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의 눈높이 역시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팬들은 이제 더욱 디테일한 것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 팬들을 위해 <더스파이크>가 ‘작전판’ 코너를 준비했다. 현장에 있는 배구인들의 이야기와 경기 중의 실제 사례의 분석을 통해 팬들이 더 재밌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작전판’의 다섯 번째 주제는 경기의 흐름을 뒤엎을 열쇠이자, 강팀이 되기 위한 최후의 퍼즐인 사이드 블로킹이다. 남자부의 리그 정상급 사이드 블로커 한 명을 익명으로 초대해 그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거리 감각 키우기, 수직 점프 익히기는 필수!
사이드 블로킹을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바로 꼽는다면.
기본적인 스텝을 잘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구는 워낙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예를 들어 상대 세터가 속공을 한 번 잡아서 타이밍을 뺏고 올리는 스타일이라면 교과서적인 스텝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헬프 블록을 들어갔다가도 나중에 사이드로 다시 돌아가는 상황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감각을 잡는 것이다.
사이드 블로커가 중앙에 헬프를 가는 기준도 소개해 달라.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상대 리시브가 잘됐을 때는 시작점을 거의 코트 중앙으로 두는 편이다. 다만 상대가 전위 공격수 세 명일 때는 헬프 블록을 자제하고, 반대로 상대 아포짓이 후위일 때는 대놓고 중앙을 압박한다. 지난 2024-25시즌 같은 경우 모든 팀의 평균적인 아포짓 레벨이 떨어진 시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대놓고 중앙을 압박하는 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사이드 블로커는 따라오는 미들블로커를 위해 자리를 잘 잡아줄 필요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요령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공 쫓아가지 말라”, “날아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는 블로킹의 효율도 떨어지고, 사전에 약속된 유효 이후 수비 플레이를 방해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몸은 그대론데 손만 억지로 따라가는 블로킹은 효율이 매우 좋지 않다. 팔이 기울면서 사이드 블로커와 미들블로커 사이에 상대가 공략할 공간이 열리기 때문이다. 비예나가 이런 빈 공간을 정말 잘 파고드는 유형의 선수다. 그래서 자리 잡기의 핵심은 점프를 대각선으로 날아가면서 뜨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수직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몸에 속도가 붙으면 제어하기가 진짜 어렵다. 연습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블로커들의 손 모양에 대한 중요성도 많이 언급되곤 한다.
일단 오버블로킹이 기본이다. 그런데 네트로 넘어간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네트를 타고 가듯이 빠르고 부드럽게 넘어가야 한다. 양손이 V자로 벌어지거나 손목이 뒤로 들리면서 젖혀지는 모양은 좋지 않다. 특히 V자 블로킹은 공이 맞고 튈 때 정 방향으로 안 튀어서 수비가 너무 어려워진다. 이 외에는 무조건 나쁜 손모양이라는 건 없다. 가끔 보면 한손 블로킹 같은 장면도 나오지 않나? 모양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요즘 배구는 워낙 스피드가 빨라졌고 스킬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하이 볼 상황일 때 빼고는 개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이 볼 블로킹에서는 철저히 세팅된 정답이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하이 볼 상황에서는 사이드 블로커의 위치 선정이 정말 중요하다. 멈춰야 할 위치에서 멈춰서 제자리 점프를 해야 한다. 너무 늦으면 러닝 점프를 해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제자리 점프가 맞다. 또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을 최대한 좁혀서 촘촘한 벽을 세워야 한다. 높은 점프보다 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면 손끝에라도 걸리는 상황이 나오고. 이후 계산된 수비 위치에서 튀는 볼을 잡을 수 있다. 사이드 블로커가 이걸 잘하면 미들블로커들에게 블로킹을 많이 만들어줄 수 있다. 사이드 블로커가 위치를 잘 잡으면 공격수가 도망가다가 미들블로커한테 딱 걸리는 상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치열한 심리전과 두뇌 싸움, 그리고 상황별 플레이
사이드 블로커들과 세터들 사이의 심리전은 중요한 포인트일 것 같다.
물론이다. 세터는 기본적으로 상대 블로커가 까다로운 쪽에서 플레이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걸 이용한 심리전이 중요하다. 나는 상대한테 한 쪽 플레이를 심리적으로 강제하는 프레싱 플레이를 즐긴다. 야구의 수비 시프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직선 코스 백어택을 잘 못 때리는 선수를 상대할 때는 그 선수가 후위일 때 일부러 직선을 텅텅 비워준다. 올릴 수 있으면, 또 때릴 수 있으면 해보라는 식으로 압박을 주는 것이다.
심리전의 일환으로 블록 스위치나 아예 블로킹을 빼는 플레이도 종종 나오는데.
