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에서 프로 선수로 성장, 그리고 결실 이순열 위원 X 현대건설 서가은 [김하림의 배구는 사랑을 싣고]

김하림 기자 / 기사승인 : 2022-11-30 16: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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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2022-2023 한국배구연맹(이하 KOVO) 여자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특별한 이력을 가진 선수가 뽑혔다. KOVO가 한국 프로배구의 미래와 저변확대를 위해 만들었던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처음 배구공을 잡았던 어린 아이가 프로선수로 지명받는 최초의 사례였다. 주인공은 2라운드 2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게 된 서가은이다. 그를 처음 발견하고 육성해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준 고마운 사람은 이순열 KOVO 유소년 육성위원회위원이다. <더스파이크>가 두 사람을 만났다. 이젠 사제지간뿐만 아니라 배구 선후배 사이로 한 단계 더 끈끈해진 관계가 만들어졌다.

 

10년 만에 발굴한
유소년 배구교실 출신 V-리거


현대건설 서가은은 그동안 유망주로 평가 받았다. 큰 키에서 내리 꽂는 묵직한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저학년 때부터 전주근영여고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힘 있는 스윙을 비롯해 강한 서브를 장점으로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리시브와 수비에서 한 층 더 성장한 면모를 보여줬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올해는 주장 역할도 맡으며 한 층 더 책임감도 가지게 됐다.

이순열 유소년 육성위원회위원은 실업배구 시절 한국도로공사와 효성그룹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1 리그의 모데나에서 3년간 활약하면서 해외 무대도 경험했다. KOVO 유소년 배구교실이 만들어 진 이후 강사로 활약하다 현재는 유소년 육성위원회위원으로 강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많은 돈과 열정, 희마잉 투입된 유소년 배구교실이 마침내 처음으로 결실을 맺었다.
서가은은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처음 배구를 시작해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발탁된 최초의 프로 선수가 됐다. 그는 2014년, 유소년 배구교실 3기 참여 학생이다. 당시 서울 신구초등학교에 파견됐던 이순열 위원에 의해 처음 배구공을 잡았다. 가능성을 인정받은 서가은은 이후 엘리트 배구부가 있는 추계초로 전학가면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밟게 됐다.

<더스파이크>와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는 서가은은 “안녕하세요, 현대건설 아웃사이드 히터 서가은입니다”라며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프로에 오게 되어 너무 기쁘다. 뽑혀서 좋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소감까지 덧붙였다.
이미 프로 팀에 합류해 직업 선수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서가은은 “고등학교 때보다 훈련량이 많다. 언니들이 배구를 하는 걸 보니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하루 빨리 더 프로에 적응해서 경기에 뛸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소망했다.
 


서가은은 그야말로 우연히 배구를 만났다. 초등학교 때 쌍둥이 동생 덕분에 시작한 배구였다. 쌍둥이 동생이 먼저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배구를 접했다. 어느날 서가은은 동생을 기다리기 위해 체육관에 남아 있었다. 그는 “유소년 배구교실에 동생이 먼저 뽑혔다. 함께 집에 가려고 동생을 기다리며 체육관 문 주위에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한테 '배구 안하고 뭐하고 있냐'고 물어보셔서 '내가 쌍둥이 언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기다리는 참에 함께 배구 해볼래?'라고 권유해 주셔서 그때부터 배구를 하게 됐다”고 당시의 일화를 들려줬다. 먼저 배구를 시작했던 쌍둥이 동생은 나중에 배구를 그만두고 골프로 전향했다. “항상 같이 하다 떨어지게 되어 슬프지 않았냐”는 질문에,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러지 않았다”라고 웃었다.

유소년 배구교실이 끝난 이후에도 이순열 위원과 서가은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이 위원이 아마추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처음 배구의 길로 인도했던 선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줄곧 지켜봤다. 서가은은 “선생님이 나와 관련된 기사나 대회 영상을 보게 되면 연락을 주셨다. 최근에는 드래프트 이후에 '너무 축하하고, 프로에 들어가서 잘 버틸 일만 남았다'고 연락주셨다”라며 두 사람의 끈끈한 인연을 설명했다.

