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 포기를 모르는 남자, 한국전력 강민웅

최원영 / 기사승인 : 2016-08-25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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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노래가 있다. ‘내 인생의 OST’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보는 힐링캠프. 첫 번째 주인공은 올해로 프로 데뷔 10년차, 열 번째 시즌을 맞는 세터 강민웅이다. 삼성화재, 대한항공을 거쳐 한국전력에 자리잡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강민웅의 OST PART1.


이승열 ‘날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강민웅의 프로 첫 발은 화려하지 못 했다. 그는 성균관대 졸업 후 2007~2008시즌 수련선수로 삼성화재에 입단했다. “수련선수라는 게 뭔지 아니까 솔직히 아쉬웠죠. 지레 겁먹기도 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될 거 같고 그랬어요. 그래도 프로 선수가 된 것에 위안을 삼았죠.”



당시 강민웅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유광우를 대신해 주전 세터 최태웅 뒤를 받쳤다. “경기를 못 뛴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어요. 최태웅 감독은 선수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거든요. 태웅이 형 백업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좋았죠. 뒤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웠어요.”



2010년 최태웅이 현대캐피탈로 팀을 옮기며 강민웅에게 기회가 오는 듯 했다. 그러나 주전 세터는 부상에서 복귀한 유광우 몫이었다. 백업 선수로 남은 강민웅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세터가 정말 하고 싶었어요.”



수련선수로 입단해 한 경기도 온전히 뛰지 못한 선수였지만, 삼성화재 동료들은 끊임없이 강민웅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네가 왜 못 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말로 그를 격려했다. “(고)희진이 형이 많이 도와줬어요. 기술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으로 힘이 되는 말들을 해줬어요.”



삼성화재에서 세 시즌을 치른 강민웅은 2010년 상무로 입대했고, 주전 세터로 뛰며 그 동안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그러나 전역 후 돌아온 팀에서는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유광우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4년 1월 17일, 센터 전진용과 함께 대한항공으로 트레이드 됐다.



“삼성화재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제겐 자양분과 같아요.” 강민웅이 한 마디로 자신의 첫 프로 팀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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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트레이드로 팀을 옮길 때 강민웅은 내심 설레었다. 삼성화재를 이끌던 신치용 감독님과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제가 배구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거니까요.”



그는 마음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이제는 실전, 경기에 투입돼 지금껏 보여주지 못 했던 강민웅만의 배구를 펼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2013~2014시즌 한선수 입대로 세터 난을 겪은 대한항공은 위기에 봉착했다. 강민웅 가세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현대캐피탈에 2전 전패를 당하며 아쉽게 봄 배구를 마감했다.



“내가 못 해서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을 강민웅. 리그 마지막 경기 후 회식 자리에서 선수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숙제를 안은 채 그는 대한항공에서 두 번째 시즌을 기약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인하대 졸업 후 2014~2015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한 세터 황승빈이 무섭게 성장했다. 출전 시간을 늘려가며 강민웅과 선의의 경쟁을 이어갔다. 강민웅은 최선을 다했지만, 팀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정규리그 18승 18패 승점 55점으로 4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다시 담금질에 들어간 강민웅. 그러나 2015~2016시즌을 앞두고 군복무를 마친 한선수가 돌아왔고, 황승빈이 두 번째 세터로 자리매김하며 그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솔직히 막막했어요. 또다시 백업 선수로 돌아간다는 게 두렵기도 했죠. 제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잖아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힘들었죠.”



강민웅은 가끔 경기에 나섰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 했다. 잘해야 된다는,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를 옭아맸다. “승빈이 대신 코트에 들어가도 세트를 제대로 하지 못 했어요. 긴 슬럼프에 빠진 것 같더라고요.” 회상에 빠진 강민웅이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미래가 점점 불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늘이 무너진 듯 했지만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줄기 빛이 강민웅을 비췄다. 2015년 12월 23일, 강민웅 유니폼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그는 대한항공을 떠나 한국전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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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웅의 OST PART2.