블록 스위치는 주로 사이드에 뜨는 세터를 상대가 모르게 슬쩍 빼주고 반대 사이드의 블로커와 미들블로커가 밀어내기 식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사이드에서 빠지는 세터는 뒤로 돌아나가서 상대적으로 다음을 준비할 여유가 있는 백어택을 견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정석이다. 이게 제대로 이뤄지면 상대는 사이드 블로킹이 낮은 세터 쪽으로 볼을 올렸다가 낭패를 보게 된다. 다만 동선 특성상 상대 리시버가 A-B패스를 띄우면 스위치를 제대로 할 시간을 벌 수 없기 때문에 하이 볼 상황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걸 어느 타이밍에 쓸 것인지가 핵심인데, 세트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써버리는 경우에 종종 효과가 크다. “우린 이런 거 할 거다”라고 상대에게 걱정거리를 하나 던져주는 것이다. 블로킹을 빼는 플레이도 취지가 비슷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한 번 섞어주면 상대에게 의심을 심어줘서 플레이에 대한 확신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의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한 번의 할 가치는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주먹을 쥐는 방식으로 빼는 건 별로인 것 같다. 주먹에 공이 맞으면 너무 멀리 튀어버려서 수비가 안 된다. 그래서 밀어치기를 잘하는 선수들에게 상성이 너무 좋지 않다. 차라리 팔을 완전히 내리거나, 일부러 점프를 낮게 뜨는 쪽이 낮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먼저 1:1 상황에서의 플레이 요령이 궁금하다.
1:1이 진짜 막기 힘든 이유는 상대의 공격 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공격수에게 무조건 유리한 싸움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1:1에서는 최대한 함정을 파는 편이다. 예를 들면 리딩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대각을 막는 척하면서, 순간적으로 직선을 틀어막는 식이다. 혹은 확률적으로 하나를 배제하고 확률 싸움을 건다. 높이에 자신이 있는 선수는 직선-크로스 어느 쪽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제자리 점프를 뜨기 시작해서, 마지막 순간에 코스를 캐치하고 거기로 손을 밀어 넣기도 한다. 다만 이건 높이가 돼야 가능한 플레이다. 러셀, 알렉스, 아가메즈 같은 선수들이 이런 플레이를 잘한다.
중앙에 헬프를 들어갈 때, 속공을 무시하고 파이프만 바라보는 상황은 언제인가.
상대 아포짓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리시브는 잘 올라갔을 때, 1) 상황이 클러치 상황이거나 2) 상대 전위 미들블로커의 공격이 부실하면 무조건 파이프를 저격한다. 이 상황에서는 심지어 쓰리 블록 저격도 볼 수 있다. 보통 아포짓은 2번 자리에서 헬프 블록을 잘 안 들어간다. 상대의 B속공-퀵오픈이 섞여서 나오는 상황에서 동선이 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기가 막히게 잘하는 선수들이 있다. 박철우-막심 같은 선수들이 예시다.
최근에는 연타나 네트 플레이를 적극 활용하는 아기자기한 배구를 하는 팀들도 많아져서, 사이드 블로커들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연타를 의식한 머리싸움은 크게 안 하려고 하는 편이다. 다만 볼이 붙은 상황이라서 상대의 팁 앤 리바운드 플레이가 확정적으로 예상된다면 블로킹을 아예 안 뜬다. 그래야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블로커와 공으로 힘 싸움을 해서 최종 터치아웃을 노리는 플레이는 알아도 막기 힘들다. 그걸 잘하는 선수를 상대할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전광인-이시몬-트레버 클레베노(프랑스) 같은 선수들이 그런 플레이를 잘한다.
안테나와 사이드 블로커 사이 공간을 노리는 선수들을 상대할 때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안테나까지 블로킹을 붙이는 편인지.
그걸 잘하는 선수면 어쩔 수 없이 바짝 붙인다. 혹은 역으로 살짝 비워줬다가 때릴 각일 때 막으러 간다. 심지어 상대가 직선-크로스 이지선다를 잘 쓰는 공격수라면, 이 상황에서 미들블로커는 대놓고 크로스를 막으면서 아예 사이 공간을 일부러 내주는 플레이도 가능은 하다. 다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큰 플레이라서 자주 하지는 않는다.
왼손잡이 공격수를 막을 때는 어려움이 더 클 것 같은데.
그렇다. 패스를 잘라먹는 스피드도 더 빠르고, 크로스 각도도 더 깊다. 그렇다고 크로스를 억지로 잡겠다고 대놓고 들어가면 직선을 비워줘야 한다. 그래서 직선-크로스 이지선다를 잘하는 왼손잡이 공격수를 상대하는 건 그냥 지옥이다. 이걸 V-리그에서 제일 잘한 게 링컨이라고 생각하고, 최근에는 신호진도 이런 플레이를 잘한다.
끝으로 V-리그 역대 최고의 사이드 블로커 세 명을 꼽아달라.
1위는 무조건 오레올이다. 심리전의 대가다. 직선 블로킹이 너무 좋아서 도망가려고 하면 바로 눈치채고 대각으로 따라붙는다. 헬프 블록도 견고하고, 하이 볼 방어도 단단하다. 굳이 약점을 꼽자면 말년에 헬프 이후 사이드 복귀가 좀 느려졌다는 것뿐이다. 나머지 두 자리에는 박철우-후인정을 꼽겠다. 스타일이 좀 달라서 재밌다. 박철우는 블로킹으로 공격을 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압박감이 대단했던 사이드 블로커다. 반면 후인정은 손모양이 진짜 예쁘고 단단해서, 수 싸움을 배제한 클래식한 대결 구도에서는 최고의 사이드 블로커였다고 생각한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KOVO,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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