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국 여자배구 시대별 아이콘을 말하다

최원영 / 기사승인 : 2016-08-02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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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들려온 소식은 온 국민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자국가대표팀이 2016 리우 올림픽 본선 행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지난 2014 런던 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진출에 성공한 태극 소녀들 활약에 전 국민이 열광했다.



여자배구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의 신화를 썼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구기종목 첫 메달’이라는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열망해 왔고 드디어 그 힘을 보여줄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다.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면서 한국여자의 강한 모습을 면면히 보여준 여자배구. 과거에서 현재까지,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누구일까.1976년부터 2016년까지 시계를 돌려봤다. 각 선수들에 대한 기억은 김철용 전 여자국가대표 감독(현 중앙여고 감독)에게 직접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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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혜 정
1953년생 165cm 레프트 미도파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던 1976년, 그 당시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했던 이가 바로 조혜정이다. 신장은 165cm로 작은 키였지만 그 열세를 충분히 만회할 점프력으로 ‘나는 작은 새’라는 애칭을 얻었다.


배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64년 도쿄올림픽부터이다. 일본 여자배구는 도쿄올림픽 금, 1968 멕시코올림픽 은, 1972 뮌헨올림픽 은, 1976 몬트리올올림픽 금 등 10여년간 세계최강으로 군림했다. 한국배구도 일본을 따라 조직력과 끈질긴 수비를 앞세워 메달을 노려왔다.


기회는 몬트리올올림픽. 조혜정, 유경화, 정순옥, 윤영내, 변경자, 유정혜, 백명선 등이 주축을 이룬 한국 여자 팀은 서구 선수들보다는 평균 신장이 10센티 가까이 작았다.


8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B조에 속한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 대회 준우승 소련과 접전을 펼친 끝에 1-3으로 졌다. 이어 동독과 쿠바를 잇따라 풀세트 접전 끝에 가까스로 물리치고 조 2위로 준결승전에 올랐다.


한국은 A조 1위이자 대회 우승국인 일본에 0-3으로 졌으나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에 3-1(12-15, 15-12, 15-10, 15-6) 역전승을 거두고 감격적인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단신 주 공격수 조혜정은 높은 상대 블로킹을 뚫고 자유자재로 스파이크를 날렸다. 그러나 조혜정은 쿠바와 경기에서 무릎을 심하게 다친다. 조혜정은 의사 만류를 뿌리치고 준결승 일본전에 나섰으나 눈물로 교체되었다. 헝가리와 벌인 3위 결정전에서는 백명선이 맹활약하며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조혜정의 활약을 외신기자는 “Flying Little Bird”라고 표현했다.


부산 봉래초등학교 6학년이던 때 배구공을 처음 잡은 조혜정은 이후 부산여중, 숭의여고, 국세청, 대농을 거쳤으며, 1977년 은퇴 이후 이탈리아 라이온스 베이비에서 코치 겸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현대건설과 송원여고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거쳐 2010년 GS칼텍스 감독으로 선임되며 프로배구 역사상 최초의 여자 감독으로 기록됐다.


“점프가 특이했던 선수” By 김철용 감독
키가 작았어요. 매스컴에서도 별명을 ‘나는 작은 새’라고 했죠. 조혜정 선수는 점프가 특이했어요. 보통 뒤꿈치가 먼저 바닥에 닿으면서 앞꿈치로 점프하는데 조혜정은 뒤꿈치를 대지 않고 앞꿈치로만 점프를 해요. 점프가 선천적으로 좋기도 했는데 모래주머니를 찬다든지 점프연습을 유독 많이 했던 선수로 기억이 돼요. 키가 작아도 점프가 좋아서 동유럽 선수들하고 경기할 때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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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미 희
1963년생 174cm 센터 & 라이트 미도파


1980년대 한국 여자배구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인공. 광주여상 3학년이던 1982년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1983년 미도파에 입단했다. 1985년 대통령배 우승을 시작으로 ‘최강 미도파’ 시대를 이끌었다.


