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친구야, 기쁨이야! 대한항공 외국인선수 통역 김현

김예솔 기자 / 기사승인 : 2020-07-04 23: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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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입과 귀를 대신하고 그림자로 지내야 하는 생활. 그것이 업(業)이라고 하면 그리 만만치 않을 터. 더구나 아무나 할 수도 없고, 특히 잘 하기도 힘든 일이라면 어떨까. 프로스포츠 구단 통역사란 일이다. 대한항공 김현 통역사는 그 어려운 일을 7년째 잘 하고 있다. 외국인선수와 감독, 선수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 게 주 업무다. 4개 국어를 구사하며 그간 동고동락한 외국인선수만 네 명이다. 그 사이 컵 대회 우승,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모두 경험하며 기쁜 눈물 꽤나 쏟았다. 여기에 선수단 매니저 업무까지 겸한다. 멀티 플레이어가 따로 없다. 그래서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지난 5월 12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대한항공 숙소에 다녀왔다.

 

 

화려한 코트 뒤 숨겨진 조력자 

김현 통역은 2014년 대한항공 배구단에 들어왔다. 선수로는 입단 동기가 황승빈(상무)이다. 7년째 같은 팀 전속으로 일하는 게 통역 세계에서는 흔하지 않다. 장수 비결은 4개 국어(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언어능력과 성실함이다. 그간 외국인 선수 네 명을 만났다. 외국인선수가 교체되어도 그는 변함없이 대한항공을 지키고 있다. 

 

Q__외인 선수들의 인터뷰 통역이 아니라 미디어와 직접 인터뷰하는 것이 처음인가요.

아뇨. 2014~2015시즌에 SBS에서 ‘통역사의 세계’라는 콘텐츠의 방송 인터뷰를 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경기 당시 작전타임 때 통역하는 모습과 숙소에서 외인과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Q__현재 대한항공에서 통역과 매니저를 역할을 담당한다고 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려요.

전반적인 매니저 업무로는 선수들의 불편사항을 접수하고 해결해 주는 지원을 하고 있어요. 경기장 갈 때 필요한 숙소와 이동 수단 그리고 식당 예약까지 담당하고 있어요. 사소하게는 선수들 간식까지 담당한다고 보면 돼요. 그리고 외국인선수와 관련된 모든 업무는 제가 담당하죠. 


Q__매니저와 통역 업무를 병행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지금은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익숙해진 만큼 편하고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됐어요. 저만의 노하우를 하나 꼽자면 항상 미리미리 준비해요. 경기장마다 가는 곳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확인만 잘하면 일사천리죠. 통역으로 입사했지만, 일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는지 매니저 역할까지 맡게 됐네요.

 

Q__20대 초반 선수들이 ‘오랫동안 팀에 계셨던 분’이라고 설명하더라고요. 대한항공에서 몇 년째 근무중 인가요.

제가 2014년도에 들어왔으니 햇수로 7년차에요. 웬만한 선수들보다는 더 오래 팀에 있었돼요.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시간이 금방 지나갔구나 싶어요. 제가 입사할 당시같이 입단한 친구가 상무에 있는 (황)승빈이에요. 

 

Q__스포츠가 좋아서 시작하긴 했지만, 상상했던 것과 달랐던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첫 시즌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첫 번째로는 익숙하지 않은 배구 용어에 당황했죠. 완벽하게 알지 못하니깐 그 틀을 이해해보려 노력을 많이 했어요. 오히려 합숙 생활은 이전 직업(외국에서 건설업 근무)을 할 때 많이 했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어요. ‘내가 지금 전달하는 말들이 100% 맞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공부도 많이 했고 당시 통역관이셨던 문성준 코치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Q__바로 직전인 2019~2020시즌은 어땠나요. 리그가 조기 종료되어서 허무할 것 같기도 한데요.

모든 선수와 코치진들이 허탈했죠. 우리 팀이 ‘상승세를 타서 우승도 노려보자’라는 좋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정말 컸어요. 다음 시즌 더 열심히 준비해서 더 좋은 성적을 내야죠. 모두 열심히 훈련하는 중이에요.