이적 ‘다행이다’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소속 팀을 세 군데나 거쳤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강민웅은 오히려 기뻐했다. “한 번도 나쁘게 생각한 적 없어요. 경기 뛰러 가는 거니까 좋았어요. 상대 팀에서 저를 원했던 거니까 저를 필요로 해주신 게 마냥 감사했죠. 제가 항상 국가대표 세터가 있는 팀에 가서 백업만 했는데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강민웅은 4라운드 시작을 한국전력에서 맞이하며 2015~2016시즌 절반을 주전으로 소화했다. “확실히 느낀 건 있어요. 저희 팀이 허무하게 진 적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 5세트까지 가는 승부도 많았고요. 근데 문제는 항상 진다는 거예요. 이기고 있다가도 금세 역전 당하고 그랬어요. 선수들 개개인 실력 문제가 아니라 이 팀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아직 모자라는구나, 그래서 고비를 넘지 못 하는구나 싶었어요.”



강민웅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경기는 언제일까? 그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했던 경기,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 경기. 2016년 2월 7일 한국전력 홈인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현대캐피탈과 5라운드 경기다. 5세트로 이어진 승부, 한국전력은 14-11로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내리 5실점을 허용하며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강민웅의 잘못된 선택이 패인이었다. 신영철 감독은 양쪽 공격수를 활용하라고 지시했지만, 강민웅은 센터 전진용에게 2연속 속공을 올렸다. 신영석이 연속으로 가로막으며 듀스를 만들었고, 문성민이 전광인을 차단하는 블로킹 득점을 추가하며 현대캐피탈이 승기를 잡았다.



“정신이 나갔죠 그때는.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5세트 후반까지는 무척 잘했다고. 정말 완벽했는데 마지막 점을 못 찍었다고요. 그 점을 찍을 줄 몰라서 네가 지금 이것밖에 안 되는 거고 그게 네 숙제라고 하셨어요. 정말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나중에 또 이런 실수를 하게 될까 괴로웠어요. 감독께서 이렇게 배우는 거라고 하셨어요. 지금 실패를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겨둬야 두 번 다시 실수 안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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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웅은 ‘고질병’이라는 표현을 썼다. 승부처에서 속공을 쓰는 게 자신의 고질병 같은 단점이라고 한다. 원인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과 체력이 저하되는 것이다.



“제 생각만으로 배구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감독님 지시나 동료들 의견을 듣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했어요. 제가 세터로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거 같아요. 중요한 상황에서 서로 불안하니까 범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팀 구성원 전체가 하나되어 안정적인 힘을 기르고 싶어요. 지난 시즌 끝나고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방신봉, 윤봉우, 주상용 등과 함께 팀에서 선참 급에 속하는 강민웅. 차기 시즌 주장 역할도 맡았다. “감독께서 시즌 끝나자마자 저에게 주장을 하라고 하셨어요. 부담스럽다고 말씀 드렸는데 의지가 확고하셨어요. 지난 주장이었던 (서)재덕이는 워낙 착해서 후배들한테 쓴 소리를 못 해요. 장난은 잘 쳐도 강하게 다그치지는 못 하는 스타일이에요. 재덕이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배워서 올해 팀을 잘 이끌고 싶어요.”



자신 실수를 두고두고 꺼내본다는 그는 반성은 하되 스트레스는 덜 받는 쪽으로 마음가짐을 바꾸겠다고 전했다.



강민웅의 OST PART3.


Someday ‘알고 있나요’


난 약속해요 우리 손을 꼭 걸어요


행복한 기분이죠 눈부신 운명이죠



한국전력에 속한 선수들 중에는 이방인이 대부분이다. 서로 다른 팀에서 모였지만 이제는 한국전력 선수로서 소속감을 갖고 한 팀이 되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



“시즌 끝나자마자 체력 운동, 웨이트 트레이닝을 강도 높게 했어요. 다들 몸이 정말 좋아요. 훈련 분위기도요. 누구 한 명 소홀히 하는 선수 없이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아직 저희가 배구 기술적으로 완성된 팀은 아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게 보여요.”



지난 시즌 도중 신영철 감독과 강민웅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약속을 하나 했다. 신영철 감독이 체지방률 15%를 맞추는 대신 강민웅은 신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의 80%까지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 약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5%면 쓰러지실 수도 있다고 17%로 하자고 제가 제안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감독님께서 체지방률 16.8%를 찍으신 거예요. 목표 달성이죠. ‘난 약속 지켰다. 너한테 큰소리 쳐도 된다. 훈련 열심히 해라’라고 하셨어요. 운동뿐 아니라 식단도 조절하시고 엄청난 노력을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자극 받았죠. 저도 더 정신 차리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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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감독은 가끔 채찍을 들기도 하지만 강민웅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명 세터 출신인 신 감독은 평소 훈련할 때도 강민웅을 집중 관리한다. 아직 성에 찰 만큼은 아니지만 잘 따라와주는 강민웅이 예쁘다. 항상 ‘많이 좋아졌다. 8월까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힘을 준다.