이순열 위원은 자신이 처음 지도한 어린 아이가 프로 무대로 밟게 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그는 “정말 뿌듯하다”며 서가은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은이가 수비형 아웃사이드 히터다. 수비를 잘한다면 충분히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여러 방면으로 잘 활용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젠 프로에 잘 적응하고 오래오래 배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서가은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유소년 배구교실 출신 선수는 대학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양대 박상우(1학년, S, 193cm) 역시 이 위원이 발국 육성해낸 선수다. 그는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있었던 좀처럼 믿기 힘든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상우가 3학년 때 처음 봤다. 배구를 시키려고 운동화랑 아대를 선물하면서 배구교실로 꼬셨다(웃음). 한 번도 배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회 분위기를 알려주기 위해 상우를 대회에 데리고 갔다. 우리가 18대 2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 상우를 투입 시켜봤다. 그런데 서브를 곧 잘 때리더니 점수 차를 뒤집었고, 우리가 우승을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놀라운 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날 경기 때문에 새로운 룰이 하나 생겼다. 아직 선수들의 기량이 여물지 않은 유소년배구에서는 아무래도 서브로 승부게 쉽게 나다 보니 한 명의 선수가 서브로 3점 이상 득점하면 다른 선수가 서브를 넣도록 경기 룰을 바꿨다. 이를 ‘박상우 법’이라고 부른다”면서 웃으며 얘기했다. 

 


KOVO 유소년 배구교실
“저변 확대 위한 발판이 됐으면 좋겠어요”


KOVO 유소년 배구교실은 2012년에 출발을 알렸다. 대한민국 배구저변 확대를 목적으로 유소년 배구교실 대상 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들과 MOU 체결을 맺고 스포츠 클럽 중심의 배구지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함께 전국 단위의 배구대회와 국제교류전을 열어 유소년 배구교실 수업에 참가한 아이들이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무대도 제공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구에 재능이 있고 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유소년들은 정식 배구 선수로 나갈 방향을 알려주고 한국배구의 좋은 자산으로 성장하도록 꾸준히 지원하고 인도하고 있다.

유소년 배구교실은 ‘배구 수업을 통한 인성교육 실시(팀워크, 사회성, 소통과 헌신 정신)’, ‘배구 수업을 통한 어린이들의 체력증진 및 건강한 신체 성장 도모’, ‘구단 연고지역 어린이, 학부모, 학교 관계자 등 배구 팬 확보’, ‘배구 영재 조기 발굴 및 육성’, ‘배구인 및 은퇴 배구 선수들의 일자리 창출 기여’라는 다섯 개의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다.

지난해 유소년 배구교실은 프로구단의 연고지 뿐만 아니라 비연고 지역까지 포함해 46개 학교에서 진행됐다. 정규 수업이나, 방과후 수업에 유소년 배구교실이 편성되어 운영됐다. 무려 9000여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42명의 엘리트 선수를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올해도 같은 규모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유망주를 찾고 있다.

이순열 위원은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잘하는 선수를 발굴해서 엘리트 체육으로 보내준다. 이 일이 엄청 재미있다(웃음). 농부들이 봄에 씨를 뿌리고 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싹이 나오듯이, 우리도 겨울 대회 때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한 두 명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유소년 배구교실이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진행된다. 여름에는 아직 어린 아이들의 기량이 미흡해서 서브로만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서툰 배구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겨울에는 이 아이들이 기량을 익혀서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져 나온다.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걸 보면 지도자들이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고학년보다는 저학년을 가르치는 재미도 있다. 저학년들은 하나에 울고 웃는 게 크다. 고학년들은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 말을 잘 안 듣는다(웃음).”라고 덧붙였다.

