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정고은 기자] 세터가 공중으로 띄어준 볼. 이윽고 공격수가 강하게 내려친다. 그런데 말입니다. 상대편 코트에 시원스레 꽂혀야 할 볼이 왜 우리 코트에 있죠?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바로 블로킹 때문. 아니 도대체 블로킹이 뭐길래! 그래서 준비했다. 블로킹, 그것이 알고 싶다.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개재된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블로킹이란?
가장 공격적인 수비 기술로 득점 확률이 가장 높다. 자세히 말하자면 상대 팀 공격에 의해 공이 네트를 넘어오려는 순간, 1명 이상 전위 선수들이 팔을 뻗어 막아내는 방어 기술이다. 블로킹은 손과 발, 그리고 눈으로 하는 고난도 기술이기도 하다. 세터 손에서 공이 떠나 스파이크로 연결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 1~1.5초. 그 사이 많은 것을 해야 한다. 우선 볼 흐름을 따라 5~6m 거리를 쫓아가야 한다. 이어 점프의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즉, 블로커들은 상대 공격을 읽어낸 후 빠르게 위치선정을 해 정확한 타이밍에 뛰어 올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볼을 막는 손 모양도 중요하다. 위치에 따라 손동작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 슬슬 감이 오지 않는가. 그럼 이제부터 블로킹 비밀을 하나하나 파헤쳐보자.
‘좋은’ 블로킹을 말하다
블로커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한다. 일단 공격수 위치에 맞춰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블로커에게 요구 되는 것은 순간 스피드. 순간 스피드가 빨라야 여유를 가지고 상대 공격에 대비할 수 있다. 점프 타이밍을 잡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상대 공격 패턴이나 높이에 따라 점프하는 타이밍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이드 블로킹을 하기 위해 달려오는 동료 선수들의 위치도 감안해야 한다.
머리싸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상대 세터의 볼 배급 패턴이나 공격수가 좋아하는 코스를 미리 알고 있어야 경기 상황에 따라 블로킹 코스와 패턴을 달리 할 수 있다. 그래서 블로킹은 키가 클수록 유리하기는 하지만 높이 뿐만 아니라 두뇌 역시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여기에 복근도 중요하다. 강력한 스파이크를 견디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 스파이크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복근이다. 다리 모양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선수들은 다리 모양으로 밸런스를 잡는다. 밸런스가 중요한 이유는 몸이 뜬 상태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블로킹 요소로 손 모양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어떤 손 모양이 좋은 모양일까.
이선규는 “손 모양은 양 손이 네트 상단에 있는 하얀 테에 최대한 가까이 스치듯 올라가는 게 좋은 블로킹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단순히 위로 올라가는 블로킹보다 공을 감싸듯이 네트 넘어로 블로킹이 되어야지 공격 볼 각도를 줄일 수 있고, 또 손에 맞았을 경우 상대편 코트에 직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단, 팔이 네트 위 백테에 닿을 경우 터치 네트 반칙으로 1점을 헌납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상대 주포를 막고 점수까지 얻는 블로킹. 그래서 블로킹은 빼앗길 점수에 오히려 점수를 보태니 2득점 효과가 있다.
그러니 묘미는 스파이크보다 스파이크를 잡는 블로킹에 있지는 않을까. 감독은 블로킹 득점이 가장 이뻐보일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블로킹 하나가 전체 경기흐름을 뒤바꾸는 경우도 많다.
남녀 최고 블로커는?
지난 11월 15일 이선규가 프로배구 최초 800블로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렸던 2015~2016시즌 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 1세트 막판 김요한이 때린 오픈 공격을 블로킹으로 막아내며 800블로킹을 달성했다.
현대캐피탈 때부터 블로킹에 있어 독보적 기량을 선보이며 이부문 단골 수상자였던 이선규. 2013년 삼성화재로 이적한 후에도 여전한 블로킹 능력을 선보이며 최고 센터로서 그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11월 18일 기준으로 블로킹 801개을 기록, 2위 윤봉우(710개)와 91개 격차를 보이며 독보적인 1위에 올라서 있다. 이선규만의 노하우가 있을까. 이선규는 “상대 선수들 공격패턴에 대해 영상을 보면서 분석하고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해 감을 잡는다. 그리고 센터들은 블로킹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연습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상대방 세트 플레이는 그 전에 영상을 보면서 이미 공부를 한다. 블로킹에는 사인들을 예측하고 세터와 ‘가위바위보’ 싸움을 한 다음에 이동하는 것도 있지만 세터가 세트하는 손모양을 보고 감각적으로 따라가는 블로킹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선수는 타점이 높아 블로킹을 하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고. “외국인선수들이 세계적인 선수들이기 때문에 타점이 높다. 국내선수들끼리 할 때는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다. 외국선수들은 타점이 높아서 그 부분에서 잡기가 힘들다. 어렵다.” 이선규는 블로킹 매력에 대해 “낚시를 할 때 월척을 잡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보면 블로킹을 할 때 손이 아파 보일 것이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 공격수들 공격을 막아낼 때 아픈 것보다 짜릿하고, 희열을 느낀다”고 전했다.
