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디어 마이 디그요정, 최부식

최원영 / 기사승인 : 2016-07-13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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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디그요정
리베로 최부식과 팬이 들려주는 6년의 우정

2010~2011시즌 V-리그를 강타한 별명이 있다. 30대 리베로 최부식에게 찾아온 별명 ‘디그요정’이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최부식과 팬. 한바탕 배꼽 빠지게 웃다가도 금세 눈물 짓던 이야기를 공개한다.

6월 10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 신천에 위치한 한 맥주 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햇빛이 무섭게 내리쬐는 날 낮술이라니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다. 지난 2015~2016시즌이 끝난 후 약 석 달 만에 조우하는 두 사람. 서로를 ‘요정님’이라 부르는 둘은 마치 오래된 죽마고우처럼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운명적이었던 배구와의 인연
신천 진짜 오랜만이다. 2003년 상무에 있던 시절에 오고 10년만에 온 거 같아. 옛날엔 여기 상무나 서울시청 배구부 선수들이 진짜 많이 놀러 왔거든. 아무튼 한 잔해.
어우 첫 잔부터 원 샷 이에요? 그래도 인터뷰 하는데 서로 예의는 갖추는 게 좋겠죠?
야 여태 친구처럼 지내놓고 이제 와서 예의를 갖추기는. 우리 사이에 무슨!
하긴 그렇네요. 먼저 요정님 배구 인생에 대해 좀 들려주세요.
난 경남 함안 가야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 배구를 시작했어. 29년이나 했지. 어렸을 때 달리기를 잘해서 육상부였어. 아직도 육상 1등해서 받은 상장을 아들한테 자랑할 정도로 좋아했지. 근데 가을쯤에 학교에서 배구부를 창단한 거야. 선수가 없으니까 나 포함해서 육상 하던 4명이 배구부에 들어갔어. 배구 하다가 육상 경기 있으면 나가서 육상하고. 시골이니까 가능했지(웃음). 그러다 6학년 때 축구부가 또 생긴 거야. 그래서 그 4명이 이번엔 축구부로 갔어. 난 그때 축구를 하기로 마음먹었어. 함안군에서 하는 작은 대회에 나가서 우리가 1등했거든.



어렸을 때부터 기본적으로 운동신경이 좋았나 보네요.
그런 가봐. 근데 부모님께서 운동을 아예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중학교 때 배구든 축구든 운동을 하려면 무조건 마산으로 전학가야 했는데 부모님 반대가 심해서 전학 가지 않고 함안중학교에 진학했어. 웃긴 게 내가 함안중에 입학하니까 학교가 배구부를 만든 거야. 결국 내가 함안초, 함안중 배구부 창단 멤버가 된 거지.



우와 신기하다. 운명적이네요. 배구랑 인연이 있나 봐요.
하지만 그때도 어머니가 많이 반대했지. 내가 무릎에 성장통이 조금 있었는데 멀쩡한 다리에 깁스를 시킬 정도였어. 그러면 뭐해. 내가 목발 짚고 가서 또 배구를 하는 거야. 깁스가 두 동강이 날 때까지 말이야.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어. 중학교 1학년 때 시험을 보는데 우리 반 애들 40명 중에 20명이 부정행위를 했어. 체육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내가 배구하면 애들을 다 용서해주겠다는 거야. 그래서 ‘배구, 하겠습니다’라고 했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했어.



부모님은 더 이상 반대 안 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경기대 졸업할 때까지 모든 경기에 와서 날 응원해주셨어. 배구하고 싶다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주신 거지. 제주도, 강원도 등등 전국 모든 경기에 다 오셨어. 든든한 지원군이었지.