“어떤 지도자가 나한테 ‘정말 이게 발판이 되어 배구 저변 확대가 되는 걸 보면서 힘이 생겨요’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서가은 처럼 프로선수도 나왔고요. 유소년 배구교실 지도자들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에요. 자신이 가르친 선수들 중에 한 명이라도 더 엘리트 선수로 가는 걸 원해요. 더욱 더 발 벗고 나서서 가르치는 지도자들도 많고요. 오전에 가르치고 정규 수업 끝난 뒤 방과후에도 할 만큼 열심히 해요.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박수 쳐주고 싶고 밥이라도 챙겨주고 싶어요.”

현재 이 위원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 역할에서는 은퇴한 뒤 유소년 육성위원회 위원으로 지도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꾸준히 유소년 배구교실을 진행하는 학교를 찾아가서 배구수업 현장을 지켜본다. “지도자를 구역으로 나눠서 관리하는 위원을 맡고 있다. 아이들 수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피드백도 한다. 수업 내용이 미비하면 상의를 해도 지도자한테 요구하는 것을 전달도 한다. 시스템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어느 날은 의정부에 있는 학교에 갔더니 교장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 한 달에 한 번에서 두 번을 가는데, 정말 자주 오는 거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다른 종목도 이런 수업을 하고 있는데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선수부터 지도자 관리까지 잘 안돼서 없애 버렸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한국배구연맹이 너무 부럽다고 하셨다.”

이 위원에 따르면 유소년 배구교실에 들어오려고 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항상 정원 초과가 되는데, 많은 경우는 40명이 지원하는 적도 있다고 했다. 배구교실에 들어오기 위해선 여러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면서 선수선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서브, 공격 등 여러 동작을 테스트 해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15명으로 지원자를 추린다. 그러지 않으면 함께 하는 배구수업을 버틸 수 없다. 만일 정원 안에는 못 들어갔는데 가능성이 보이거나 계속 배구를 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엘리트 배구를 소개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2022-2023 KOVO 여자부 신인선수 드래프트 당시 1라운드 1순위로 뽑힌 염어르헝 뿐만 아니라 서가은 역시 언론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서가은은 KOVO 유소년배구교실 출신 V-리거라는 타이틀을 얻자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후 최초라는 단어에 자부심을 가지게 됐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프로에서도 잘하는 선수로 인정받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아쉽게도 서가은은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유소년 배구교실을 접했기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추억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를 지도했던 이순열 위원은 아니었다. 그는 “가은이랑 같이 다녀온 대회가 생각난다. 대회에서 결승전까지 갔는데, 아쉽게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졌다는 것에 분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웃음)”며 당시의 일화를 들려줬다.

서가은의 롤모델은 KGC인삼공사 이소영이다. 중앙여중에서 엘리트 선수로 활동할 때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지는 GS칼텍스의 경기 때마다 마퍼로 참가해 이소영의 경기를 처음 봤다고 털어놓았다. 서가은은 “GS칼텍스 홈 경기를 보는데 소영 언니를 보면서 너무 잘한다고 느꼈다. 아웃사이드 히터 중에서 최고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꼭 소영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라고 이유를 전했다.

이제는 멀리서만 바라봤던 우상같은 선수 이소영과 네트를 사이에 두고 프로 무대에서 뛰게 된다. 서가은은 “소영 언니랑 마주 보고 경기를 뛰게 된다면 설레면서도 기쁠 것 같다. 그 코트 위에서 좋은 활약 보여주고 싶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순열 위원 역시 제자가 프로에서 활약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프로 경기장에도 자주 간다. 현대건설 경기가 있을 때 가은이가 코트에서 뛰게 된다면 기쁘면서도 울컥할 것 같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서가은은 끝으로 “선생님, 제가 배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시고 항상 연락도 자주 해주시고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프로에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라고 짧은 인사를 남겼다.

 

 

글. 김하림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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