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의 어린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소년이 있다. 소년의 꿈은 이시카와 유키처럼 세계적인 아웃사이드 히터가 되는 것이다. 든든한 가족이자 배구계의 선배인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의 용감한 선택을 믿어주고 지지해줬다. 그렇게 일본의 고교 배구부에 입단한 소년은 롤모델 이시카와의 등번호 14번을 자신의 유니폼에 새긴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모모야마고 1학년 윤이준과 그의 아버지 우리카드 윤세운 코치의 이야기다.
안녕하세요! 두 분 모두 <더스파이크>와는 첫 만남입니다. 다행히 일정이 맞아 떨어져 한국에서 뵐 수 있게 됐네요. 먼저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윤이준(이하 이준) 안녕하세요, 일본 모모야마고등학교에서 배구하고 있는 1학년 윤이준이라고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고, 연현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모모야마고에 입학하게 됐어요.
윤세운(이하 세운) 안녕하세요, 이준이의 아버지이자 우리카드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윤세운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은 예상 못했는데, 이준이와 함께 만드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웃음).
먼저 이준 선수는 어떻게 일본행을 결정하게 됐고, 코치님께서는 어떻게 일본으로 아들을 보낼 방법을 찾으셨는지가 궁금해요.
이준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배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 배구와 이시카와 유키의 플레이를 접하게 됐어요. 그들의 플레이와 스피드에 관심이 커졌고, 일본에 가서 직접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에게 일본에서 배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세운 이준이의 말을 듣고 일본 쪽 트레이너에게 조언을 구했었는데, 쉽지는 않겠지만 스포츠 수시라는 제도를 활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준이와 함께 일본행을 준비했죠. 일본어와 영어 공부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지금 이준이가 다니고 있는 모모야마고는 124년 된 학교인데, 한국 사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학교였어요. 중국이나 미국 유학생들에게만 적용되던 제도를 이용해서 입학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일본에서 배구 유학을 하는 케이스는 사실상 이준이가 처음이라고 보시면 돼요.
일본의 많은 고교 중에서도 모모야마고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세운 원래 이준이는 세이후고에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트레이너 분이 모모야마고를 추천해주셨고, 이후에는 당시 모모야마고에 계셨던 재일교포 이철수 코치님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이준이가 테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세이후고와 모모야마고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됐고, 최종 결정은 모모야마고였습니다. 이철수 코치님이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도와주셨어요. 거의 에이전트 역할을 해주셨을 정도로요. 이준이가 입학한 뒤에는 뵙지 못했는데, 안타깝게도 맹장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철수 코치님이 없었다면 절대 모모야마고에 입학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타국에서 생활하고 배구를 배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이준 선수는 어떤 고충이 있었고, 코치님은 어떤 걱정이 있으셨나요.
이준 우선 혼자 배구를 하는 부분이 좀 어렵긴 해요. 옆에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저 말고는 일본에서 배구를 하고 있는 친구나 동료도 없으니까요. 당연히 언어 문제도 있었죠. 또 일본에는 학교 시험에서 40점 미만의 점수가 나오면 훈련이나 경기 참여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어서, 학업에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해요. 배구 내적으로는 일본 배구 특유의 빠른 템포에 적응하는 데 조금 애를 먹었고요. 그래도 동기나 선배들이 잘 다가와주고 도와줘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세운 한 번도 이준이랑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어서, 혼자 일본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걱정이었어요. 잘 자고, 잘 먹는 생활이 중요한데 그걸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6개월을 보내보니 실제로 걱정했던 것들을 모두 경험했죠(웃음). 하지만 그걸 잘 이겨내고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씩 느끼고 익혀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학업 문제의 경우 일본에는 스포츠부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자율훈련 시간을 보장해주면서 학업 참여를 유도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만 이준이는 일본어를 쓰는 자체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동급생들과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하죠. 그래도 본인의 의지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고교 배구는 대회나 리그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이준 일본에는 남자배구 팀이 총 2580개가 있어요. 그 중에서 제가 있는 오사카에는 157개가 있고요. 리그는 1-2-3부로 나뉘는데, 1부에만 40개의 팀이 있어요. 또 지역 대회도 있고, 고등 대항전도 있어요. 이런 대회들은 하루코(봄고)와 인터하이라는 큰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대회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인터하이에는 오사카 157개 팀 중 한 팀만 나갈 수 있고, 하루코에는 두 팀만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 못 가는 팀들도 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대회들도 많이 열립니다. 대회가 쉬지 않고 계속 열리는 거죠.
현지에서 직접 느낀 일본 배구와 한국 배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훈련·지도 방식과 경기 내적인 내용 모두 궁금합니다.
이준 일본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공을 때리는 훈련의 비중이 높아요. 선생님들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옆에서 조언해주는 편이고요. 경기의 모든 과정을 선수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경기 내적으로는 역시 스피드가 돋보여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패스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정신없는 배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이게 한국과 일본의 근본적인 실력이나 재능의 차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한국에도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없지 않거든요. 플레이스타일의 차이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아요.
일본에서 대학까지 진학하고 싶은 의향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일본행을 결정한 것이 본인에게 득이 된다고 느끼고 있는지, 또 향후 진로는 어떻게 계획 중인지도 궁금해요.
이준 한국에서 배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일본에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요. 저는 도움이 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도쿄에 있는 추우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거기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다양한 해외 리그에서 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탈리아 리그에서 꼭 뛰어보고 싶어요!
코치님은 이준 선수가 일본에서 배구를 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아졌다고 느끼시나요?
세운 20년 넘게 선수들을 봐오면서 느낀 것은 선수들이 몸을 어떻게 쓰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죠. 이준이는 그런 부분에서 봤을 때 속도도 빨라졌고, 상황 판단도 좋아졌습니다. 점프도 좋아졌고, 또 점프만큼 중요한 것이 좋은 착지인데 그 부분에서도 좋아진 것을 느꼈어요.
코치님은 이준 선수의 아버지임과 동시에 배구계의 선배이기도 합니다. 주로 어떤 조언을 해주시는지, 또 어떤 이야기들은 하고 싶어도 참으시는지가 궁금해요.
세운 열정-겸손-성실의 3박자를 갖춘 선수가 돼야 한다,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요. 또 자존감을 잃지 말고 몸을 잘 만들면서 뻔뻔(fun fun)하게 배구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대신 이준이를 가르쳐주시는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엄연히 따로 계시니 내가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터치하지 말자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그 대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면서 자존감을 지켜주려고 합니다.
이준 실제로 일본에 있으면서 슬럼프가 온 적도 있고 멘탈이 무너진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연락해주셔서 많은 힘을 주셨어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내일은 뭘 할지 생각하고 또 힘을 내요.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는 것 말고도 이준 선수가 배구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이준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배구선수들을 많이 봐왔어요. 그 선수들을 잘 따라가면서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 롤모델인 이시카와가 동양 선수들도 충분히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저도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동반자이자 배구계 선후배인 두 분이 서로에게 한 마디씩 남기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이준 선수가 코치님에게 먼저 한마디 해볼까요?
이준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형처럼 친근하면서도 엄격하게 저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셨어요. 언제나 저를 응원해주시고 함께 몸을 만들어주신 그 시간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져요. 더 열심히 해서 그에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세운 지금처럼만 해주면 될 것 같아요. 이준이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고 또 잘 버텨주고 있어요. 그래도 저에게까지는 미처 보이지 않는 어려움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운동을 배우는 자세가 정말 좋은 선수니까 앞으로도 잘 버티면서 나아가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함께 많은 이야기 나누면서 잘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글_김희수 기자
사진_김희수 기자, 윤세운-윤이준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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