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동갑내기 배구커플 김철수·김남순 이 부부가 사는 이야기
때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한국전력 김철수와 한일합섬 김남순이 만나 환상의 커플로 거듭났다. 2년 뒤 이들은 손을 맞잡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6일 오후 동갑내기(46) 부부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군포를 찾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할 무렵 우박 같은 소나기가 거세게 쏟아 부었다. 날이 궂어 걱정했지만 부부는 카페 섭외까지 마쳐놓고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배구선수로서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게요. 두 분은 언제 어떻게 배구를 시작하신 거예요?
남 중학교 3학년 졸업할 때 우연히 시작했어요. 원래 육상을 했어요. 높이뛰기요. 그러다 체육 선생님이 배구 한 번 해보라고 해서 늦게 뛰어든 거죠.
철 저도 중학교 3학년 때 신발가게에 갔는데 발이 너무 커서 맞는 신발이 없는 거예요. 지금 키(188cm)가 그때 키거든요(웃음). 신발 285mm 신는데 사이즈가 없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신발가게 아저씨가 배구랑 관련된 분이었나 봐요. 전북 부안군 소재 백산중학교로 가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저도 운동해보고 싶어서 바로 좋다고 했죠.
이제는 한국전력 코치가 된 김철수 씨는 현역 때 어떤 선수였을까요?
철 센터였는데 승부욕이 아주 강했어요. 한국전력에 같이 있었던 신치용 코치(현 삼성화재 단장) 공정배 코치(현 한국전력 단장) 신영철 선배(현 한국전력 감독)께서 아주 잘 아실 거예요. 저는 지는 걸 너무 싫어해서 끝까지 물고 늘어졌어요. 새벽에 혼자 러닝하고 공원 가서 줄넘기하고 그랬어요. 그럼 친구들이 마지 못해 다들 나와요. 자기들도 지기 싫으니까. 그땐 경쟁심이 대단했죠.
남 남편은 센터치고 키가 큰 편이 아닌데도 블로킹 감각이 좋았어요. 예전에는 리베로가 없어서 수비를 교대로 했거든요. 리시브도 잘하고 수비에도 적극적이었어요. 센터가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데 멋있죠. 같은 배구인으로서 칭찬해주고 싶어요.
김 코치는 시즌 전이면 자주 삭발 했어요. 이유가 있나요?
철 성균관대 시절 백구 대제전에 나갔는데 저희가 우승 멤버였는데도 졌어요.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삭발을 했죠. 한국전력 처음 입단했을 때는 선배들이 있으니까 못 했는데 제가 선배가 되면서부터 꼭 머리를 밀었어요. 솔선수범해서 각오를 다지겠다는 마음이었죠. 사실 그때부터 머리가 좀 빠지기도 했고요(웃음). 머리를 밀었는데 연습할 때 대충할 수 없잖아요. 후배들도 잘 따라줬어요.
김남순 씨는 한일합섬 당시 호남정유에 밀려 항상 2위였어요. 그런데 국가대표팀에서는 호남정유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셨잖아요.
남 아우~ 아쉬움 많았죠. 결승에 매번 올라갔지만, 항상 준우승에 그쳤으니까요. 대표팀에서는 저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호남정유 소속이었어요. 친구이자 선후배니까 친하게 잘 지냈죠. 그래도 남모르게 힘든 점도 많았어요. 이미 호남정유 선수들은 한 팀에서 뛰면서 손발이 잘 맞춰진 상황이잖아요. 어려움이 있었죠.
한일합섬이 결국 해체되고 2000년 4월 담배인삼공사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하셨어요. 그 전 해 11월에 출산을 하신 뒤라 부담이 컸을 텐데요.
남 한일합섬이 팀 창단 9년 6개월만에 해체됐어요. 1997년 말이었죠. 이듬해인 98년도에 제가 결혼을 하면서 큰 애를 낳고 2년 정도 쉬었어요. 그런데 제가 큰 애를 가졌을 때 당시 담배인삼공사팀 김형실 감독(현 KOVO 경기운영위원장)과 단장께서 직접 저를 찾아오셨어요. 선수 겸 코치를 해보자 고요.
저는 손사래 쳤죠. 그때는 결혼한 여자 선수들은 다 운동을 그만두는 추세였어요. 다시 코트에 선다는 건 상상도 못 했죠. 심지어 애까지 낳고 복귀라니 말도 안 되죠.
그래서 제가 여쭤봤어요. 왜 저를 데리고 가려고 하느냐고. 단장께서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선수로 뛰어보고 안되면 코치만 하면 된다고, 마음 편히 가지라고요. 결국 출산하고 3개월만에 담배인삼공사에 들어갔어요. 정확히 11월 30일에 아이를 낳고 4월 1일에 갔으니까요. 겁도 나고 제가 할 수 있을지 걱정됐는데 김 감독께서 옆에서 많이 도와 주셨어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김 코치는 뭐라고 조언해주셨나요?
