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정고은 기자] 송산고 시절부터 이름을 떨쳤던 황택의. 그 이름값은 그저 한 때의 반짝임은 아니었다. 그를 언급할라치면 하나같이 “좋은 선수다, 잘 지켜봐라” 같은 얘기 뿐이었다.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수원소재)내 기숙사 앞에서 만난 황택의는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요구하자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하냐며 쑥스러워 했다. 그렇게 어색함과 함께 사진촬영이 시작됐다. 하지만 적응이 된 걸까. 사진기자 요구에 맞춰 어느새 자연스레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대학생활 역시 그랬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캠퍼스 생활에 대해 기대가 많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 똑같더라고요. 별다른 건 없었어요.” 무엇이든 ‘처음’이 주는 기대감과 어색함은 있다. 그러나 황택의는 금세 그 분위기에 동화됐고 그 안에 자신을 녹여냈다. 인터뷰도 그랬다.
특급 유망주, 성균관대 주전 세터 되다
많은 대학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고등학교 전체 랭킹 1위로 평가받은 그는 관심대상이었다. 김상우 감독은 “스카우트하면서 가장 마음을 졸였던 선수가 세터 황택의였다. 고등학교 전체 랭킹 1위였고, 가장 뽑고 싶었던 최고 세터였다. 세터 가치로 봤을 때 공격수 2~3명을 줘도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탐이 났다”라고 기억한다.
그만큼 황택의는 매력적인 선수였다. 성균관대 품에 안긴 그는 입학하자마자 주전 세터 자리를 맡았다. 아무리 ‘특급 세터’라고 평가받지만 1학년이라면 응당 가질 수 있는 압박감. 게다가 주전 세터는 그에게도 역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초반에는 있었는데 계속 뛰다보니까 형들하고 잘 맞아서 괜찮았어요. 그런데 23세이하 대표팀에 다녀와서는 조금 부담이 됐죠. 대표팀 형들이랑 저희 학교 형들이랑은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그 스타일에 맞추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잘 맞지 않더라고요.” 세터이기에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상황. “아무리 1학년이라도 중요한 포지션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며 책임감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형들이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처음에는 ‘아, 이거 어떻게 하지’한 것도 있었어요. 그런데 형들이 다 믿고 하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힘든 건 없었어요. 형들이 잘해줘서 1학년을 잘 보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배 배인호(3년)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정신적으로 흔들렸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인호 형이 ‘너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지금 힘들어도 조금 참고 꾸준히 한 길로 가라’고 얘기해줬어요. 그 때 멘탈을 잡았어요.” 신선호 감독 역시 자신감을 심어줬다. “감독님이 항상 하시는 얘기인데 (제가)감독님이 생각하는 최고의 세터라고(웃음).”
어느새 1학년 생활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1년 시간을 되돌아봤다. “경기할 때 흥분을 잘한다”고 인정한 그는 마인드컨트롤면에서 부족함을 느꼈다고 했다. “정신적인 부분, 마인드컨트롤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
세터로 살아가는 법
세터지만 서브와 블로킹 역시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도 장점으로 블로킹을 꼽았다. “블로킹도 좀 해요. 대표팀에서 블로킹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 덕분에 눈이 트인 것 같아요. 공격수들이 어디로 때릴 것인지 방향이 보여요.” 그러나 자신 있었던 서브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원래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지만 요즘은 성공률이 떨어진다고. “서브도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게 하고 있어요”라며 “다시 때리려고 하니까 감이 떨어져 다시 연습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계속 스파이크 서브를 할 생각이에요”라고 웃어보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대답에 의외라고 느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수비가 제일 재밌다는 답변도 그중 하나. 만약 다른 포지션을 하게 된다면 리베로를 하고 싶다고. 공격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하고 싶기는 한데, 어색해서 하라고 해도 잘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세터가 편해요”라고 말했다. “저는 베푸는 게 (저한테)맞는 것 같아요. 경기할 때 저희 팀원들 도와주는 게 좋아요. 때리는 것보다는 받쳐주는 게 재밌거든요. 그래서 리베로가 재밌을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리베로가 더 재밌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가 세터를 맡게 된 건 작은 키 때문이었다. 그처럼 세터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황은 OK저축은행에서 뛰고 있는 이민규와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 역시 빠른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 그래서 그가 뽑은 최고의 파트너는 레프트 이시우(3년). “시우 형처럼 발이 빠르고 이동을 많이 하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제가 맞춰주기가 편하거든요. 그리고 시우 형이 때리는 스윙도 빨라요. 내년에 전관왕을 노리고 있습니다(웃음).” 이시우와의 호흡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문득 언젠가 그 역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이민규는 “원래는 빨리빨리 했었다. 그러다보니 컨트롤쪽으로 힘들다. 컨트롤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었다. 황에게서 들은 대답 역시 “어렵다”였다. 이어 그는 “빠른 거보다는 조금 느려도 공격수가 편하게 때려야 성공확률도 커지잖아요. 무조건 빠르게 준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세터라는 자리는 아무래도 플레이를 살리는 역할이기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닐 것.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쓸까. 대답은 자리선정이었다. “다리가 느려서 공이 다른 데로 튀어 가면 뛰어가기가 힘들어요. 자리를 잡아야 볼을 올릴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이유를 들어보자 수긍이 갔다. 그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발이 조금이 아니라 많이 느려요. 이런 부분들이 때로는 불리하기도 해요. 오버핸드로 세트 할 수 있는데 언더로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그는 느린 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는 “노력하는데 잘 안돼요. 늘 듯 늘 듯 하면서 안돼요. 지금은 더 느려졌을 것 같은데(웃음)”라며 머쓱해했다.
