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오효주 KBS N 아나운서] 최홍석의 프로생활은 유난히 부침이 많았다. 배구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배구 외적인 부분이 그를 흔들어댔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최홍석 역시 힘들었다.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라는 노래가사처럼 그의 배구인생에도 해뜰 날이 찾아왔다. 이제 5년차지만 누구보다 사연 많은 이 남자. 그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대한항공을 상대로 첫 승(10월 21일)을 신고했어요. 기대보다 승리 소식이 조금 늦은 듯해요. 어떤 부분이 안 풀렸던 건가요?
초반 3연패했을 때요? 잡을 수 있는 경기도 있었는데 놓쳤죠. 그 다음 상대가 대한항공이었고, 지난 시즌 그나마 대한항공한테 2승을 거뒀던 터라 자신감이 있었어요. 경기장도 선수들이 좋아하는 계양체육관이었고. 그 경기에서 이겨서 분위기가 쇄신 됐어요. 아마 그 때 이기지 못했다면 작년처럼 연패가 더 길어졌을 거에요.
그 후 OK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상승세 팀들을 잡았어요. 보는 사람으로서는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선수들은 어떤가요?
상위권 팀들을 만나면 준비한 게 잘 됐어요. 이상하리만큼 안 되고 있다가도 연습했던 것들이 잘 나오니 재밌게, 좋은 경기를 했어요. 그런데 다른 경기에서는 준비했던 것들이 안 나오니 힘든 경기를 했죠.
유독 풀세트까지 가는 경기들이 많았는데 힘들지 않나요? (11월 19일 기준 우리카드는 10경기 중 6경기나 풀세트를 치렀다)
힘들죠. 올 시즌에는 유난히 5세트 경기가 많았어요. 그래도 풀세트에 가면 자신감이 있어요. 소극적, 방어적 배구보다는 공격적으로 우리가 더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지난 시즌과 올 시즌을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체적으로 많이 바뀌었죠. 작년에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운동을 했고, 선수들이 육체적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어요. 올 시즌은 안정된 생활 속에서 준비를 하니 많은 게 달라졌어요. 심리적으로 부담 없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오히려 KOVO컵 우승으로 새로운 부담감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싶은데. 성적에 대한 주위 시선도 달라졌을 테고요.
성적 부담감은 크게 없어요. 지난 시즌 저희가 잘했던 팀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성적을 내야지, 우승을 해야지’같은 부담감 속에서 시즌을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확실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성적은 따라오지 않을까요.
프로생활을 하면서 팀 운영 자체가 안정적이었을 때가 없었어요. 프로선수로서 누려야 할 것들을 많이 못 누렸는데 속상하거나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제가 처음 입단했을 당시에도 모기업이 없는 상태였어요. 선수들이 “우리가 해야 된다. 지금 상황이 힘들지만 우리가 해내지 못하면 더 좋은 환경은 기대할 수 없다”고 얘기하면서 똘똘 뭉쳤어요. 그런데 불안한 상황이 반복되니까 나중에는 지치더라고요. 운동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미래를 걱정하고 내일이라도 당장 팀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3~4년 운동해왔죠. 그런 부분들이 힘들었죠 솔직히.
선수들끼리 불안한 상황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나요?
진짜 많이 했죠. 경기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우리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가 잘해도 뭐가 있을까? 시즌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었어요.
운동에서는 심리적인 부분도 크잖아요.
그냥 분위기 자체가 암울했어요. 시즌이 끝나도 문제였죠. 끝남과 동시에 저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해체설이 나왔다가 다시 번복되고. 완전 패닉이었어요. 무엇보다 제일 걱정됐던 건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잖아요. 상황에 따라서는 운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되는 선수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참 그랬어요.
제가 다 속상하네요.
마음이 안 잡히더라고요 다들. 첫 시즌에는 선수들이 의욕 있었어요. ‘하면 된다’ 생각하고 열심히 했었죠. 그런데 모기업이 인수가 된다는 얘기만 매 시즌 똑같이 흘러나오니까…. 나중에는 ‘결국 우리는 안 되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난 시즌은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다 돈 많이 벌어서 인수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로또 해서 우리가 인수하자고(웃음). 만수르한테 트위터를 보내자는 얘기까지도 했어요. 진짜 별의별 얘기들을 다했죠.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거예요.
그래도 올시즌은 행복하게 시작했어요.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도 생겼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있죠. 작년보다 팀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배려해주시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어요. 행복하죠. 지난 시즌에는 팀이 해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지금은 그런 걱정 없이 운동만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하게 운동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성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지난 시즌 우리카드의 최종 성적표는 3승 33패. 하지만 2라운드가 한창인 지금 우리카드는 이미 3승을 거뒀다)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페이스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승수를 더 보탤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친 부분은 아쉬워요. 라운드가 지날수록 더 좋은 모습, 더 좋은 경기 보여드릴 각오입니다.
최홍석 선수는 책임감이 다른 시즌과는 다를 것 같아요.
올 시즌은 유난히 책임감이 느껴지는 시즌이에요. 감독님께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코트에서도 더 때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거기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선수들도 믿어주고 있고요. 다른 시즌에 비해 책임감을 막중히 느끼고 있죠.
군다스 선수가 합류했지만 기복이 있어요. 그로 인한 부담감은 없나요?
저는 많이 때리고 싶어요. 공격수 욕심인가(웃음). 득점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저한테 볼이 오면 부담이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기분 좋게 해요. 군다스가 잘 안될 때 제가 해주며 서로 도와주고 있어요.
