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예체능 11번째 종목으로 배구가 선정되고 멤버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던 당시, 익숙한 연예인 이름들 사이로 낯선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 예체능 배구 편 마지막 촬영 현장에서 가장 크게 이름이 불린 건 낯선 이름의 그였다. 코트를 향해 강하게 내리 꽂히는 스파이크처럼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그, 바로 학진(본명 양학진·25)이다.
6월 15일 우리 동네 예체능 배구편 녹화 준비로 한창이던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 체육관을 찾았다. 이 날은 2016 Let’s volleyball 전국 생활체육 배구대회가 열리는 날이자 우리 동네 배구단 마지막 촬영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팬들의 함성과 응원소리로 시작된 촬영. 그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은 덕분일까. 우리 동네 배구단은 경쟁 팀들을 하나하나 물리치며 유종의 미를 향해 달려갔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촬영은 시계바늘이 오후 5시를 넘어까지 이어졌다.
결승전을 앞두고 잠깐 주어진 휴식시간. 그 틈을 타 학진을 만났다. 경기 내내 공격을 도맡아 하던 그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다.
배구가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
Q 배구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가 궁금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마치고 놀이 삼아 1시간씩 배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집에 갔더니 교장선생님이 제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들고 오셔서 부모님께 저를 배구시키라고 설득하시고 있더라고요. 배구부 코치 선생님이 제가 배구 하는 모습을 보고, 배구 감이 있다며 교장선생님께 설득해 달라고 하셨나 봐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Q 대학까지 배구선수를 했다고 알고 있어요. 선수 생활을 접은 별다른 이유라도?
대학교 1학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어요. 무릎 수술도 하고, 어깨에 무리도 많이 와 프로팀 가서도 공을 계속 때릴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그만 두고 군대를 갔어요.
Q 아쉬움도 컸을 것 같은데… 당시를 뒤돌아 본다면 좀 어떠세요? 막막하지는 않았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구가 제 인생의 전부였는데, 배구를 그만뒀으니 아쉬움이 너무 컸죠. 그리고 속상한 건 제가 배구하는 걸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중간에 운동 그만두고 싶을 때도 어머니 때문에 참고 했었는데, 제가 배구를 그만뒀으니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런데 배구를 그만두고 나서는 막막하기 보다는 새로운 꿈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어요.
Q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고등학교 때 유명 기획사 관계자로부터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어요. 당시는 운동을 할 때라 관심이 크게 없었죠. 그러다 스무살에 배구를 그만두고 나서 또 길거리에서 캐스팅 제의를 대여섯 차례 받았어요. 그때부터는 관심을 가지게 됐고 본격적으로 배우를 해보고 싶어 지금 있는 소속사를 소개 받으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Q 배우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지만, 같이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프로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 중에 곽명우 선수가 있어요. 같이 운동하던 동기가 국가대표 선수가 된 걸 보니 자랑스럽고 응원해주고 싶더라고요. 제가 못 다 이룬 꿈을 친구가 풀어주니까 너무 좋죠.
Q 배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봄철남녀대회에서 MVP를 받았어요. 그때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그때가 배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뿌듯했죠.
학진, 다시 배구를 만나다
배구가 인생의 전부였던 꼬마 아이. 하지만 어른이 된 그 아이의 인생에 배구는 없었다. 배구를 뒤로 한 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학진. 그러나 운명처럼 그의 눈앞에 다시 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학진은 다시 배구공을 손에 들었다.
Q 예체능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올 1월 초에 예체능 배구 편을 곧 시작해서 오디션을 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김세진 감독님이 계시는 체육관에 가서 배구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KBS에서 제작진 분들과 미팅을 했는데 고정 멤버가 됐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어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정말 제 인생의 큰 행운이 찾아 왔던 거 같아요.
Q 아무래도 선수출신이라 부담감이 있었을텐데….
김세진 감독님도 제작진도 시작하기 전부터 “너는 우리 동네 배구단의 에이스가 될거다”라고 부담을 주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선수 출신이니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어요. 되돌아보면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 기분 좋은 부담감이 아니었나 싶어요.
Q 예체능 선수들과의 호흡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오타니 료헤이 씨를 제외하고는 선수출신이 아니라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다들 배구를 처음 하는데도 운동 신경이 있어서 맹연습을 거치고 나니까 정말 무섭게 실력이 늘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호흡이 잘 맞아서 멤버들과 금세 친해졌고 팀워크도 단단해 져서 힘든 점은 없었어요.
Q 같이 운동하면서 한 팀이라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첫 승을 했을 때였어요. 다 같이 모여서 끌어안고 고개를 젖히며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 뭉클했어요.
Q 예체능을 촬영하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면?
