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배구 해설'하면 떠오르는 이 사람 "안녕하세요, 오관영입니다" ②

최원영 / 기사승인 : 2016-05-31 2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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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FIVB서울국제대회에서 중계를 하고 있는 임건제 아나운서와 오관영 해설위원(오른쪽)


고참들이 솔선수범하는 팀이라야 우승해
오관영과 고려증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려증권은 그가 15년 교직생활을 훌훌 털어버리고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뛰어든 고려통상주식회사의 계열사 가운데 하나였다.

“1981년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난 뒤 전두환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불러 팀을 하나씩 맡으라고 지시를 하자 고려통상 이강학 회장이 어떤 팀을 만들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하더군요. 그래서 주저 없이 내년에 경기대, 인하대, 서울대를 졸업하는 선수들 8명에다 국가대표 이규소 감독과 최종옥 코치만 잡으면 곧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서 배구팀 창단을 건의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이강학 회장은 모두를 스카우트하면 팀을 창단하고 그 가운데 한명이라도 못 데려오면 포기하겠다고 하더군요. 소위 All or nothing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고려증권 남자배구팀이었다. 1983 1 12일 고고성을 울린 고려증권 창단 멤버는 장윤창, 류중탁, 김인옥, 김성범, 김상권, 남태성, 이원재, 이은규 8명이었다, 장윤창은 다른 선수들과 의리를 지킨다며 현대에서 주는 백지수표마저 거절하고 고려증권에 합류했다.

그는 1998년 팀이 해체될 때까지 단장과 배구해설을 겸했다. 당연히 이강학 회장(2006년 작고)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1번 대통령배대회(1983~1994)에서 5, 슈퍼리그에서 1번 등 통산 6차례 우승했다.

고려증권이 창단되면서 금성통신이 럭키금성으로 팀 이름을 바꾸고 대한항공이 재창단, 여기에 상무와 한국전력이 가세하면서 1984년 슈퍼리그 전신인 대통령배가 시작되고 남자배구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배구인으로서 배구팀을 창단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남자배구가 중흥의 불씨를 피울 수 있었던 것은 현대자동차서비스 정덕화 단장 덕분입니다. 정 단장이 의욕적으로 현대를 지원했기 때문에 고려증권과 라이벌이 됐고 이것이 남자배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고려증권이 스카우트비로 4억을 쓰면 현대는 25억을 쓴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려증권이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직력과 끈기죠. 이것은 인위적이라기보다 팀 분위기에서 자연적으로 생깁니다. 예전에 고려증권은 손님이 오면 선참 선수들이 차를 직접 날랐어요. 신참들은 아예 얼씬도 못했어요. 다른 어느 팀에서도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죠. 이런 것이 팀에 녹아들면 자연스럽게 조직력과 끈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회사 임원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면 절대로 우승 못합니다. 물론 선참 선수들을 거느리고 과묵하고 뱃심이 두둑한 진준택 감독이 팀을 잘 이끌어 준 덕분이지만 고려증권은 이강학 회장이 팀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안 해요. 지금 프로에서도 회사 중역들이 간섭하는 팀은 우승 못하고 있습니다.”

굳이 배구가 아니더라도 모든 팀 종목을 육성하는 기업에서는 한번쯤 되씹어 볼만한 충고다.






너희들이 있어 우리나라 배구가 발전하는 거야
오관영은 2000년대 초 관상동맥경화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죽을 고비도 넘겼다. 지금도 일주일에 며칠은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오랫동안 걷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틈이 날 때마다 배구장을 찾는다.

이런 그의 곁에는 딸 윤미 씨(51)가 항상 지킨다. 장애인학교 교사인 윤미 씨 수첩에는 배구 일정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운전을 하며 배구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윤미 씨는 이화여대 방송반 시절이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 장내 아나운서를 할 정도로 배구 실력도 상당하다.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는 바람에 이제는 배구장에서 만큼은 전국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어요. 배구장에 나타나면 많은 배구인들이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며 아예 딸처럼 살갑게 대해 주십니다.”(오윤미 씨)

술을 한잔도 못하지만 지방대회가 끝나면 지금도 후배들이 하는 술자리에 함께 어울린다. 후배들이 술을 먹는 것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가끔씩은 황승언, 최종옥, 엄세창, 진준택에게 보고 싶다는 말 대신술 한잔 하자고 전화도 한다.

이경석, 정의탁, 박삼용, 류중탁 등 고려증권에서 한솥밥을 먹은 후배들과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다. 보통 15명 정도가 모이는데너희들 덕분에 지금까지 밥 먹고 살았다. 배구단장도 했다며 너스레도 떨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1년에 한번은 자신이 선수들을 초청해 후배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그는 해설가 출신답게 이종경, 이도희, 김상우, 이숙자, 이상열, 박희상, 최천식 등 후배 해설가에게도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배구 중계방송은 거의 빼지 않고 보고 나름대로 장단점을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면 이종경은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심해 마치 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식이다. 배구 해설을 잘해야 팬들도 늘고 배구 발전이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지금 해설가들이 나름대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열악합니다. 야구처럼 연중으로 게임이 있어 연봉계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설가들이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익을 찾아야 합니다.” 후배 해설가들의 열악한 환경이 못내 안쓰러운 듯하다.

요즘 선수들은 거의 나를 못 알아봅니다. 여오현 정도까지가 알아보는 정도지요. 선수나 감독들을 만나면 정말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습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에게는 좀 더 과감하게 하라고 말도 하고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이나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에게도 나름대로 조언을 하지만 가능하면 그들이 먼저 물어오기 전에는 다른 이야기는 안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합니다. 바로 니들이 있어 우리나라 배구가 발전하는 거라고.”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남자팀을 창단했으니 여자팀도 창단시켜야지요. 여자팀을 창단할 만한 기업을 알고 있으니 빠른 시간 내에 한번 방문해 여자팀을 창단시켜 보고 싶다고 힘줘 말한다.
목사 오관영보다는 배구인 오관영으로 남고 싶은 듯하다.




글/ 정태화 한국체육언론인회 사무총장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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