조혜정이 미도파 1세대라면 미도파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선수는 박미희였다. 선수 시절 ‘코트의 여우’라고 불릴 만큼 재치 있는 플레이를 선보였던 그. 당시 라이벌이던 현대건설 전호관 감독은 “상대 코트를 흔들어 놓는 재주가 탁월한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박미희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무릎 부상을 당하며 심한 부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올림픽에서 수비상을 수상했다. 수비상은 당시 올림픽 여자배구에서 한국선수가 최초로 받은 개인상. 이후 개인상은 24년 후인 2012 런던올림픽에서 김연경이 득점왕을 수상한 게 유일하다.


1979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을 비롯해 1984년 LA올림픽,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화려한 이력을 남기고 은퇴한 박미희는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흥국생명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영리한 배구를 했던 선수” By 김철용 감독
박미희 감독 같은 경우는 센터, 라이트쪽 공격이 가능했던 선수였죠. 포지션상 오픈 공격보다는 시간차 공격에 능했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코트의 여우라는 별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재치 있게 배구를 했던 선수로 기억이 돼요. 배구경기는 흐름이 승패를 크게 좌우합니다. 그 흐름에 리듬을 타야 하는데 그 꾀는 대적할 선수가 없었죠. 배구 스타일을 보면 힘보다는 타이밍을 잘 살리는 선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인상에 남습니다. 박미희 감독은 정말 영리한 배구를 했던 선수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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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경 희
1967년생 177cm 레프트 현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여자 실업배구를 주름잡았던 스타. 현대 여자배구팀 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급 선수. 여자배구 최고 스파이커로 손꼽힌다. 이와 함께 수비도 능한 전천후 선수였다.


1986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신인상을 받았던 지경희는 이후 꾸준히 ‘베스트 6’에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1993년에 열린 홍콩 월드그랑프리 국제여자배구대회에서 ‘베스트 6’로 뽑히기도 했다. 1995년 3월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소속팀이던 현대건설 권유로 트레이너 겸 선수로 활약하다가 96년 초 다시 코트를 떠났다. 이후 비치발리볼 국가대표로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힘 배구를 구사했던 선수” By 김철용 감독
지경희 선수는 테크닉보다는 힘의 배구를 구사한 선수예요. 그 당시는 그런 공격이 잘 통했죠. 제가 93년도 대표팀 감독을 할 때 같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지경희 선수가 자기가 팀에서 가장 체력이 좋은 선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대표팀에서 5분 런닝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기대보다 많이 처지더라고요. 자기 팀에서는 자기가 제일 체력이 좋다고 했는데(웃음). 물론 팀마다 스타일이 달랐겠죠. 제가 지켜 본 지경희는 상당히 힘을 실어 묵직한 볼을 때렸던 선수로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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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윤 희
1970년생 170cm 레프트 호남정유


국가대표 레프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윤희. 배구선수로서는 작은 키였지만 파워풀한 공격과 점프력은 그녀를 대한민국 최고 공격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가 속했던 호남정유는 프로배구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리그에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9년 연속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 기간 92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9년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합류한 장윤희는 빠른 발과 독보적인 점프력을 앞세워 ‘장윤희 시대’를 열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배구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혁혁한 활약을 펼쳤다. 장윤희는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일가견이 있던 선수. 그가 장기간 부동의 국가대표 레프트로 뛸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은퇴 이후 9년만인 41살이라는 나이에 2010~2011시즌 V-리그에 컴백하기도 했다.


“작은 선수의 모든 역량을 발휘한 선수” By 김철용 감독
제가 일신여상 교사로 있을 때 장윤희 선수는 근영여고 선수였어요. 결승에서 주로 만났죠. 장윤희 선수는 점프가 반 박자가 빨랐어요. 볼을 때리는 순간이 정말 좋은 선수였어요. 볼에서 짱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죠.


