다.


Q. 졸업반인데 남은 중학교 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요.
주장답게 끝까지 열심히 하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한 훈련을 많이 해서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는 키가 작아서 안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글. 박혜성 기자 

사진. 한국배구연맹, 인스타그램 flyingdig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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