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함부로 영특하게, 홍익대 세터 김형진

최원영 / 기사승인 : 2016-08-22 0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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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태어나 자연의 정기를 듬뿍 받고 자란 아이. 그 아이는 커서 대학 무대를 주름잡는 선수가 됐다. 남달리 뛰어나고 훌륭하게, 함부로 영특하게 큰 선수. 홍익대학교 3학년 세터 김형진이다.



지난 7월 13~15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16 국제대학초청 배구대회. 중국과 첫 경기를 마치고 나온 김형진을 만났다.



못 말리게 지독한 연습벌레


김형진은 제주 토평초 4학년 시절 공격수로 배구를 시작했다. 이듬해인 5학년 때 세터로 포지션을 바꿨다.



“당시 체전을 20여 일 앞두고 급하게 세터 연습을 했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처음 저를 배구부에 데려갔을 때 세터를 시켜달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라이트로 뛸 때도 틈틈이 세트 연습을 했어요. 어쩌면 세터가 제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주변에서 다 저한테 세터 하길 잘했대요”라며 빙그레 웃는다.



남성고 시절 명성이 자자하던 그는 2014년 홍익대에 입학하자마자 주전을 꿰찼다. 노련한 경기 운영과 안정적인 볼 배분으로 주목 받으며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입지를 다졌다.



결국 세터 김형진이 이끄는 홍익대는 2014 전국대학배구리그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인하대에 우승컵을 내줬지만, 2차 대회(추계대회)에서 인하대에 완벽히 설욕하며 정상에 올랐다.



그는 “경기를 많이 뛰어서 금방 자리잡을 수 있었어요. 박종찬 감독께서 세터를 믿어주는 스타일이에요. 잘 못 해도 무조건 믿고 가세요. 그래서 제가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듯해요”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대학 선수 중 최고 세터를 고르라 하면 ‘김형진’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잘 모르고 있다. “전 그런 거 못 느껴요. 지금까지 배구를 하면서 제가 잘한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해 봤어요. 다른 세터들 보면서 ‘와 어떻게 저리 잘하지?’하고 감탄해요. 진짜 다 저보다 잘해 보여요. 저는 제가 못하는 거 같거든요.” 김형진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듯 했다.



그는 “자신감이 떨어질 때는 제가 잘한다는 생각을 주로 하죠. 평상시에는 저도 모르게 저를 낮춰요. 다른 선수들에게 본받을 점이 많잖아요. 보고 배우려고요. 예를 들면 저는 뒤보다는 앞으로 볼을 띄우는 게 더 잘 돼요. 그런데 뒤로 세트하는 데에 능한 세터들도 꽤 있어요. 성균관대 3학년 세터 (이)원중이 등이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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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자신감이 없다기 보다는 소심한 편이에요. 같은 말인가요(웃음)? 세트하고 나서 공격수들이 좀 못 때리면 ‘어? 내가 잘못 올렸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애들한테 어떠냐고 계속 물어봐요. 그거 때문에 코치님한테 혼나기도 했어요. 마음껏 하라고요”라고 덧붙였다.



김형진은 이미 많은 후배 혹은 동기들 롤 모델로 자리잡았다. 올해 홍익대에 입학한 세터 제경목은 “대학 와서 롤 모델이 생겼어요. 형진이 형이에요. 매사에 열심히 해요. 이런 사람 처음 봤어요. 운동을 매일 하면 힘들고 놀고 싶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야간운동, 개인운동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아요. 뭘 해도 누구보다 열심히 해요. 진짜 본받고 싶어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김형진은 야간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심지어 주말에 외출을 받으면 재활센터로 향한다. 온전히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올 시즌이 절반 정도 지났어요. 몸이 지쳐있는 상태예요. 지금 몸 관리를 안 하면 몸이 더 처지거나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저희 팀은 거의 세터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평일 훈련 때 제가 빠질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주말에 재활센터에 가는 거예요. 체력에 도움이 많이 돼요. 운동할 땐 힘들어도 몸이 좋아지는 게 당장 느껴지니 행복해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제 신념이 ‘후회하지 말자’거든요. 지금 좀 힘들다고 운동을 소홀히 하면 나중에 배구가 잘 안 될 때 후회할 거 같아요. ‘아, 그때 조금만 더 할걸’ 하고요. 운동선수는 노력이 90% 이상이라고 들었어요. 노력 없인 성공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왕 배구 시작했으니 쭉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요”라며 말을 보탰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있는 김형진. “육체적으로 힘든 건 적응이 돼서 괜찮아요. 그런데 운동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고 답답하더라고요. 저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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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거리는 홍익대, 흔들리는 김형진


홍익대는 지난 6월 7일 홈 경기장 서울 홍익대 체육관에서 열린 2016 전국대학배구리그 조별예선 B조 경기대와 마지막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21, 25-20, 25-20)으로 완승을 거두며 조 1위로 올라섰다. 경기대와 9승 1패 승점 26점으로 기록이 같았지만 세트 득실에서 앞섰다.



