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에 참가한 드래프트
그리고 전체 1순위
<더스파이크>와 2년 만의 인터뷰입니다.
2년 전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당시 ‘수술했지만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라는 인터뷰를 했었어요. 그리고 그 인터뷰를 하고 군대에 갔죠(웃음). 그런데 전역하고 다시 <더스파이크>와 인터뷰하니까 감회가 새로워요.
그럼 인터뷰 하기 전에 2년 전의 인터뷰도 보고 왔나요.
아니요(웃음). 제목만 기억나요. ‘악으로 깡으로 다시 일어서다’잖아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요. 그래서 장난칠 때도 '악으로 깡으로'라고 자주 말하고 다녀요.
2018-2019시즌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됐는데.
사실 주변에서 바람을 많이 넣기는 했어요. ‘이번 드래프트는 네가 1순위다’라는 식으로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그런 얘기가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도 부담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발목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1순위가 될까’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솔직히 그때 드래프트에 나가지 않겠다고 감독님께도 말씀드렸어요. 그런데도 1순위로 뽑히고 나니까 너무 좋아서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믿겨지지도 않았어요.
드래프트에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가 부상 때문인지.
그렇죠. 발목 부상이 있었어요. 근데 내 몸 상태는 내가 너무나도 잘 알잖아요. 그때는 지금 나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 상태로는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두 번째 시즌부터는 많은 경기에 출전했는데.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말하는 거지만 발목 수술로 첫 번째 시즌을 거의 못 뛰었잖아요. 그래서 두 번째 시즌에는 신인이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두 번째 시즌이 나의 첫 번째 시즌이다’라고요.
군대에서 택시 많이 불렀죠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단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전부터 생각은 조금씩 하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석진욱 감독님께서도 권유하셔서 마음이 확고하게 굳어진 거죠.
사람들이 궁금해할 텐데 상무의 하루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우선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요. 그리고 옷 갈아입고 준비해서 50분까지 점호하는 곳으로 가요. 거기서 애국가를 부르고 체조하고 다시 올라와서 아침 밥을 먹습니다. 밥 먹고 좀 쉬다가 오전에는 주로 웨이트 훈련을 많이 해요. 웨이트 훈련이 끝나면 점심 먹고 다시 운동해요(웃음). 오후 훈련 끝나고 저녁까지 먹으면 이제 개인 시간이 주어지는 거죠.
상무에는 많은 종목 선수들이 있을텐데 체육대회도 하는지.
체육대회 물론 있어요. 배구도 하고 족구도 하고 많은 경기를 해요. 내가 족구에 출전한 적이 있어요. 근데 발을 못 써요(웃음). 그래도 그나마 뒤에서 받는 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상대가 테니스 선수들이었는데 테니스 선수들은 족구할 때 테니스공으로 한다는 거예요. 그 얘기 듣고 ‘해봤자 얼마나 잘하겠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근데 해보니까 확실히 실력이 다르더라고요(웃음).
입대하고 나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아침 점호하는 게 제일 적응 안 됐어요(웃음). 팀에 있을 때도 아침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긴 하거든요. 기상 시간도 비슷해요. 근데 일어나서 밥을 먹지 체조를 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아침 점호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동기들과 군 생활은.
그냥 그 사람들이랑 있는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입대하기 전에는 다 다른 팀에 있다가 한 곳에 온 거잖아요.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역하면 또 다른 팀으로 만나야 하니까요.
재밌던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해준다면.
(이)지율이랑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계속 봐왔거든요. 근데 훈련소에서 처음 만났는데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거예요(웃음). 모든 사람이 군대에 처음 입대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자고 일어났는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율이한테 “지율아, 택시 좀 불러줘”라고 기초 훈련소 수료하기 전까지 매일 말했어요. 훈련하다가도 “지율아, 택시 불렀어? 언제 온대?”라면서 지율이한테 택시를 많이 물었던 것 같아요.
2년 전 인터뷰를 찾아보니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는데. 요즘도 많이 읽는지.
군대에 있을 때 진짜 많이 읽었어요(웃음). 군의 일정대로 움직이다보니 따로 할 게 없는 거예요. 정말 뭘 해도 시간이 남아요. 그러다 ‘책을 읽어볼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SNS에서 ‘오늘 밤, 세계에서’라는 책을 추천해 주는 거예요. 그걸 읽고 로맨스 판타지에 빠졌습니다(웃음).
룸메이트는 누구였나요.
(이)태호였어요. 태호는 군에 있으면서 자기가 해야 할 것들을 다 적어놔요. MBTI로 말하면 태호는 J에요. 나는 P고요(웃음). 그리고 태호는 책을 나보다 많이 읽어요. 태호에 비하면 나는 정말 조금 읽은 거예요.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주로 했는지.
우선 군대에 있으면 시간이 많이 남아요. 일정 끝나면 시간 남고, 주말에도 시간이 남아요. 그러면서 온전한 나의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그 시간 동안 이미지 트레이닝을 정말 많이 했어요.
군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제일 많이 도움을 주신 분은 확실히 박삼용 감독님이시죠. 감독님은 내가 갖고 있는 걸 바꾸려고 하지 않으셨어요.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셨지 내가 하는 것을 막거나 제재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되게 좋았어요. 내가 어떤 플레이를 하든 뭘 하든 간에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많은 걸 할 수 있었고 창의적인 플레이도 많이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진선의 등장과 함께
이어진 OK금융그룹의 연승
11월 9일 드디어 민간인이 됐습니다.