철 전적으로 본인 의향을 존중했어요. 다만 가정이 있으니 항시 상의는 하되, 하고 싶다면 무조건 하라고 했어요. 딱 한 가지, 다치지만 말라고 했어요. 아프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요. 나이 들어 다시 시작하는 거지만 운동할 때 확실히 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했어요. 괜히 와서 후배들 자리 뺏는다는 소리는 듣지 않길 바랐어요. 그런데 가서 정말 잘하더라고요. 우승까지 하니까 저희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굉장히 좋아했죠.
남 그때 감독께서 선수들에게 부담 안 주려고 꼴등만 면하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희가 전국체전에 나가서 우승을 해버린 거예요. 그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열매를 맺기까지는 숨겨진 노력이 엄청났을 거예요.
남 출산 후 복귀한 선수 1호잖아요. 제가 잘하면 후배들도 저를 보며 꿈을 가지겠지만, 만약 못 하면 ‘집에서 애나 보지’ ‘아줌마가 왜 나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꼭 성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장 스무 바퀴를 뛰고 샤워하고 숙소에 갔어요.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몸을 만들었죠. 4월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몸이 너무 안 따라줬어요. 집에서 체육관이 있는 화서역까지 10~15분 정도 걸리거든요. 하루는 지하철 타고 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애 낳고 몸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정말 많이 울고, 혼자 삭였죠. 한 5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몸이 서서히 올라왔어요. 그리고 10월에 마침내 우승을 한 거죠.
철 울었다는 건 처음 듣네. 운 거 알았으면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거예요. 이 사람이 집에서는 내색을 전혀 안 했어요. 제가 한가하면 데려다 주고 이것저것 챙겼을 텐데, 저도 한국전력 코치로 있으니 쉽지 않았죠. 그래서 힘들면 팀 숙소에서 자라고 했어요. 큰 애는 출퇴근하는 제가 보겠다고요. 그래도 엄마라 결국 집으로 오더라고요.
결국 2002년, 5년만에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돼 부산아시안게임에 출전하셨죠?
철 여자대표팀 유화석 감독께서 제게 집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백운호수 앞 카페에서 이야기 나눴는데 저한테 정중히 부탁하더라고요. 아내를 대표팀에 뽑고 싶다고요. 후배들도 많지 않느냐고 했더니, 남순이가 꼭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 말고 본인한테 물어보라고 했어요. 집사람도 처음엔 너무 힘들다고 안 가려고 했어요. 금메달 딴다는 보장도 없고, 한국에서 하는데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으니까요. 결국 본인이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좋다고 했어요.
김남순 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남 일주일에 두 번 어머니들에게 생활체육 배구를 가르치고 있어요. 오후엔 초등학생 1~6학년을 대상으로 방과후 소프트 발리볼을 가르쳐요. 일반 배구공으로 하면 애들한테는 너무 아프니까 말랑말랑한 공으로 하는 거예요. 큰 애는 고등학생이라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 오면 늦고, 작은 애도 운동하러 가고, 신랑도 늦게 오거든요.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더라고요. 저는 성격상 가만히 있는 걸 못 해요. 어렸을 때부터 단체생활을 해서 그런지 혼자 있는 게 싫더라고요.
이제 인터뷰가 조금 편해지셨죠. 본격적인 두 분 만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세요. 1994년에 처음 만나셨다면서요?
철 그전부터 알긴 알았어요. 아내가 한일합섬에 있을 때 저는 대학생이었는데 한일합섬에 친한 누나들이 밥 사준다고 해서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어요. 근데 생전 처음 보는 애가 있는 거예요. 저랑 동갑이라고 하는데 그게 지금 아내였어요.
그러다 1994년도에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팀으로 뽑혀서 태릉선수촌에 들어가서 만났죠.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이나 신영철 감독께서 저랑 아내가 성격이 비슷하다고 둘이 사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95년도에 군대를 갔어요. 틈틈이 연락을 주고 받다가 96년도에 전역하고 교제를 시작했죠.
만나봤는데 성격이 화끈하더라고요. 그게 좋았어요. 또 같은 배구인이니까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잖아요. 몸 관리도 철저하게 해줘요. 저는 집에서 보약해주면 안 먹었거든요. 근데 집사람이 해주면 꼬박꼬박 챙겨먹었어요. 내조의 여왕이에요.
그럼 서로 첫인상은 어떠셨어요?
철 경기하는 걸 보는데 ‘와! 정말 한 성격 한다, 승부욕 있다’ 싶었어요.
