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메리 크리스마스

권민현 / 기사승인 : 2016-01-04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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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이호근 KBS N SPORTS 아나운서] 거리엔 캐롤 음악이 흐르고, 나무를 감싸는 알록달록한 조명은 추위에 움츠러든 사람들 마음을 부드럽고 온화하게 만든다. 사랑스러운 눈빛을 주고받는 커플들과 행복한 웃음소리로 가득한 아이들. 이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크리스마스다. 물론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을 외치며, 외로움에 방황하는 청춘들도 있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그게 뭐 어쨌다고!
배구 선수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리 친근한 날이 아니다. 가을에 시즌을 시작해 봄까지 이어지는 종목의 특성상, 겨울은 선수들에게 가장 바쁘고도 치열한 계절이다.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따뜻한 봄 배구를 맞이할 수도 있고, 얼음장처럼 차갑고 싸늘하게 시즌을 빨리 마감할 수도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에 V-리그는 3~4라운드 즈음을 지나칠 시점이어서, 팀들로서는 가장 예민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구 팬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매년 크리스마스엔 소위 ‘빅매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엔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그 전 해에는 삼성화재와 대한항공 경기가 열렸다. 팀들에게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맞대결이 성사되다보니 크리스마스 경기는 항상 뜨겁고 치열했다.

그러나 선수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날임엔 분명하다. 배구 선수들을 포함해, 중계하는 아나운서들과 배구 관계자들까지. 그들은 이 바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뭉치자!”, “일하자!” 북적여야 잊을 수 있어ㅠㅠ
크리스마스를 달콤하게 보내고 싶지만, 함께 보낼 연인이 없다면? 절망적이다. 그러나 침대에 가만히 누워 시간을 보낸다면, 시계는 멈춘 듯 느리게 갈 것이며 마음 속 좌절감은 커져만 갈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 팀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니또’ 행사를 한다. 1~2주 동안 자신에게 배정된(?) 선수를 티나지 않게 알뜰살뜰히 챙겨주고, 크리스마스에 마니또를 공개한 뒤, 선물을 교환하며 친목을 다진다. 신인부터 고참 선수까지,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구단의 배려다.

한송이(GS칼텍스)와 이효희(한국도로공사)는 이른바 ‘김연경 모임’을 갖는다. 크리스마스에 휴식기를 갖는 터키리그. 이 기간 동안 경기가 없는 김연경(페네르바체)은 보통 한국에 머물며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김연경을 중심으로, 여자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데 모여 서로 안부를 묻는 소박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한다.

프로배구연맹(KOVO) 이헌우 과장은 크리스마스란 단어에도 깊은 한숨을 내쉰다. 크리스마스엔 매년 출장으로 경기장에서 일을 한다는 그는, 직접 심경(?)을 이야기했다.

“크리스마스엔 항상 경기가 있어요. 누군가는 경기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새파랗게 어린 후배도 짝이 있더라고요. 막내 때야 그러려니 하고 갔는데, 이젠 혼자서 할 게 없어 경기장에 가요.”

내년 크리스마스엔 배구장에 가는 대신, 연인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이헌우 과장. 그는 자신을 위한 소개팅 제의를 기다리고 있다.

“대신 장난은 치지 마세요. 장난칠만큼 제 마음은 여유롭지 않아요.”



“있으면 뭐해.” 그리움 가득한 견우와 직녀
배구 선수들도 연애를 한다. 그러나 운동선수 삶이 평범하진 않기에, 상대방의 인내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특히 시즌 중엔 기념일은 커녕 한 달에 1~2번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기에, 운동선수 연인들은 대부분 너그러운 성품을 지니고 있다.

여자친구와 꽤 오랜 기간 연애를 하고 있는 최홍석(우리카드)과 한상길(OK저축은행). 두 선수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 쉬거나 외출을 한 기억도 별로 없기 때문.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감정보단,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한다.

새색시가 된 오지영(한국도로공사)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남편과 연애한 지난 5년 동안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은 없다. 잠깐 주어지는 외출에 밥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다는 그녀. 그러나 만약 올해 시간이 허락된다면, 남편과 크리스마스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처럼 연인들을 자주 볼 수 없기에 더 애틋한 선수들의 크리스마스. 선수들은 때때로 견우와 직녀 같은 모습도 보인다. 은퇴한 모 선수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크리스마스 밤 숙소를 찾았다. 그러나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상황. 그에겐 오작교가 없었다. 결국 멀지만 그녀가 창문에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서서, 홀로 외로운 이벤트를 진행(?)하고 쓸쓸히 떠났다고 한다.



결혼은 천천히…아이 선물은 반드시!
배구 캐스터 신승준 아나운서는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열변을 토했다. 크리스마스에 쉰 적 없이 방송을 해왔다는 그는, 오전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면, 항상 중계를 위해 서울역으로 향해야 했다. 언젠가 부인을 위해 김동률 콘서트를 예매했지만, 경기 중계로 콘서트를 취소하고 며칠 동안 부인 눈치를 봐야만 했다고 한다.

현대건설 양철호 감독은 평소 가정적인 남편으로 유명하다. 바쁜 와중에도 집 청소와 설거지를 도와준단다. 그런 그도 크리스마스엔 로맨틱하지 못했다. 아이들 선물을 챙기긴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계획을 묻자, 한참 남았다며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양 감독. 분명 부인과 아이들에게 혼날 것 같다.

여자배구의 큰언니 장소연(한국도로공사)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소녀같은 모습을 보였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설레고 들뜬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경기가 겹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예전엔 남편과 근사한 외식을 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딸을 낳고나선 모든 것이 변했다.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크리스마스에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을 알아보고 예매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무리 바빠도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남편과 꼭 각자 준비해둔다. 그래도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해, 딸에게 늘 미안하다. 올해는 딸과 함께 꼭 교회도 가고,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도 열어주고 싶다.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더 좋아지는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모태솔로인가? 뭐 완벽한 연인이 있거나 기혼자일지라도 상관없다. 매년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은 같을 테니까. 웬만한 식당은 이미 예약이 찼으며, 근사한 레스토랑은 한 끼 식사치곤 너무 비싸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행하기엔 조금 벅차고,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본인 자신도 감동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번 크리스마스엔 고민이 사라질 듯하다. 오글거리고 식상한 광고문구 같지만, 배구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 12월 25일, 2015~2016 V-리그 올스타전이 천안에서 열린다. 각 팀 선수들도, 이 날이 아니면 한 자리에 모두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

단순히 배구만 보러간다고 생각지 말자. 천안 시민이 아니라면, 짧은 거리라도 기차를 타며 분위기를 내도 좋고, 가족을 위해 호두과자(Made in 천안) 한 상자를 사도 좋다. V-리그 올스타전과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고 싶은가. 천안으로 오라. (p.s. 나는 약속이 있어도 올스타전에 가야 한다.)



# 사진 : 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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