그냥 큰 문제 하나를 해결한 느낌이었어요. 군대를 10년, 15년 다녀온 것도 아니고요. 1년 반 갔다 오더라도 사회는 바뀌지 않았더라고요. 아, 그래도 새로운 건 있었어요. 아침 점호 안 나가는 거와 저녁 점호 안 나가는 거요(웃음).
전역 후 곧바로 팀에 합류했습니다. 자유로운 민간인의 삶을 즐기지 못해 아쉽지는 않았는지.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어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1년 6개월 동안 군대에 있었는데 말년 휴가도 팀 스케줄에 맞췄거든요. 그렇게 했으니까 전역하자마자 경기를 뛰긴 했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석진욱 감독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합류를 많이 기다렸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지.
감독님이 인터뷰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직접적으로 티를 안 내시거든요(웃음). “난 네가 오길 기다린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하시지 않으세요. 그래서 딱히 부담감은 없었죠. 그래도 팀이 경기에서 지다 보니까 빨리 코트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팀 복귀 첫 번째 경기인 현대캐피탈전에서 3연속 블로킹으로 경기를 끝냈어요.
기억나는 게 23-24 상황이에요. 당시 벤치에서 지시한 것도 아닌데 뭔가 느낌에 (전)광인 형한테 공이 올라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곽)명우 형한테 “형 블로킹 자리 바꿉시다”라고 말했어요. 명우 형도 알겠다고 해서 바꾸고 블로킹했는데 나한테 딱 걸린 거죠. 그래서 동점을 만들었고 다음에는 올라갈 곳이 (허)수봉이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수봉이 쪽으로 올라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데 딱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막을 수 있었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봉이 공격을 막으려고 나와 레오가 동시에 떴는데 레오에게 먼저 맞고 그 다음에 내게 맞은 공이 수봉이를 맞고 나가는 게 보이는 거예요. 코트 밖의 선수들은 다 뛰어나오고 있었고요(웃음). 정말 우주의 기운이 그 순간에 하나로 모아서 들어왔던 거죠.
부진하던 OK금융그룹은 전진선 선수 합류 이후 4연승을 달렸습니다.
전역 이후 좋은 모습을 보이니까 주변에서 연락도 많이 오고 “네가 와서 팀이 이겼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근데 정말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팀이 초반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경기력이 점점 올라오고 있었고, 나는 운 좋게 경기력이 올라왔을 때 합류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대한항공 틸리카이넨 감독이 “전진선 합류 이후 OK금융그룹이 강해졌다”고 인터뷰를 했을 정도인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떤지.
들으면 기분은 좋죠. 그만큼 좋게 평가해 주시는 거잖아요. 전역하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 “팀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트 안에서 내 가치를 보여주고 증명해야 한다”라고 했어요. 근데 주변에서 그런 말씀을 해주시면 내가 복귀하고 코트 안에서 팀이 잘할 수 있게 많이 도와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게 잘 이루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요.
모든 사람이
전진선을 아는 날을 꿈꾸며
초반 부진을 이어오던 팀에 합류하고나서 바꾸고 싶은 게 있었는지.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팀에 영향을 줘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 만한 힘은 아직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팀에 들어가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보자는 생각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분위기 메이킹, 밀리고 있을 때 블로킹이나 속공을 통해 흐름을 빼앗아 올 수 있는 능력을 살려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었어요.
입대 전 팀과 입대 후 팀의 차이점이 있다면.
레오가 있다는 거요(웃음). (옆에서 보면 어떤지.) 너무 잘해요.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레오가 말하면 어느 정도는 알아듣거든요. 레오가 경기 중에 “이럴 때 이렇게 해라”라고 말을 해줘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든든해요. 그런 든든한 역할을 레오가 팀에서 해주고 있어요.
팀에 선배이자 베테랑인 진상헌, 박원빈 선수가 해주는 말은.
(박)원빈이 형이 현대캐피탈 경기 때 해줬어요. 그날 원빈이 형한테 “블로킹할 때마다 손에는 맞는데 걸리는 게 없어요”라고 하니까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봐라”라고 해줬거든요. 그랬는데 3세트에 3개 연속으로 잡고 끝낸 거예요. 그런 것처럼 내가 조급해할 때마다 잡아주는 게 상헌이 형이랑 원빈이 형이에요.
훈련할 때 석진욱 감독이 자주 하는 말은 있는지.
있죠. 항상 “너는 블로킹 해야 한다. 블로킹 안 하면 경기 못 뛴다”라면서 블로킹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은 무엇인지.
상대 흐름을 빼앗아 올 수 있는 제스처나 퍼포먼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서브를 밀어 때리기도 하고 감아서 때리기도 하고 있는데 잘 통하고 있어요. 가장 큰 장점은 파이팅이죠.
반대로 단점은.
범실 했을 때 대처 능력이 아직 부족해요. 제일 못하는 게 표정 관리거든요. 좋으면 엄청 신나해요. 근데 풀리지 않을 때 쉽게 헤쳐나오지 못해요. 그걸 고치고 싶어요.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합니다. 이번 시즌 목표는.
내 가치를 증명하는 거요. 증명을 한다는 게 BEST 7을 받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꼭 이번 시즌에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이번 시즌이 아닌 배구 선수로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잖아요. 배구선수가 아니라 운동선수로서 은퇴를 하고 나이가 들어도 누구나 전진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를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한테 인정받는 선수가 되어야 하고 실력을 증명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여태까지 보여드린 모습보다 더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 테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 경기장 많이 찾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_박혜성 기자
사진_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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