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에게 이 순간은 더욱 더 소중하다.
정호영에게 2023-24시즌은 짙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커리어 하이급 활약을 펼치며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가장 중요한 무대인 봄배구에서 부상으로 인해 팀과 함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그래서 정호영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 팀이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이번에는 부상없이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역사를 쓸 수 있는,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4차전 경기에서 흥국생명을 3-2(25-20, 24-26, 36-34, 22-25, 15-12)로 꺾은 뒤 인터뷰실에서 정호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겨서 기분이 너무 좋다. 인천에 가서도 지금 같이 좋은 경기력을 발휘해서 높은 곳에서 웃고 싶다”는 승리 소감을 먼저 전했다.
정호영에게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내고 있는지를 직접 물었다. 그러자 정호영은 “봄배구가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시즌에는 중도에 여정을 멈췄지만, 이번에는 봄배구를 길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떨리는 건 오히려 플레이오프가 더 떨렸던 것 같다. 챔피언결정전은 도전자의 입장에서 부담 없이 덤빌 수 있다”며 긴장감도 잘 관리하며 이 순간을 신나게 만끽하고 있음을 전했다.
그런 정호영이 빛난 순간 중 하나는 5세트가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김연경의 파이프를 깔끔한 단독 블로킹으로 잡아내며 5세트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마음먹고 있었다. 메가와티 퍼티위(등록명 메가)-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와 함께 전위였기 때문에 두 선수의 원 맨 블로킹을 믿고 1번으로 빠지는 파이프만 잡아보자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언제 이런 순간에 (김)연경 언니 공격 잡아보겠냐”며 특유의 너스레까지 더한 정호영이었다.
지금 정관장의 동료들은 모두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막내 정호영이라고 몸 상태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본인보다는 언니들이 더 걱정될 수밖에 없다. 그는 “내 상태도 완벽하진 않지만, 언니들보다는 괜찮다. 내가 코트 위 막내니까 더 힘내야한다. 지금 언니들이 무릎을 잡을 때마다 내 심장도 떨어진다”며 익살스럽게 막내다운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끝으로 정호영은 의젓한 목소리도 냈다. 그는 “연경 언니의 은퇴와 흥국생명의 2전 3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주인공이 정해진 승부라는 건 없다. 우승의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우승을 못한지는 우리가 더 오래됐다. 우리에게도 충분한 동기가 있다”며 우승을 향한 열망을 드러냈다.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지만, 여정을 멈춰야 했던 지난 시즌을 생각하면 정호영에게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재밌는 봄배구를 한 경기 더 즐길 수 있게 된 정호영은 이제 내친 김에 가장 높은 곳에서 웃음을 지어보려 한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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