와, 배구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겠네요.
맞아. 사실 위기도 있었어. 경기대 1학년 때 내 키가 너무 작으니까 한계에 부딪히는 거야. 배구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 당시 경기대는 이경석 감독님이었는데 감독님 찾아가서 군대 얼른 다녀와서 지도자 길 알아보겠다고 말씀 드렸어. 그랬더니 감독님이 곧 수비 전문 선수 그러니까 리베로 제도가 생길 거 같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하는 거야. 결국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리베로 제도가 도입되고 내가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지.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 만났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매번 타이밍이 진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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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그요정 별명 탄생 비화
이제 네 인생에 대해서 좀 얘기해봐. 넌 언제부터 대한항공 팬이었어?
제가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체육시간에 배구를 했어요. 고3 수능 끝나고 바로 배구를 보러 갔죠. 그게 2010~2011시즌이에요. 2011년 1월 천안에서 하는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 경기였어요. 제 친구가 현대 팬이라 현대 응원석에 앉았는데 그날 대한항공이 이기더라고요. 그때부터 대한항공 팬이 됐죠.



그럼 그 스케치북은 어쩌다가 들고 다니게 된 거야? 난 그거 성남에서 상무랑 경기할 때 처음 본 거 같은데. 그날 아마 내가 1세트만 뛰고 안 뛰었을 거야. 이미 순위가 거의 결정된 상황이라 나 대신 (김)주완이가 뛰었거든.
맞아요. 기억력 진짜 좋으시네요. 그거 아세요? 그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생일인데 중계 카메라에 ‘디그요정 최부식’이 잡히고 요정님이랑도 첫 인사를 나누게 된 거예요. 얼마나 신기하고 좋았으면 제 다이어리에 표시도 해놨어요.



근데 거기에 다른 선수 응원 문구도 있었다며. 배신 아니냐?
처음엔 그냥 플래카드 들고 응원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손재주도 없고 만들기 귀찮기도 해서 스케치북에 매직으로 대충 쓱쓱 써서 가져간 거죠. 스케치북 큰 걸 하나 샀는데 한 장만 쓰면 아깝잖아요. 사실 김학민 선수 문구가 먼저 중계에 잡혔어요. ‘득점도사 김학민’이었거든요. 그 외에도 ‘신영수박수’ ‘진상헌집 줄게 새집 다오’ 등 문구가 많았죠. 물론 가장 유명해진 건 ‘디그요정 최부식’이지만요.



그렇구나. 난 원래 경기장에서는 주변을 잘 안 봐. 게임 전에나 잠깐 둘러보는 정도지. 상무 전에 몸풀 때 (이)영택이가 뒤에 보라고 누가 너 응원하는데 엄청 웃긴다고 하길래 봤더니 네가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거야. 2세트엔가 교체되고 나와서 자세히 봤는데 진짜 말 그대로 ‘허접’하더라. 근데 너 그거 이벤트 1등하지 않았어?
네. 대한항공에서 베스트 응원피켓을 뽑는데 팬 분들께서 감사하게도 제 스케치북을 가장 많이 뽑아주셨어요. 덕분에 제주도 왕복 항공권 2장 받아서 할머니랑 둘이 여행 다녀왔어요. 요정님도 제 덕 좀 보셨잖아요. 2010~2011시즌에 올스타전 중간 집계 1위도 하고! 솔직히 제 덕분인 것도 있죠?



와, 나는 거짓말인줄 알았어. 구미에 원정 경기하러 버스 타고 내려가는데 당시 신영철 감독님이 기자한테 전화 올 거라고 하는 거야. 내가 올스타전 중간집계 1위라고. 진짜 바로 기자가 나한테 전화를 했더라고. 올스타전 1위 비결이 뭐냐는 거야. ‘네? 장난하지 마세요~’ 그랬어. 속으로는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지. 그때 우리 팀에 김학민, 한선수 등 인기 있는 선수들 많았잖아. 그 선수들한테 투표하다가 나도 그냥 덤으로 골라준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지.
사실 저도 기사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했다니까요.



그래서 정규리그 우승 확정 짓고 나서였나? 경기 끝나고 방송 매체에서 날 인터뷰하는데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밥 한 번 사주고 싶다고 했어. 생일 축하한다고도 말했는데 그건 안 나간 거 같더라.
정말이요? 생일 축하한다고 한 건 몰랐는데 이건 좀 감동이네요.
하여튼 눈물도 많아. 2010~2011시즌에 정규리그 우승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4전 전패로 졌을 때 너 대전에서 울었지?
네(웃음). 지금 생각하니까 굉장히 부끄럽네요. 경기 끝났을 때는 그냥 슬프기만 했는데 밖에서 요정님한테 수고했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까 우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원래 눈물이 많아요. 주책이었죠 그땐.