 

Q__지난 시즌 허무한 순간도 있었지만 가장 뿌듯했던 순간도 있지 않나요. 

단연 지난해 컵 대회 우승이죠. 개인적으로도 대한항공에 입사한 후 첫 컵대회 우승이었기 때문에 좋았어요. 사전답사부터 컵 대회가 열렸던 순천까지 여러 번 다녀와서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였어요. 하지만 우승으로 모든 게 극복됐죠.

 

Q__통역 업무가 힘들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저는 속으로 많이 삭이는 편이에요. 표출한다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단지 저의 기분을 풀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은 저에게도 독이에요. 그 상황에 수긍하고 해결점을 찾기 위해 생각을 해나가곤 해요.

 

 

전담했던 외인만 4명, 그들과의 후일담

김현 통역은 대한항공에서 4명의 외국인선수와 같이 일을 했다. 마이클 산체스(쿠바), 파벨 모로즈(러시아), 밋차 가스파리니(슬로베니아), 안드레스 비예나(스페인)이다. 그들과 늘 붙어 지내며 때론 입과 귀, 때론 손과 발 역할을 해주었다. 코트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들여다볼 시간도 많이 가졌다. 

 

Q__통역을 맡고서 처음 인연을 맺었던 마이클 산체스 선수와 재밌는 에피소드 있나요.

음, 산체스 덕분에 시몬과도 친해졌었죠. 둘이 워낙 친하다 보니 숙소에 놀러와 잠도 자고 그랬어요. 쉬는 날에는 둘이 이태원 맛집 탐방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숙소에서 지시를 기다리는 저를 산체스가 많이 챙겨줬던 것 같아요. 항상 밖에 나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끔 해줬죠. 지금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큰 의미가 있는 선수예요.

 

Q__경기장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선수인데, 실제 성격은 어땠나요. 

배구 코트 안에서 불같은 스타일인 건 확실해요. 그건 선수이기 때문에 당연한 부분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2014~2015시즌 초반 우리카드와 경기에서 결과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선수 스스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이었나 봐요. 경기 후 라커룸에서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운동을 제외한 부분에선 되게 착하고 시원시원한 모습이랄까요. 특별한 불만 사항이 없었어요.

 

Q__그렇다면 지난 시즌을 함께 했던 비예나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컵 대회 첫 경기 당시 비예나가 초긴장 상태였어요. 손까지 떨면서 힘들어하기에 청심환을 챙겨주며 잘할 수 있다는 말을 계속해 줬어요. 소통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도움을 주고자 계속 칭찬하며 긴장을 덜어주고자 한 거죠. 물론 비예나의 경기 전 루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Q__현재 비예나는 한국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인터뷰 이후, 비예나는 5월 19일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시즌 중에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거든요. 한국에 머무르게 되면서 그 마음이 더 강해진 것 같더라고요. 요즘 조금씩 공부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둘이서 컴퓨터 게임도 많이 해요. 최근에 비예나 인터류를 하는데 저희가 같이 게임하는 장면이 나간 적이 있어요. 그걸 설정이라고 보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웃음). 절대 설정이 아닌 실제 모습입니다. 

 

Q__타지 생활을 하는 외인을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이 딱 그 순간이에요. 코로나19로 인해 비예나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잖아요. 가족들을 영상통화로만 볼 수 있죠. 거리도 멀고,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야속할 뿐이에요. 

 

Q__팀 내에서 비예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는 누군가요.

진지위와 (진)성태가 아닐까 싶어요. 언어 장벽이 있긴 해요. 영어 단어들과 보디랭귀지를 섞어서 대화하더라고요. 특히 성태가 “야”를 다양한 억양으로 바꿔가면서 활용해요. 가끔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자꾸 놀리게 돼요. 물론 다들 친하답니다.

 

 

가족이 그립지만 배구로 이겨내야죠

그는 어린 시절 남미 볼리비아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를 접하고 익혔다. 스페인 출신인 비예나가 한국에서 펄펄 난 데는 그의 도움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비예나는 시즌 종료후에도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의 주업무인 통역일은 비시즌에도 쉴 틈이 없었다.   