기세가 오른 홍익대는 다가오는 1차 대회 준비에 열을 올렸다. 6월 29일 전라남도 해남 우슬체육관에서 막을 연 2016 OK저축은행배 해남대회. 지난 시즌 1, 2차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친 홍익대이기에 각오가 남달랐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대회 조별예선 1차전, 상대는 명지대였다. 명지대는 부상 선수 속출로 인해 전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올해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며 약체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홍익대는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어렵게 경기를 풀었다. 결과적으로 홍익대가 세트스코어 3-1(25-19, 21-25, 25-15, 31-29)로 승리하긴 했지만 경기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접전이었다. 경기 후 승자인 홍익대 선수들 표정이 더 어두워 보였다.



이튿날인 30일 성균관대를 만난 홍익대. 세트스코어 1-3(23-25, 21-25, 25-21, 26-28)으로 패하며 그늘이 드리웠다. 이어 7월 1일 경기대에도 세트스코어 0-3(25-27, 22-25, 22-25)으로 완패한 홍익대는 본선 진출에 빨간 불이 켜졌음을 직감했다.



남은 조선대, 경희대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성균관대(5승 0패 승점 15)와 경기대(4승 1패 승점 12)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홍익대 예선 성적은 3위(3승 2패 승점 9)였다.



8월 19일부터 시작된 2016 OK저축은행배 전국대학배구 남해대회(2차 대회)에서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양대(세트스코어 2-3)와 경남과학기술대(세트스코어 1-3)에 연이어 덜미를 잡히며 예선 탈락 위기에 놓였다. 조별예선 B조 마지막 상대인 충남대를 꺾는다 해도 본선 진출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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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주전 선수 대거 교체를 들 수 있다. 지난해 홍익대 주축이었던 4학년 4명(백광현, 이시몬, 김준영, 김재권)이 모두 졸업하며 팀을 새로 꾸려야 했다.



레프트 이대성(2학년)이 리베로로 전향했고, 이전 시즌 출전 경험이 많지 않던 레프트 신해성(4학년)이 라이트로 이동했다. 본래 라이트 포지션은 신입생 제경배가 분담할 예정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복근 부상으로 시즌 초 전력에서 이탈했다. 주 공격수인 한성정(레프트, 2학년)이 부상에서 복귀했고, 슈퍼 루키 전진선(센터, 1학년)이 가세한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코트에서 공격을 조율하는 세터 김형진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감독, 코치께서 제가 공을 더 잘 올려줘야 한다며 책임감을 가지라고 하셨어요. 스스로 더 잘하려고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부담도 되고 스트레스도 받더라고요”라며 분석했다.



김형진은 “저희는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그 자리를 채우기가 힘들죠. 그래도 다들 최선을 다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박종찬 감독도 선수들도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1차 대회 가기 일주일 전부터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 등 프로 팀들과 연습경기를 했어요. 처음엔 몸이 굉장히 좋았어요. 경기도 재미있게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 몸이 처지기 시작했어요. 힘들어서 그런가 싶어서 운동량도 줄여봤는데 극복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1차 대회 첫 경기인 명지대 전을 못 했으니 무너졌던 거죠.”



박종찬 감독은 속이 탔지만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선수들이 경기가 안 풀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시곤 일부러 말씀을 더 아끼시더라고요. 부담을 조금이라도 없애주시려고 그런 거 같아요.” 김형진 설명이다.



무척 힘들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제 배구 인생에서 정말 최악이라고 꼽을 만한 한 해를 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된 거 같아요. 왜냐면 뭔가 잘못됐고,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주춤한 거잖아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해요. 아직 리그 6강 플레이오프, 전국체전 등 큰 경기가 많이 남아있거든요. 충분히 반성하고 준비해서 다시 치고 올라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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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숨 고르기


2016 월드리그를 앞둔 지난 3월 25일 남자 성인대표팀 예비 엔트리가 발표됐고, 대학생 세터 중 유일하게 김형진이 포함됐다. 그보다 앞선 1월에는 한 달간 대표 선수로 소집돼 진천선수촌에서 스피드 배구 특별 훈련을 받았다. 이외에도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14 제17회 아시아청소년U20남자선수권대회 등 김형진은 수 차례 대표팀에 발탁됐다.



“외국 팀들은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예요. 배구하는 패턴이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틀에 박혀있지 않거든요. 변칙적인 플레이가 많아 상대 팀은 막기 힘들지만 보는 입장에선 무척 흥미로워요.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몸소 배웠다는 김형진은 이후 국제배구대회 경기를 챙겨보며 세터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들의 장점이나 노하우를 찾아 참고하려 애썼다. 갑작스레 찾아온 정체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어느덧 2016년이 절반 가량 지났다. 김형진에게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라 했더니 100점 만점에 65점을 줬다. “제가 지금 세터로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 해요. 대표팀에서는 빠른 배구를, 팀에서는 공격수들 특성에 맞춰 높은 배구를 하고 있어요. 저만의 색을 찾으려 노력 중이에요”라며 이유를 들었다.



그래도 목표는 단 하나다. 오로지 ‘우승’뿐이다. “당연히 우승이죠. 올해 한 번은 우승컵을 들고 싶어요”라며 당차게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까지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라는 선수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시고요, 앞으로도 딱 지켜봐 주세요!”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김형진은 순박한 얼굴에 고운 마음씨를 지닌 선수였다. 배구밖에 모르는 바보가 있다면 딱 이 선수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성장통을 이겨내고 훗날 배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


프로필
이름: 김형진
포지션: 세터
생년월일: 1995.3.10
신장: 189cm
체중: 77kg
출신 교: 토평초-남성중-남성고-홍익대(3학년)





글/ 최원영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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