2013~2014시즌에는 네가 아예 대한항공 명예기자로 들어왔잖아. 그것도 벌써 3년 전 일이네.
어차피 저는 대한항공을 무척 좋아하고, 거의 모든 경기를 가니까 명예기자에 지원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지원할 때만 해도 4년 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죠. 합격하고 나서 회사 사무실에 오리엔테이션 받으러 갔는데 프런트 직원들이 저한테 디그요정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도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비밀을 들킨 것처럼?
비밀은 무슨 비밀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뭐. 그래도 네가 매 경기 와서 응원해주니까 고맙긴 하더라. 오늘 너랑 같이 인터뷰 한다고 하니까 우리 와이프가 너 맛있는 것 좀 많이 사주라고 했어. 그러니까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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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간직한 기억
요정님은 배구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예요?
난 2010~2011시즌 정규리그 우승했을 때. 첫 우승이었어. 매년 2, 3등 계속 아쉽게 고지를 밟지 못하다가 드디어 이뤄냈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내가 대한항공에 2000년에 들어왔잖아. 10년 만에 우승을 처음 맛본 거지.
저는 이번 2015~2016시즌에 보여준 ‘발 디그’ 얘기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웃음). 그때 저도 수원체육관에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보고 진짜 기립박수 칠 뻔 했다니까요.
야 이거 놀리는 거지? 나는 배구선순데 공 한 번 잘 차서 갑자기 월드 리베로가 됐어. 그때 SNS에 외국인들이 친구 신청을 엄청 걸더라고. 나도 신기했지. 너는 다음 시즌부터 대한항공 명예기자 안 한다며. 네 명예기자 인생을 돌아봤을 때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저는 고작 3~4년 했는데도 진짜 여러 장면이 스쳐가요. 아무래도 2015~2016시즌이 가장 최근이어서 그런지 기억에 많이 남죠. 특히 팀이 7연패 했을 때. 하필 반짝 1위하고 나서 연패라 더 힘들었어요. 연패 도중 삼성화재 경기 때 구단에서 종이비행기 날리는 이벤트 했잖아요. 그 종이비행기 하나씩 펼쳐서 읽어보고 사진 찍고 그걸로 기사 쓴 게 아직도 기억나요. 이렇게 매일 지더라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 그래도 나는 대한항공이 좋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기사를 쓰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마음이 아렸다고 할까요?



맞아. 그땐 정말 다들 힘들었지. 우리카드 이기고 연패 끊던 날 나도 온갖 감정이 느껴지더라.
경기 끝나고 눈에 눈물 맺힌 거 제가 다 봤어요. 그런데 왠지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 보여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죠? 처음 기사 봤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어요. 리베로 최부식이 은퇴라니.
요즘 내가 고민이 많지. 배구를 너무 오래했나 봐. 그래도 나는 더 할 수 있을 거 같았거든. 꼭 주전이 아니더라도, 교체선수로 뛰더라도 잘할 수 있는데. 몸 아픈 곳도 없고. 아쉬움이 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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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계에 남아주오 그대
저는 개인적으로 요정님이 선수 생활 조금만 더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이대로 은퇴하는 건 너무 아쉬우니까.
한편으로는 선수 생활 연장한다고 해도 얼마나 더 오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 길어야 두 시즌이지 않을까? 대한항공 일반직 근무를 포기하고 가는 거라 더 신중하지.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코치, 지도자로 잘 풀릴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사실 내가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야.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하잖아. 나 때문에 게임을 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해. 20대 때는 다음 경기에서 잘해보자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어. 나이가 들고 선배가 되니까 책임감이 커지더라. ‘내가 못해서 지면 어떡하지?’ ‘후배들 어떻게 보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점점 약해지는 거야. 실수는 누구나 다 하는 거잖아. 그걸 빨리 떨쳐버리고 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



만약 지금 은퇴를 결정하고 일반 회사원이 된다면 후회나 미련이 남을 거 같진 않으세요?
난 혼자가 아니잖아. 가족이 있고 내가 가장이니까. 지금 큰 애가 10살이고 작은 애가 8살이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가기 시작할 때지. 가족들은 아마 안정적인 걸 원할 거야. 하지만 내가 살면서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인생 대부분을 배구와 함께 했다는 걸 아니까 날 이해해주려 하더라고. 내 꿈을 지지해주려는 게 고맙지.



