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에게 세 번째 소속 팀이 생겼다. 현대캐피탈, 삼성화재에 이어 KB손해보험에 둥지를 틀었다. 배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이선규. 그는 과감히 용기 냈고, 새로운 성공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5월 19일, FA 2차 협상 기간 종료를 하루 앞두고 KB손해보험이 삼성화재 센터 이선규 영입 소식을 알렸다. 연봉 3억 5천만 원에 계약 기간은 1년이다. 이로써 이선규는 2010년 남자부 FA 도입 후 4번째로 이적한 선수가 됐다. 박철우(현대캐피탈-삼성화재), 여오현(삼성화재-현대캐피탈), 이강주(드림식스-삼성화재)의 뒤를 이었다. 등 번호는 9번이다.
마지막 도전을 결심하다
이선규는 5월 23일 KB손해보험에 합류했다. 하루 뒤인 24일 오전, 수원에 위치한 KB손해보험 체육관에서 이선규를 만났다.
이적 소식이 알려지고 난 후 주변 반응은 어땠을까. “배구 관련 지인들은 계약 축하한다고, 가서 잘하라고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배구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왜 갑자기 또 팀을 옮기냐’라며 걱정해주더라고요.” 이선규는 웃었다.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가족들도 우려가 컸어요. 결정 나기 전까지는 말씀 안 드리다가 계약 후에 말씀 드렸어요. 좋은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에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고민 끝에 결정한 거고 결과가 잘 나왔으니 축하한다고요.”
본인 마음은 어떤지 물었다. “새로운 팀에 왔으니 고참이지만 신인 같은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해서 빨리 적응해야죠. 같은 운동을 해도 힘든 점이 있어요. 이제 꼬박 하루 같이 운동했는데 최대한 빨리 KB손해보험 선수가 돼야죠.” 연륜 넘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한테는 세 번째 팀이에요. 3년 전에는 현대캐피탈에서 뛰다가 보상선수로 삼성화재에 가게 됐는데, 이번에는 자의로 FA 시장에 나가 팀을 옮겨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라며 말을 이었다.
이적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제 힘으로 다른 팀에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저를 좋은 선수라 평가해줄 팀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마침 KB손해보험에서 저를 필요로 해서 이야기가 잘 됐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FA 시장에 나오기까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솔직히 고민 많이 했죠. 제가 올해 35살이에요. 나이가 있는 편이라 힘들 거라 예상했어요. 이번이 제 3번째 FA거든요. 예전에는 두 번 다 1차 협상에서 원 소속팀과 합의점을 찾아 바로 계약하려고 했어요. 올해는 제가 2차 협상에서 타 팀과 계약에 실패해 3차 협상으로 이어져 손해를 본다 해도 한번은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 나이를 봤을 때 마지막 FA라고 생각했거든요”라며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거요. 진짜 할 게 못 되더라고요. 도전해놓고 내심 걱정이 많았나 봐요. 1차 협상 때부터 거의 보름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정말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성공했고,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이뤘으니 만족해요”라며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강성형 감독은 ‘잘해보자’ 한 마디로 반가움을 표했다. 그 외 특별한 말은 따로 전하지 않았다. 이선규는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현행 FA 제도가 조금 더 완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훗날 환경이나 제도가 잘 갖춰져서 저처럼 용기 내고 성공하는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신입생 이선규, 이적을 신고합니다!
팀에 온 지 이제 겨우 이틀째. 적응에는 어려움이 없는지 궁금했다. “장영기 코치나 권영민 세터 등 현대캐피탈에서 같이 뛰었던 분들이 있어 어색함은 덜해요. 특히 영민이 형은 선수 중 유일하게 저보다 나이가 많아서요(웃음). 또, 우리 하현용 주장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근데 딱히 조언 같은 건 안 해주더라고요. ‘네가 알아서 해라’ 이런 식이에요. 축하하고, 반갑고, 잘해보자고 하죠”라며 싱글벙글 미소 지었다. 방은 리베로 김진수와 함께 쓴다. 김진수는 생활 방식 등을 알려주며 이선규를 돕고 있다.
