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 장충체육관이 분주하다. 2016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서울시리즈가 7월 1~3일 열리기 때문이다. 서울시리즈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한국. 남자대표팀과 맞붙게 될 체코 이집트 네덜란드를 분석해본다.
만만찮은 출발
‘김남성 호’가 출범 후 처음 맞는 대회는 국제배구연맹(FIVB) 주최 2016 월드리그다. 이번 월드리그는 예년과 견줘 진행 방식에 변화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오는 8월 6일 개막하는 2016 리우 올림픽 일정 때문이다.
FIVB는 이 때문에 종전과 다르게 월드리그 대륙간 라운드 일정을 짰다. 또한 월드리그 참가국 숫자도 늘렸다. 올해는 36개 팀이 나섰다. 세계랭킹과 대회 개최 능력 등을 고려해 1, 2, 3그룹으로 나눴다. 경기 일정은 줄어들고 참가 팀은 늘어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한국은 2그룹에 속했다. ‘김남성 호’가 잡은 목표는 2그룹 잔류. 그러기 위해서는 2그룹 12개국 팀 가운데 최하위를 면해야 한다. 그러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하다. 한국은 현재 6연패를 당하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안방인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3주차 일정을 최악의 상황에서 치르게 된다.
2그룹 잔류가 중요한 건 랭킹 점수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이번 리우 대회까지 인연이 없다. 4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해 다가오는 2020 도쿄올림픽 본선행이 큰 목표다. 대한민국배구협회 역시 이를 목표로 두고 있다. V 퓨처 펀드를 만들어 대표팀 및 유소년 지원 기금을 모으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월드리그 2그룹에서 전체 최하위를 차지하면 다음해 월드리그에서는 3그룹으로 내려앉는다.
이럴 경우 2020 도쿄올림픽 본선 행 준비 과정이 좀 더 어려울 수 있다. 한국이 2그룹 잔류를 목표로 둔 가장 큰 이유다. 현실은 냉정하다. 대표팀이 2그룹에서 최하위를 차지해 3그룹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최악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체코
-얀 스토크 없지만 무시할 수 없는 공격력
‘김남성 호’는 국내에서 열리는 월드리그 대륙간 라운드 3주 차 일정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한다. 감독도 그렇고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체코, 이집트, 네덜란드 순서로 7월 1일부터 3일까지 연달아 경기를 치른다.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첫 상대 체코부터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한국은 체코와 역대 상대전적에서 2승 12패로 크게 밀린다. 그래도 최근에는 체코와 자주 경기를 가졌고, 좋은 내용으로 치렀다. 2014년과 지난해 월드리그에서 각 1승씩을 올린 기억이 있다.
체코는 올해 월드리그에서 20일 기준으로 1승 2패(승점 4)를 기록했다. 2그룹 C2조에 속해 대륙간 라운드 1주차에서 캐나다, 중국, 이집트를 만나 각각 경기를 치렀다.
첫 상대인 이집트와 경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2-3(25-21 22-25 20-25 25-22 12-15)으로 졌다. 중국에게 3-1(21-25 25-22 25-23 25-17)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끌어올렸으나 캐나다에게 1-3(16-25 23-25 26-24 24-26)으로 덜미를 잡혔다.
체코는 국내 배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얀 스토크가 대표적인 공격수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15~16시즌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고 V-리그 코트에서 뛰었다. 그런데 올해 월드리그 엔트리에는 빠졌다. 그는 22명 예비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스토크가 빠졌으나 체코는 미카알 휭거가 이번 월드리그에서 주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 뛰고 있는 휭거는 신장 201cm로 라이트와 레프트 두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
휭거와 함께 신장 202cm 레프트 공격수인 도노반 자보로녹이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그는 1997년생 ‘영건’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매서운 공격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 받는다. 이번 월드리그를 통해 성인대표팀 데뷔를 했는데 출전시간이 점점 더 늘어날 수 있다. 베테랑 센터 야콥 베셀리도 한국이 신경 써야 할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집트
-사령탑 교체 후폭풍 한국 1승 상대로 꼽혀
한국은 이집트와 역대 상대 전적에서 7승 2패로 앞서있다. 이런 이유로 안방서 치러지는 맞대결에서 1승 제물로 거론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이집트는 대륙간 라운드 1주차 일정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체코와 풀세트 접전에서 승리를 거뒀고 중국과 맞대결에서는 세트스코어 3-0(25-20 28-26 26-24)으로 이겼다.
두 차례 듀스 접전을 모두 승리로 마무리할 만큼 뒷심도 있다. 아프리카 팀들이 승부처에서 다른 팀들과 견줘 끈기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번 월드리그에서 이집트는 이런 편견을 깨뜨리고 있다. 2016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팀이기 때문에 100% 전력을 갖추고 이번 월드리그에도 나섰다.
2주차 일정에서도 2승 1패를 기록했다. 첫 경기였던 핀란드전에서는 패했지만 일본과 터키를 상대로 각 세트스코어 3-2, 3-1로 승리했다.
주 공격수는 아메드 압델라히다. 그는 국내 프로팀에서도 영입을 고려했을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는 라이트 공격수다, 197cm로 신장은 크지 않지만 높은 타점과 탄력을 바탕으로 파괴력 있는 스파이크를 선보인다.
