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우승보다 중요한 건 팬” 한국전력 공정배 단장 ①

더스파이크 / 기사승인 : 2016-05-31 22:44: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 공정배 단장(54)이 배구선수 출신이란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막연히 플레이어 출신이려니 짐작은 하지만, 사실 그는 25년을 오롯이 한 팀에서 선수로 시작해 주무, 코치, 감독을 역임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선수출신 1호 단장이란 타이틀로 배구코트로 돌아왔다.

공정배 단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 한국전력 아트센터 4층을 찾았다. 한국전력은 지난 201412월 본사가 전남 나주로 이전했지만, 스포츠 지원부서는 서울에 남아있다. 185cm 95kg 당당한 체구이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2009년 감독을 마치고 본사 근무로 들어간 이후 기자도 7년여 만에 만나는지라 반가울 수밖에. 예의 진주사투리는 여전했다.

필드 출신으로 프로배구 1호 단장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115일 단장에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 동부지사 고객지원부장으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나주 본사로 내려오는 전화연락을 받았습니다. 본사에 내려가 사장님을 뵈었더니 바로 배구단 단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임명장을 받고는 곧바로 수원 홈경기장을 찾아 배구장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날 우리카드와 접전을 벌여 3-2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후 8연승을 거둬 선수단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인사를 받았습니다.

공 단장은 84년 한전에 입단해 10년간 선수, 3년간 주무를 거쳐 신치용 코치(현 삼성화재 단장) 뒤를 이어 코치에 오른 뒤 1998년 고 양인택 감독으로부터 감독직을 물려받아 20092월까지 12년간 감독직을 수행했다. 당시 공 감독은 다른 팀에 비해 열세인 전력에 외국인선수도 지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25연패를 당해 경질되는 아픔을 겪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공 감독은 일반 근무부서로 돌아갔다가 6년여 만에 금의환향했다.

왜 단장에 임명됐다고 생각하나?
지금 조환익 사장님이 2012년 말 취임식에서 느닷없이 배구단 성적을 언급하시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연패를 거듭하며 바닥권을 맴도는 한전 배구단 성적에 못마땅해 하셨고, 이는 2만여 직원과 4만여 가족들 사기에 관련된 부분으로 인식하신 듯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승리수당 대폭 인상, 타 팀에 버금가는 외국인선수 영입, 전문가 단장 영입 등 파격적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업무지원처장이 겸직하던 배구단장을 전문단장 발탁 차원에서 제가 임명된 듯합니다.

이런 사정은 조환익<전력투구>에 잘 나타나 있다. 조 사장은 이 책에서 연패에 짜증났고, 부진한 성적에 감독에게 화를 냈다. 그러나 화와 질책만으로 풀 수는 없었다. 몰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감독과 선수가 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자! 선수와 감독 속사정을 잘아는 단장은 배구단 맏형으로서 섬세하고 따뜻한 조력자가 되었다고 적었다.

그래 회사 고위층으로부터 받은 지시는?
사장님은 제게 당신이 감독을 해봤기 때문에 전술에 대해 잘 알겠지만, 전략 전술은 감독 고유 권한이다. 절대 간섭하려 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내가 조금 안다고 간섭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죠. 그 지시는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회사가 공기업이라서 여러 제한이 많습니다. 규정도 많고, 검토하여 시행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배구단에 실질적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 회사와 구단 사이에서 역할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전력 팀이 2008년 프로구단으로 변신하기까지 공 감독이 많이 애쓰셨는데
당시까지 한국전력은 초청팀 자격으로 겨울리그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선수확보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이지요. 프로구단에서 지명하지 않은 선수들을 모아 구단을 꾸려가기도 벅찼습니다. 선수가 부상이라도 당할라 치면 마땅한 교체선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프로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배구단 해체해달라고 회사에 요구했습니다. 어쨌든 2008년 프로팀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구단으로 전환했어도 선수단 구성에 어려움이 있었지요?
한국전력 프로화 전환과 함께 당시 우리캐피탈(현 우리카드 전신)이 창단했습니다. 협상을 거듭한 끝에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은 한국전력에, 1라운드 2~5순위는 우리캐피탈에, 2라운드 1~3순위는 다시 한국전력에 지명권을 배정받았습니다. 1라운드 1순위로 경기대 문성민 선수가 유력했는데 문성민 선수가 돌연 휴학하고 독일로 진출했습니다. 막상 프로로 출범했지만, 내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고 외국인선수 영입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2008~2009시즌 성적은 개막 후 25전패로 최악을 기록했고, 성적부진으로 감독직을 차승훈 코치에게 넘기고 배구단을 떠났습니다.

드래프트에서 문성민을 지명해 보유권을 획득한 한국전력은 3년 뒤 현대캐피탈과 트레이드에 합의해 문성민을 내주고 센터 하경민과 레프트 임시형을 받아들였다.

(2편에 계속)

/ 김동준 편집장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