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정고은 기자] MVP를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슬럼프도 겪었다. 그 시간들은 황연주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본인은 힘든 걸 잘 참는다고, 멘탈이 좋은 ‘척’하는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분명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강함은 다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이 글은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개재된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Prologue
기록의 여왕, 다시 한 번 기록을 세우다
지난 11월 11일, 황연주는 여자부 최초로 공격 득점 3,500점을 돌파했다. 하지만 경기 종료 후 인터뷰실에서 만난 황연주는 생각보다 표정이 덤덤했다. “기록 달성 때마다 나이 먹는 기분이에요. 처음이라는 거에 자부심을 가지고 싶어요. 더 열심히 해서 많은 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기록 달성 후 남긴 말이다.
그녀가 최초로 달성한 기록은 여러 가지. 그 발자취는 단순히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록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지만 ‘첫번째 달성자’라는 타이틀은 변하지 않는 법. “솔직히 개인기록에는 신경쓰지 않아요.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기록은 따라오게 되는 거죠. 아직까지 (최초라는 것이)많이 와 닿지는 않아요. 나중에 제가 은퇴하고 다른 선수들이 제 기록을 넘어서면서 2호, 3호가 나오게 되면 그 때 실감 날 것 같아요. 그러면 1호가 저라는 것도 나오게 되는 거잖아요.”
문득 궁금해졌다. 백어택 900점, 서브 에이스 350점, 득점 4,000점 등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이 있을까.
“다 좋아요. 그런데 트리플 크라운은 국내선수가 많이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애착이 있어요. 서브 기록도 어릴 때부터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남들이 다 하는 득점이 아닌 많이 하지 않는 분야에 좀 더 애착이 가요. 백어택 900점도 그런 의미에서 애착이 있죠.”
어느 기록 하나를 쉽게 꼭 집어 얘기하지 못했다. 그럴 것이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열심히 해왔다는 결과물. 당연히 모든 기록에 애착이 갈 수 밖에 없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됐다.
V-리그 역사가 되기까지
어린 시절 키가 크고 운동하는 걸 좋아했다던 황연주. 그녀에게 어쩌면 배구는 운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배구를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에요. 키 크고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권유를 받았어요. 그래서 ‘배구? 한번 해볼까?’ 하게 됐죠.” 그렇게 시작하게 된 배구가 이제는 인생이 됐다.
어린 시절 그녀는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별로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프로에 오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죠.” 프로 첫 해부터 서브상과 백어택상을 수상하며 신인왕에 올랐던 그녀이기에 다소 의외였다. 자신이 프로에 와서 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지도자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었다. 공격수로는 다소 작은 신장 177cm. 그래서 프로무대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터득했다.
“제자리에 서서 공을 기다린다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을 때리려고 했어요. 한 발 더 뛰는 플레이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죠. 그런데 저 혼자 잘했다고 된 건 아니에요. 주위에서도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그런 플레이가 가능했겠죠.”
여기에 이미지 트레이닝도 한 몫 했다. “솔직히 몸이 좋은 편은 아니라 남다르게 개인 운동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개인 훈련 때는 수 차례 점프를 반복하는데 무릎 부상의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미지 트레이닝 때만큼은 제가 최고라는 생각으로(웃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상황을 가정해요. 예를 들어 지금 앞에 수비가 있고 어느 쪽이 비어있다 등을 떠올린 뒤 훈련 때 시도해보죠. 생각 없이 공을 때리는 게 아니라 이미지 트레이닝 했던 대로 앞에 블로커가 있다고 가정하고 여기도 때려보고 저기도 때려보고 합니다. 많은 도움이 됐어요.”
2005년 프로배구가 출범되던 해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녀. 그 해 프로팀에 지명됐던 22명 1986년생 중 지금까지 코트에 남아 있는 사람은 단 둘, 황연주와 임명옥(도로공사) 뿐이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배구를 오래 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단지 오래 남아 있는 선수는 아니다. 기록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부질없을 만큼 V-리그에서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기록의 여왕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그녀는 무수히 많은 땀방울을 흘려왔다.
화려했던 전성기, 그 후에 찾아온 슬럼프
올해로 프로 12년차를 맞았다. 배구 인생에 있어 최고 시즌은 언제였을까.
“통합우승했던 2010~2011시즌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처음으로 팀을 옮겼고, MVP를 수상했던 시즌이었으니까요.”
그 해 현대건설은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피언 결정전에서 흥국생명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황연주는 챔피언 결정전 내내 활약을 펼치며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힘이 됐다. MVP는 그녀 차지였다. 앞서 그 해 정규리그 MVP, 올스타전 MVP까지 거머쥐어 최고 전성기를 뽐냈다. 2010~2011시즌을 최고로 꼽은 것은 당연했다. 다음해인 2011~2012시즌도 현대건설은 비록 정규리그에서는 3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전에 아슬아슬하게 탑승했지만 준우승을 거두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팀도 황연주도 언제까지나 승승장구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에게 햇빛이 찾아 들지 않았다. 지독한 어둠만이 있었다. 핑계 대지 않았다. 약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다섯 차례나 수술 받아야 했던 무릎도 그저 핑계거리일 뿐이었다.
“부상은 항상 달고 있는 거니까 핑계가 될 수는 없는 거죠. 어떤 이유를 대 봤자 다 핑계만 되는 것 같아요. 잘하다가 언제 슬럼프에 빠지게 될지는 모르는 거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 선수는 없어요. 저 또한 그랬어요.”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힘든 시간이었음은 분명했다.