여자부에서는 양효진이 독보적이다. 지난 1월 10일 역대 최초로 700블로킹을 돌파한 그녀. 현재(11월 18일) 779개를 기록 중인 그녀는 2위 정대영(625개)과 무려 154개의 차이를 보이며 이 부분에서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도희 해설위원은 “폼이 깔끔하고 예뻐서 코스를 제대로 잡으면 걸린다”며 양효진을 높이 평가했다. 이숙자 해설위원 역시 “블로킹 뜨는 타이밍이나 손 모양이 예쁘게 올라 간다”고 말했다.
사실 양효진이 데뷔시즌부터 블로킹에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아니다. 2007~2008시즌 당시 세트당 블로킹 평균은 0.109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9~2010시즌을 시작으로 2014~2015시즌까지 6년 연속 블로킹상을 수상하며 블로킹의 여왕으로 거듭난 양효진이다. 올시즌 역시 세트당 블로킹 평균 0.895개로 이 부분 1위에 올라있다.
블로킹 Step by step
STEP.1 원 블로킹? 투 블로킹?
블로킹은 블로커 숫자에 따라 원 블로킹, 투 블로킹, 쓰리 블로킹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센터 블로커를 중심으로 좌우 날개 공격수들이 블로킹에 가담하는 투 블로킹이 일반적.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양한 블로킹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쓰리 블로킹은 자칫하면 자기 진영 수비에 구멍을 만들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커다란 담벼락처럼 보일 정도로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상대 블로커를 철저하게 따돌려야 하는 볼 배급이 세터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
따라서 세 명 블로커가 따라붙게 만든 세트라면 일단 실패했다고 봐야한다.
STEP.2 스텝도 중요하다
블로킹에서는 스텝도 중요한 기술. 사이드 스텝과 크로스 스텝으로 나뉜다.
사이드 스텝은 게 걸음처럼 옆으로 움직이는 스텝을 말하며 이동 거리가 짧을 때 사용한다.
크로스 스텝은 주로 센터가 사이드 블로킹에 가담할 때 발을 엇갈려 움직이는 스텝이지만 높이가 채 미치지 못하는 단신 블로커가 점프력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STEP.3 손 모양, 그 때 그 때 달라요
블로킹에서 손 모양은 공격 방향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정면에서 공격이 들어올 때는 팔과 손목을 앞으로 조금 기울여 공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한다.
좌·우 공격일 때는 팔과 손목을 코트 안쪽으로 틀어주어 블로킹 한 공이 상대 코트 안쪽으로 떨어지도록 방향을 잡는다.
또 블로킹으로 득점을 노릴 것인지, 아니면 바운드 시킬 것인가에 따라도 다르다.
배구 감독들이 좋은 블로커를 평가할 때 ‘손 모양’을 늘 거론할 만큼 손 모양은 블로킹에 있어 중요하다.
블로킹, 이것이 궁금하다
블로킹은 왜 오버네트가 아니죠?
배구는 경기 도중 선수 신체 일부분이 네트를 넘어 상대방 진영에서 공에 닿았을 경우, 이를 오버 네트(over net)라고 하며 반칙으로 간주해 상대에게 1점을 부여한다. 하지만 블로킹은? 블로킹을 하다보면 손이 상대 네트를 넘어갈 때가 있다. 그러나 블로킹은 오버 네트에 적용되지 않는다.
경기 규칙서에 따르면 ‘블로킹에 있어서 선수는 블로킹 동작이 상대편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네트를 넘어 손이나 팔이 네트를 넘어갈 수 있다. 따라서 상대팀이 공격타구를 실행할 때까지 네트를 넘어 볼을 접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스파이크 상황이 아닐 경우 팔이 네트 위를 넘어가면 블로킹으로 인정되지 않고 오버네트로 인정된다는 것은 기억하자.
블로킹에도 반칙이 있나요?
블로킹이 반칙으로 판정되는 경우는 블로커가 상대팀 공격 전이나 공격하는 순간 상대편 공간 안에서 볼을 접촉하는 것, 후위 선수나 리베로가 블록을 완료하거나 완료된 블로킹에 참가하는 것, 상대편 서비스를 블로킹하는 것, 블록한 볼이 아웃된 경우, 안테나 밖의 상대편 공간에서 볼을 블로킹하는 것, 리베로가 개인 또는 집단 블록을 시도하는 것이 있다.
유효블로킹은 뭐죠?
