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특별시’ 천안에 심어진 씨앗에서 새싹이 자라고, 꽃이 만개하며 결실을 맺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천안고 배구부가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19세 이하부 충남 대표로 출전해 창단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처음으로 피운 꽃이기에 더욱 값진 경험이었다. 결실을 맺은 경험으로 이젠 더 많은 꽃을 피우려고 한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뜨거운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천안고 배구부를 만나기 위해 <더스파이크>가 배구특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구특별시
천안에 자리한 배구부
1951년 충청남도 천안에 문을 연 천안고는 2012년 2월 10일에 배구부를 출범했다. 학업과 배구를 병행하며 인성과 실력을 갖춘 배구선수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초대 감독 백승권 지도교사를 중심으로 선수 8명으로 시작했다. 모든 창단 팀들이 그랬듯 어려움은 많았다.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고교배구 무대에서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20년 이전까지 천안고는 전국대회 본선에 진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조금씩 입지를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2020년 춘계중고배구대회에서 오랜만에 8강 진출을 일궈냈다. 한 번 길이 열리자 그 다음은 쉬웠다. 2021년 춘계중고배구대회에서 또 8강에 올라갔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1 정향누리배에선 준결승까지 올라가며 3위, 2022년 대통령배에선 창단 첫 결승에 올라갔다. 그리고 제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선 마침내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3년 천안고는 김종일 감독-라광균 코치 체제로 팀을 이끌어간다. 선수는 3학년 구교식(194cm, OP), 김찬섭(181cm, Li), 김찬중(191m, MB), 박찬근(184cm, OH), 이수민(194cm, MB)이 있다. 2학년에는 구준모(178cm, L), 김관우(195cm, S), 김주원(185cm, OP), 박상현(180cm, L), 박우영(188cm, OP), 배성우(186cm, MB), 임진서(187cm, OH)가 중심을 잡아준다. 올해 신입생 6명이 입학해 총 18명의 선수가 있다. 고작 8명으로 시작했던 2012년과 비교한다면 괄목상대이자 상전벽해다.
눈여겨볼 선수도 여럿 있다. 3학년 이수민과 2학년 김관우는 지난해 한국 U18 남자배구대표팀에 승선해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2022 제14회 아시아유스남자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U18 대회에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4위로 마무리하며 세계선수권 출전 티켓을 따냈다.
3학년 리베로 김찬섭과 2학년 아포짓 박우영도 눈여겨볼 만한 재목이다. 김종일 감독은 “찬섭이는 어디 가도 뒤지지 않는 리베로다. 우리 팀과 대회나 연습 경기를 통해 겨뤄본 상대 팀들은 모두 실력을 인정했다. 우영이는 무릎이 아파서 한동안 뛰지 못하다 7월부터 다시 배구를 시작했다. 전국체전에서 아웃사이드 히터, 아포짓 두 포지션을 겸하면서 엄청 잘해줬다. 몸이 너무 좋은 상태였는데, 수술로 이번 겨울은 쉬게 됐지만, 제일 기대되는 선수다”라고 전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천안고가 흘린 땀방울
2022년 남고부 판도는 예측불허였다. 2021년과 비교했을 땐 모든 것이 180도 달라졌다. 2021년 남고부에선 수성고, 남성고, 속초고와 경북사대부고의 잔치판이었다. 매번 출전하는 대회마다 이들이 4강에 올랐고 우승컵은 항상 수성고가 차지했다.
하지만 2022년은 춘추전국시대 같았다. 우승팀도 달랐다. 수성고와 함께 속초고가 3관왕을 기록했고, 순천제일고가 돌풍의 주역으로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4강에 올라가는 팀은 더욱 다양했다. 송산고, 인하사대부고, 부산동성고, 천안고 등이 많은 이변을 만들며 남자고교 배구대회의 판도를 한층 더 재밌게 만들었다.
