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서 서브는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반대로 그만큼 범실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지난 시즌 6승에 그쳤던 삼성의 필살기가 바로 서브다. 지난 2020-2021시즌 V-리그 남자부서 최하위(6승30패)에 머물렀던 삼성화재는 2021-2022시즌을 앞두고 ‘강서브’를 장착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일단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다른 팀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화재지만 강서브를 앞세워 상대의 리시브 라인을 무너뜨리고 있다. 실제로 ‘디펜딩 챔피언’ 대한항공과 올해 4차례 맞대결에서 2승2패로 팽팽하게 맞섰는데, 삼성화재는 4경기에서 승점 7점을 따냈다. 반면 대한항공은 삼성화재를 상대로 5점 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공격의 시작은 서브
선수 구성부터 준비된 전략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이 새 외국인 선수로 러셀을 낙점한 것은 그가 지난 시즌 보여줬던 강력한 서브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셀은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2020-2021시즌 36경기 연속 서브에이스 신기록을 세우며 서브 부문 1위에 올랐다.
전술적으로 플로터 서브를 때리는 팀들이 있는데 반해, 삼성화재는 이례적으로 선수 전원이 강서브를 구사한다.
고 감독은 “러셀을 중심으로 신장호, 정성규, 황경민 등 모두가 강서브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라며 “미들블로커인 안우재가 부상으로 올해 스파이크 서브를 못하는 것이 아쉽다. 부상만 없었다면 선수 전원이 스파이크 서브를 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희진 감독의 이론은 명확하다. 강서브에서 모든 공격이 시작된다는 것. 배구 지도자들이 항상 이야기 하는 ‘서브와 서브 리시브’에서 출발점인 서브로 상대를 흔들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고 감독은 “예전에는 서브가 약했지만 최근에는 공인구도 바뀌었고, 선수들의 서브 능력은 좋아졌다. 반면에 각 팀들마다 리시브 능력이 떨어졌다. 서브부터 공격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강하게 몰아붙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9일 기준 7위(12승15패, 승점 36)에 자리한 삼성화재는 팀 서브는 2위(세트당 1.56개)에 올라있다. 서브 1위인 KB손해보험(세트당 1.63개)에 이어 가장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는 팀인 셈이다.
서브가 가장 약한 현대캐피탈이 세트당 0.70개의 서브에이스를 기록한 것만 봐도 삼성화재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서브를 때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콧수염 사나이가 이끄는 강서브
NO FEAR!
일부 팀의 경우 강서브를 구사하면 범실이 많아질 것을 우려해 맞춰 때리는 경우가 많다. 스파이크 서브는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많은 범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삼성화재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는 러셀의 서브다. 러셀의 서브가 한 번 들어가기 시작하면 상대는 알고도 막을 수 없다. 연속 점수와 함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삼성화재의 흐름으로 넘어간다.
지난 시즌 (한국전력 소속으로) 전 경기에서 서브득점을 기록했던 러셀은 “사실 매 경기 서브에이스를 올렸다는 것을 시즌 말미에 다른 선수를 통해 들었다”며 “기록에 개의치 않고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집중력 있게 서브를 넣었던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러셀은 자신만의 서브루틴이 있다. 다소 복잡하지만 항상 같은 위치에 공을 놓고 같은 동작을 통해 서브를 넣는다. 그는 공을 잡은 다음 엔드라인에서 3번 튕기고 7발자국 뒤인 서브 자리로 이동한다. 이후 다시 7번 공을 튕기고 공에 스핀을 준 다음 공을 타깃 지점을 향해 두고 깊은 숨을 한 번 쉬고, 토스를 한 뒤 스파이크 서브를 날린다.
러셀 서브의 비결은 ‘구질’에 있다. 일반적으로 러셀과 같은 오른손잡이 선수의 경우 리시브를 받는 입장에서 통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이 휘는 것과 달리 러셀의 서브는 막판에 다시 왼쪽으로 공이 휜다.
야구로 치면 싱커와 비슷한 궤적이다. 러셀의 경우 공을 때릴 때 손을 바깥쪽으로 트는 습관이 있는데 덕분에 서브 구질을 더럽게(?) 만들 수 있었다. 정확성 면에서 떨어질 수 있지만 덕분에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서브를 날릴 수 있게 됐다.
회전을 많이 주기보다 공을 밀어치기 때문에 공이 떨어지는 낙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상대 리시버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궤적에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러셀은 “처음 서브를 배울 때부터 더러운 구질로 서브를 때리라고 배웠던 것이 강서브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무조건 강서브다, 맞춰 때리지 말라”
비결은 5번과 6번 사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삼성화재는 전략적인 플로터 서브보다는 강한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희진 감독은 “야구에서도 젊은 선수들에게 변화구보다는 직구를 먼저 던지게 하는 것처럼, 우리 팀도 마찬가지다. 신장호, 정성규, 김우진 등 힘을 써야 하는 젊은 선수들에게는 어설픈 컨트롤보다는 우직한 강서브를 주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성규는 “맞춰 때리면 감독님께 혼난다”며 “가장 자신있는 코스인 5번과 6번을 향해 최대한 강하게 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상적인 것은 올 시즌 삼성화재 선수들이 구사하는 서브의 코스다. 이번 시즌 80% 이상의 서브를 5번과 6번 위치에 때렸다. 반면 상대 코트를 봤을 때 왼쪽 측면으로 향한 서브는 18.1%에 그쳤다.
서브득점 지점만 봐도 대부분의 공들이 5번과 6번 자리에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고 감독의 지시에 따른 전략이었다.
고희진 감독은 “일단 상대 리베로를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에는 5번 자리를 공략한다. 중점적으로 5번과 6번 사이로 때리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팀의 경우 1번 자리로 짧게 서브를 때려 아포짓 스파이커의 공격을 최대한 방해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삼성화재는 이런 것보다는 상 남자와 같은 ‘닥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고 감독은 “예를 들어 케이타(KB손해보험)나 레오(OK금융그룹)가 있는 팀을 상대할 때면 범실을 하더라도 강타를 때리라고 지시한다”면서 “외인의 점유율이 높은 상황에서 맞춰 때려주면 오히려 상대 외국인 선수의 기만 살려주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삼성화재가 좋은 서브를 넣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일 훈련을 마무리하기 전 1시간 전부터 모든 선수들은 집중력으로 서브와 리시브 등에 매진한다. 야간에도 대부분의 훈련 시간에서 할애하는 것이 서브다. 스피드건으로 속도를 재고, 실제 경기와 같은 서브로 코스를 노리는 것을 연습한다.
정성규는 “훈련 시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서브와 리시브”라며 “개인적으로 코스 공략과 함께 공을 정확하게 던지는 것을 많이 연습한다. 공을 잘 던져야 원하는 서브를 넣을 수 있다”고 전했다.
고 감독은 “배구는 팀 스포츠지만 서브만큼은 자신의 개인기에 따라 갈린다. 얼마나 스스로 노력하는 지에 따라 좋은 결과가 따라올 수 있는 것도 서브”라고 덧붙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강서브를 장착한 삼성화재가 올 시즌 어떠한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지 팬들의 이목이 모아진다.
글. 이재상 뉴스1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한국배구연맹 DB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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