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HE RIVAL' 유니폼 맞바꾼 운명의 여고동문

권민현 / 기사승인 : 2016-03-11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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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김종건 스포츠동아 전문기자] 위키백과에서 마산 제일여고를 검색하면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1947년 개교한 마산제일여고의 주요 동문 명단에는 정치인 이혜훈, 패션모델 박둘선, 뮤지컬배우 홍지민이 등장한다. 배구선수 4명 이름도 있다. 곽미란, 김해란, 최유리, 임명옥이다. 배구 명문고답다. 2015~2016 V-리그를 앞두고 한국도로공사와 KGC인삼공사는 간판 리베로를 맞트레이드했다. 이 트레이드로 마산제일여고 2년 선후배 사이는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여고시절 김해란(31)은 센터였고 임명옥(29)은 레프트였다. 두 사람은 프로에 입단해 리베로가 됐다. 평소 친한 선후배로 지내온 이들은 어쩔 수 없는 라이벌이 된 것이다.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김해란의 투지와 리더십을 탐냈던 인삼공사, 임명옥의 리시브 능력이 탐났던 도로공사
2015년 6월 1일 결정하던 날. 인삼공사 이성희 감독은 임명옥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기회일수도 있다. 매번 지는 그런 팀보다는 이기기도 하는 팀에 가야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2004년 인삼공사에 입단해 11년간 동료들과 지내온 임명옥에게는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지만 부담은 컸다. “막상 가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도로공사 이호 감독도 김해란에게 트레이드 결정을 알렸다. 2002년 입단해 벌써 13년을 한 팀에서 지내온 터였다. 2014~2015 올스타전 때 백어택을 하다 부상당한 뒤 힘든 재활을 하던 중이었다. 시즌 개막이 되어도 제대로 경기에 나설 지 불확실한 상태였다. 이호 감독은 “팀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평소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선배 김해란이 먼저 변화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전화연락을 했다. 선배 김해란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좋게 받아들이자”면서 후배 임명옥을 다독였다.

2015년 5월 연고지가 성남에서 김천으로 옮겨가자 김해란은 서둘러 김천에 새 집도 장만한 터였다. 그런데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아 트레이드가 됐다. 집을 처분할 상황이 아니어서, 홀몸으로 대전으로 갔다. 이성희 감독은 김해란에게 큰 용기를 줬다. “와 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모든 걱정은 사라졌다. 김해란은 “트레이드 때문에 더 이를 악물고 재활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즌 초반 출전 못 할 수도 있었다. 내게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임명옥은 새 팀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남몰래 많이 울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어느 날 사라져버린 익숙함이었다. “곁에 친한 얼굴, 가까운 선수, 훈련 때 바로 옆에서 플레이를 하던 친숙한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숙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임명옥은 성격이 예민했다.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팀에 남아 있던 서로의 흔적
임명옥은 도로공사에서 처음 훈련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수비 훈련을 하는 데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디그를 가장 잘 한다는 김해란이 10년 이상 지켜온 자리를 새로 온 선수가 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두 사람 기량을 비교하게 된 것이다. 임명옥은 “내가 그 정도로 수비를 못하나 하고 생각하게 될 만큼 비교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은 약이 됐다. 차츰 새로운 팀과 생활에 익숙해졌다. 다행히 인삼공사 시절 함께 우승을 경험했던 선배 장소연이 있었다. 마음을 의지할 수 있었다. 팀을 옮기고서 새 파트너도 생겼다. 오지영이었다. 주부라는 공통점을 가진 오지영은 살갑게 대해줬고 잘 챙겨줬다. 혼자 숙소에서 울고 있으면 찾아와 “또 이럴 줄 알았다”면서 달래주고 격려해줬다.

그 덕분에 새로운 팀과 동료들에게 차츰 동화됐다. 적응에는 힘들었지만 임명옥은 지금 많은 승리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기세는 아니지만 플레이오프 티켓을 경쟁하는 도로공사의 일원으로 팽팽한 시즌을 경험하고 있다. 승리가 쌓이면서 그에게 따라다니던 의문부호는 사라졌다. 역시 스포츠는 이기고 볼 일이었다.

김해란은 팀을 옮기면서 새로운 역할을 하나 더 맡았다. 팀 주장이다. 리베로 신분이라 경기 때는 경기주장을 맡을 수 없어, 다른 선수가 주장 역할을 하지만 팀을 이끄는 리더다. 덕분에 적응은 빨랐다. 도로공사 때는 위로 언니들이 여럿 있었지만 인삼공사에서는 맏언니였다. 후배들을 어떻게든 이끌어야 했다. 아쉽게도 전력은 상대에 비해 떨어져, 지는 것에 더 익숙하지만 그 속에서 후배들이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연주나 백목화와 처음 훈련을 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호흡도 잘 맞았다. 요즘은 경기에서 지는 경우가 많아 후배들이 쉽게 포기할까봐, 좋은 말을 해주고 인터넷에서 좋은 글을 찾아서 보여준다. 잘 따라주는 착한 후배들이 고맙다”고 했다.



여오현을 좋아하는 김해란, 최부식을 좋아하는 임명옥
선후배는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듯 좋아하는 선수도 달랐다. 롤 모델로 여오현과 최부식을 각각 꼽았다. 김해란은 멘탈이 수비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할 수 있는데도 안 되는데 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간다. 마음이 흔들리면 내가 가진 실력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여오현이 경기 때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임명옥은 자신감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수비수는 감도 있어야 하지만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 김해란 선배는 항상 경기 때 자신감이 차 있다. 전사 같은 그 모습이 부럽기는 하다. 내가 못 가진 부분이다”고 했다.

하지만 임명옥은 선배보다 자신이 앞선다고 믿는 것이 있었다. 리시브였다. “공이 마지막에 떨어지는 지점을 잘 찾는다. 언니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 같다. 박삼용 감독시절 이 기술을 익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열심히 하니 내 것이 됐다”고 했다. 임명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최부식의 경기모습을 자주 본다. 뒤에서 동료 후배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뭔지 생각한다.



# 사진 :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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