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성민, 마침내 최고로 우뚝 서다.

최원영 / 기사승인 : 2016-04-25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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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MVP 입맞춤,
마침내 최고로 우뚝 서다


V-리그 남자부 MVP 문성민
3 6일 현대캐피탈이 우리카드를 누르고 18연승으로 정규리그를 마감하던 날. 천안의 한 중식당에서 7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자축하는 회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최태웅 감독은이번 시즌 팀에서 가장 공이 큰 선수로 문성민을 꼽았다. 시즌 성적은 득점 8(554득점) 공격종합 10(성공률 48.9%) 시간차 공격 10(성공률 63.64%) 후위공격 9(성공률 52.59%) 서브 5(세트평균 0.293)였다. 퀵오픈과 오픈공격에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공격을 위주로 하는 라이트로서는 아쉬운 성적이다. 그렇지만 최 감독은 레프트에서 리시브와 파이프 공격을 잘해줘팀 전력의 50%”라는 오레올보다 문성민을 높이 평가했다. 이유가 있었다. 코트에서의 플레이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해준 노력을 고마워했다.

최태웅표 스피드배구의 완성은 희생과 헌신 덕분
이번 시즌 주장을 맡은 문성민은 팀 리더로서 제 몫을 해냈다. 감독이 구상했던 밝고 긍정적인 팀 분위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이었다. 그가 솔선수범 해준 덕분에 훈련 때는 몰입하고 쉴 때는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편안하게 쉬고 경기 때는 코트에서 즐겁게 노는, 현대캐피탈의 새로운 배구를 정착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최 감독은문성민이 현대캐피탈에 온 이후 처음으로 야간훈련 때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내기에서 돈도 잃었지만 기쁜 표정이었다. 숨겨진 얘기가 있었다. 최 감독은 송병일 코치와 시즌을 앞두고 내기를 했다. ‘자발적으로 야간훈련에 나온다’ ‘내가 알아온 바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만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문성민이 야간훈련에 나오면 최 감독이 송병일 코치에게 1만원을 주고, 반대 경우에는 송 코치가 최 감독에게 주기로 했다.

시즌 동안 두 사람은 돈을 주고받았다. 최종 결산을 해보니 최 감독이 10만원 이상을 잃었다. 그 돈으로 커피를 사서 선수들에게 돌렸다. 최 감독은 돈을 잃고도 좋아했다. 현대캐피탈 선수가 된 이후 어느 누구도 문성민에게 야간훈련을 하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물론 문성민도 밤에 숙소에서 코트로 내려와 훈련하지도 않았다.

사실 야간훈련은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훈련이다. 공부로 치자면 이미 최상급 우등생이었던 문성민에게는 추가공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팀 훈련을 준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문성민은 주장이 된 뒤로 스스로 야간훈련에 나왔다. 이제 주전세터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했던 노재욱과 매일 밤 손발을 맞춰보며 문제점을 수정해나갔다. 그런 모습을 본 동료들이 더 놀랐다.

문성민이었기에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고 문성민이기에 희생을 요구했다
문성민은 어릴 때부터 배구를 잘 했다. 동기나 선배 누구도 감히 그에게어떻게 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만큼 스스로 열심히 배구를 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달랐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변화를 요구했다. 희생도 하라고 했다. 문성민이기에 해줘야 한다고 믿었다.

감독과 선수 사이의 신뢰는 많은 것을 변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억지로라도 선수를 변하게 할 수 있지만 자발적인 변화와 강요된 변화는 큰 차이가 난다. 감독과 문성민 사이에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최 감독은 사령탑에 오르고 나서 문성민과 자주 면담을 했다. 팀이 어려울 때는 불러서 같이 술잔도 기울이고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며 선수들 생각을 들었다. 문성민은 감독이 원하는 배구철학을 선수들에게 잘 전파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조직의 성패를 가른다는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캐피탈은 다른 구단보다 앞섰다. 감독은 베테랑 권영민을 트레이드 시키고 윤봉우 여오현을 플레잉코치로 승격시키면서 문성민을 원톱으로 선택했다. 선수들을 이끌어갈 대장이라는 완장을 먼저 채워준 뒤 팀을 위한 헌신을 부탁했다.