신인 나경복 선수도 합류했어요. 선의의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일단 경복이가 들어와서 좋은 점이 있어요. 제가 페이스가 흔들리면 언제든 경복이가 들어와서 보완해줄 수 있잖아요. 저나 경복이나 코트에 들어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감독님이 무섭다고 하는데 맞나요?
감독님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웃음). 감독님이 잘해주세요. 무섭다기보다는 카리스마 있어요.
감독으로 오기 전과 실제 감독으로서 김상우 감독은 어떤가요?
선수시절 감독님은 잘했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해설위원이었을 때는 말씀을 잘하시더라고요. 지금 감독님 모습도 별반 다른 건 없어요. 말씀도 잘하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세요. 한마디로 감독님은 근엄하고 말 잘하고 카리스마 있어요.
이제 장충체육관 얘기를 해볼까요? 올 시즌 장충체육관에서 홈경기를 치를 때 아무래도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뭔가 새로웠어요. 체육관도 많이 바뀌었고요. ‘여기가 내가 있었던 장충이 맞나’싶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서울 연고를 가지고 장충체육관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뜻 깊었어요. 그래서 첫 경기는 꼭 이기고 싶었는데… 비록 첫 경기는 이기지 못했지만 요즘은 홈경기에서 이기고 있어 좋아요.
족발은 많이 먹어요?(웃음)
좋아는 하는데 먹을 시간이 없네요. 안 사주시던데(웃음). (그럼 뭘 먹어요?) 국밥먹어요. 경기 끝나고 나면 힘드니깐 많이 안 먹기도 하고 빨리 먹고 다들 숙소에서 쉬고 싶죠.
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4학년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배구부가 창단됐어요. 선생님들이 반을 돌아다니면서 애들을 모았어요. 저에게도 선생님이 방과 후에 체육관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재미로 시작하게 됐죠. 그 때 한 30명 정도 모였던 것 같아요. 아! 창단멤버 중에 곽승석 선수(현 대한항공)도 있어요. 유일하게 프로에 2명 와있죠(웃음).
보통은 공부 싫어하는 애들을 데려가지 않나요?(웃음)
공부 잘하고 키 큰 애들?(웃음) 키가 컸던 편은 아닌데 반에서 그나마 큰 편이었어요.
학창시절 어떤 선수였는지 궁금해요.
운동 하는 걸 좋아해서 배구를 하지 않았어도 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전에 태권도를 했어요. 태권도 선수가 돼야지 하던 찰나에 배구도 하게 됐죠. 졸업할 당시에 배구를 그만뒀는데 중학교 때 다시 배구를 시작했어요. 배구를 다시 안 했다면 태권도를 했을 거에요. 그 때 관장님도 “너는 중학교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말해주셨죠. 겨루기 하는 걸 좋아해서 태권도를 재밌게 했어요. 그런데 결국 배구 쪽으로 진학하게 됐죠.
그 때 성격은 어땠어요?
활발했어요. 몸으로 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동네에서도 막 뛰어다니고. 쾌활하고 활발했어요.
공부는 잘했나요?(웃음)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놓지 않았어요. 학원도 다녔어요. 과학 선생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너 왜 운동하냐”고요. 승석이도 공부 잘했죠. 전교 50-60등 안에는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만이요. 2학년 올라가면서 공부랑 멀어졌어요(웃음). 고등학교 때는 수업에 거의 못 들어갔죠. 그래도 대학 때 우수 학업 성취 학생 상도 받았어요(웃음). 이번에 석사 졸업도 했어요. (공부에 뜻이 있었네요) 없지는 않았습니다.
배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어요?
진심으로 ‘포기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학창시절 때는 내가 이걸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집에 힘이 되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꼭 배구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요?
그 당시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배구였으니까요. 그래서 이걸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국가대표 얘기를 살짝 해볼까요? 처음 발탁되던 때 기억하세요?
거기에 대해서는 아픔이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됐어요. 그런데 하필 명단이 발표된 날, 다쳤어요. 속초에서 연습경기를 하다가 발목을 다쳤는데 크게 다쳤죠. 그래도 일단 합류는 했는데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태라 3일 만에 바로 나왔어요. 진짜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국가대표였는데…. 상실감이 엄청 컸어요. 그래서 1년 뒤에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 정말 좋았어요. ‘내가 그토록 원했던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는 날이 왔구나’ 감격스러웠죠.
처음 국가대표로서 느낌을 잊을 수 없겠어요.
배구를 시작할 때부터 국가대표가 꿈이었어요. 설레었죠. ‘이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서 이때까지 했나’싶었죠. 자부심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라는 꿈도 이루고 1순위로도 선발되셨잖아요. 앞으로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은퇴하기 전까지 우승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정규리그 우승도 그렇고 챔피언 결정전에 가서 챔피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올림픽 무대에 나가는 거요! 이번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가 보고 싶었는데…. 잘 안돼서 아쉬워요. 올림픽 무대 역시 은퇴하기 전까지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냥 최홍석 자신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여러 가지가 있죠. 행복한 가정도 꾸리고 싶고 지도자로서 가르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학업을 좀 더 신경 써서 강단에 서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제가 욕심이 많아서 이 것 저 것 다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최홍석에게 우리카드란?
음…가족이다!(웃음)
# 정리 : 정고은 기자
# 사진 :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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