남 신랑이 웃는 스타일이잖아요. 웃음 많고 선한 인상이라 호감이 갔어요.
연애하실 때 데이트는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철 저희는 단둘이 만나진 않았어요. 후배들이랑 같이 만나서 놀았죠. 제가 사람들을 좋아해서요.
남 둘 다 배구하는 사람이라 연애다운 연애를 못 했어요. 선생님들이 매일 놀리셨어요. ‘네 자기 잘 있냐?’ 이런 식으로요(웃음). 비밀리에 사귀고 싶었는데 소문이 다 나더라고요. 선생님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셔주셨어요. 완전 중매쟁이였죠. ‘철수 괜찮은 놈이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성격도 좋아.’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죠.
철 둘이 딱 한 번 데이트 한 적이 있어요. 영화 보러 갔는데 둘 다 쿨쿨 잤죠. 남 저도 단둘이 오붓하게 보는 것보다 다같이 보는 게 좋았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같이 사는 거지 안 그랬음 벌써 헤어졌죠(웃음). 옛날엔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랬어요. 둘 다 성격이 강해서 저것들이 5년이나 붙어서 살겠냐고요. 그런데 저는 남편 성격이 좋아요. 뒤끝 없고 시원해요.
두 분은 알콩달콩 사이 좋은 커플인가요 아니면 아웅다웅 커플인가요?
철 연애할 때는 싸워본 적이 없어요. 제가 많이 웃겨줬죠.
남 시즌 끝나면 대표팀 들어가고 다녀오면 또 시즌이고. 만날 시간이 주말밖에 없었어요.
철 그래서 볼 때마다 애틋하고 새로웠어요. 자기 일 충실히 하다 시간되면 만나고. 서로 조금만 이해해주면 싸울 게 없어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죠. 다만 제가 술을 좋아하거든요. 부부싸움 할 일은 술밖에 없어요.
남 술 아니면 제가 잔소리 안 해요. 저는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는 걸 싫어하거든요. 술 마시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니까 조금만 먹고 다니라 그래요. 그런데도 이 사람은 4차, 5차까지 가는 거예요.
철 그래도 요즘엔 평일에 거의 술 안 마셔서 알콩달콩 해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하거든요.
남 자존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죽어지지가 않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많이 죽었어요.
철 부부끼리 싸움하면 뭐해요. 지나가면 별일 아닌데. 사실 제가 삐치면 오래가요.
남 삐돌이 삐돌이.
철 그래도 와이프가 와서 풀어줘요. 고맙죠.
식성은 비슷하신 편인가요?
철 집사람은 육류를 좋아해요. 근데 저는 고기는 별로이고 회가 좋아요. 제가 식탐이 별로 없어요. 한국전력 숙소에서도 하루에 한 번씩 고기가 나오는데 저는 딱 알맞게 다섯 조각 정도 먹어요.
남 남편은 음식 욕심이 없어서 많이 먹질 않아요. 입이 짧거든요. 저는 한 가지 음식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어야 돼요.
철 와이프가 음식 솜씨가 좋아요. 장모님이 잘하시거든요.
남 결혼 후 처음에는 음식을 못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어머니 배구 가르치면서 엄마들이 음식을 해서 싸주시는 거예요. 정말 감사했죠. 요즘엔 좀 배워서 해먹어요.
철 예나 지금이나 이웃들이 많이 도와줘요. 서로 상부상조 하는 거죠. 저는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서로를 부르는 애칭도 있나요?
남 연애 때는 서로 친구처럼 ‘야!’ 이랬어요. 자기야 이런 거 없었어요. 반말을 했으니까요. 나이가 많으면 오빠라고 할 텐데 동갑이라서요.
철 애칭은 뭔가 이상해요. 누구 엄마~ 누구 아빠~ 이렇게 불러요.
깜짝 질문입니다. 두 분 결혼기념일은 언제인가요?
남 3월 29일!
철 말도 마세요. 결혼기념일 때 항상 저만 선물 줘요. 나 혼자 결혼했나? 제가 결혼하고 10년 지나면 기념일이나 선물 없다고 했어요. 근데 그래 놓고 매번 선물 사와요.
남 같이 살아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웃음).
철 그렇게 얘기하지 마셔~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부부의 연을 맺으실 건가요?
남 아유~ 다른 사람하고 만나야지. 뭘 다음 세상에 또 만나요.
철 나는 만나. 내가 다시 꼬드길거야. 이 사람 진짜 착하고 괜찮아요. 물론 다른 여자 만나봐야 알겠지만.
남 만나고 와. 기회 줄게(웃음).
글/ 최원영 기자
사진/ 신승규 기자, 본인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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