(사진: 유용우 기자)




스스로를 죽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에 찾아온
MVP
라이트 주 공격수가 해야 할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리시브가 흔들린 상황에서 급하게 연결된 볼의 처리였다. 다른 팀은 외국인선수가 도맡아 했다. V-리그의 토종선수 가운데 공격능력이 가장 뛰어난 문성민이기에 가능한 역할이다. 최 감독은스피드 배구를 하다보면 세트가 부정확한 상황이 많이 온다. 이때 최대한 기술을 이용해 연타나 리바운드 플레이를 해 달라. 앞으로 배구를 오래하고 싶으면 힘보다는 기술로 배구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익숙한 배구에 변화를 주라는 감독 요구를 문성민은 선선히 받아들였다.

달라진 문성민의 생각은 플레이 때 여러 장면에서 노출됐다. 노재욱의 불안정한 세트로 공격이 힘들 때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도리어 격려했다. 모든 공격수라면 강하게 때려 상대 코트, 특히 백어택 라인 안쪽에 꽂아 넣겠다는 로망이 있다. 문성민은 욕심을 자제했다.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쌓아왔던 화려한 이름을 버렸다. 어려운 공을 최대한 연타나 리바운드 플레이로 처리해 다음을 도모했다. 분명 스트레스는 쌓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즌 내내 어느 누구도 문성민이 입맛에 맞지 않는 볼배급에 불만을 표시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상대 3인 블로킹 앞에서 확률 없이 요행만 바라는 벽치기 공격도 하지 않았다.

윙 스파이커로서 역할 뿐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속공수로 중앙을 파고들었고 때로는 이동공격도 했다. 그의 달라진 생각 덕분에 현대캐피탈의 공격옵션이 훨씬 다양해졌다. 게다가 중요한 순간마다 서브로 경기의 흐름을 바꿔주기도 여러 차례였다. 이제 진정한 토털플레이어가 됐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문성민 새로운 현대캐피탈 문화를 만들다
올해 아빠가 된 문성민은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졌다. 자신보다는 항상 동료와 남을 먼저 생각했다. 경기가 끝나면 웜업존에서 대기한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격려하고 악수를 했다. 먼저 동료 후배들에게 다가서자 선수들도 좋아했다. 그동안 뭔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던 현대캐피탈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감독을 정점으로 하는 신뢰가 바탕이 됐지만 중간에서 교량 역할을 해준 문성민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다.

코트에서 잘 웃고 훈련 때도 코트를 놀이터 삼아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업템포 1.0 배구로 이름 붙여진 새로운 현대캐피탈 배구를, 선수단 생각의 변화를 상징했다. 때로는 썰렁한 유머로 훈련장에서의 분위기도 밝게 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김성우 사무국장은문성민이 이처럼 재미있는 선수인지 올해 처음 알았다고 했다. 문성민이 인터뷰 때마다일단은~” 이라는 말을 붙이는 습관을 선수들이 놀릴 정도로 편해졌다. 이런 문성민을 보고 경기대 동기인 신영석은마치 형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내가 알던 문성민이 아니다며 놀라워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열렸던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 때도 가장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살갑게 행동했다. 천안에서 벌어졌던 올스타전 때는 최민호 서재덕과 함께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한 댄스 세리머니로 올스타전 MVP까지 받았다. 그런 면에서 2015~2016시즌은 문성민 배구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Ok저축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을 마친 24일 최 감독은 시즌을 마친 소회를 묻자 또 문성민을 언급했다. “올해의 수확이라면 우리 선수들이 단단하게 뭉쳤다는 것이다. 문성민을 중심으로 원 팀이 된 것을 확인했다. 그 것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을 믿어주는 감독이 있는 한 문성민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글 / 김종건 스포츠동아 전문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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