KB손해보험을 상대 팀으로 만났을 때와 소속 선수가 되어 뛸 때 차이점도 있을 듯 했다. “다들 하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해요. 분위기도 좋고요. 고참이든 신인이든 모두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잘 어울리려 하더라고요. 긍정적인 부분이죠. 서로 융화돼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권영민, 하현용 등과 함께 고참으로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이선규. 하지만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진 않는지 물었다. “제가 그것도 다 생각해봤는데요, 다른 팀에서 합류한 선수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방인이라는 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사실 아직 덜 친해진 선수들도 조금 있는데 다 저한테 잘해주더라고요. 저도 그만큼 다가가도록 노력해야죠”라고 전했다.
이선규는 본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그래도 금방 익숙해지려 한다. “매 시즌 오며 가며 봤던 선수들이에요. 같이 운동하다 보면 금방 친해져요. 저희는 배구라는 운동이자 일을 하기 위해 모였잖아요. 코트 안에서 같이 땀 흘리며 친해지는 게 제일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죠. 손발 맞추면서 하이파이브도 하고, 포옹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녹아 드는 거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 실력도 더 발휘될 수 있고요”라고 밝혔다.
KB손해보험은 센터 포지션이 약한 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현용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등 공백이 생겼고, 이수황과 김민규가 그 자리를 메우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따라서 이선규 가세는 센터 포지션에 내리쬐는 한 줄기 빛과 같다. “책임감은 당연히 있죠. 그래도 하현용 선수가 있어 든든하고 부담감도 좀 덜 수 있어요. 제가 잘해야죠. 개인적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이 이겨야 저도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에 팀 승률을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어요”라며 열의를 보였다.
몸 상태는 좋은 편이다. 특별히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다. “관리를 잘하려고 하죠. 그래도 점프를 많이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가긴 해요. FA 협상 기간 동안 운동을 제대로 못 했어요. 지금 다시 몸 만드는 단계예요. 어제 운동을 시작했는데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서 죽겠어요. 2주 정도 하면 올라올 거 같아요”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게 몸 관리 기본이라며 본인은 홍삼이나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고 했다.
아직 전성기라 전해라
이선규는 KB손해보험이 마지막 보금자리가 될 것이라 여기고 있다. “이번에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동안 제 배구인생을 뒤돌아보기도 했어요. 팀도 세 번이나 옮기게 됐고, 우승도 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한 거 같아요. 마무리는 KB손해보험에서 하겠죠. 몇 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여기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요”라며 소망을 밝혔다. 이어 “그래서일까요? 팀에 적응하는 데 마음을 더 단단히 먹게 되더라고요.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선수들은 누구나 한 번쯤 은퇴 후 인생에 대해 고민해본다. 그러나 이선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그는 20대 후반부터 은퇴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제가 2003년도에 입단했는데요, 그때는 30대 초반만 되면 선배들이 다 은퇴했어요. 그래서 저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그게 참 미련했던 거 같아요.” 한창 생각이 복잡하던 청년 이선규는 그맘때쯤 기사 하나를 읽게 됐다.
“누군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느 유명 농구선수 인터뷰였어요. 은퇴하기 전까지는 운동에만 집중하고, 은퇴는 현실로 다가오면 그때 생각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보고 ‘아, 운동에 전념해야겠다’ 하고 깨달았죠.” 이선규는 은퇴 후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몇 가지 큰 구상만 그려놓았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배구선수들의 선수 생명이 길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전력 센터이자 ‘황금 방패’라 불리는 방신봉은 올해 41세다. 방신봉은 이선규 롤모델이기도 하다. “신봉이 형이 단순히 배구를 오래 해서 존경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현대캐피탈에 신인으로 입단했을 때 고참으로서 블로킹, 공격 등 많이 가르쳐줬어요. 후배들이 지금 신봉이 형을 보며 ‘아, 나도 열심히 하면 40대까지 배구를 할 수 있겠구나’라고 느낄 거예요. 저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은퇴할 때까지 잘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어요.”
올 시즌 이선규의 목표를 물었다. “첫 번째 목표는 저희 KB손해보험이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는 거예요. 선수들이 부상 없이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선규라는 선수의 장기적인 목표도 들을 수 있었다. “4년 뒤 39세가 될 때까지 주전으로 출전하며 한 시즌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가 많이 모자란데 이렇게 FA로 영입해준 KB손해보험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려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기존 선수들과 합심해 다가오는 2016~2017시즌 팀이 더 튼튼하고 탄탄해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정말 노력할게요”라며 진심을 전했다.
FA 이적 성공이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은 이선규. ‘100세 인생’이라 불리는 요즘, 이선규에게 펼쳐질 미래는 여전히 광활하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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