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정고은 기자] 「더 스파이크」는 창간호 표지인물로 송명근을 정했다. 2014~2015시즌 챔피언결정전 MVP. 프로 데뷔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정작 자신이 매긴 점수는 60점에 불과했다. “다 잘 하고 싶은데, 아직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토로한다. “부족한 걸 채워가다 보면 더 좋은 선수로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부터 하나하나 보폭을 맞춰나갈 「더 스파이크」와 함께 할 주인공으로 이보다 더 ‘OK’인 선수가 있을까.
※ 본 기사는 배구전문잡지 더스파이크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Prologue
육상부 소년, 배구 선수 되다
V-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이자 OK저축은행의 스타선수로 떠오른 송명근. 그의 스포츠 첫 경험은 육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육상부가 없어지고 배구부가 창단되면서 배구부로 넘어갔어요. 그 때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이 일주일, 한 달 되니까 차례로 그만두더라고요. 저는 배구가 재미있었어요. 부모님도 제가 재밌어하니까 그냥 지켜보셨어요. 그렇게 시작한 배구가 여기까지 왔네요.” 우연치 않게 발을 들여놓게 된 배구. 어느덧 송명근의 모든 것이 됐다.
Story 1
송명근 그리고 경기대 3형제
중학생 때만 해도 배구 잘 한다는 칭찬은 듣지 못했다. 기본기와 센스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송림고 진학 후 평가가 바뀌기 시작했다. 든든한 파트너 세터 이민규를 만난 것이다. 흔히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고들 한다. 볼배급이 얼마나 안정되고, 공격수 입맛에 잘 맞추는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 공격수였던 송명근에게는 자신과 잘 맞는 세터를 만난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둘은 의기투합했고 더불어 경기호흡은 찰떡궁합, 그 자체였다. 이민규가 올리는 볼은 송명근의 손바닥을 떠나며 불을 뿜었다. 빠른 세트로 정평이 난 이민규는 송명근의 빠른 타법을 잘 살려줬다. 김세진 감독도 “이민규가 다른 팀 세터보다 세트가 0.1∼0.2초 빠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흡이 잘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기대 진학 후 또 다른 친구 송희채를 만난다. 송명근은 “희채는 중·고 시절부터 으뜸인 선수로 꼽혔어요. 주변 사람들도 인정했죠. 대학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며 지금까지 잘 온 것 같아요”라며 기억했다. 그렇게 뭉친 셋은 2013년 대학배구춘계대회 6연패를 이끌면서 대학무대를 휘저었다. ‘경기대 삼형제’ 명성이 시작된 계기였다.
마침내 배구인생에 새로운 스프링보드가 마련됐다. 대학 3년생인 이들이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 나오게 된 것.
드림식스 배구단 인수전에서 우리카드에 밀렸던 러시앤캐시가 신생팀 창단을 결정하면서 이들의 드래프트 참가도 결정됐다. 러시앤캐시의 창단 결정에는 대학 때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해온 이들 삼형제 존재가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이 모두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되면서 러시앤캐시는 이민규와 송희채, 송명근을 한꺼번에 끌어안을 수 있었다. 자칫 다른 구단으로 각기 헤어질 수 있었지만 신생팀이라는 한 둥지에 자리할 수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도 행운이었다.
이들의 호흡은 단연 빛났다. 특히 이민규와는 9년째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편하기는 한데 서로 잘하려고 하다 보니 어긋나는 부분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민규가 저하고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팀에 들어와 있는 선수들과 다 맞춰야 하죠. 세터로서 여러 공격수를 배려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면서 안 맞는 부분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서로를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된 이들. “일단 볼이 코트로 넘어오면 세 번 안에 상대코트로 넘기잖아요. 그 세 번을 저희가 한 번씩 맡아서 하고 있거든요. 희채가 잘 받아줘야 하고 민규는 잘 올려줘야 하고 마지막으로 제가 잘 때려줘야 하고. 그런 그림을 저희는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맞을까 서로 얘기하고 있어요” 입을 모은다.
Story 2
고진감래 [苦盡甘來]
2013~2014시즌 막상 프로 무대에 입성했지만 OK저축은행(당시 러시앤캐시)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개막 8연패 등 시련을 겪으며 6위(11승 19패)로 시즌을 마쳤다. “하도 많이 져서 첫 시즌에는 좀 힘들었어요. 대학교 때 프로리그 방송을 봤을 때는 ‘우리도 할 만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하고 보니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호되게 당하게 되더라고요.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힘들어 진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선배 선수들은 괜히 베테랑이 아니구나’라는 것도 느꼈죠”라며 첫 시즌을 돌아봤다.
OK저축은행은 마침내 2013년 12월 6일 감격스런 첫 승의 맛을 봤다. LIG손해보험을 상대로 3-0의 완승을 거둔 것. 송명근이 때린 공이 블로킹에 맞고 상대코트로 떨어진 순간 승리의 짜릿함을 오랜만에 느꼈다. 9경기만의 승리.
“첫 승했다고 난리법석 떨지는 않았어요. 좀 더 빨리 이겼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너무 늦게 승리를 거둬서 아쉬웠어요.”
OK저축은행은 이어 2014~2015시즌, 거짓말 같은 반전 드라마를 써냈다. 2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한 것이다. “외국인 선수도 잘 했고, 계속 이기다보니까 ‘해볼 만하다. 우리도 쉽게 안지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감독님과 코치님께서도 잘 컨트롤해주신 덕분에 시즌을 잘 보냈던 것 같아요.”