“무척 세심하게 가르치세요. 세트 하나를 하면 제 몸에서 나오는 움직임부터 시작해서 손 모양, 위치, 발 스텝 등 모든 걸 설명해주세요. 알아듣기 쉽게요. 근데 제가 행동으로 옮기려니 잘 안 되는 거죠. 그래도 전보다는 좋아졌어요. 제가 느끼기엔 그래요.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요. 감독이 원하시는 건 볼 컨트롤이 거의 완벽하게 되는 거예요. 공격수 타이밍을 세터가 맞춰줘야 해요. 마음껏 때릴 수 있게요. 그 수준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힘들다기 보단 행복해요. 다 제 복이죠.”



슬럼프에 빠진 전광인을 다독여준 이야기를 물었다. 강민웅도 내색은 안 했지만 전광인의 눈물을 보며 놀란 마음을 쓸어 내렸다고.



“광인이가 몸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예전과 비교해 공 때릴 때 본인이 느끼는 게 다르니까 힘들어 했어요. 공격 성공률도 자꾸 떨어지고 자신감을 상실했죠. 저도 굉장히 놀랐어요. 광인이는 자신감이 많은 앤데 충격이었죠.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데, 광인이가 살아나야 우리 팀도 잘되는데. 그만큼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봐요. 그래서 힘든 거 있으면 무조건 저한테 와서 다 얘기하라고 했어요.”



응어리가 풀린 덕분일까. 전광인은 재활 후 훈련에 복귀해 누구보다 크게 파이팅을 외치며 자신감을 찾아갔다.



“원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 저도 형들한테 도움을 받아왔잖아요. 동생들 얘기 들어주고 도와주고 싶어요. 그게 선배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니까요. 제 한 마디에 애들이 힘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좋은 선배들 밑에서 배운 덕분에 저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어요. 제가 괴로워할 때면 형들이 제 표정만 보고도 알아챘어요. 와서 조용히 등 두드려주고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힘내보자고 해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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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프로 세계에서는 주전이든 아니든 버텨내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들 한다. 10년간 프로선수 생활을 통틀어 강민웅은 단 한 번도 배구를 의심한 적 없다.



“도저히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그만뒀을 거예요. 힘들긴 했지만 배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프로에 와서 1~2년만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많아요. 선수는 자기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거든요. 그럼 본인이 버틸 수 있을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거예요. 근데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어요. 어쨌든 결정은 자기가 하는 거니까 말릴 순 없지만 나가서 무얼 하든 열심히 하라고, 응원한다고 말해줘요.”



중학교 1학년 때 배구를 시작해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강민웅. 18년 배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프로 선수가 돼 이겼던 한 게임, 한 게임이 다 기억나요. 너무 소중해서요.”



한국전력이 자신의 마지막 둥지라는 그는 열의로 가득했다. “저에겐 마지막 팀이죠. 이번엔 봄 배구 하면서 최소 3위 이상 하는 게 목표예요. 정말 중요한 시즌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기록은 생각 안 해요. 우리 팀이 결승에 올라 우승하는 것. 그것만 머리 속에 있어요.” 37세까지는 배구공을 놓지 않고 싶다는 그는 한국전력에서 우승하고 은퇴하는 게 첫 번째이자 마지막 목표라고 한다.



끝으로 강민웅에게 아직 빛을 보지 못 하고 있는 후배들 더 나아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을 부탁했다.



“제가 아직 훌륭한, 뛰어난 선수는 아니라서 이런 말 하기 쑥스럽네요. 딱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절대 포기하지 말아달란 거예요. 포기하면 거기서 끝나는 거거든요. 제가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다짐했던 말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이 있는데 그걸 꺾어가면서까지 꿈을 좇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당연히 서럽고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게 정말 자신의 꿈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요.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저도 그렇게 해서 힘든 걸 버텨냈기 때문이에요.”



열 번 넘어지면 열한 번 일어나는 오뚝이, 강민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신승규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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