정말 좋은 형들과 동생 조타를 얻었고, 또 저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팬들을 얻었어요. 제 인생에 있어서 선물 같은 분들이에요.
Q 예체능 배구 편을 통해 선수로서 못 뛰는 아쉬움을 조금은 해소하셨나요?
엄청 해소했죠. 오히려 선수 때 보다 더 풀었어요(웃음).
Q 예체능 촬영을 하면서 예전 선수들을 만나셨잖아요. 기분이 묘했을 것 같아요.
배구 하면서 만났던 분들을 방송을 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만나니까 더 반갑고 신기하고 새롭더라고요. 서로 바빠서 자주 못 봤는데, 방송을 계기로 얼굴도 보고 연락도 하니 좋았어요. 고마운 인연들이죠.
Q 예체능을 찍고 나서 주위 반응이 궁금해요.
엄청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다들 많이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가장 놀란 건 아버지 반응이었어요. 원래 무뚝뚝한 분이신데 제 건강을 체크하시기도 하고, 뭐하냐 밥은 먹었냐 어디냐 언제 들어오냐 등 스케줄도 직접 점검하시고 용돈도 가끔 주셨어요. 밥 사먹으라고, 끼니 거르지 말라고요. 아버지가 그런 분이 아니셨는데 가장 새로운 반응이었어요.
Q 인기도 많이 올라가셨죠? 실감하시나요?
실감하죠. 경기장에서 응원해주시는 소리도 너무 감사하고요. 촬영 마치고 나가면 팬 분들이 경기장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응원해 주시는데 너무 감사하죠. 그리고 아직 길 가다가 사람들이 절 알아보는 건 어색해요. 길에서 마주치는 분들이 “너무 잘 보고 있어요”, “힘드시죠~~” 하고 건네주시는 한마디가 너무 감사해요.
Q 학진 선수가 보기에 예체능 멤버 중 가장 실력이 는 멤버는?
다들 하나같이 정말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그 중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오만석 형이요. 농담으로 방송에서 만석이 형 호가 구기라며, ‘구기의 제왕’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볼에 대한 감각이 좋으세요. 매번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볼을 받아내는데, 제왕다워요.
Q 예체능에서 8번을 달고 뛰던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늘 1번을 달고 싶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 8번을 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선배가 이미 1번을 하고 있어서 11번을 했어요. 그래서 예체능에서 등 번호 몇 번을 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중·고등학교 때 늘 달고 있던 11번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호동이 형님이 이미 11번을 찜 했더라고요. 그럼 1번을 하겠다고 했더니 이것도 강남이 형이 선점했다고 해서 결국 초등학교 때 했던 8번을 하게 됐죠,
그런데 8번을 달고 보니 의미가 있더라고요. 배구단 창단 당시 멤버가 8명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멤버들을 가장 뒤에서 밀며 가겠다는 큰 의미를 담게 돼서 좋았어요.
Q 예체능 촬영이 마무리됐습니다. 마친 소감과 예체능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사실 아직까지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나요. 다음 주 촬영 날이 되어야 그때 더 실감이 나겠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늘 배구 대회에 출전한다고 어머니가 손수 싸주신 도시락을 멤버들과 나눠 먹었고 아버지와 동생도 경기장에 와서 끝까지 응원을 해줬어요. 가족들 응원을 받아서 그런지 뭉클하더라고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새로운 꿈을 꾸다
예체능 촬영도 끝이 났다. 이제는 정말 배구선수가 아닌 배우로 돌아갈 시간. 배우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될 그의 앞으로가 궁금했다.
Q 배우로서의 활동계획이 있다면 살짝 들려주세요.
지금은 별 프로젝트라고 신인배우들이 모여 함께 착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곧 좋은 작품으로 연기하는 모습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Q 예체능처럼 예능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예능이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던 경험이라, 기회가 된다면 또 해보고 싶어요. 예체능에서 두 번 정도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제가 요리하는 게 참 어설프거든요(웃음). 기회가 된다면 요리 배워보는 예능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Q 배우로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요?
여러분들에게 이름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름이 유명한 주연은 아닌데 작품을 보고 나면 “어 근데 저 배우는 이름이 뭐지?” 하면서 궁금해지는 배우 있잖아요. 아직은 신인이라 작은 역할을 맡더라도 관객 분들에게 큰 임팩트를 남겨서 이름이 궁금해지는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학진에게 배구란?!!
제 인생의 전부죠!!! 그래서 배구를 그만 뒀을 때는 너무나 많은 걸 잃은 기분이었지만 예체능을 통해 배구로 다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을 때는 모든 걸 얻은 느낌이었어요. 배구로 인해 웃고 울고! 늘 행복했어요.
글/ 정고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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