프로 팀 두 곳에서 요정님한테 관심을 보였다면서요?
응. 두 팀 다 플레잉 코치를 제안했는데 한 팀은 코치에, 한 팀은 선수에 더 가까웠어. 그 중 한 팀은 단장님과도 직접 통화했는데 요즘은 평생 직장이 없다고 하더라고. 배구선수로 남는 것도, 일반 회사원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내가 중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이 있단 말이야. 그런 쪽도 알아봐주신다고 하더라고. 그러다 마지막에 한 마디 나지막이 남기시더라. 선택은 네 몫이지만 네가 배구계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 말에 여운이 남더라.
건배 한 번 해야겠다. 그죠?
그래. 대신 원 샷 해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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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다
저 디그요정 창시자로서 궁금한 거 있어요(웃음). 디그요정 후임은 누가 될 거 같아요?
나랑 비슷한 스타일은 삼성화재 리베로가 된 (부)용찬이야. 리시브도 잘하지만 디그에서 더 강점을 보이는 선수. 힘 있고 젊었을 때도 나는 리시브 형은 아니었어. 디그에 강한 선수였지. 용찬이가 처음 프로 왔을 때 주위에서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 쟤는 너랑 비슷하다고. 근데 개인적인 바람은 백광현(Li, 대한항공)이 잘했으면 좋겠어. 열심히 연습해서 꼭 훌륭한 선수가 됐으면 해. 너는 이제 직장인이 됐는데 어때? 일은 할만 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서 처음엔 마냥 재미있고 좋았어요. 내 명함이 나오고 월급을 받는다는 게 신기했죠. 근데 점점 체력이 떨어져서 힘든 거예요. 매일 누워서 잠이나 자고 빈둥거리던 애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니 적응이 안 됐죠. 운동 부족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홍삼을 많이 먹었어요. 벌써 손바닥만한 통으로 4통 비웠어요.
야 그 정도면 거의 신앙심 아니냐(웃음)?



아니니까 조용히 해주세요(웃음). 그보다 제가 명예기자 할 때 매번 저한테 좋은 얘기 많이 해주셨잖아요. 인생 선배로서 저한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조언이라기 보다는 이제 사회생활을 하잖아. 항상 언행 조심해야 해. 네가 하는 모든 일에는 다 책임이 따르게 될 거야. 책임감이라는 건 쉬운 게 아니야. 어떻게 보면 내가 너의 인생 선배지만 이제는 같은 어른 대 어른이야. 실수해도 봐주겠지, 넘어가주겠지 이런 건 없는 거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하게 즐기면서 해. 난 네가 진짜 잘됐으면 좋겠어. 내가 나중에 너한테 도움 받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웃음).
제가 꼭 성공해서 진짜 도움을 좀 드리고 싶네요(웃음). 감사해요.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과거 팬들 사랑을 받으며 나름의 전성기를 누리던 최부식은 현역 은퇴 후 대한항공 코치가 됐다. ‘디그요정’을 들고 다니던 고등학생 팬은 훌쩍 자라 배구기자가 됐고, 학창시절 가장 응원하던 선수를 인터뷰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리베로 최부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빛이 나는 선수였다. 참 사람냄새 나는 사람. 명예기자로 활동하며 ‘은퇴기사는 꼭 내 손으로 써주고 싶다’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당신의 팬이어서 자랑스러웠다고. 당신을 응원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진짜 기자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프로선수로 남아준 최부식에게 끝없는 감사를 보낸다. 디그요정 최부식은 늘 기억될 것이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신승규 기자, 본인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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