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김태우 OSEN 기자] 여름과 가을에 뿌린 씨앗이 어느덧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2015~2016 V-리그가 이제 팀별로, 또 개인별로 결실을 확인한다. 개인 수상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부 최우수선수(MVP)의 향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확실한 후보가 어느 정도 좁혀졌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수상을 장담할 수 있는 후보가 없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남녀부로 나눠 살펴봤다. (기록은 2월 23일 기준)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남자부
NOMINATE 1 오레올 까메호(현대캐피탈)
>> 미운 오리 까메호, 이제는 백조 오레올!
2012~2013시즌을 앞두고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은 까메호라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 경력은 독특했다. 공격수이기는 했지만 레프트로 활용할 수도, 혹은 세터로 뛴 적이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공격 일변도의 선수가 주로 ‘수입’됐던 V-리그 외국인선수 과정을 생각하면 색다른 시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렇다 할 명예를 남기지 못하고 쓸쓸히 한국을 떠났다.
까메호는 분명 좋은 선수였다. 국외에서 나름대로 좋은 경력도 있었다. 레프트 공격수로서도 뛸 수 있어 오히려 국내에 들어오는 웬만한 라이트 공격수보다는 더 높은 평가를 받았고, 또 몸값도 비쌌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공격 점유율을 극대화시키고, 해결사 임무를 요구하는 V-리그 특성과는 잘 맞지 않았다. 공격만 때리는 몫으로 한정하면 전문적인 라이트 공격수보다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터와 호흡도 잘 맞지 않았다.
그렇게 잊혀졌던 까메호는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다시 팬들 앞에 섰다. 모든 게 바뀌었다. 이름이 바뀌었고, 팀도 바뀌었으며, 역할도 바뀌었고, 또한 활약상도 바뀌었다. 잘 맞지 않은 오리의 옷을 입었던 까메호는 백조의 오레올로 바뀌었다. 최태웅 감독이 추구하는 스피드 배구의 선봉에 서 현대캐피탈의 극적인 연승 행진을 이끌었다. 때로는 살림꾼으로, 때로는 해결사로 팀을 이끌었다.
레프트 포지션에서 다재다능함을 과시한 오레올은 733득점으로 리그 4위, 58.6%의 공격 성공률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공격은 물론 리시브와 수비, 2단 연결과 블로킹에서까지도 만능 활약을 선보였다. 오레올의 활약 덕에 최 감독이 추구하는 빠른 배구, 전원 배구도 일찌감치 천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같은 선수가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NOMINATE 2 문성민 & 노재욱
>> 토종 분전, 현대캐피탈의 잠재력을 깨우다
V-리그 정규시즌 MVP는 대부분 우승팀에서 나왔다. 아닌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우승팀 프리미엄이 크다. 올시즌도 현대캐피탈 선수 중 MVP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학민(대한항공) 이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국내 선수 출신 MVP가 탄생한다면, 주장 문성민 혹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준 세터 노재욱 중 하나가 가져갈 확률도 적지 않다.
두 선수는 올시즌 현대캐피탈의 정상 탈환 질주를 이끌며 맹활약했다. 토종 최고 공격수 중 하나로 불리는 문성민은 기록만 놓고 보면 최고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기록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주장으로서 묵묵히 분위기를 이끌고, 경기 때마다 강한 투지로 선수단 버팀목이 됐다. 여기에 기초적인 날개 공격수의 패턴은 물론 시간차, 심지어 속공 등 다양화하는 데 기여했다.
노재욱도 다크호스다. 사실 여자부와는 달리 남자부에서는 세터가 MVP까지 오르는 경우가 드물다. 워낙 쟁쟁한 공격수들이 있어 세터가 특별히 돋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가치를 환산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노재욱은 다르다는 평가다. 올시즌 현대캐피탈의 신개념 스피드 배구는 전문가들은 물론 팬들에게도 각인됐다. 높고 빠른 볼배급, 다양한 공격 패턴으로 이를 진두지휘한 노재욱의 인상이 그만큼 강하다고 볼 수 있다.
NOMINATE 3 로버트랜디 시몬(OK저축은행)
>> 트리플크라운 제조기, 최고의 건재함을 알리다
‘괴물 외국인’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기대감은 적중했다. 라이트, 센터를 오가며 모두 리그 최고 활약으로 리그를 평정했다.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의 기적 같은 우승으로 이어졌다. 이런 시몬에 대항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시몬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프시즌 무릎 수술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돌아와 OK저축은행을 진두지휘했다.
올시즌 변함없는 활약은 기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881점으로 득점 2위, 56.31%의 공격 성공률로 공격 2위, 블로킹 세트당 0.77개로 리그 1위, 서브 세트당 0.63개로 2위다. 공격 전 부문에서 1위 아니면 2위다. 역사상 이런 선수는 시몬이 유일하다. 상대 팀 견제가 더 집요해졌음을 고려하면 지난해 이상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시몬이 상대 팀들 스타일을 더 잘 알고 공략하는 느낌이다.