천안고가 창단 이후 처음 결승전에 오른 대회는 2022 대통령배였다. 김종일 감독은 “올해는 4강 전력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 출전 대회였던 정향누리배 당시 8강에서 대회를 마무리해 충격을 많이 받았다. 연습을 늘리며 결승에 올라갔지만 상대가 속초고였기에 이긴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갔기에 재밌는 경기를 하는 것에 의의를 뒀다”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천안고는 속초고에게 1-3으로 패했지만 값진 경험을 쌓았다. 이후 제33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에서 또 결승에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강호 수성고를 상대로 한 세트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지만, 제압하긴 역부족이었다. 다시 준우승에 그쳤지만, 미래를 내다봤을 땐 값진 수확이었다.
“CBS배 때는 3학년 선수들이 대학교 원서를 모두 쓴 상황이었기에 1, 2학년을 주축으로 대회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간 것에 매우 만족했고, 전국체전 준비를 열심히 했다. 대학교들과 연습 경기도 많이 치르며 실전 경험을 계속 쌓았다.”
그리고 맞이한 전국체전이었다. 천안고는 8강에서 속초고를 만났다. 대통령배 결승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팀의 전력이 워낙 좋았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은 둥글었다. 속초고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선 부산동성고를 셧아웃으로 제압하며 결승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결승전 상대는 수성고였다. 우승 경험이 많은 수성고를 상대로 천안고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준비한 경기력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김종일 감독은 “우리 아이들도 중학교 때 결승에 자주 올라가고 우승도 많이 했는데, 고등학교 무대에서 쌓은 경험은 수성고가 많은 건 사실이다. 수성고 세터가 3학년 한태준(우리카드)이고 우리 세터는 1학년이었기에 이 부분에서 배우고 경험을 쌓자고 생각했다. 또 4강에 올라가는 목표를 달성했기에 경기 때도 아이들에게 크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보통 때는 다혈질이라 화를 많이 냈는데, 그날은 그냥 묵묵히 지켜봤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몸 상태가 너무 좋았다. 경기 흐름을 잘 탔고, 12명 엔트리가 제한된 상황 속에서 모든 선수가 잘해줬다. 원포인트 서버로 들어간 선수가 서브 득점을 내주고, 어려운 공이 올라가더라도 해결해주더라. 덕분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복기했다.
그렇게 천안고는 한 해의 마지막 대회, 가장 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천안고 출신 프로선수 배출까지
노력은 계속된다
결실을 보기까지 학교에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설은 어느 학교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배구 훈련을 하기에 충분한 높이의 체육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크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기에 교내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큰 이점도 가지고 있다.
또한 배구특별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연고지답게 지역 연계도 가능하다. 부영초-쌍용중-천안고까지 천안지역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단계를 밟아갈 수 있다. 충남으로 넓히면 중부대까지 연결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지역연계가 가능한 천안에는 프로배구단 현대캐피탈이 연고지로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있다. 지역 배구 꿈나무들에게는 사실상의 큰집이다. 어린 선수들은 V-리그 시즌에 유관순체육관을 찾아 프로팀의 경기를 보면서 견문을 넓히는 혜택도 누린다.
천안고와 현대캐피탈의 인연도 각별하다. 현대캐피탈은 천안고가 창단하던 2012년 창단식에 함께하며 유소년 배구 발전 기금으로 1천만원을 줬고 멘토 프로그램도 지원했다. 현대캐피탈의 지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태웅 감독은 2022년, 천안고와 자신의 모교인 인하사대부고에 ‘최태웅 배구상’으로 2천만원씩 전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시즌에는 현대캐피탈의 훈련장으로 천안고 선수들을 초청해 합동훈련도 했다. 김 감독은 “훈련장(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까지 편안하게 오라고 구단에서 선수단 버스를 선뜻 빌려주셨다. 아이들도 프로 선수들이 직접 타는 버스를 이용하고 구단의 전용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면서 많은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었다”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제는 천안고는 최초의 프로배구선수 배출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아직까지 천안고 졸업생 가운데 프로에 입성한 선수는 없지만, 꿈을 이루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은 많다. 김 감독은 “올해 졸업생 중에 윤준호라는 선수가 있다. 우리 팀에 있는 동안 주장 역할뿐만 아니라 에이스 역할을 해줬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본인이 꼭 천안고 출신 프로선수라는 꿈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 꼭 이뤄서 우리 학교를 빛내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 꿈을 응원한다.
글_김하림 기자
사진_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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