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그리고 최고' 김재헌이 말하는 전력분석관

송현일 기자 / 기사승인 : 2025-08-05 16: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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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일에 정말 미쳐 있었다.”

 

OK저축은행 수석코치 김재헌은 국내 최초의 전력분석관이다.

 

지금도 여전히 최고의 전력분석 전문가로 불린다.

 

그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배구의 흐름을 읽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며, 숫자와 영상 이면에 숨은 맥락을 찾아내는 사람.

 

그리고 때론 작전을 설계하는 ‘전략가’다.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력분석관’이라는 직업에 한 번쯤 궁금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김재헌 코치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답을 따라가본다.

 

 

국내 1호 전력분석관은 이렇게 탄생했다

 

전력분석관 1세대다.

삼성화재 시절, 상무에서 복귀하자마자 신치용 선생님께 제안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전력분석관이라는 직업이 필요하니 한번 공부해볼 생각 없느냐는 말씀이었다. 그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국내에는 전력분석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기회로 느껴졌던 것 같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시절 삼성화재 왕조는 선수 구성상 내가 뛰기 쉽지 않았다. 선수로서 더는 어렵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신치용 선생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다.

 

새로운 길을 걷는 데 두려움은 없었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그저 재미있었고, 정말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한 번은 일본의 전력분석관이 나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일주일 내내 그를 한숨도 못 자게 했다(웃음). 잘 시간에도 분석실에 이불을 깔아주고, 궁금한 게 생기면 깨워서 물어봤다. 새벽 4~5시까지 반복했다. 그때는 정말 햇빛도 보지 않고 살았다.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무작정 공부했다. 예전 나는 소위 말하는 컴맹이었다. MP3에 음악 넣는 것도 못 했다. 프로그램은 영어였고, 아까 말한 일본 전력분석관이 떠난 후엔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래서 해킹하듯 폴더 하나하나를 열어보며 공부했다.

 

직업 만족도가 높아 보인다.

보는 그대로다. 만족도가 높다. 결국 직업은 자신의 성향과 맞아야 한다. 전력분석관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직업이다. 스스로 연구도 많이 해야 하고,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성장할 수 있다. 물론 1세대로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도 많았다(웃음). 삼성화재 시절에는 우승도 많이 경험했고, 대표팀에도 다녀왔다.

 

주변에서 들리는 무용담이 많다.

글쎄(웃음). 분석을 통해 예측한 장면이 실제 경기에서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자주 있다. 그게 결국 우리 일이니까. 하지만 굳이 사례를 들며 자랑하고 싶지는 않다. 가끔 팀의 결정적인 득점이 전력분석관 덕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직업의식이 있는 전력분석관이라면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선 안 된다. 늘 냉정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능력을 인정받는 시기가 온다. 그래서 결국 나는 들려줄 무용담이 없다(웃음).

 

전력분석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수석코치까지 올랐다.

팀에서 전력분석관에게 맡기는 역할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다. 나는 수석코치이기에 팀에서 많은 권한을 부여받는다. 전력분석관 시절에는 자기 역할만 충실히 수행했다면, 지금은 단순히 확률을 계산하는 단계를 넘어 경기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분석은 결국 확률을 구하는 일이고, 그 확률을 바탕으로 작전을 짜는 건 감독과 코치의 몫이다. 수석코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코치의 역할도 함께 맡게 됐다. 또 일반적인 전력분석관과는 달리, 수석코치는 벤치에 앉아 있어 선수단과의 소통도 훨씬 빠르고 직접적이다.

 

그 자리에 앉기까지 여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전력분석관이라는 직업을 떠나, 나는 한 팀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삼성화재에서 12년, 우리카드에서 8년을 있었다. 오랜 시간 한 조직에 있었다는 건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증거라고 자부한다. 지금도 지나온 팀들에 큰 애착이 있다.

 

신영철 감독과 1년 만에 재회했다.

신영철 감독님이 OK저축은행으로 오신 것과 내가 합류한 것은 별개의 일이다. OK저축은행의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다. 무엇보다 이 팀에서 내가 추구하는 배구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물론, 신영철 감독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웃음). 개인적으로도 많이 의지하고 있다. 생각이 다를 때도 있지만, 오히려 상호 보완이 잘 된다. 감독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는 서로를 100% 신뢰한다.

 

새 팀의 분위기는 어떤가.

우선 재밌을 것 같다. 환경이 좋고, 선수 구성과 훈련 시스템도 탄탄하다. 빨리 시즌이 시작되길 기대하고 있다.

 

다가올 시즌은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지.

기대만큼 걱정도 크다. 전반적으로 경험 많고 배구를 잘하는 선수들이지만, 그만큼 모두 나이가 있고 부상 위험도 크다. 결국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좋은 전력분석관이 되고 싶다면

“숫자 이면의 정보를 파고들라”

 

전력분석관의 업무 전반은?