상대가 공격한 공의 속도와 각을 죽여 바운드 시켜 자기 팀에서 역공을 펼 수 있게 할 때를 일컫는다. 직접 득점에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수비를 도와 공격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효자 역할을 한다.
상대 공격을 무력화해 실점을 막고 공격득점을 보탤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플레이 중 하나다.
네트를 두고 공격수와 블로커 사이에 눈치게임?
공격수는 공격에 방해가 되는 블로킹이 따라 붙지 않으면 맹타를 휘두르지만, 어렵게 볼이 올라오거나 블로커가 따라붙을 때는 블로킹 터치아웃을 노리고 볼을 틀어 때리곤 한다.
이때 블로커는 블로킹하려 뻗은 손과 팔을 급하게 내린다. 그러면 스파이크한 볼은 허공을 가르며 저 멀리 날아간다. 그렇다고 이것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BOX] 블로킹 알고 싶다면 센터를 보라
블로킹,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지 않은가. 그래서 준비했다. 블로킹에 관련된 것이라면 다 알려주겠다. 이름 하여 블로킹의, 블로킹에 의한, 블로킹을 위한 이야기다.
블로킹은 의지다?
블로킹이 센터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블로킹을 많이 하는 포지션은 센터. ‘센터가 좋아야 경기운영이 쉬워진다’는 말이 있다. 센터의 주요역할 중 하나인 블로킹은 상대팀 공격을 제일 먼저 막는 수비인 동시에 점수가 나는 공격이다. 따라서 센터 자리가 잘 잡혀야 팀은 자신들만의 약속된 플레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또한 블로킹이 위협적이면 상대팀의 활동 반경이 줄어들어 경기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속공과 동시에 블로킹까지, 공수 모두를 해야 하기에 센터 역할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센터의 주 업무는 단연 블로킹. 하지만 요즘 센터들은 블로킹에 대해 덜 적극적인 것 같다고. 한양대 신춘삼 감독은 “요즘은 블로킹을 적극적으로 안하고 수비나 공격을 우선시 한다. 블로킹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남자든 여자든 블로킹이 적극적으로 되지 않으면 그 다음도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블로킹에 덜 신경 쓰고 공격이나 수비를 더 신경 쓴다. 손모양이나 타이밍, 협업은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블로킹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미세한 차이지만 그런 부분들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블로킹을 하는데 있어 물론 손모양이라든지 타이밍, 머리싸움, 높이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블로킹에 대한 의지가 선행되어야 함을 꼬집은 신 감독이다. 센터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블로커를 말하다
블로킹을 알고 싶으면 센터를 주목해라. 그래서 현재 V-리그에서 뛰고 있는 센터들을 살펴봤다. 우선 41살 나이에도 불구, 아직도 코트를 지키고 있는 방신봉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블로커들에게 많이 붙는 별명 거미손, 원조는 방신봉이다. 홍익대 재학 시절부터 황금 방패와 거미손이라는 별명은 그의 차지였다. 2008년 잠시 배구를 떠났다 돌아온 방신봉이지만 지금까지도 블로킹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갈지는 모르지만 그는 대한민국 최고 센터였다.
삼성화재가 최고 팀으로 군림해올 수 있었던 데에 외국인선수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자명한 사실. 하지만 고희진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가운데서 중간 역할을 잘해줬다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 넘치는 파이팅 역시 팀에 큰 활력소였다.
800블로킹 금자탑을 쌓은 이선규 역시 센터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 그가 얼마나 많은 블로킹을 더 추가할지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신영석. 현재 상무에 소속되어 있지만 언급하지 않기에는 분명 아쉬운 선수. 경기대 재학 시절부터 한국 남자배구 간판 센터 계보를 이어갈 선수로 일찌감치 꼽혔다. 블로킹과 속공에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2011~2012시즌 첫 블로킹상을 수상한 이후 상무에 입대하기 전 2013~2014시즌까지 블로킹상은 그의 차지였다.
새끼손가락, 그 영광의 훈장
유도나 레슬링 선수 귀를 보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일명 만두귀. 몸과 몸이 자주 부딪히고 바닥에 쓸리는 종목 특성상 대부분 선수들이 만두귀를 가지고 있다. 만두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 그래서 만두귀는 선수들에게 훈장이기도 하다.
배구에서도 이런 영광의 상처가 있다. 바로 새끼손가락. 블로커들은 대개 새끼손가락 탈골이 많다. 블로킹 타이밍이 맞으면 상관없지만 빠르거나 혹은 느릴 경우 새끼손가락 탈골 위험이 크다. 새끼손가락뿐만 아니라 손가락 자체가 성할 날이 없다. 센터들 손가락에 많은 테이핑이 감겨져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이선규 역시 자신의 휜 손가락을 보여주기도 했다. 보는 사람들에게 짜릿함을 주는 블로킹, 그 뒤에는 센터들의 아픔이 숨겨져 있었다.
# 사진 :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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