 

Q__ 합숙 생활로 집에 자주 못 간다고 들었어요. 가족들이 많이 그리우시죠.

2017년 결혼 후 현재는 아이가 있어요. 결혼 당시 아내도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해해 주고 있어요. 정말 고맙죠.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어요. 저녁마다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게 저의 생활 패턴이에요. 


Q__가장 기본적인 질문일 수도 있어요. 몇 개 국어 가능한가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에요. 조금 더 추가하자면 포르투갈어 정도. 어렸을 때 가족들과 볼리비아로 떠나서 유학 생활을 했어요. 처음 갔을 때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6개월이 흐르니까 다른 사람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무리 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일 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나요. 

 

Q__통역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어요.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는데 문득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정말 운 좋게 대한항공에서 통역사를 구하던 시기와 제가 준비를 마친 시기가 겹쳤었죠. 감사하게도 7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Q__베테랑 통역인 만큼 통역 시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 있을까요.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현장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아야 해요. 그렇다고 해서 의역을 하면 위험해요. 감독님이 선수에게 강하게 이야기하는 상황이 분명히 발생하지만, 기분이 상할 만큼 강하게 전달하면 안 되죠. 순간적인 상황 판단 능력이 필수예요. 두 번째로는 선수와 가깝게 지내면서도 많이 알았다고 해서 긴장을 늦추는 건 정말 위험해요. 항상 긴장한 상태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해요.

 

Q__본인이 생각하는 통역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매력이면서 동시에 모험인 부분이에요. 제가 통역하는 표현에 따라서 외인이 움직여요. 그걸로 인해 팀의 플레이가 좌지우지될 수도 있죠. 감독님의 작전 지시를 올바르게 전달하고 좋은 경기력이 뒤따라오면 남모를 희열이 느껴져요. 

 

Q__혹시 팬분들에게 선물 받은 경험 있나요.

제가 이 인터뷰를 하는 이 상황처럼 굉장히 의아하지만 있어요(웃음). 아주 가끔 저까지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간식이나 아이 선물을 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정말 감사하죠. 제가 선물을 받아오면 다들 저를 엄청나게 놀려요. 

 

Q__통역 일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우승을 꿈꿀 수 있다는 점. 정말 제가 컵 대회와 정규리그 그리고 챔프전 우승까지 겪어보고 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많이 느꼈어요. 그 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가 안 돼요. 선수들의 뒤에서 항상 바라보면서 그들의 우승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일 년에 한 팀밖에 못 하는 우승 속 구성원이 된다는 건 큰 축복이죠.

 

Q__요즘 프로스포츠 통역을 꿈꾸는 후배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어떤 점을 준비해야 할까요. 

우선 본인이 담당할 언어와 한국어, 2개 국어는 필수에요. 여기에 한국어를 넣은 이유가 있어요. 생각보다 교포들이 지원을 많이 하는데, 한국어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해요. 필수적으로 한국어는 공부해야 돼요. 그다음으로는 인내심이죠.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요. 누군가의 대변인인 역할이니 끊임없이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할 거예요. 늘 배우는 자세를 잃지 말았으면 해요.

 

Q__지금까지 총 4명의 외인과 함께 하셨어요. 빨리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최대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줘요. 계속 말도 걸고 하다가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해져있어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제가 한국가족인 셈이에요. 세심하게 살펴야죠.


Q__끝으로 팬들이나 함께 한 외인들에게 어떤 통역으로 남고 싶은가요.

‘통역을 막 하지는 않았다’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어요. 예전에는 의역하시는 분들도 있으셨어요. 잘못된 전달은 팬분들도 다 눈치채시죠. 아무리 생소한 언어라도 배구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는 다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 사람, 통역은 참 잘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의 직업은 통역사잖아요. 

 

 

비예나가 말하는 ‘나의 친구’ 김현

"정말 좋은 친구죠. 제가 유일하게 스페인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예요. 항상 저의 옆에 있어줘서 고마울 뿐이죠. 불편함 없이 잘 케어를 해주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늘 고마운 친구입니다. 늘 함께 해줘서 고마워, 나의 친구.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나 함께 위로해 주고 응원해줘."

 

글/ 김예솔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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