첫 시즌의 쓰라림을 맛본 후 OK저축은행은 세계 최고 센터로 손꼽히던 로버트랜디 시몬(쿠바)을 2년, 3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해 영입했다. 김세진 감독은 “서브 때리는 모습을 보니 라이트도 가능하겠다 싶어” 시몬을 라이트 공격수로 전향시켰고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시몬은 빠른 세트를 자랑하는 이민규와 만나 V-리그 코트를 맹폭했다. 송명근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선수라서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했었어요. ‘얼마나 대단할까’ 했는데 직접 보니 훨씬 대단했죠”라며 시몬에 대한 첫 인상을 말했다. 시몬은 실력만 대단한 선수는 아니었다. 동료선수들을 사로잡았다. “정말 착해요. 착하고 성실하고, 외국인 선수라고 내세우거나, 거만함도 없어요. 겸손했죠. 하나라도 더했으면 더했지, 거드름 피는 모습은 저희한테 절대 안 보여줬어요. 그리고 저희가 어리다보니까 저희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했어요. 저희한테 파이팅 하자는 식으로 소리쳐주고, 집중하자고 소리 치고…. 목소리나 눈빛에서 그런 모습들이 보여 지니까 시몬을 믿고 따라했지요.”
OK저축은행 반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철옹성 삼성화재를 꺾고 창단 2년 만에 V-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나 상대가 삼성화재였다는 점에서 OK저축은행 우승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OK저축은행은 챔프전 3경기에서 단 한 세트만 내주는 탄탄한 전력을 과시했다. 전문가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 대목이었다. 깜짝 우승. 그래서 더 짜릿했다. 챔프전 MVP는 송명근 차지였다.
“우승이 확정됐을 때 짜릿함은 정말 강렬해 잊을 수가 없어요.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죠. 그리고 MVP도 당연히 시몬이 될 줄 알았어요. 저는 정규리그 때 부진했는데 그 때 잠깐 반짝한 걸 보고 상을 주신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순간에는 생애 처음이니까 정말 좋았어요.” 최고의 시즌을 보낸 송명근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지는 못했다. 자신에게 겨우 낙제점을 면한 60점을 줬다. “공격에서 장점을 완벽하게 보여줬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서브, 블로킹, 수비에서도 그렇게 특별하게 한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후한 점수는 줄 수 없어요.”
Story 3
V2를 노리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흔히들 얘기하는데 정말 그 우승 순간만 짜릿하더라고요. 우승했다는 자부심은 가지고 있지만, 그 때만 생각하면서 영광에 젖어 있을 수는 없어요.”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냉철했다. “공격할 때 공을 끝까지 보고 때린다거나 블로킹할 때 팔을 흔들지 않는다거나, 서브할 때 해서 정확하게 넣는다거나, 수비할 때 조금이라도 발을 더 움직여야 한다거나…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고 싶어요.”
V-리그는 6개월간 일정에 돌입했다. 매년 다를 바 없는 개막이지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 OK저축은행은 도전자가 아닌 방어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지킨다기보다는 우승 자리를 향해 저희도 다시 도전하는 거라 생각해요. 새 시즌에는 전력이 뛰어난 팀들이 늘어났어요. 항상 경계하고 있죠.”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시즌보다)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당연히 비난을 받을 거라는 것을 알아요. 경기는 잘하는 날도 있고 못하는 날도 있을 텐데, 잘하는 경기를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라며 의욕을 내비쳤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일까. 개막전에서 송명근은 22점을 올렸지만 김세진 감독으로부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라는 혹평을 들어야했다. “저도 모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많았나봅니다. 무리한 행동들을 많이 해서 어려운 경기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오랜 기간 최강으로 군림해오던 삼성화재가 무너지며 이제 남자배구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OK저축은행이 과연 2연패를 거둘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우승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에요. 개인 목표는 범실을 줄이고 싶어요. 요즘 시몬도 범실을 잘 안하고 있는데 제가 많이 하고 있어요(웃음). ”
Epilogue
나는야 파이팅男
어렸을 때는 대단히 소심한 편이었단다. 요즘 코트 위에서 보이는 활력 넘치는 모습은 스스로도 상상이 안 간다. “중·고 때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이 파이팅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셨어요. 그 때는 형식적으로 하기는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안하면 재미가 없어요. 소리 안 지르면 흥이 안 나서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흥나게 하려고 더 뛰어다니고, 팔 돌리면서 뛰어다니고 그래요.”
젊은 선수답게 어떠한 질문에도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내놨다. 팀 내 인기순위를 묻자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며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외모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것 같아요. 절대 다섯 손가락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웃음).”
팬들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면 그 힘을 얻어 더 잘하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거니까 잘하겠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뒷이야기" 내 라이벌은 전광인?
광인이 형은 정말 배구 잘하죠. 서브나 블로킹, 수비, 공격 모두 잘하고 있어서 정말 부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교 때는 사실 직접적으로 선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어요. 학교이름으로 많이 언급이 됐죠. ‘경기대 삼형제 대 전광인’ 이런 식이었죠. 개인적으로 광인이 형이 뛰어납니다. 그래도 팀으로 봤을 때는 저희가 많이 이겼어요. 우승을 많이 해서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냈죠(웃음). 지난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신영철 감독님이 하신 말씀을 저도 들었어요. 그 때 TV로 보고 있었거든요. (신영철 감독은 미디어데이 당시 “전광인이 송명근보다 낫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런 말을 들으니까 은근 승부욕이 타올랐죠. 그래서 ‘좀 더 강하게 마음먹자’라고 생각 했어요. 그 말씀 덕분에 제가 잘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는 플레이오프 때는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 사진 :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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