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 번째 역경 딛고 여자배구 아이콘으로' 흥국생명 이재영

권민현 / 기사승인 : 2015-11-28 2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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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권민현 기자] 스파이크를 할 때면,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상체가 휘어지며 공을 때린다.
그 공은 가로막는 이들을 뒤로 한 채 상대 코트에 그대로 내리꽂힌다. 소리를 들어보면 너무 경쾌하게 들린 나머지 막혔던 가슴이 ‘뻥’하고 뚫린다. 이렇듯 스파이크를 팡팡 때리던 그녀는 지금, 유망주에서 프로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더 스파이크가 창간호 표지인물로 선정한 흥국생명 주포 이재영이다.



※ 본 기사는 배구전문잡지 더스파이크 11월호에 실린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약관 20살. 프로무대에 입성한지 이제 2년차다. 고등학교 때에는 우승을 밥먹듯이 했고, 프로리그에 들어서자마자 메인 공격수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뭐, 18살 때부터 성인국가대표에 선발됐을 정도였으니 덧붙일 말이 필요 없다.

인기도 많다. 그녀가 때리는 호쾌한 강타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팬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쌍둥이 동생 이다영(20, 현대건설)과 생애 처음 상대편으로 만난 날, 여자배구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팬들 뇌리 속에 박혔다. 스스로도 “그 이야기 들었어요. 팬들이 많이 좋아해주신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팀이 져서…”라며 기뻐하면서도 아쉬움을 애써 삼켰다(지난해 11월 26일 현대건설과의 2라운드 경기였다. 당시 이재영은 24점에 40.4% 성공률을 기록했지만, 흥국생명은 현대건설에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했다).

지금 ‘이재영’이라는 스타가 만들어지기까진 순탄하진 않았다. 매번 잘하기만 했다면 스스로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그저 밋밋한 선수가 됐을 것이다. 마치 드라마, 영화에서 주인공이 잘나가기만 한다면 인기가 없듯이…. 신기한 건 본인에게 닥친 3번 위기가 2년래에 몰린 것이다. 어떻게 그 위기들을 스스로 이겨냈을까? 궁금했다.

'첫 번째 역경을 딛고' 부상 그리고 팬의 선물
문득, 왜 배구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다니며 노는 걸 좋아했어요. 엄마가 배구선수라서 자연스럽게 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배구를 안 했으면 아마 농구나 육상을 하려고 했어요”라며 무심하게 말했다. 키도 처음에는 작았다. 중학교 3학년 돼서야 170cm 후반대로 성장하니 공격수 노릇 하기 딱 좋았다. 진주 선명여고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 언제나 쌍둥이 동생의 세트를 받고 마무리를 도맡았다. 그렇게 팡팡 때릴 때쯤, 저 멀리 런던올림픽에서 언니들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최고성적인 4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걸 보고서 ‘언젠가 훌륭한 배구선수가 되어야겠다’며 되뇌었다.

2013년 7월.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에 출전할 대표팀 예비명단이 공개됐다. 그 속에 ‘이재영’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청소년대표팀이 아닌 성인국가대표팀에. 그때 기분에 대해 “진짜 떨렸어요. 항상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꿈꿔왔는걸요. 막상 뽑히고 나니까 (이)다영이랑 정말 많이 기뻤고 설레었어요. 그냥 무작정 좋았어요”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태국에 도착한지 이틀째 되던 날, 왼쪽 무릎이 너무 아팠다. 훈련도 제대로 할 수없었다. 동생은 훈련하고, 경기에 출전하는데, 정작 그녀는 코트에 서지도 못했다. 언니들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기만 했다. 스스로도 무척 힘들었다. 엄마가 “다치지만 말라, 그래야 선수생활 오래하니까. 지금은 몸 조심해라”며 신신당부를 했건만….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일정을 마친 뒤, 곧바로 열린 세계선수권 참가를 위해 하루만 쉬고 중국에 가야 했다. 하지만, 거기까진 함께하지 못했다. 뛰지 못할 정도로 무릎이 너무 좋지 않았다. 왼쪽 무릎 연골 손상. 수술을 받았고, 재활에 매진했다. 그때 “정말이지 배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어요. 너무 아팠어요. 많이 울었어요”라며 쓰라린 기억을 애써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해온 배구를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이듬해까지 재활에만 매진했다. 이 때 한 팬이 그녀에게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선물했다. 그 책은 힘든 재활훈련 속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문장이다. 항상 마음 속에 새겨놓고, 회복에 집중했다. 지난해 5월, 종별배구선수권을 통해 코트로 복귀,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참고 견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MVP에 선정된 것은 보너스. 첫 번째 역경을 이겨낸 그녀는 다시 한 번 인천아시안게임 예비엔트리에 포함됐다.