큰 틀에서 팀의 전략 파트를 도맡는다. 시즌 중에는 경기 전에 상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팀 전략을 기획해 경기를 준비하고, 경기 후에는 잘된 점과 부족했던 부분을 브리핑하며 훈련을 통해 보완 방안을 찾는다. 이 작업은 시즌 내내 반복된다. 시즌이 끝나면 선수 연봉 평가를 위한 자료도 만든다. FA, 트레이드, 트라이아웃, 신인 드래프트 등 선수 선발 과정에도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비시즌에는 훈련을 전부 영상화하고 데이터화해 선수 동작을 분석한다.

 

전력분석관의 역할과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역할이 커졌다기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요즘은 어느 팀이든 전력분석관은 필수다. 경험 많은 신영철 감독님이 나를 수석코치로 기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데이터는 말 그대로 ‘사실’이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다. 영상을 함께 정리하기 때문에 구두 설명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데이터는 쌓일수록 가치가 커진다. 전력분석관은 팀의 전반적인 데이터뿐 아니라 훈련 방향과 경기 전략까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위치다. 예를 들어, 감독님이 코칭을 하시면 나는 그 내용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데이터와 영상을 선수들에게 보여준다. 같은 기술이나 전술도, 그렇게 하면 선수들이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전력분석관의 직업 전망은?

스포츠 분석은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축구에는 AI 기반의 분석 회사도 많다. ‘데이터 발리’는 전 세계 배구 분석 프로그램 시장에서 90%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이 안에서 파생된 것들도 많다. 하지만 파생되더라도 그 뿌리와 틀은 같다. 최근엔 AI가 전력분석관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논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어렵다고 본다. 이 일은 단순히 숫자 계산에 그치지 않는다.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가 핵심이다. AI가 편의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아직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긴 어렵다. AI로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전력분석관 역시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후배 양성에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KUSF(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에서 강의할 당시 하루 9시간씩 후배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웃음). 예전엔 나도 그랬지만, 일부 전력분석관들이 자기 지식을 너무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정보를 독점하기보다는 나누며 의견을 교류할 때 오히려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열어갔으면 한다.

 

요즘도 전력분석을 따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나?

사실상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는 현역 전력분석관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정도다. 학원이나 협회 같은 공식 교육 기관이 없다 보니 전력분석관들과의 직접적인 연결이 없으면 배우기 어렵다. 그리고 배울 때도 ‘잘’ 배워야 한다. 전력분석은 단순 타이핑이 아니라 전략 기획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고급 단계로 갈수록 큰 차이를 만든다. 같은 프로그램을 써도 사용자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는 이유다. 요즘 전력분석관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환경만 된다면 전부 다 알려주고 싶다. 아직은 가르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서 아쉽다. 연맹이나 협회 차원에서 강의나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언제든 후배들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전력분석관의 구체적인 입직 경로가 궁금하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바늘구멍이다. 처음부터 배울 수 있는 구조조차 없다. 현재 전력분석관 생태계는 대부분 내부 이동이나 수평 이동으로 유지된다. 경쟁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데, 그게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은 대부분 소개로 채용된다. 전력분석관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을 추천하는 식이다. 나는 웬만하면 주변 추천에 의존하지 않고, 팀과 잘 맞는 사람을 직접 키우는 편이다. 팀 내 스태프나 코치 중 관찰하며 전력분석 업무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제자로 삼는다. 지금 우리 팀 전력분석관도 그렇게 시작했다.

 

선수 출신이 유리한가?

확실히 초반엔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배구를 이해하고 있는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선수 출신도 강점이 있다. 전력분석은 분석 외에도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툴을 활용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핵심인데, 오히려 이 부분은 비선수 출신이 강한 경우가 많다. 우리 팀에도 비선출 전력분석관이 있는데, 대표팀 매니저 경험도 있고 영어도 잘한다. 기본기를 갖추고 자기 무기를 더하니 성장 속도가 빠르다. 비선출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선수 출신 유무에 따라 조언을 덧붙인다면?

선수 출신은 컴퓨터나 프로그램 활용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 비선수 출신 후배들은 배구를 전문적인 시각에서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팬이 아닌 분석가의 눈으로, 왜 저 선수가 저런 동작을 했는지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비선출 중에는 룰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디지털 능력이 뛰어나 발전 가능성은 크다. 이미 업계에도 비선출 전력분석관들이 활약 중이다.

 

전력분석관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끝없이 연구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일에 정말 미쳐 있었다. 그때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같은 현직이라도 데이터 수집, 해석, 활용 방식은 제각각이다. 좋은 전력분석관이 되기 위해선 작은 것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분석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길 바란다. 마치 등산처럼. 전력분석이라는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결국 어디까지 올랐는지가 여러분의 가치를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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