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에게 인사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리베로 오지영이라고 합니다.
팩트체크 인터뷰를 알고 있는지.
어떤 내용인지는 아는데 사실 보지는 못했어요(웃음).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오지영
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살던 동네에 짱이라고 불리던 언니가 있었어요. 그 언니가 같이 배구를 해보자고 해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감독님이 너무 무서워서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등교하는 첫날 감독님이 배구부 인원이 모자라자 학생들을 꼬시고 계셨어요. 감독님이 나를 보시더니 우유를 주시면서 “내가 항상 웃고 다녀서 보기만 하면 기분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넘어가서 배구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6-2007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했네요. 근영여고 3학년 때였는데 드래프트 당시 생각이 나는 게 있다면.
솔직히 당시는 프로에 대한 개념이 많이 없어서 당연히 가는 곳인 줄 알았어요. 내가 잘해서 당연히 뽑힐 거라는 당연함보다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가는 것처럼 모든 선수들이 가는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어린 생각이었죠(웃음).
어느덧 15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요즘 들어서 시간이 정말 빠르다고 느껴요. 막내였던 시절이 엊그제인 것 같아요. 그때 내가 봤던 선배 언니들 자리에 지금 내가 있는 거니까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아요.
배구를 처음 할 때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 예상했는지.
사실 배구를 언제까지 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요즘 들어서는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렸을 때는 언제까지 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그날그날 당장 앞에 있는 운동이나 경기에만 신경 쓰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프로 입단 당시는 아웃사이드 히터였는데 학생시절 아웃사이드 히터 오지영은 어떤 선수였나.
에이스이면서 살림꾼이었죠(웃음). 받는 것도 다 받아야 되고 혼자 공격도 다 해야 했거든요. 왜냐하면 그때도 받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수비는 당연히 했고 공격 때는 나한테 공 달라고 소리치는 성격이었어요.
많은 공격을 하는 만큼 막히는 경우도 많았을 텐데. 그럴 땐 주눅이 드는 스타일인지.
주눅 들지는 않았어요. 대신 미안한 마음이 되게 컸던 기억이 있어요. 경기에서 지면 다 나 때문에 진 것 같고 내가 득점을 못 내줘서 진 것 같은 자책감을 많이 느꼈어요.
2012-2013시즌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흥국생명을 상대로 기록한 5연속 서브에이스는 아직까지 여자부 연속 서브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가 들으면 거만하다 할 수도 있는데 서브 할 때만큼은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했거든요. 원포인트 서버는 중요한 순간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긴장이나 부담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때 당시를 정말 즐겼어요.
2009-2010 올스타전에서는 시속 95km의 서브로 서브 퀸 자리에 올랐던 적도 있고요.
운도 좋았고 지금보다 살집도 있어서 힘이 좋았어요. 웨이트 훈련도 정말 많이 했고요. 솔직히 올스타전 서브 콘테스트는 경기도 아니고 코트에서 나 혼자 서브를 때리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으니까 긴장감은 들었어요. 당시 언니들이 “너는 무조건 될 것 같다”라고 얘기해줬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까 긍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되게끔 만들어요. 대신 안 되겠다 싶으면 빨리 포기해요(웃음).
2020 도쿄올림픽
신을 안 믿는데 기도했어요
리베로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내가 잠깐 은퇴를 했잖아요. 은퇴하고 배구를 쉬고 있을 때 은사님이신 서남원 감독님께서 다시 불러주셨어요. 그리고 나도 몰랐던 내 재능을 알아보고 리베로를 권유하셨죠. (다시 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없었나.)사실 공격 욕심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프로팀에 들어와서는 서브하거나 후위 세 자리에서 수비만 하는 것이 전부여서 공격을 거의 안 했거든요.
리베로 전향 이후 어려움은 없었는지.
리베로를 하면 내 자신과의 싸움을 많이 해야 돼요. 내가 못 받으면 점수가 안 나고 범실을 하면 크게 보이는데 아무리 잘해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빛이 안 나요. 멘탈이 정말 강해야 해요. 처음에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자책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하지만 경기를 하다 보면 잘하는 날도 있고 못 하는 날도 있잖아요. 그래서 못하는 날은 빨리 잊고 잘하는 날만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극복했습니다.
그렇다면 리베로를 하면서 국가대표에 뽑힐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지.
리베로를 하고 꿈이 처음 생겼어요. 이전까지는 항상 꿈을 정해두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때인가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국에서 경기를 하는데 서남원 감독님이 KGC인삼공사 선수들을 데리고 응원하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관중석에서 코트를 보는데 많은 관중들도 계셨지만 대표 선수들만 빛이 나는 거예요. 그때 너무 멋있어서 나도 저 자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서남원 감독님께 찾아가서 ‘국가대표 리베로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죠.
사과머리가 트레이드 마크가 됐는데.
운동할 때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내려오면 너무 신경 쓰여서 앞이 안 보여요. 그래서 이걸 매일 왁스를 발라서 올리자니 시간도 들고 귀찮아서 제일 간단한 방법을 선택한 거죠. 확실히 앞머리가 없으니까 편하긴 하더라고요(웃음).
선수 생활을 하면서 두 번의 은퇴 경험이 있는데.