고등학교 시절 장윤희는 첫 스파이크 볼이 성공하면 그 후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어요. 반대로 첫 볼이 차단되면 그날은 죽 쑤는 날이었고요(웃음). 제가 87년 8월에 호남정유에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당시 장윤희가 키가 작다며 다른 팀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요. 제가 장윤희를 잡았지요. 3단 줄넘기를 다른 선수들이 2단 뛰듯이 뛰었어요. 60~70개 정도로요. 정말 근력이 좋았어요. 탄력이 좋았죠. 키 작은 선수치고는 볼을 다루는 재치는 정말 타고났어요. 순발력도 좋아서 수비 폭도 넓었죠. 어지간한 페인트 공격은 안 먹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대표선수를 10년씩 했죠.


인상 깊은 건 승부욕이 강했어요. 지금 그런 정신력을 가진 선수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키 작은 선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선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장윤희는 한마디로 승부욕으로 똘똘 뭉쳐서 테크닉과 파이팅으로 코트를 장악했던 선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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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경
1988년생 192cm 레프트 터키 페네르바체


명실상부 현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 아니, 세계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수가 바로 김연경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사정은 지금과 같은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원곡중학교 3학년 때까지 키가 170cm도 되지 않아 중학 시절 내내 교체 멤버로 전전하며, 세터나 리베로로 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 이후 키가 20cm 이상 자라며 레프트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꿨고 이 때부터 “초고교급 선수”로 불리며 2005년 10월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했다. 최하위 팀이었던 흥국생명은 김연경 맹활약으로 프로화 이후 처음으로 통합우승을 거둔다. 김연경은 프로 데뷔 첫 해에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 결정전 MVP를 비롯하여 신인상,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등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V-리그를 점령한 그녀는 해외로 눈을 돌렸고 일본을 거쳐 터키리그에 진출했다. 2011년 터키리그로 진출해 5시즌을 소화한 김연경은 그 기간 동안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누렸다.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와 터키리그 우승은 물론 각 대회 MVP까지 휩쓸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 신분을 얻은 김연경은 장고 끝에 페네르바체 잔류를 선택했다.


김연경은 여자국가대표팀 에이스이자 주장으로서 한국팀을 2016 리우 올림픽 본선무대로 이끌었다. 그는 최종예선에서 베스트 레프트로 꼽히며 세계 최고 공격수임을 새삼 입증했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우리나라는 4위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지만 김연경은 MVP를 수상하며 한국배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한국여자가 리우올림픽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그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배구선수로서의 조건을 다 갖춘 선수” By 김철용 감독
김연경 선수는 제가 흥국생명에 몸 담고 있을 때 같이 있었어요. 36년 만에 우승했을 당시 김연경 선수는 1년차였죠. 기질이 있는 선수예요. 중학교 때 키가 168cm밖에 안됐으니까 세터, 리베로를 전전했죠. 그런 경험들, 서러움 등이 큰 선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아마 처음부터 키가 컸다면 그런 애로사항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제가 데리고 있었을 때 보면 코트 안에서 집중력이 좋고 승부욕이 있어요. 지기 싫어했죠. 배구선수가 갖춰야 할 부분에는 물론 경기력도 있겠지만 체력, 정신력, 인화력 이런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잘하는 선수였어요. 뭐랄까, 분위기를 볼 줄 알았어요. 만약 지도자가 “딱 10번만 하자”하면 10개를 놓치지 않았죠. 한 개도 놓치지 않았고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 정도로 센스가 있고 승부욕이 있죠.


운동선수로서 갖춰야 할 부분들은 다 갖추고 있어요. 제가 해설을 하고 있었을 때 아무래도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살며시 다가와서 손을 잡아주고 간 적이 있어요. 따뜻한 면도 있고 예절을 잘 차리는 선수예요. 지금은 세계적인 선수가 됐지만 어렸을 때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했던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KOVO 제공, 본인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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