다만 1984년생으로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압델라히 뒤를 이을 재목으로는 아메드 엘카탑이 1순위로 꼽힌다. 197cm로 압델라히와 키가 같다. 포지션도 같은 라이트다. 그를 대신해 이집트의 주 공격수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장점은 높이다. 아시아권에서 장신화에 가장 성공했다는 중국과 맞대결에서도 높이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신장 207cm인 마마도우 압델라힘과 211cm인 젊은 센터 모하메드 모아와드가 뛰지 않았어도 중국과 블로킹 맞대결에서 뒤처지지 않았다. 신장 210cm인 주전 센터 압델할림 모하메드는 한국 공격수들에게 꽤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
단신 레프트 듀오인 오마르 하산과 아메드 아피피도 경계대상으로 꼽을 수 있다. 변수는 이집트 코칭스태프 교체다. 이집트는 이번 월드리그를 앞두고 대표팀 사령탑이 바뀌었다.
이집트를 올림픽 본선으로 이끈 이탈리아 출신 플라비오 길리넬리 감독이 팀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이집트 대표팀을 맡았는데 월드리그와 올림픽 준비하던 도중 사임했다. 그가 이집트를 떠난 이유는 이집트 배구협회와 갈등 때문으로 알려졌다. 길리넬리는 이집트 배구협회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리프 엘 세멀리가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분위가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번 월드리그를 통해 이집트와 오랜만에 경기를 치른다. 가장 최근 맞대결은 지난 2007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이었다. 9년 만에 서로를 상대한다.
네덜란드
-세대교체는 여전히 진행 중
네덜란드는 세대교체가 잘 진행되고 있는 팀 중 하나다. 2016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은 좌절됐으나 다재다능한 젊은 선수들이 많다.
월드리그 예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중 베테랑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선수로는 라이트 공격수인 카이 반 다이크(1984년생) 야르헨 라우버딩크(1985년생) 야스퍼 다펜바흐(1989년생) 정도다. 1990년대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탄탄한 조직력이 강점이다.
네덜란드는 국내 팬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팀이 될 수 있다. V-리그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 뛴 경력이 있는 카이를 비롯해 2016~17시즌 삼성화재에서 뛰게 되는 호스트가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원정 길에 두 선수가 동행한다면 팬들에게는 충분한 볼거리가 될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주전 세터를 맡고 있는 니미르 압델아지즈의 한국 원정 동행 여부도 관심거리다. 그는 대륙간 라운드 1주 차 경기에서는 주전으로 나오지 않았다. 세터로 큰키(201cm)가 장점인 압델아지즈는 최근 소속팀에서 공격수 겸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한국은 네덜란드와 상대 전적에서 4승 14패로 열세다. 그런데 체코와 마찬가지로 최근 들어 월드리그에서 자주 만나는 상대다. 한국은 지난 2014년 월드리그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홈 앤 어웨이로 치른 4경기에서 1승 3패를 기록했다. 풀세트 승부만 두 차례 나올 정도로 접전을 보였다.
대표팀이 나아갈 길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겠지만 올해 월드리그 참가 예비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 많은 배구팬이나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기원 감독 시절부터 대표팀은 ‘세대교체’에 방점을 찍었다. 2020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를 두고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 대표팀 전력을 최대한 향상시키는 데 지향점을 두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연말 고교생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런데 정작 이번 월드리그에 참가하는 대표팀 선수 구성을 살펴보면 ‘유망주’ 및 ‘기대주’로 꼽혔던 고교, 대학생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프로인 V-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만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고교와 대학 유망주가 빠진 이유는 분명히 있다. 국내 대회와 대학리그전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각 학교가 대표팀 선수 차출에 난색을 표한 부분도 있다.
이는 프로팀도 비슷하다. V-리그 일정이 끝난 지 얼마 안됐다. 대표팀에 뽑힐 정도라면 각 팀에서도 주전 급이다. V-리그 구단이 대표팀 소집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다. 어차피 100% 전력을 꾸리기 힘들다면 대한민국배구협회가 ‘세대교체’를 위해 선발했다고 알린 고교나 대학선수를 최소한 두 명 정도는 이번 대표팀 엔트리에 넣었어야 했다. 그러나 당장 눈 앞에 성적을 놓칠 수 없는 절박함에 기성 선수들로 부랴부랴 대표팀을 꾸렸다.
2그룹 잔류가 목표라고 하지만 첫 술에 배가 부를 순 없다. ‘영건’들을 과감히 기용해야 한다. 가까운 예는 있다. 박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처음 잡았을 당시 선수 구성에 어려움이 많았다. 대표팀 선수 구성에서 잡음이 있거나 주축 선수들이 부상 등을 이유로 빠진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2011년 대표팀은 좀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박 감독이 선택한 건 당시 대학코트에서 뛰고 있던 전광인(현 한국전력)이다. 성균관대 소속으로 팀 내 에이스였던 전광인은 그때 처음 성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려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선수(대한항공)를 대표팀 주전 세터로 본격적으로 중용한 때도 그때였다. 센터진도 신영석(현 현대캐피탈)과 박상하(우리카드) 등을 중심으로 개편에 들어갔다.
한국은 그 해 월드리그에서 쿠바를 상대로 2승을 올리는 등 선전했다. 쿠바가 당시 자국 체육관 개보수 공사로 월드리그 일정을 모두 원정경기로 치르긴 했어도 한국이 거둔 승리는 결코 빛이 바라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을 통해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전광인은 소속팀 동료인 서재덕을 비롯해 송명근(OK저축은행) 등과 함께 V-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
‘김남성 호’는 월드리그를 마친 뒤 오는 9월 열릴 예정인 아시아배구연맹(AVC) 컵에 출전한다. V-리그 2016~2017시즌 개막을 앞둔 시기라 프로팀에서 선수를 차출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대한민국배구협회가 꼽았던 젊은 유망주에게도 대표팀 승선 기회가 찾아온다. 당장 눈 앞 성적보다 먼 장래를 준비해야 한다. 좀 더 큰 틀에서 대표팀 운영을 생각해야 한다.
2020 도쿄올림픽까지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 짧게 생각하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글 / 더스파이크 편집부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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