처음에는 철없이 나간 거예요. (김)해란 언니라는 큰 산이 있었잖아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란 언니를 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빨리 다른 일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팀을 나갔죠. 그리고 두 번째 때는 해란 언니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지만 (임)명옥 언니가 대신 들어왔어요. 그런데 명옥 언니도 정말 잘하는 선수잖아요. 정말 앞이 막막한 거예요. 그때 당시 나는 경험도 없고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고 당연히 (선수로 성공)못 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팀에서 나왔습니다. 그 뒤에 서남원 감독님께서 팀을 옮겨서 불러주셨죠.
선수 생활에서 2020도쿄올림픽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사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은메달을 따긴 했지만 내가 주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2020도쿄올림픽은 주전으로 뛴 대회였잖아요. 그래서 정말 기억에 남죠. (부담도 많이 됐을 것 같은데.)엄청 부담이었죠. 정말 배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어요(웃음). 그리고 내가 신을 안 믿는데 경기 들어가기 전에 기도를 했어요. ‘진짜 이거 끝나고 은퇴해도 좋으니까 내 모든 실력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도쿄올림픽에서 디그 부문 1위에 올랐다.
팬분들이 디그 1위 했다고 연락을 계속 주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기록이 잘못됐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몰라서 혹시나하는 마음에 기록 사이트에 들어가봤는데 진짜 내가 1위로 있는 거예요(웃음). 너무 놀랐죠. (당시 들었던 감정은.)물론 다른 선수들도 당연히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오직 나만 생각한다면 내 자신에게 고생 정말 많이 했고 그 보상을 이걸로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인터뷰를 찾아보니 2021 VNL 이후 마음고생이 심했다는데.
정말 많이 힘들었죠. 당시 내가 한 달 동안 휴가를 받아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대표팀에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갔는데 쉬다 오니까 몸이 다 망가진 상태였던 거죠. 그 상태에서 경기를 뛰니까 감각도 없고 움직임도 둔하니까 될 것도 안 되더라고요. 당시 많은 비난과 질타를 받아서 아예 인터넷을 끊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도쿄올림픽 가기 전부터 몸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고요.
2020도쿄올림픽 4강 이후 여자배구의 인기가 정말 많아졌는데 그 것을 가장 실감할 때는.
리베로라는 자리를 알아봐 주셨을 때요. 그전까지 모든 빛은 공격수가 받고 승리하는 경기에서 공헌도는 공격수나 세터 차지였는데 도쿄올림픽 이후 리베로라는 포지션이 정말 중요한 자리라는 걸 팬분들이 알아봐 주셔서 그때 인기가 진짜 많이 올라갔다고 느꼈어요.
젊은 선수들이 잘 성장할 수 있기를
도로공사, KGC인삼공사, GS칼텍스를 거쳐 이제 페퍼저축은행 선수가 됐습니다. 이전까지 머물렀던 세 팀과 페퍼저축은행이 다른 점은 무엇인지.
우선 선수들이 많이 어려요(웃음). 그리고 정말 솔직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가 다른 팀에 비해 떨어진다는 건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잖아요. 내가 정말 뛰어나고 다른 선수들보다 잘한다는 건 아니에요. 이전에 있던 팀들은 내 것만 해주고 조금씩 커버해주면 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지 않았어요.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내 경험이 10이라고 하면 아직 경험이 1~2 정도밖에 안 되는 선수들이 많아요. 내가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하는데 체력이 금방 바닥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쉬는 날에는 무조건 잠만 자요.
평균 연령이 정말 어린 팀인데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눈치를 많이 봤어요. 정말 젊은 친구들이다 보니 나를 어려워할까 봐 눈치를 봤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애들끼리 틱톡이나 릴스에 관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나도 그런 것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웃음). 그런 것을 얘기할 때 대화가 잘 통해요. 반면에 내가 모르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는 무슨 얘기하는지 많이 듣고 배우려고 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페퍼저축은행에서의 역할은.
우선 젊은 선수들이 잘 성장할 수 있게끔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경험을 어떻게 쌓느냐도 중요하고 옆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게 차이가 나거든요. 그래서 젊은 선수들이 잘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2023년 목표는.
올해 목표보다는 우선 이번 시즌에 3개 팀(한국도로공사, GS칼텍스, 현대건설) 상대로 승리했는데 나머지 3개 팀(흥국생명, KGC인삼공사, IBK기업은행)을 상대로도 승리하고 싶어요.
그동안의 배구 인생을 돌아봤는데 어땠나요.
나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가 있을까요(웃음). 10년 동안 백업 멤버였고, 두 번의 팀 이탈, FA도 해보고, 트레이드도 돼보고, 보상 선수도 돼봤잖아요.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잘 버텼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지 않나 생각해요.
배구선수 오지영이 아닌 사람 오지영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배구선수 오지영만 생각해봤지 사람 오지영으로서의 목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좀 슬프네요(웃음). 내 인생에는 그냥 배구밖에 없었어요. 20대 때도 배구, 30대에도 배구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아직은 배구만 생각하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정말 많은 분들이 잘했다, 괜찮다고 응원해 주시는데 선수들은 그 응원 한마디만 들어도 엄청나게 힘이 되거든요. 너무 감사드리죠. 그래서 그런 팬분들한테 자랑스러운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항상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나와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을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고 배구를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글. 박혜성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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