다재다능함은 역대 최고일 수 있다. 시몬은 올시즌에만 9번 트리플크라운(후위·서브·블로킹 3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한 시즌에 한 번 하기도 힘든 선수가 절대다수인데 홀로 9번을 기록했다. “트리플크라운을 의식하고 경기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팔방미인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9번은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트리플크라운 기록(종전 5번)을 여유 있게 넘어서는 기록이다. 외국인 선수지만 사실상 팀 코치 역할을 한다는 점도 다른 모습이다. OK저축은행이 한참 연패에 빠져 있을 때 가장 먼저 앞장 서 팀 분위기를 다잡은 선수가 바로 시몬이었다. 훈련 중에도 잘 된 점, 잘못된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개선에 발벗고 나선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이 유일하게 그냥 놔두는 선수가 시몬이라는 점에서 믿음감을 느낄 수 있다. 표가 분산될 현대캐피탈의 세 후보를 제칠 수 있다.
NOMINATE 4 괴르기 그로저(삼성화재)
>> 역대급 기량+투혼,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
삼성화재는 지난 시즌까지 리그를 평정했던 외국인 선수 레오와 결별을 선언했다. 삼성화재는 당연히 레오를 잡고 싶었지만 레오는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별로 없었다.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통제 불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삼성화재는 시즌 직전에서야 레오를 내치기로 결정하고 새 외국인 선수를 데려왔다. 이름이 발표된 순간, 모두가 놀랐다. 세계 최정상급 라이트 공격수인 독일 출신 그로저가 주인공이었다.
그로저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고 공격수다. 비록 전성기에서는 살짝 내려오고 있지만 타점과 파워, 그리고 기술 3박자를 모두 갖춘 스타 플레이어로 뽑혔다. 세 손가락 안에 뽑히는 라이트 공격수라는 점은 이런 명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그로저가 한국, 그리고 삼성화재 특유의 ‘외국인 편중 공격’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관심이었다. 체력적으로 떨어질 나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전임자인 가빈이나 레오에 비해 나이가 많은 그로저는 50%가 넘어가는 공격 점유율을 버거워했다. 여기에 시즌 중반에는 올림픽 예선 관계로 유럽에 다녀오는 등 강행군을 이어갔다. 아마도 본인의 배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로저는 품격을 잃지 않았다. 967점으로 공격 1위, 53.15%의 성공률로 5위, 0.85개의 서브로 리그 1위에 올라있다. 서브는 V-리그 역대 최고치를 예약했다. 성품도 일품이었다. 보통 외국인 선수들은 부상을 참고 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로저는 팀원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 통증이 있는 상황에서도 힘차게 날아올라 강스파이크를 때려 넣었다. 공격을 성공시키고 팀원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에이스’의 이상형이 가장 잘 묻어있다는 평가다. 팀 성적은 미치지 못하지만, 정규시즌 득점 1위는 항상 MVP 단골손님이었다.
여자부
NOMINATE IBK 집안싸움, 대항마는 있을까
여자부 MVP도 남자부와 마찬가지로 혼전 양상이다. 오히려 남자부보다 더 치고 나가는 선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트라이아웃제 실시로 외국인 선수들 기량이 낮아지면서 국내 선수들을 압도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도 실력이 엇비슷하다 보니 어느 쪽으로 표심이 흐를지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
일단 정규시즌 우승팀에 프리미엄이 가는 것은 확실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세 명 후보가 있다. 김희진, 외국인 선수 맥마혼, 그리고 베테랑 세터 김사니다. 우선 김희진은 올시즌 국내 선수 중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인물 중 하나다. 서브에서 0.35개로 리그 1위에 올라 있고 블로킹에서도 0.59개로 리그 4위다.
올시즌 IBK기업은행의 변화무쌍한 포메이션에서 센터와 라이트를 모두 소화하는 등 다재다능함을 발휘했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IBK기업은행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위기 상황에서 포지션 변경을 마다하지 않으며 맹활약한 김희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다. 다만 아킬레스건은 출장 경기수. 시즌 막판 손가락에 부상을 당해 정규시즌을 완주하지 못한 점은 변수다. 사실상 6라운드 전체를 모두 건너 뛴 선수라 이 부분은 팀 공헌도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후보가 더 있다. 외국인 선수로 시즌 내내 비교적 안정적인 활약을 펼친 맥마혼이 첫 번째다. 외국인 선수가 수상한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맥마혼은 690점으로 득점 3위, 공격 성공률 41.59%로 1위, 0.28개로 서브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공격적인 측면만 놓고 본다면 김희진에 뒤질 것이 없는 성적이다. 다만 예년 외국인 MVP와 같이 확실한 임팩트를 심어주지는 못했다는 게 감점 요인이다.
두 선수가 아니라면 의외로 세터에게 표가 갈 수도 있다. 지난 시즌에도 도로공사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이효희가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던 전례가 있다. 남자부에 비해서는 세터들의 MVP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사니도 후보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리그 정상급 기량을 뽐내고 있는 김사니는 올시즌 평균 10.75개 세트 성공으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3.80개 디그를 기록, 세터 중에서는 유일하게 TOP10 안에 속해 있다.
현대건설에서는 양효진이 가장 내세울 수 있는 후보다. 양효진은 김희진, 이재영(흥국생명)과 더불어 올시즌 국내 공격수들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센터 포지션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404점을 올려 이재영(427점)에 이어 토종 득점 2위에 올라있다. 시즌 막판 발목 부상 여파로 결장하지 않았다면 1위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블로킹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세트당 0.76개로 캣벨(GS칼텍스, 0.70개)에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 외 서브에서도 5위를 달리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 사진 : 문복주,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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