'두 번째 역경을 딛고' 부상 재발 그리고 신인드래프트 1순위
2014년 여름, U-19 여자대표팀에 선발, 주공격수로서 역할을 다하며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14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서도 마찬가지. 태국전 15점, 독일전 18점을 기록하며 ‘여제’ 김연경과 함께 팀 승리에 공헌, 2013년 아쉬움을 맘껏 풀었다. 세간의 관심도 김연경과 함께 ‘여자배구대표팀 미래’라며 쌍둥이 자매에 집중했다.

순조롭기만 하면 감동은 덜하기 마련. 드라마 주인공 마냥,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이유는 늘 부상. 적응훈련 도중 왼쪽 발목을 접질렀다. 이번에는 한창 잘나가던 상황에서 일어났다. 스스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회복속도가 빨랐다. AVC(아시아배구연맹)컵에 출전할 수 있었고,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했다.

지난해 9월 11일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하루 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2014 프로배구 여자신인 드래프트 현장. 1순위 선발권을 얻은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망설임없이 ‘이재영’이 적힌 명패를 들어올렸다. 드래프트 때는 선택받은 선수와 감독이 같이 사진을 찍기 마련이지만, 박 감독 혼자 사진을 찍었다. 그녀가 AVC컵 출전으로 인해 드래프트 현장에 자리하지 못했기 때문.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그것도 1순위잖아요!”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것도 잠시, 카자흐스탄과 준결승전에서 3세트 중반 공격을 하고 착지를 하다 상대 블로커 발을 밟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공교롭게 그해 8월에 다친 부위와 같은 곳이었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던 터여서 속은 더욱 쓰렸다. 대회 도중엔 훈련도, 경기도 뛰지 못한 상황에서 남몰래 눈물만 흘렸다. 금메달을 획득했고, 시상식이 끝난 후 펑펑 울었다. 그래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의젓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두 번째 역경을 이겨낸 그녀에게 프로무대에서의 새 출발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 번째 역경을 딛고' 성공 뒤에 찾아온 슬럼프 그리고 프로리그 신인왕
지난해 10월 19일, GS칼텍스와 경기에서 프로무대에 첫 선을 보였다. ‘아시안게임때 다쳤던 부상이 다 나았을까? 후유증은 없었나?’에 대해 생각해볼 법 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경기에 집중했다. 경기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번 교체도 없었다. 5세트까지 갔음에도 말이다. 그녀는 “그때 뛰었을 때 아픈 건 모르겠더라고요. 하던 대로 점프하고 때렸는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어요”라며 데뷔 당시를 회상했다.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 출전, 고교무대 마지막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했다.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어요. 더구나 친구들과 함께 한 마지막 대회였기 때문에 그 기쁨이 무척 컸죠.” 다시 프로리그, 11월 9일 KGC인삼공사 전에선 16점에 75% 성공률을 기록했고, 동생과 첫 대결을 가진 26일 현대건설과 경기엔 24점을 기록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순탄하기만 한 루키 시즌일 것 같았지만, 3라운드 들어 급작스럽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다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심리적 문제였다. 성공만 느끼다 실패를 맛봤다. 만회하려는 욕심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몸에 힘이 들어갔다. 부담감에 힘들어했다. 박 감독과 면담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박 감독은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마라. 언니들을 믿어라. 넌 예전처럼 편안하게, 자신감 있게 해라!”라며 힘을 실어줬다.

팀 동료들도 “부담 가지지 마라. 그냥 하던 대로 해라”며 이야기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어요. 감독님이나 언니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팀 동료들을 향해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이전까진 본인에게 닥친 위기를 혼자서 해결했다면, 이번엔 ‘모두’와 함께 해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슬럼프에서 탈출한 순간, 그녀는 프로리그 신인상을 받았고 스타가 됐으며 여자배구 아이콘으로 자리했다.

이재영은 이제 프로무대 2년차다. 첫 경기에서 개인최다 32점에 51.6% 성공률을 기록하며 쾌조의 컨디션을 뽐냈다. 박미희 감독도 “플레이에 여유가 생겼다. 2년차 징크스에 따른 부담보다는 그냥 즐기면서 하는 모습이 좋았다”며 칭찬했다.

“그냥 팀에 도움이 많이 되고 싶어요. 올 시즌이 저에겐 너무 중요해요. 이기고 싶은 욕심에 언니들하고도 이야기를 많이 해요.”

망고를 너무나 좋아하고, 솔직히 동생보다 조금 이쁘다고 수줍게 말하는 그녀. 머릿속엔 온통 배구생각만 가득하다. 단발머리를 유지하는 것도 머리를 기르면 묶어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배구하기 편하다는 이유다. 평생 배구만 할 것 같은 그녀. V-리그 아이콘이 아닌, 세계를 대표하는 스타, 세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 사진 :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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