그를 향한 시선과 기대
그는 참 솔직했다. 애써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에 불과하지만 벌써부터 ‘차기 국가대표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평가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정작 그가 걱정하는 건 ‘감’이다. ‘감’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있다. “저는 섬세하게 공격수들한테 맞춰줘야 하는 포지션이잖아요. 제 감이 떨어지면 공격수들이 때릴 수가 없잖아요.” 주변 평가보다는 오직 자신의 실력과 감이 더 중요한 포인트다.
자신에게 향한 ‘천재형 세터, 타고난 세터’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잘할 때가 있으면 못할 때도 있는 거잖아요. ‘내가 잘할 때만 봤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에도 동료들은 그를 인정한다. 같이 대표팀을 다녀왔던 경기대 황경민은 “같은 1학년이지만 황택의 세터를 보면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대표팀(23세 이하)에서 같이 호흡을 맞췄었는데 ‘세터에 따라 팀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택의는 세트에 대한 높이도 다르고 서브도 좋아요. 딱 봐도 레벨이 다르구나고 느껴지죠. 그리고 평가 역시 앞으로 대표팀을 10년간 이끌어 갈 세터라고들 하시는데 제가 생각해도 가능성 있는 선수에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얘기를 황택의에게 전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경민이랑 대표팀에서 같이 했을 때 이상하게 올려줬었는데. 물론 일부러는 아니고요”라며 웃어보였다.
‘천재, 타고났다’는 평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법. 운동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운동에 있어 ‘타고난 것’들이 얼마나 축복인지. “타고나면 물론 좋겠죠. 그래도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소신있게 말했지만 그 역시 분명 타고났다. “홍익대 세터 (김)형진이 형(2년)은 개인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들어 개인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는 그지만 한층 더 노력했을 때 얼마만큼 성장해 있을지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때 친척 형이 살을 뺀다고 해서 같이 하게 된 배구. 그러나 그 때 황택의는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배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배구가 재밌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공부보다는 나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게 된 배구가 이제는 그의 청춘 전부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 됐다. 배구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청춘이라고 했다. 젊음을 배구와 함께 보내고 있는 그에게 배구는 청춘이었다.
"못다한 이야기" 황택의의 솔직한 발언들
그와 인터뷰 시간 약 40여분. 솔직한 그 답게 내용에 녹여낼 수 없었던 몇몇 재밌는 발언들이 있었다. 황택의의 솔직한 발언들을 따로 모아봤다.
U-23대표팀을 다녀와서 느낀 점이 있다면?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게, 쟤네 나이 속인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생긴 모습만 보면 아저씨같이 생겼거든요. 게다가 키도 크고 하니까 나이가 의심돼요(웃음).
김형진 선수가 라이벌?
형진이 형도 인터뷰해요?(기자: 아직 안했는데) 하면 형진이 형이 라이벌을 누구로 말하려나(웃음). 예전에 형진이 형이 먼저 저를 라이벌로 말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다른 인터뷰에서 형진이 형을 라이벌로 지목했었어요. 형진이 형 혼자 라이벌이라고 하면 그렇잖아요. 저도 맞춰 준거죠(웃음). 사실 형진이 형이 더 잘해요. 서로 친하기도 하고, 그러나 경쟁심리가 있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바보형제?
감독님이 2년 (이)원중이 형이랑 제가 운동하는 거 보고 바보같다고. 저희 둘이 서로 장난을 많이 치거든요. 그 모습이 바보같았나 봐요. 그래서 덤앤더머 같대요(웃음).
# 사진 :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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