“많이 힘들었어요”라며 입을 뗀다. 오히려 그럴수록 마음을 더 채찍질했다. “배구 인생이 몇 년인데요. (배구를)안 한 시기보다 한 시기가 더 길잖아요. 1~2년 못한다고 해서 그만 둘 수는 없었어요. 제 직업이기도 하고. 앞으로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누구나 다 겪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슬럼프 때문에 좌절해서 그만둬야겠다, 못하겠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꽃사슴이 돌아왔다
마침내 2014~2015시즌 그녀가 돌아왔다. 모두가 기다려왔던 ‘황연주’ 본래 모습으로. 자기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주위 도움이 컸다. “감독님도 그렇고 팀 선수들도 그렇고 많이 도와줬어요. 혼자 힘으로라면 못 했을 거예요.”
“감독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은 ‘네가 재기하기를 바라고 있다’였어요. 감독님은 제가 믿고 따라가야 할 분이시잖아요. 그런 분이 저한테 말을 해주시니까 의욕을 얻었죠.” 고마움을 표했다.
여자배구 대표 스타, 황연주가 돌아오자 많은 언론들 역시 반겼다. 기사 제목에는 ‘제 2의 전성기, 부활’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이런 말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 했다. “조금만 못해도 많이 실망을 하실까 봐 걱정이에요. 선수는 잘했다 못했다 하기 마련이에요. 잘하고 있는 거에 많은 사람들이 기뻐해주시는 것은 좋지만 부담감은 있어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배구 인생의 최고 정점과 밑바닥을 모두 경험한 그녀이기에 세간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 아닌 부담이 됐을 수도.
그녀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토종 거포’라는 수식어 역시 황연주에게는 부담이 됐으리라. “제가 일부러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기대치보다 떨어진다면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더라도 최소한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인터뷰를 하면서 정신자세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멘탈이 좋은 척할 뿐이라며. “힘들 때도 많은데 참는 걸 잘해요. 지금 그만둔다고 생각했을 때 후회한다면 그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려고, 남들이 하는 말에는 신경 쓰지 말자고 하는데…. 척인 것 같아요.” 말로는 척이라고 하지만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강하고 굳센 마음이란 강한 믿음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배구선수로서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무엇보다 은퇴하기 전에 우승하고 싶어요. 우승을 맛본지 오래됐거든요(웃음). 다시 한 번 더 우승했을 때의 느낌을 받고 싶어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은 오래 뛰는 것이 목표에요. 현역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요.”
Epilogue
황연주에게 있어 배구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또 다른 인생을 살게 해준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배구를 안했으면 평범하게 살았겠죠. 남들이 황연주라는 이름을 몰랐을 거예요. 그냥 주위 친구들처럼 학교 다니고 직장 잡고 어쩌면 지금쯤은 결혼해서 애도 있을 수 있고. 그런데 배구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주시고 응원해주시잖아요. 또 TV에도 나와 보고 스포트라이트도 받아봤고요. 그런 의미에서 배구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해줬죠.”
'이런저런 시시콜콜' 황연주, 서른 즈음에
배구선수에게 배구이야기를 묻는 것은 당연한 법. 그래서 배구 이야기가 아닌 사소한 것들을 캐물어봤다. 이름 하여 황연주의 시시콜콜 이야기. 그 동안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그녀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현빈이 이상형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외모적인 부분에서 그런 거죠(웃음). 이상형은 부드러워 보이는 남자가 좋아요. 성격도 착한 사람 좋아해요. 제가 운동선수니까 아무래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외조를 하라는 건 아니에요. 제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랄까요. 이해심이 있었으면 해요. 외모는 예전에는 중요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평범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서른 즈음입니다. 20대와 30대 차이를 느끼나요?
큰 차이를 못 느껴요. 시즌이 끝나면 한 살 더 먹어있더라고요. 10년 넘게 그래왔기 때문에 30살이라고 기분이 크게 이상하다거나 그런 거는 없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30살이라고 놀리더라고요. 주위에서 신경을 쓰니까 괜히 저도 휩쓸리는 것 같아요. 이제는 30살을 넘어가니까 31살이든 32살이든 신경 안 쓸 것 같기는 해요.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나요?
팬들이 진짜 많이 챙겨주세요. 다 감사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제가 기록 달성을 한다거나 생일이 되면 팬 분들이 저희 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에게 도시락을 돌려요. 대표팀에도 2번이나 돌렸고요. 이번 제 생일 때도 대표팀에 떡이랑 식혜 등을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기록 달성을 하면 케이크에 제 사진을 박아서 주시기도 해요. 감사하죠. 주위에서도 부러워해요. 그러면 저는 ‘내 팬들이 이 정도야’하며 자부심을 느끼죠(웃음).
취미가 뭐예요?
사실 취미를 가질 시간이 없어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요(웃음). 요즘은 요리를 배우고 싶어요. TV에 요리 프로그램 많이 나오잖아요. TV에서 요리를 하면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맛일까? 내가 하면 저런 맛이 나올까?’ 궁금하잖아요. 요새는 요리를 취미로 삼고 싶어요.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주전부리로 젤리를 좋아해요. 운동하기 전에 달달한 거 먹을 때에도 초콜릿보다는 젤리나 캐러멜을 먹어요. 밥 종류는 다 잘 먹어요. 그런데 빨간 생선은 싫어해요. 예를 들면 연어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웃음). 그것 말고는 다 잘 먹는 편이에요. 빵, 떡도 다 잘 먹어요.
요리도 잘하시겠네요?
못하는 건 아니에요. 많이 안 해봐서 그렇죠. 이게 뭐가 부족한 거 같다 느끼니까 실패하지는 않아요. 간을 잘 보냐고요? 먹는 걸 좋아하니까요 (웃음).
# 사진 :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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