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경기에 패했지만, 정한용은 자신의 가능성을 코트 위에서 보여줬다.
대한항공에는 자랑하는 두 명의 국가대표 아웃사이드 히터가 있다. ‘석석 듀오’라고 불리며 곽승석과 정지석은 오랜 시간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를 함께 이끌었다.
하지만 선수가 매 경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없는 법. 곽승석이나 정지석 중 한 명이 어려울 때마다 도와줄 선수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아웃사이드 히터가 기회를 받았지만, 뒤를 이을만한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기다린 끝에 나타났다. 정한용이 석석 듀오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떠올랐다.
아마추어 무대에서부터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천산업고와 홍익대 재학 시절, 에이스로 활약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묵직한 공격과 서브를 자랑했고, 많은 우승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에 얼리 드래프티로 프로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2021-2022시즌 1라운드 3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비록 데뷔 시즌에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2022 순천·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에서부터 점차 존재감을 드러냈다.
KOVO컵에서 매 경기 선발 출전해 아웃사이드 히터로 가능성을 보여줬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V-리그에서 지난 시즌보다는 코트를 자주 밟았지만, 원포인트 서버로 코트를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브에이스 10개를 기록하며 중요한 순간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냈지만, 1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 경기에선 다른 역할을 보여줬다.
1세트에는 기존에 본인이 맡은 원포인트 서버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1세트를 내준 후 2세트에 0-5로 점수가 크게 벌어지자 정지석 대신 들어가 살림꾼 역할을 맡았고, 성공적으로 해냈다.
2세트 8-14에서 상대 에이스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의 백어택을 가로막았다. 정한용은 레오를 마주 보고 기죽지 않았다. 17-21에서 레오가 블로킹 벽을 이뤘지만, 코트 빈 곳을 찾아내 연타 득점을 올렸다. 제천산업고 선배 임동혁과 함께 팀 내 최다 6점을 올리며 좌우 쌍포의 균형을 맞췄다.
그렇게 3세트, 이번 시즌 처음으로 세트 선발로 경기에 나섰고 좋은 활약은 이어졌다. 정한용은 이날 경기에서 블로킹 1개를 포함해 9점, 공격 성공률 57.14%를 기록했다. 리시브도 좋았다. 팀에서 가장 많은 22번의 시도 중 8번을 정확하게 세터에게 전달했고, 실패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최천식 SBS SPORTS 해설위원은 중계를 통해 “공을 다루는 기술이 좋을 뿐만 아니라 경기를 하는 데 있어 여유가 가득하다. 정한용이 이번 같은 활약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코트에서 보는 날이 많아 질 거다”라고 칭찬을 건넸다.
하지만 승리로 이어지진 못했다. 대한항공은 셧아웃으로 패하며 이번 시즌 처음으로 승점을 따지 못했다. 그럼에도 ‘원포인트 서버’ 정한용이 아닌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킨 경기였다.
사진_안산/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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